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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65


《모래 위에 쓴 落書》

 김동명문집간행회 엮음

 김동명

 신아사

 1965.1.30.



  1988년에 들어간 중학교는 국민학교하고 참 달랐습니다. 국민학교에서는 가시내·사내로 갈려 툭탁거리더라도 같이 놀고 깔깔거리면서 어울렸다면, 남자중학교에서는 더없이 거친 말씨에 싸움질이 날마다 춤추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중학교부터 갑자기 ‘새벽 여섯 시∼밤 열한 시’를 학교에 갇힌 채 대학입시만 바라보아야 하니 오죽 힘들까요. 갇힌 푸름이나 가두는 길잡님이나 똑같이 고단하기에 입에서 막말이 쉬 터져나왔겠지요. 중학생이 되니 어린이노래는 사라지고 ‘어른스러운’ 노래만 가르치는데, 김동명 님이 쓴 글에 가락을 입힌 〈내 마음〉은 빛줄기 같았어요. 노랫말, 그러니까 시 한 자락이 무척 싱그러웠습니다. 190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숨을 거둔 김동명 님은 대학교수를 오래 했고 책은 몇 자락 안 남겼다는데, 1965년에 ‘김동명 문집’이 석 자락으로 나와요. 이 가운데 《모래 위에 쓴 落書》를 2020년 첫여름에 천안 헌책집 〈갈매나무〉에서 만났습니다. 오늘 보자면 쉰 해를 훌쩍 넘겼습니다만, 쉰다섯 해 앞서는 얼마나 반드르르했을까요. 한국전쟁이 터졌을 적에 ‘거짓말하는 이승만과 경찰’이며, 서울을 떠나는 먼길에 겪은 이야기가 애틋합니다. 이녁은 삶을 시로 쓰셨기에 살아남았구나 싶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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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1


《그의 自敍傳》

 이광수 글

 고려출판사

 1953.



  어릴 적에 학교·둘레에서 숱하게 듣던 말, 서울에서 헌책집마실을 처음 누리던 1994년부터 책손 할아버지한테서 자주 듣던 말로 ‘조선의 3대 천재’가 있어요. 1990년대 첫무렵까지만 해도 대학입시에서 ‘이광수·최남선’ 문학을 으레 다루었고 ‘홍명희’는 아예 안 건드렸습니다. 아마 요새는 바뀌었겠지요. 헌책집 책손 할아버지는 “조선 3대 천재 책부터 읽어야 하지 않아?” 하는 말을 곧잘 들려줍니다. 이때에 “저는 천재보다는 조용히 빛나는 들꽃 같은 사람들 책부터 읽고 싶습니다. 굳이 그 천재들 책은 안 읽어도 되지 않아요? 읽어 준 사람이 많은 책보다는, 앞으로 읽어 줄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싶을, 우리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빛을 담은 수수한 책을 읽으려 합니다.” 하고 대꾸했어요. 《그의 自敍傳》은 헌책집에서 이따금 구경했습니다. 늘 시큰둥히 지나치다가 ‘꼭 오늘 읽어야 하지 않을 테니, 나중에 정 생각나면 읽기로 하고, 오늘은 장만해 놓자’고 생각해서 품었습니다. 가끔 조금씩 읽는데, ‘조선 3대 천재’이기 앞서 쉽잖은 어린 나날을 보냈고, 이이 나름대로 뜻을 품고서 애썼구나 싶습니다. 다만 ‘뜻’을 늘 ‘밖’에서 품으려 했더군요. 마을을, 숲을, 시골을, 하늘을 안 봤으니 얄궂은 길을 갔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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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00


《Usis Film Catalog Korea 1960(미국공보원 영화목록)》

 미국공보원 엮어 옮김

 미국공보원

 1961.



  우리 어버이하고 살던 집을 스스로 떠난 스무 살부터 텔레비전이 없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텔레비전이 없으니 얼마나 조용하면서 홀가분한지요. 한가위나 설이 되어 우리 어버이 집으로 찾아가면 다시 하루 내내 텔레비전 소리로 귀가 따갑지만 ‘며칠만 재미나게 구경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습니다. 나쁘게 여기면 스스로 고달프더군요. 텔레비전이 늘 가까이 있던 어린 날은 ‘왜 미국 영화가 그렇게 넘치는지’ 몰랐어요. 나중에 혼자 살피고 배우는 동안 ‘미국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푸른별 거의 모든 나라에 미국 살림길을 퍼뜨리려고 미국 영화를 거의 거저로 쏟아부은’ 줄 알아챘습니다. 《Usis Film Catalog Korea 1960(미국공보원 영화목록)》은 1961년에 미국공보원에만 들어간 ‘숨은책’입니다. 그야말로 숨기고서 몇몇 사람만 알던 책이지요. 그때에 미국은 ‘서른아홉 나라말’로 미국 영화를 퍼뜨렸다고 하니, 숱한 나라마다 미국 영화를 얼마나 많이 틀었다는 소리일까요. 영화이름하고 두서너 줄짜리 줄거리만 담아도 책 하나가 되니, 우리는 또 푸른별 웬만한 나라는 어린이가 언제나 ‘미국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지켜보고 마음으로 새기면’서 자란 셈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며 삶이랑 꿈을 그리나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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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9


《和服類一切の實際再生法》

 茂木茂 엮음

 大日本雄辯會講談社

 1938.11.1.



  어머니하고 저자마실을 다니던 어릴 적을 떠올리면, 길에 단추 하나 떨어졌어도 냉큼 주워 주머니에 넣습니다. “단추는 주우면 나중에 다 쓸모가 있지.” 새마을운동으로 꾸민 마을 꽃밭 한켠은 언제나 마을 아주머니 텃밭입니다. 어머니가 바늘이랑 실로 손수 뜬 옷은 형하고 제가 크는 몸에 맞추어 실을 모두 풀고서 새로 뜹니다. 인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다들 코가 나빴을 텐데요, 공장이 수두룩하고 서울로 살림을 보내려고 빠른찻길을 내달리는 짐차가 엄청나거든요. 어머니는 코를 푼 종이를 반듯하게 펴서 말린 다음 “적어도 열 벌을 더 코를 푼 다음에 버리자” 하고 얘기했어요. 1938년 11월에 《婦人俱樂部》 ‘제19권 13호’ 덤책(별책부록)으로 나온 “戰時下の家庭經濟”를 들려주는 《和服類一切の實際再生法》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 여느 살림집마다 힘들고 벅찬 하루를 이으면서 헌옷을 어떻게 되쓰고 되짓는가’를 알려줍니다. 우리는 일본한테 몽땅 빼앗겼다지만, 일본 들사람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였구나 싶어요. 벼슬아치나 우두머리는 언제라도 푸지게 누린다면, 밑자리나 흙자리 들사람은 등뼈가 휘면서 고분고분하던 나날입니다. 들사람은 버릴 살림이 없기도 하지만, 알뜰하면서 알찬 삶길이었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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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96


《원예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요셉 차페크 그림

 홍유선 옮김

 맑은소리

 2002.7.15.



  똑같은 하루는 없습니다. 똑같은 해도 없습니다. 똑같은 철도 없고, 똑같이 흐르는 때란 아예 없습니다. 날마다 하는 일이 똑같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맞이하는 아침저녁이며 밤낮은 노 다릅니다. 해바라기·풀바라기·바람바라기·별바라기·비바라기·꽃바라기·숲바라기를 하면 우리 하루는 참으로 노상 빛난다고 깨달을 만합니다. 이와 달리 시계·달력을 바라보며 쳇바퀴를 도는 나날이라면 ‘갈아입는 옷’은 있되 ‘거듭나는 넋’은 없지 싶어요. 초·중·고등학교를 보낸 시멘트집에서는 다 다른 철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겨울에는 손이 곱은 채 찬물로 걸레를 빨고 비질을 하며 ‘이 겨울은 언제 끝나나?’ 하고 생각했어요. 창문을 다 열어도 좁고 더운 여름에는 땀을 비처럼 흘리며 ‘이 여름은 언제 지나가나?’ 하고 생각했고요. 여느 일터에서도 철철이 다른 삶을 못 보기 마련 아닐까요? 《원예가의 열두 달》을 읽으며 ‘글님이라면 흙님에 풀님에 꽃님에 나무님에 바람님에 숲님이 될 노릇’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경리 님은 《원주통신》을 남겼는데 흙말 아닌 먹물말이었어요. 숲말로 열두 달을 그리면서 풀꽃말로 하루를 돌아볼 줄 안다면 우리 삶은 푸르겠지요. 2019년에 《정원가의 열두 달》로 새로 나온 책이 반갑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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