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2.22.

숨은책 487


《혜린이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

 한예찬 글

 민홍소이 그림

 가문비

 2011.2.7.



  2021년 2월에 ‘한예찬 동화책’을 책집이며 책숲(도서관)에서 모조리 걷어낸다는 얘기를 얼핏 듣고서 《혜린이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을 장만해서 읽었습니다. 2011년에 처음 나오고 ‘2018년 동해시 올해책 후보’로 올랐다더군요. ‘영어·수학 학원 탓에 힘든’ 아이가 ‘무용 학원에서 연예인 꿈을 키우며 즐겁다’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이이가 쓴 다른 동화책을 주섬주섬 살피니 모든 줄거리가 ‘얼굴·몸매를 예쁘게 가꾸어 사랑받기’로 흐르네 싶습니다. 어린이한테 응큼짓을 한 일이 걸려서 붙잡힌 이이는 ‘어린이가 스스로 즐겁게 뛰놀며 삶을 노래하는 꿈’이 아닌 ‘겉몸을 이쁘장하게 꾸며서 돈·이름을 얻고 잘생긴 짝꿍을 사귀는 길’을 어린이책이란 이름을 붙여서 선보였는데, 이이 한 사람만 이렇게 어린이책을 쓰지는 않습니다. 응큼짓이 걸린 이이 책은 책집이며 책숲에서 빼내더라도 ‘어린이한테 삶을 즐겁고 슬기로우며 아름답게 꿈꾸도록 북돋우는 길하고 동떨어진’ 책은 책집이며 책숲에 아직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보는 연속극·영화부터 순 이런 줄거리 아닌지요? 어른 스스로 참꿈·참사랑·참삶이 없이 돈·이름·겉모습에 눈이 멀다면 이런 책은 앞으로 자꾸 나오고, 응큼짓은 안 사라질 테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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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2.12.

숨은책 486


《音樂漫筆》

 홍난파 글

 음악예술사

 1938.7.10./1976.1.30.



  1995년까지 〈별빛서점〉이라는 헌책집이 서울 기차나루 언저리에 있었습니다. 〈동성서점〉하고 몇 집 건너 나란히 있었는데, 군대를 다녀오는 사이에 〈동성서점〉은 닫았고 〈별빛서점〉은 〈서울북마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새로 책집지기가 된 분은 서울 기차나루 둘레뿐 아니라 곳곳 헌책집을 단골로 드나들며 책을 사랑하던 분이었고, 이분처럼 책사랑이던 분이 나중에 짝꿍이 되었으며, 책사랑이 두 사람 마음이 모인 아이가 태어났어요. 어느 날 이 책집에서 《音樂漫筆》을 만나는데 책자취에 적힌 해가 아리송합니다. “여기 1938년 첫판이란 셈은 잘못 찍히지 않았나요?” 하고 여쭈니 “아, 홍난파 선생님 첫 책이 그때 나오고 복간판으로 1976년에 나왔나 봐요.” 하고 말씀합니다. 헌책집지기 이야기를 듣고서 그러려니 여기다가도 굳이 이렇게 적을 까닭이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만나고서 이러구러 열 몇 해가 지나고서 다시 들추어 읽다가 ‘그래, 1938년이란 그때에도 이 겨레한테 노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꽃인가를 들려주려고 글을 쓰고 책을 냈구나’ 하고 돌아봅니다. 참 뒤늦은 생각이지요.  우리는 사랑이기에 짝을 만나고,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책을 읽고, 서로 이웃이자 동무로 지낼 텐데 말이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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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3


《經濟的인 고기·생선 料理》

 편집부 엮음

 여원사

 1958.12.1.



  어머니나 마을 아주머니는, 생각을 요모조모 하면서 살림을 이모저모 든든히 꾸리면 “참 알뜰하구나” 하고 말하면서 ‘알뜰이’ 같은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나 마을 아주머니는 책을 펼 틈이 없이 집 안팎에서 늘 일이 멧더미였는데, ‘여성잡지’라는 책은 으레 다달이 서로 다른 책으로 장만해서 돌려읽었어요. 밥짓기나 살림짓기하고 얽힌 대목은 오리고 헌종이(폐품)를 모을 적에 내놓았지요. 곁딸린 책은 으레 건사하면서 집에 둡니다. 《女苑》 ‘제4권 제12호’ 곁책으로 나온 《經濟的인 고기·생선 料理》를 서울 아현동에 있던 〈문화서점〉에서 만났습니다. ‘경제적’이란 이름이 붙은 곁책을 보노라니 어머니하고 마을 아주머니 말씨가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여성잡지에 물들지 않던 무렵에는 ‘알뜰’이나 ‘살뜰’이라 말했으나 어느새 ‘경제적’으로 바뀌어요. 자주 보고 노상 듣는 말씨가 입에 익기 마련일 테니까요. 《사상계》 같은 잡지는 ‘알뜰히 밥짓기’를 다루는 곁책을 안 냈습니다. 요즈음 인문·사회과학잡지도 그렇지요. 그러나 참된 인문·사회과학잡지라면 ‘밥짓기·옷짓기·집짓기·살림짓기’ 같은 수수한 얘기부터 다뤄야지 싶어요. 평등·평화·인권은 언제나 살림자리부터 싹트거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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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67


《민주시민의 교육》

 해인사 쎄미나에서

 중앙교육연구소

 1962.9.



  ‘입시 수험생’이어야 하던 무렵, 둘레 어른이 ‘공교육 정상화’나 ‘선행학습 금지’ 같은 말을 하면 알쏭했습니다. 모든 어린이랑 푸름이를 ‘대학바라기’로 몰아넣는 틀을 그대로 두고는 배움터를 바로세울 수 없으니까요. 미리 배우고(예습), 다시 배우라(복습)고들 하면서, ‘선행학습(미리배움)’은 안 된다고 막는 일은 덧없으니까요. 즐겁게 잘 배우면 나이를 건너뛰어도 좋아요. 배우기 벅차면 여러 해 머물어도 돼요. 또래하고만 어울려야 하지 않아요. 언니 동생하고도 어울릴 뿐 아니라, 풀꽃나무랑 숲이랑 바람이랑 바다하고도 어울려야지 싶어요. 총칼로 나라힘을 거머쥔 일이 벌어진 뒤에 나온 《민주시민의 교육》은 허울만 ‘민주시민’이되, 속내로는 ‘군사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도록 길들이는 배움살이’를 다룹니다. 우리는 왜 배우고 가르칠까요? 대학교를 마쳐야 돈을 잘 벌고 이름을 얻기 때문인가요? 대학교도 초·중·고등학교도 안 다니면서 삶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익힌 다음 마을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허울로만 ‘민주’에 ‘시민’이라고 씌우지 말고, 참한 어른이 되도록, 착한 눈빛이 되도록, 고운 마음이 되도록, 푸른 숲누리가 되도록 배우면서 나아가야지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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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85


《天相の弦 8》

 山本おさむ 글·그림

 陳昌鉉 도움

 小學館

 2006.6.1.



  주머니는 가난한데 읽어야겠구나 싶은 책을 알아보면 괴롭습니다. 주머니가 가난하다면 책집에는 얼씬을 말아야 할는지 모르나,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면서 이 쌈짓돈으로 몇 자락쯤 장만할 수 있으려나 어림합니다. 책집에서 보금자리로 옮겨갈 수 없는 책은 ‘서서 읽자’고 생각합니다. 책값을 대려고 일하지는 않으나, 일삯으로 거둔 살림돈을 푼푼이 책값으로 헙니다. 옷을 안 사고, 머리를 안 깎고, 주전부리를 치우고, 걸어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적게 먹거나 안 먹으면서 책을 곁에 놓으면 되리라 여겨요. 《天相の弦》이란 만화책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우리말로는 2003년에 조용히 나오다가 석걸음에서 멈췄습니다. 일본말로는 열걸음까지 나왔는데, 그리 사랑받지 못했는지 일찍 판이 끊어졌습니다. 짝을 맞추기 버거워도 어떻게든 찾아내려 하는데, ‘진창현’이란 분이 경북 김천을 떠나 일본에서 홀로 바이올린을 깎으며 숲바람을 가락틀(악기)에 담아낸 땀방울을 헤아립니다. 스승이나 배움터나 지음터(공장)가 아닌, 깊은 멧숲 한복판에서 홀로 나무를 켜고 깎고 다루었기에 ‘스트라디바리’처럼 아름가락을 들려주는 길을 찾아내었지 싶어요. ‘진창현’ 님을 알아본 이웃은 숲바람처럼 노래하려는 마음을 나누던 분이었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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