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59


《のはらひめ》

 中川千尋

 德間書店

 1995.5.31.



  제가 꽃을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어릴 적에는 토끼풀꽃이나 개나리꽃을 톡 훑어서 귀에 꽂거나 머리에 얹으면서 놀았습니다. 순이만 꽃순이여야 하지 않아요. 돌이도 꽃돌이가 될 만합니다. 배움수렁을 거치고 열린배움터를 두 해쯤 다니고 새뜸나름이로 살다가 책마을 일꾼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는 꽃을 살짝 잊었습니다. 떠난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려고 무너미마을을 오가는 사이에 문득 꽃내음을 다시 보고, 떠난 어른이 멧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깨닫습니다. 멧꽃을 사랑하기에 멧꽃 같은 글을 쓰셨더군요. 2007년 4월에 인천으로 돌아가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며 골목마다 핀 들꽃을 새삼스레 봅니다. 어릴 적에는 뛰놀며 흘깃 보았고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보더군요. 《のはらひめ》는 우리말로 옮기면 ‘들순이’쯤. 들에서 맨발로 놀다가 들꽃을 엮으면서 동무하고 노래하는 소꿉을 다뤄요. 나카가와 치히로 님 그림책을 하나둘 읽다가 일본책까지 장만했습니다. ‘들꽃아이·들빛순이’ 마음을 담은 손끝을 곧바로 느끼고 싶었어요.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도 들순이에 숲돌이라면 아름다워요. 꽃아이랑 꽃어른이 손잡고 꽃노래를 부른다면 우리 삶터는 꽃터로 피어나겠지요. 꽃처럼 말하면 곱고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1


《한석봉 천자문 만화(학습) 교본》

 ? 글·그림

 삼일출판사

 1980.9.



  아버지는 어린배움터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동시를 썼습니다. 집에 커다란 낱말책하고 자그마한 옥편이 있었어요. 여기에 《한석봉 천자문 만화(학습) 교본》이 있었지요. 열 살에 마을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배웠는데 이 만화책이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1971년에 처음 나온 듯하고 꾸준히 새로 찍으면서 펴낸해만 달리 적던데, 같은 글·그림을 숱한 곳에서 고스란히 베끼고 훔쳐서 그대로 내기도 했습니다. 누가 쓰고 그리고 엮었을까요? 천자문을 만화로 엮자는 생각은 누가 했고, 어떻게 마무리를 했고, 일삯을 얼마나 받았을까요? 모든 글씨에는 뜻하고 소리가 흐릅니다. 한자뿐 아니라 한글에도 뜻이랑 소리가 나란히 있어요. 우리 나름대로 바라보고 겪고 생각한 숨결을 글씨로 옮겨서 나누는구나 싶어요. 겨울에 꽃처럼 내리는 눈, 봄날 새롭게 트는 잎눈, 둘레를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 우리가 든든히 디디는 온누리, 함께 모여 살아가는 나라, 흙빛을 가리키는 ‘누렇다’라는 낱말까지 ‘누’에는 갖가지 숨결이 감돌아요. 마을 할아버지는 썩 재미나게 가르치진 못했지만 온힘을 다하셨어요. 온마음을 재미랑 즐거움을 더할 적에 말이 빛나고 글이 살아나지 싶습니다. 말빛은 삶빛으로, 다시 삶빛은 말빛으로 이어간다고 느껴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2


《박쥐통신》 1호

 한일박쥐클럽 엮음

 한일박쥐클럽

 2018.10.



  틈이 나면 놀았습니다. 토막틈이어도 손가락씨름을 하고, 발을 구릅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구름놀이입니다. 하늘빛을 보고, 비둘기가 푸드덕 나는 모습을 보고, 잔바람에도 춤추는 풀꽃을 봅니다. 어버이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도, 날마다 밀리는 숙제란 짐에 쌓여도 으레 쪽틈을 내어 놉니다. 어린 날 살던 곳에는 땅밑칸(지하실)이 길게 있었어요. 한낮에도 캄캄한 땅밑칸이라, 이쪽에서 저쪽까지 걸어가기만 해도 오들오들 떨고, 어귀에는 으레 박쥐가 살았습니다. 시골 아닌 인천 같은 큰고장에 웬 박쥐냐 할는지 몰라도, 제비랑 박쥐는 1980년대가 저물 무렵까지 흔히 보았습니다. 해가 지고서 숨바꼭질을 한다며 으슥한 곳에 숨을라치면 박쥐가 되레 놀라 파다닥 뛰쳐나오고, 박쥐가 날아오르면 술래고 뭐고 없이 와와거리면서 박쥐를 따라 달렸습니다. 《박쥐통신》 1호를 보며 반가웠는데 2호는 언제 나올는지 아리송합니다. 아무튼 첫걸음이라도 만나니 좋아요. 숲에서도 살지만 사람 곁에서도 같이 살면서 나방을 사냥하는 박쥐는 어린이 놀이벗이었습니다. 낮에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깊이 잠드니 톡톡 쳐도 꼼짝을 안 해요. 살짝 누르거나 쓰다듬으면 되게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자꾸 만지면 귀찮다며 날개를 폈다 접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7


《인천 화교 이야기》

 김보섭 사진

 인천광역시중구한중문화관

 2017.6.8.



  인천역 둘레에서 살아가는 동무 가운데 누가 화교인가를 딱히 생각하거나 가리지 않았습니다. ‘화교’란 이름인 집안에서 태어난 동무가 꽤 있을 텐데, 그냥 같이 놀고 그저 같이 수다를 떨고 그대로 동무 사이입니다. 만석동·화수동을 놓고서, 또 차이나타운·청관 같은 이름을 붙이면서 마을을 가르려 하던데, 마을사람은 그냥 마을에 살고 골목사람은 그저 골목에서 어울립니다. 어린이 눈높이에서는 송현동·선린동·전동·내동·용동·관동·신흥동·신생동을 따질 일이 없습니다. ‘동무네’입니다. 《인천 화교 이야기》처럼 ‘인천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이웃’을 글이나 사진으로 담으려는 책이 곧잘 나옵니다만, 어쩐지 ‘예술·역사·기록’으로만 바라보는구나 싶습니다. 이름을 가르지 말고 이웃이자 동무로 바라보면 안 될까요? ‘그들과 우리’가 아닌 ‘너랑 나랑 우리’입니다. 같이 인천역부터 동인천역까지 걷고, 거꾸로 동인천역에서 인천역까지 걷습니다. 만석동부터 신흥동까지 걷고, 거꾸로 신흥동부터 만석동까지 걷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에 아침 낮 저녁으로 내내 걸어다니면서 끝없이 수다를 떨었어요. “우리 집에서 밥 먹고 가라.” “해도 넘어갔는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 저녁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ㅅㄴㄹ


예술도 역사도 기록도 아닌

그냥 이웃이자 동무인 삶으로 보면

글이나 사진은 아주 다르다.

그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6


《홀로 있는 時間을 위하여》

 김형석 글

 삼중당

 1975.3.20.



  1988년에 드디어 푸른배움터를 가면서 ‘국민교육헌장 외우기’를 더는 안 시키겠거니 여기며 숨을 돌렸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면 번호를 부르거나 몇째 책상에 앉은 아이를 일으켜 외우도록 시키고, 우물쭈물하거나 한 마디라도 틀리면 몽둥이가 춤추거나 따귀가 날아올 뿐 아니라, 골마루에 나가거나 배움칸 뒤쪽에서 한 시간씩 손을 들고 서야 했습니다. 때로는 애국가 몇 절을 외우라고 시키는데, 배움터라는 데가 왜 이리 아이를 못살게 구는지 알 턱이 없어요. 이름은 ‘배우는 터전(학교)’이지만, 속내는 ‘가두어 괴롭히는 곳(감옥)’ 같습니다. 배움터에서 〈도덕〉이나 〈철학〉이란 갈래를 배울 적마다 속으로 물었어요. “힘없는 아이를 날마다 때리고 윽박지르고 막말을 일삼으면서 어떻게 도덕이며 철학이란 말을 혀에 얹으며 가르친다고 할 수 있나요?” 《홀로 있는 時間을 위하여》는 제가 태어난 해에 나온 손바닥책이요, ‘젊은이 가운데 대학생’한테 눈높이를 맞춘 ‘생활 철학 강좌 수필’입니다. 온해(100살)를 살아낸 그분이 군사독재로 서슬퍼렇던 무렵에 쓴 글은 수수한 사람들 살갗으로 안 와닿는 구름 너머 수다였지 싶습니다. 살아남자면 달콤발림을 해야 했을는지 모르나, 그무렵 아이들은 맞으면서 살아남았습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