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5


《육군문고 4호》

 정훈감실 엮음

 육군본부

 1959.



  1959년에 《육군문고 4호》가 나왔으니, 앞서 석 자락이 더 있다는 뜻입니다. ‘문고’란 이름처럼 손바닥에 쥘 만큼 조그마한 책이요, 바지 뒷주머니나 옆주머니에 넣고서 다니다가 쉴틈에 펼 만합니다. 그러나 막상 군대에서 총칼·총알·등짐을 잔뜩 짊어지고서 하루 내내 멧골을 타넘고, 들에서는 내달려야 하다 보면, 또 저녁에는 천막을 치거나 비질·걸레질로 하루를 마감하다 보면, 붓을 쥐어 하루를 남기거나 뭘 읽을 기운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아니, 조그만 종이꾸러미조차 무거워서 못 들고 다녀요. 군대는 총알이나 등짐 무게를 줄이도록 하면서 싸울아비(군인) 주머니에 손바닥책 하나를 넣어 줄 수 있을까요? 나라는 군대를 없애면서 젊은이 가슴에 참사랑이며 참살림이란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손바닥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요? 참사랑·참살림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삶을 짓는 길을 밝히는 불이 될까요? 가벼운 글도 그림도 좋습니다만, 이 땅을 누비며 멧골을 가로지르는 젊은이한테 흙내음이며 풀꽃나무를 포근히 돌보는 길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곁짝이 될 사람을 보드랍고 상냥히 아끼는 눈을 밝히는 줄거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군인이 되는 나이’란 마음도 몸도 슬기롭게 무르익을 나날이거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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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0


《거듭 깨어나서》

 백기완 글

 아침

 1984.10.15.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84년에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써서 내라는 말에 한참 헤매고 망설이다가 ‘나’라고 적었습니다. 동무들은 ‘부모님·선생님’을 비롯해서 이름나거니 훌륭하다는 사람을 적는데, 저는 도무지 어느 누구도 우러를(존경) 수 없다고 느꼈어요. 어버이는 그저 사랑일 뿐 우러를 빛이 아니요, 대단하다는 어른도 그저 대단할 뿐 남을 높이거나 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내가 존경하는 사람 = 나’라고 적어서 내니 실컷 얻어맞았습니다. 배움터 길잡이는 제가 장난을 친다고 여겼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느 누구도 존경할 수 없어요. 대단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솜씨나 슬기를 배울 뿐, 그이를 높일 수 없어요. 나중에 제가 대단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더라도 누가 저를 섬겨야 하지 않아요. 그때에도 그저 저한테서 뭔가 배울 뿐이에요.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하고 저는 ‘사랑’ 사이일 뿐이지, 높거나 낮은 사이가 아니에요. 우리가 높일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나’이지 싶어요. 남이 아닌 ‘나’를 아껴야지 싶어요.” 《거듭 깨어나서》는 힘꾼·돈붙이·이름바라기한테 억눌리지 않는, 또 우리가 스스로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깨닫자고 외처요. 스스로 빛이 되어 설 적에 ‘나’입니다.


ㅅㄴㄹ


아이들한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지 말고,

남을 존경하도록 내몰지 말고,

언제나 스스로 사랑하고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만 북돋우기를

비는 마음으로...

옛생각 한 자락을 떠올려서 적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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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3.1.

숨은책 492


《어두운 마당》

 배봉규 글·그림

 한국안보교육협회 엮음

 형문종합교육개발

 1982.4.30.



  요즈음은 예전처럼 ‘승공·반공’ 같은 글씨를 배움터 어귀나 담벼락에 붙이지 않습니다. 예전이라고 하면 1989년이 저물고 1990년으로 넘어설 즈음까지인데요, ‘총력안보’라든지 ‘자주·협동·단결’이라든지 갖가지 이름을 붙이면서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닦달했어요. 제가 다닌 어린배움터(국민학교)는 만화책을 우리한테서 빼앗아 해마다 너른터에서 활활 불사르며 “이런 나쁜책은 읽지 마!” 하며 윽박질렀는데, 나라나 배움터에서 우리한테 읽으라고 건네면서 ‘반공독후감’을 내라고 하던 만화책이 있어요. 《어두운 마당》은 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해돌이’하고 ‘천사’가 나오는데요, 이 만화책을 간추려 “때려잡자 공산당!”을 글종이 다섯 쪽으로 채워서 다달이 냈고, ‘해돌이’하고 ‘천사’를 그려넣은 반공포스터도 나란히 냈습니다. 어깨동무나 아름길이나 바른넋하고 동떨어진 ‘승공·반공’ 독후감에 포스터였어요. 어른들은 배움터나 마을에서 날마다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참말 예전엔 ‘사랑매’란 이름으로 매바심이 잦았어요. 책상맡에서 반공독후감을 쓰다가 짝꿍하고 수군댔습니다. “야, 북쪽이나 남쪽이나 어른들이 아이를 두들겨패기는 마찬가지 아냐?” “누가 아니래? 너무 힘들다.” 주먹은 평화가 아니에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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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2.25.

숨은책 491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

 김상욱 글

 친구

 1990.10.31.



  애써 들어간 열린배움터(대학교)를 어떻게 그만두어야 우리 어버이가 배움삯(등록금) 때문에 진 빚을 천천히 갚아도 될까 하고 헤매면서 책을 더 팠습니다. 어느 책이든 손에 쥐었습니다. 둘레에서 “그런 쓸개빠진 놈들 책은 왜 읽어?” 하고 말리면 “그 쓸개빠진 놈이 일군 열매를 쓸개 안 빠진 사람이 못 일구니 그놈 책을 읽으며 배워야 하지 않나요?” 하고 대꾸했어요. “이 책 훌륭한데 읽어 보겠나?” 하고 둘레에서 건네는 책 가운데 “겉옷은 훌륭한 척 입지만 알맹이는 영 썩었는걸요?” 하고 대꾸할 책이 많았어요. 쓸개는 빠지더라도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면, 저이는 어떤 넋인지 아리송해요. 쓸개는 있더라도 어쩐지 엉성하거나 서툴면, 이이는 어떤 얼인지 알쏭합니다. “최종규 씨라고 다 잘 하나? 아니지? 글도 책도 똑같아.” 하고 귀띔하는 분이 있어 비로소 무릎을 쳤어요. 배울 적에는 누구한테든 고개숙여 배우고서, 기꺼이 기쁘게 익혔으면 어깨를 펴고서 아름답게 펼 노릇이라고 느꼈어요.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를 쓴 분은 응큼질을 저질러 빛이 바랬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언제부터 노래길을 잊고 새벽별을 잃은 채 응큼질에 마음을 빼앗겼을까요? 글은 좀 못 쓰더라도 쓸개를 찾아야 사람일 텐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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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1.2.24.

숨은책 489


《젊은 날》

 백기완 글

 화다출판사

 1982.3.15.



  마흔이나 쉰이란 나이를 지나더라도 스스로 마음이 포근하여 새롭게 삶을 사랑하는 씨앗을 푸르게 우거진 숲처럼 품을 줄 안다면 ‘젊은이’라고 느낍니다. 스물 언저리인 나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에 찬바람을 일으켜 꽁꽁 얼릴 뿐 아니라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는 쳇바퀴질로 틀에 갇히는 몸짓이라면 ‘늙은이’라고 느낍니다. 《젊은 날》을 처음 만난 스무 살 언저리에 이 노래책을 참 투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꾸미거나 저렇게 치레하지 않은 “젊은 날”이란 이름을 수수하게 붙인, 더구나 책꼴에 더도 덜도 손대지 않고서 앞쪽은 새하얗게 뒤쪽은 새카맣게 여민 매무새가 퍽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날이란 눈부시게 새햐안 빛줄기이면서, 고요하게 새까만 밤빛일 테지요. 젊은 날이란 흰눈처럼 겨울을 소복히 덮고서 꿈으로 나아가는 길이면서, 여름철 나무그늘처럼 까무잡잡 시원한 터전일 테고요. 1933년에 태어난 꿈둥이는 2021년에 흰머리 할아버지가 되어 숨을 내려놓았습니다. 얼추 아흔 해를 걸어온 길은 늘 “젊은 날”이었을까요. 나이·돈·힘·이름·얼굴 어느 하나로도 금을 긋지 않으면서 어우러지는 손길을 바란 “젊은 꿈”이었을까요. 젊기에 노래하고, 웃고, 손잡고, 얼싸안으면서 꽃씨를 심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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