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5


《샘터 특별편집 : E.T.》

 윌리엄 코츠윙클 엮음

 샘터출판부 옮김

 샘터사

 1983.2.23.



  어릴 적에 극장에 가는 값은 꽤 비쌌습니다. 둘레 어른이 “극장 갈래, 야구장 갈래?” 하고 물으면 늘 야구장이었습니다. 극장에 건 영화는 한 해를 기다리면 ‘토요극장·일요극장’ 같은 이름으로 보임틀(텔레비전)로 볼 수 있고, 그 뒤로 다시보기(재방송)라며 자꾸 틀어 주었습니다. 영화 〈E.T.〉가 막 극장에 걸리던 해에도 극장에서 볼 엄두를 못 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천에서 숭의야구장에 표를 끊고 들어간 일조차 드뭅니다. 으레 언덕으로 올라가서 먼발치에서 보거나 표 없이도 들여보내는 7회말에 비로소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소년중앙》이나 《보물섬》에 나오는 그림으로만 〈E.T.〉를 만난 끝에 드디어 한 해를 기다려 이듬해부터 보았어요. 막상 보고 나니 왜들 ‘자전거를 달리다가 하늘을 나는 이야기’가 그토록 설렌다고 하는가를 알겠더군요. 때리거나(사랑의 매), 짐을 잔뜩 주거나(숙제), 놀지 말고 배우기만 하라거나(시험공부) 닦달하는 어른들이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더군요. 그런데 이 별에서 살며 ‘닦달 어른’이 없는 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샘터 특별편집 : E.T.》를 뒤적이면서 어린 날을 되새깁니다. 앞으로 어른이 되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노라 꿈꾸던 날을 그립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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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4


《솔밭 아이들 제2호》

 문인숙·권진숙·박소희·명규원 엮음

 송림사랑방교회·송림어린이집

 1988.12.15.



  저는 ‘공부방’에 다닌 일이 없고, 공부방이 뭔지 아는 동무도 없다시피 합니다. 만석동에 살던 동무는 “우리 마을에 뭐가 하나 있긴 하던데, 난 거기 싫더라.” 했습니다. ‘공부’라는 이름부터 듣기 싫은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인데, 왜 가난마을에 찾아와서 가난한 아이들한테 뭔가 가르치거나 함께하겠다는 대학생이나 어른은 ‘공부방’이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공부방’이란 이름이어야 가난마을 아줌마가 아이들을 보내리라 여겼을까요? 가난마을에 깃들어 애쓴 ‘공부방’이 나빴다거나 잘못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만, 가난마을 아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은 아니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저 ‘동무로 지내겠다’는 마음으로 같이 놀려고 찾아왔다고 보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대학교에서 철학·사상·인문을 익힌 깜냥으로 가난마을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저 ‘마을아이가 마을놀이를 하고 마을노래를 부르는 품으로 조용히 스며들어서 마을어른으로 같이 살’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밭 아이들 제2호》를 1998년에 처음 보았습니다. 송림동 동무들하고 신나게 뛰논 일만 떠오를 뿐 그곳에 공부방이 있었는 줄 까맣게 몰랐습니다. 가만히 보면, 공부방 어른들은 골목놀이를 하러 소매를 걷고 나온 적은 없었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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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3


《The Music Hour, fifth book》

 Osbourne McConathy·W.Otto Miessner·Edward Bailey Birge·Mabel E.Bray 지음

 Silvey Burdett com

 1930/1937.



  아홉 살 즈음, 할아버지 꽃날(생일)에 이웃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잔뜩 찾아오셨고, 저더러 노래를 불러 보라 하셨습니다. 배움터에서는 ‘음악’이란 이름으로 시험을 치러 줄을 세웠고, 앞줄에 서지 못하면 피리로 머리를 두들겨맞거나 종아리가 부풀도록 맞기 일쑤였습니다. 배움터 열두 해를 통틀어 앞줄에 선 적이 하루도 없는데,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 꽃날에 부른 노래만큼은 “잘 했다. 잘 부른다.”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들한테 노래란 줄세우기가 아닌 즐거운 사랑이었을 테니까요. 《The Music Hour, fifth book》은 어린이한테 노래를 들려주고 가르치는 책입니다. 다섯째 자락이 1930년에 나왔군요. 이즈음 우리나라는 총칼로 쳐들어온 이웃나라한테 억눌린 나날이기도 했습니다만, 어린이가 어린 나날을 꽃처럼 즐기고 나누도록 북돋우는 노래를 지으면서 알려준 어른은 몇이나 되었을까요? 시골에서 흙을 짓고 아기를 낳아 돌보는 수수한 어버이가 즐기고 나눌 만한 노래를 짓거나 알린 노래지기(음악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흔히들 ‘임금 곁에서 부르던 노래’만 ‘국악’으로 치는데, 어린이가 동무랑 놀면서 부르는 노래하고 어버이가 아기를 재우거나 들일·살림을 하며 부르던 노래야말로 ‘겨레노래’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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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3


《조선말 규범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엮음

 학우서방

 1968.2.20.



  2021년에 《쉬운 말이 평화》라는 책을 내놓기까지 걸어온 ‘말 배움길’을 헤아리면 어느 하나도 만만하지 않았고 걸림돌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남녘하고 북녘으로 갈렸고, 둘로 갈린 나라만큼 서로 쓰는 말결이 꽤 갈렸어요. 북녘책을 쥐어서 읽어 보고, 북녘사람을 만나서 말을 섞어야 실마리를 열 텐데, 북녘은 어떤 맞춤길이나 띄어쓰기인지, 또 어떤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쓰는지 알기 어렵더군요. 헌책집에서 만난 《조선말 규범집》은 북녘 맞춤길을 살핀 조그마한 책이고,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학우서방’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겨레한테 책으로 배움길을 이으려고 힘쓴 곳이라지요. 다만 남녘은 일본 한겨레한테 이바지하지 않았대요. 북녘만 이바지했답니다. 앞으로 두 나라가 하나로 된다면 맞춤길을 어떻게 가다듬어야 할까요? ‘두 갈래 말’로 삼아 서로 다른 틀을 지키고 가꾸도록 해야 할까요? 영국 영어랑 미국 영어가 다르듯 남녘 우리말하고 북녘 우리말도 조금 다르되 서로 아끼는 길이 나을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북녘에서는 남녘책을 스스럼없이 읽고, 남녘에서는 북녘책을 홀가분하게 읽는 터전을 열어야 할 테지요.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사이좋게 손잡으면서 마음을 맞추기를 빌 뿐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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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3.14.

숨은책 502


《여류보도사진가 마가레트 버크-화이트》

 장양환 엮음

 해뜸

 1988.7.17.



  1998년 여름이 저물 무렵 사진기를 다루고 사진을 찍는 길을 처음 배웠습니다. 동아리 뒷내기(후배)한테서 사진기를 빌렸는데 새뜸나름터(신문배달지국)에 도둑이 들어 이레 만에 잃었습니다. 새뜸(신문)을 나르며 얻는 일삯으로 사진기를 어떻게 갚나 싶어 아찔했는데, 우체국에서 “손님은 오랫동안 적금을 부어 주셨고, 외대학보에 꾸준히 글을 실으니 믿을 수 있어서 30만 원을 빌려줄 수 있어요.” 하고 얘기했습니다. 처음 받은 빚(은행대출)으로 사진기를 둘 사서 뒷내기한테 하나 돌려주고, 다른 하나를 아끼면서 썼습니다. 빚은 석 달에 걸쳐 갚았습니다. 열린배움터를 그만두기 앞서 신문방송학과 네 해치 수업을 다 들었는데, ‘보도사진’도 있어요. 강사는 사진기 다루는 길만 들려주었고, 스스로 헌책집을 돌며 여러 사진책을 뒤적이면서 눈길을 틔우려 했습니다. 《여류보도사진가 마가레트 버크-화이트》를 이무렵 만났어요. 앞에 붙은 ‘여류’란 이름이 거슬렸으나 예전에는 이렇게 했겠지요. 마가레트 버크-화이트란 분은 오롯이 새롭고 상냥하면서 참한 눈썰미에 손길로 사진길을 연 분이라고 느끼거든요. 저한테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를 알려준 스승이라면 이분을 꼽습니다. 사진에 사랑을 포근하게 담으셨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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