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40


《닥종이 가족 : 김영희 민속인형》

 김영희 인형

 에드워드 김 사진

 월간디자인

 1981.5.10.



  어린배움터에서 길잡이로 일하는 아버지는 1980년대 어느 해에 제법 길게 ‘유럽 교육 배움마실’을 다녀오는 무리에 끼었습니다. 다른 고장 나들이를 한 해에 한 걸음 하기조차 만만하지 않은 판인 터라, 나라에서 돈을 대어 배움마실을 보내주는 그 일은 마을에서까지 들썩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가야 할 날이 닥치자 아버지는 “아, 우리나라를 알릴 마땅한 선물이 없네!” 하고 한숨지었습니다. 태극 무늬를 넣은 부채하고 겨레옷을 입은 인형을 어디에선가 꽤 비싸게 사오면서 “이거 사느라 돈이 더 들겠네.” 하시더군요. 막상 태극 무늬 부채를 쓰는 사람이 없고, 겨레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없으니, 그저 허울뿐이지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 우리다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거나 가꾸거나 물려주는 일도 참 보기 어려웠어요.  《닥종이 가족 : 김영희 민속인형》은 혼잣몸으로 아이를 돌보며 닥종이로 빚는 인형으로 수수한 삶과 살림과 슬기를 보여준 김영희 님 손빛을 보여줍니다. 임금·벼슬아치·먹물붙이가 아닌, 수수한 사람들 모습을 담은 인형은 거의 처음이었지 싶습니다. 이웃에서 만나고 스스로 살아가는 결을 드러내는 인형입니다. 흉내 아닌 제빛이에요. 먼발치를 헤맬 까닭이 없어요. 우리 모두가 우리 발자취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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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9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

 나가쿠라 히로미

 이영미 옮김

 서해문집

 2007.6.30.



  사진책을 읽으면서 사진을 배우려면 한글로 나온 책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영어나 일본말로 나온 사진책을 챙겨서 읽어야 비로소 사진책이며 사진을 배울 만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배우러 일본을 다녀오는 사람은 뜻밖에 드뭅니다. 으레 미국이나 유럽을 다녀오지요. 일본은 가까우면서 먼 나라일는지 모르고, 지난날 싸움자취 때문에 꺼리지 싶어요. 나가쿠라 히로미(長倉洋海) 님은 푸른별 어린이를 빛꽃(사진)으로 담습니다. 일본에서뿐 아니라 온누리 여러 나라에 이름난 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안 알려졌는데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 산골학교 아이들》이 살며시 나왔다가 사라진 적 있습니다. 그때에 깜짝 놀랐어요. 이분 빛꽃을 알아본 곳이 있었네 싶어 놀랐고, 이 사진책이 참으로 안 읽히고 안 팔린 채 사라져서 놀랐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빛꽃으로 옮기는 눈빛일까요? 어른은 어린이를 어떤 눈망울로 바라보는 몸짓일까요? 이 나라에서 어린이를 빛꽃으로 담을 적에는 어떤 모습을 바랄까요? 곰곰이 보면 요새는 ‘마음껏 모여서 온몸으로 뛰노는 어린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놀이하는 어린이가 사라진 나라에서는 꿈꾸고 사랑하고 노래하며 빛꽃을 담는 어른도 사라졌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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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8


《轉換時代의 論理》

 리영희 글

 창작과비평사

 1974.6.5.



  ‘책낯을 종이로 싸서 가리기’는 책이 손때를 덜 타도록 간수하여 두고두고 아끼려는 뜻 말고 더 있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나라지기 노릇을 하던 무렵에는, 또 그 뒤를 이은 여러 나라지기가 있던 무렵에도, ‘책에 빨간띠’를 그어서 짓밟거나 억누른 줄 내내 몰랐어요. 배움터나 마을에서 이 대목을 알려주거나 가르친 일이 없으니, 여느 새책집만 다녀서는 알 길이 없겠지요. 덧배움(보충수업)을 몰래 빠져나와 헌책집을 드나들던 열아홉 살 무렵, 헌책집 지기한테 “저기 이 책은 왜 이렇게 겉을 가렸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아, 모르나? 잡아가잖아. 미친 나라이지. 책을 책으로 읽지 않으니. 경찰들이 한 해에 두 번씩 헌책방에 나와서 불온도서가 있는지를 살펴. 경찰은 한눈에 알 수 있거든. 그들이 와서 ‘이런 책 팔면 안 됩니다’ 하고 말해. 그러면 정중하게 ‘그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이 나라가 정상으로 갑니까?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보고 도리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하지.” 책이름을 가린 《轉換時代의 論理》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자취를 보니 ‘1975.7.1. 4판 1300원’으로 찍은 자리에 ‘1976.10.15. 6판 1700원’이라 찍은 종이를 덧대었네요. 뭐, 워낙 살림값이 치솟긴 했다지만 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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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7


《人間의 壁 中編》

 石川達三

 육순복 옮김

 보성사

 1962.3.1.



  스물다섯 살 무렵일 즈음, 군대도 다녀오고 책마을 일꾼으로 지내다가 어느덧 어린이말꽃(어린이 국어사전) 엮음이로 일할 때, 인천 배다리 헌책집 아주머니가 “그런데 자네 《인간의 길》이라는 책 읽어 봤나? 다른 책도 많이 읽는 줄 알지만, 그 책부터 좀 읽어 보면 어떨까?” 하셨어요. 요새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인간의 길》은 열 자락으로 나온 꽤 긴 책이요, 일본이 여러 나라를 짓밟을 적에 ‘그 일본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멍울과 생채기’를 붙안는 사람이 어떤 마음앓이를 치르는가를 담습니다. 그런데 헌책집지기 말씀을 잘못 알아듣고 《인간의 벽》이란 책을 찾아서 읽었지요. 이러고서 “이 책 말씀하셨지요? 참 아름답던데요?” 하니 “아니, 난 ‘벽’이 아니고 ‘길’을 말했는데 …….” “네? 어, 다른 책이 있나요?” “그래, 그런데 ‘벽’도 ‘길’처럼 아름다운 책이지.” 책이름을 잘못 알아듣고서 ‘이시카와 다쓰조(1905∼1985)’를 만났어요. 책이름을 제대로 들었다면 아마 못 만났거나, 한울림에서 1984년에 새로 옮긴 책이나, 양철북에서 2011년 다시 옮긴 책을 만났겠지요. 1965년 일이 있기 앞서까지 아름다운 일본 글이 이 나라에 무척 많이 나왔다가 1980년에 이르도록 꽉 막혔어요. 갑갑한 나라였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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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36


《노란 손수건》

 오천석 엮음

 샘터

 1975.12.5.



  2007년에 200벌을 찍었다는 《노란 손수건》인데, 펴낸곳에서 말하기를 1977년에 처음 냈다고 하더군요. 꽤 아리송합니다. 제가 장만해서 읽은 《노란 손수건》은 1975년에 780원으로 값을 매겨 나온 검파란 빛깔인 책이거든요. ‘샘터’는 노란 빛깔인 겉그림으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지만 검파란 빛깔로도 《노란 손수건》을 내놓았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사랑을》이란 책도 검파란 빛깔로 1975년 12월 5일에 나란히 펴냈습니다. 어쩌면 펴낸곳에 이 첫판이 없는지 모릅니다. 노란 빛깔로 낸 첫판은 있되, 검파란 빛깔로 낸 첫판은 건사하지 않거나 못했을 수 있어요. 가만 보면 웬만한 곳마다 따로 발자취를 건사하지 않거나 못합니다. 바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할 뿐 아니라, 일터를 옮기다 보면 잃기도 하고, 책을 알리고 파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느라, 정작 그동안 흘린 땀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 발자취는 일꾼이 나가고 나면 모두 지워지기 마련이라, 누가 언제 어떤 책을 엮고 꾸미고 알리며 팔았는가도 모르기 일쑤이지요. 함께 일한 사람들이 쓰던 이름쪽(명함)을 알뜰히 건사해서 ‘펴낸곳 발자취’로 갈무리하는 손길이 있을까요? 200벌을 찍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손길이 깃들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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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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