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7


《소록도의 구술 기억 ⅴ》

 김영희·황은주·김시연·제하나 듣고 씀

 국립소록도병원

 2020.10.28.



  2020년 12월 22일에 마지막으로 연 마을책집 〈한뼘책방〉이 있습니다. ‘한뼘책방’이란 이름으로 조촐히 책을 펴내면서 책집을 꾸리셨는데, 책은 앞으로도 내기로 하면서 책집만 닫았습니다. 마을 한켠을 보듬는 책집살림을 이어가는 줄 알았으나 좀처럼 마실할 틈을 내지 못하다가 마지막날 저녁에 늦지 않게 겨우 찾아갔어요. 아슬아슬했지요. 곧 책집을 닫으려 하는데, 이곳에 찾아온 손님 한 분이 저를 알아보시면서 “고흥에 사신다고요? 그러면 그 책을 드려야겠네요.” 하고는 2019년 12월 27일에 첫걸음을 내고 2020년 10월 28일에 다섯걸음을 내놓은 《소록도의 구술 기억》을 꾸러미로 건네주었습니다. 서울에 살기에 ‘서울 이야기’를 다룬 책을 다 알기 어렵듯, 고흥에 살더라도 ‘고흥 이야기’를 다룬 책을 모두 알기 어렵습니다. 외려 시골에서는 시골 이야기챡을 알기 더 어려워요. 마을하고 마을이 멀고, 읍내나 면소재지하고도 서로 멀거든요.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조용히 묶은 “작은사슴섬 입말”은 조그마한 섬에 묶인 채 살아야 하던 사람들 멍울이며 앙금이며 눈물이며 웃음을 고스란히 담습니다. 입말꾸러미를 묶으려고 애쓴 이웃이 있기에 놀랍고, 이 일을 서울 이웃이 했다는 대목이 더욱 놀랐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5


《永遠平和の爲に》

 カント 글

 高坂正顯 옮김

 岩波書店

 1949.2.20.첫벌/1952.5.30.6벌



  1795년에 처음 나온 “Zum ewign Frieden”를 일본에서는 1900년대 첫무렵부터 “永久平和論”이나 “永遠平和の爲に”로 옮깁니다. 우리말로도 여러 가지 나왔는데, 저는 ‘정음문고 2’로 나온 《永久平和를 위하여》(I.칸트/정진 옮김, 정음사, 1974)로 읽었습니다. 1700년대 이야기를 1974년에 나온 책으로 읽자면 아무래도 해묵은 빛을 엿볼 만한지 모르나, 싸움길이 아닌 어깨동무를 바라면서, 어떻게 해야 이 푸른별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짓을 멈추고서 푸르게 살아갈 만한가를 찾아나서려는 마음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1795년에 독일말로 나온 책을 이리 나무라거나 저리 꼬집은들 오늘 우리 삶에서 달라질 대목은 없어요. 1700년대라는 그즈음 눈높이로 어떻게 어깨동무를 바라보려 했는가를 살피면서,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한테 어떻게 어깨동무를 들려주고 사랑을 노래하는 길을 밝혀야 아름다울까를 헤아려야지 싶어요. ‘岩波文庫 3739’인 《永遠平和の爲に》이니, 끔찍이 싸움판을 일으킨 이웃나라로서 좀 느즈막하다 싶지만, 1949년에 펴낸 대목하고 제법 읽힌 책자취를 보면서, 오늘 우리도 ‘총을 내려놓고, 밉질을 멈추고, 한결같은 사랑으로 손잡는 길’을 찾아나서는 데에 마음을 모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푸르게 살고 싶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9


《엄마, 나만 왜 검어요》

 김순덕 글

 정신사

 1965.12.20.첫/1967.3.20.3벌



  1965년에 나온 《엄마, 나만 왜 검어요》는 남북녘이 서로 을러대면서 죽이고 죽던 싸움판에 미국에서 총을 거머쥔 사람들이 찾아든 1950년에 깃든 씨앗이 열다섯 살 푸른나무로 자라는 동안 보고 겪은 일을 담아낸 책입니다. 아이는 어머니한테 물어볼 만합니다. 어머니는 쉽게 말하기 어려울 만합니다. 마을이며 배움터에서는 쉬쉬하거나 손가락질하거나 따돌립니다. 미군 병사는 씨앗을 남기고서 이 땅에서 숨을 거두었을 수 있고, 제 나라로 돌아갔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옆나라 일본에서도 흔히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검은 살갗’으로 태어난 이 아이들을 나라에서는 얼마나 보듬거나 보살폈을까요? 오늘날 이 나라 숱한 지음터(공장)나 시골에서는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없으면 다 멈추어야 합니다. ‘한겨레 젊은이’는 막일터(공사판)뿐 아니라 지음터나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라 밑살림이며 밑바탕을 거의 이웃일꾼이 도맡습니다. 고흥에서 ‘김 공장’을 꾸리는 분들 말을 들으면 이제는 이웃일꾼만 쓰려 한답니다. 이웃일꾼은 군말 없이 일을 잘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툭하면 빠지고 내뺀다지요. 이 나라에 이바지하는 이웃일꾼이 남긴 씨앗을 오늘 이 나라는 어떻게 돌보거나 아낄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84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문학과지성사

 2016.9.22.



  군대에 들기 앞서 헌책집을 다니며 ‘손바닥책으로 나온 진중문고’를 곧잘 보았습니다. 정음사·을유문화사·삼성문화사·박영사·범우사 손바닥책 가운데 알찬 오래책(고전)을 진중문고로 삼는다고, 뒷주머니에 꽂고서 다니다가 담배짬에 살짝 펼칠 만하겠거니 싶었어요. 1995년 11월에 들어간 군대를 1997년 12월에 나오는데, 이동안 책을 한 자락조차 못 읽었습니다. 군대로 들어가는 저더러 잘 다녀오라고 어깨를 토닥인 책집지기 어른들은 “여, 자네도 이제 군대에 가면 진중문고를 읽겠네? 허허.” 하고 웃었습니다만, 총 한 자루 쥐고 묵직한 등짐을 짊어진 채 눈 덮인 멧골을 두 다리로 넘나드는 ‘여느 싸울아비(육군 소총수)’한테 담배짬은 터무니없더군요. 둘레에서는 ‘상병 6호봉’쯤 되고서야 ‘바깥에서 몰래 들여온 책을 숨겨서 읽는’구나 싶던데, 저는 ‘말년 병장’이 되도록 하루 두 시간조차 눈붙이기 힘들 만큼 뒹굴었어요. 1996년 어느 여름날 ‘대대에 들어온 진중문고’를 처음 구경하지만 중대에는 안 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자기계발’ 책이에요. 2008년에 처음 나온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2016년 진중문고로도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요새는 ‘대중 시집’도 진중문고가 될 만큼 나아지거나 바뀌는군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78


《新生 英文法》

 류영기 엮음

 신생사

 1946.12.3.



  2020년을 넘어서도록 우리나라는 영어 낱말풀이를 우리 나름대로 못합니다. 아직도 영어를 ‘우리말’ 아닌 ‘일본 한자말이나 옮김 말씨’로 풀이합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영어를 받아들여 가르칠 적에 일본책을 썼고 ‘일본에서 엮은 영일사전’을 곁에 두었거든요. 우리한테는 우리말이 있으나, 우리말로 낱말책을 짓기까지도 참으로 가시밭길이었고, 이 우리말꽃(국어사전)에 일본 한자말이 수두룩히 스며들었어요. 여태 이 부스러기를 떨구지 못합니다. 《新生 英文法》은 일본이 이 땅에서 물러가고서 나온 길잡이책입니다만, ‘우리말’이 아닌 ‘일본 한자말’만 가득합니다. 무늬는 한글이나 알맹이는 그저 일본말이에요. 참다운 온빛(해방)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살림을 짓고 나눌 적에 이룰 테지요. 그늘(일제강점기 영향)을 털고 온몸으로 햇빛을 누려야 비로소 빛납니다.


“우리말로된 좋은영문법이 벌서 전문가들의손을통하여 여러권 나왔으나 아직도 영문법이 더요구된다는 여러분들의 요청에따라 이문법을 내어놓는다. 이문법은 硏究社판 스쿨和英辭典의 附錄과 商務印書館판 英文典大全을참조하여 사계에취미를가진 宋正律, 韓相允 두청년학도의 역찬한것이다.” (序言)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