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29


《懸吐註解 擊夢要訣》

 신태삼 엮음

 세창서관

 1952.8.30.



  《懸吐註解 擊夢要訣》을 헌책집에서 장만하던 날이 새삼스럽습니다. 2001년쯤이었지 싶은데, 책집지기님은 “허허, 이제 책다운 책도 보시는구려.” 하고 얘기합니다. 옆에 있던 다른 책손님이 흘깃하더니 “아니, 한문으로 된 책을 읽어야 책다운 책인가? 한글로 된 책이나 영어로 된 책은 책다운 책이 아닌가?” 하고 핀잔합니다. 책집지기님은 “허허, 아니 한글로 된 책도 책이고, 영어로 된 책도 책이지요. 그런데 진짜 책은 한문책이지 않습니까?” 하고, 책손님은 “아니, 그럼 제가 여기서 사는 이 한글책은 다 가짜책인가요?” 하고, 책집지기님은 “아, 그런 말씀이 아니라, 삶을 읽는 깊은 지혜는 한문책에 있다는 뜻이지요.” 하고, 책손님은 “그러면 이곳에는 한문책보다 한글책이 훨씬 많으니 가짜 책방인가요?” 하고 말꼬리가 이어갑니다. 끝내 책집지기님은 “그러게요. 모든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진짜도 되고 가짜도 되지요. 제가 말을 잘못했네요. 한글책도 영어책도 모두 진짜책입니다.” 하면서 이야기를 맺습니다. 오래도록 책을 다룬 손빛하고 오래도록 책을 넘긴 손길이 만나 흉허물없이 흐른 책노래를 곁에서 들으며 ‘어디에서도 이런 책수다는 들은 적이 없다’고 깨닫습니다. 책집은 배움집이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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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28


《나는 코리안의 아내》

 아그네스 데이비스 김 글

 양태준 옮김

 여원사

 1959.12.15.



  이제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달책 《뿌리깊은 나무》를 내던 ‘한국 브리태니커 출판사’는 낱책도 바지런히 냈습니다. 서슬퍼런 나라에서 달책을 못 내게 막은 뒤로는 낱책을 더 애써 내면서 《샘이 깊은 물》을 냈는데, 1986년에는 《한국에 시집 온 양키 처녀》를 내기도 했습니다. 두 달책에서 꾸밈빛으로 일하던 분을 2004년 즈음 만나니 이 책을 찾아 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전에 일하며 미처 건사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하셔요. 그래서 ‘뿌리깊은 나무’에서 낸 판하고 1959년에 처음 나온 판을 모두 헌책집에서 찾아내어 나란히 건네었어요. “아니, 이 책을 우리가 처음 옮긴 줄 알았는데 예전에 벌써 나온 적이 있었네요?” “그럼요, 적잖은 분들은 스스로 처음이라 여기지만, 진작에 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에요. 다 찾아봐야지요.” 《나는 코리안의 아내》는 1958년에 갓 나온 이듬해에 겉그림을 바꾸었습니다. 1958년 그즈음 이 책을 알아보고서 우리말로 옮긴 분은 어떤 눈썰미였을까요. 그때는 얼마나 읽혔을까요? 작고 조용한 나라를 사랑하고 싶던 마음을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얼마나 읽어낼까요? 크거나 북적대는 나라여야 아름답지 않아요. 아름나라여야 아름답지요.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어야 아름답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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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26


《샘터》 통권 1호

 김재순 엮음

 샘터사

 1970.4.1.



  1975년에 태어난 몸이니 1970년에 《샘터》란 잡지가 첫걸음을 뗀 줄 알 턱이 없습니다. 중학교에 접어들고서야 《샘터》라는 잡지를 알았어요. 그렇다고 이 잡지를 읽거나 즐기지 않았어요. 1995년 가을에 군대에 들어가니 내무반 귀퉁이 텔레비전 옆에, 또 헛간 구석퉁이에 낡고 해진 《샘터》랑 《좋은생각》 같은 잡지가 조금 있어요. 제가 군대살이를 한 곳에는 〈국방일보〉하고 〈조선일보〉하고 〈스포츠서울〉 세 가지 신문이 이레에 한 벌 들어왔습니다. 이밖에 다른 글뭉치를 볼 길은 없습니다. 새즈믄해로 접어든 어느 날 헌책집에서 1970년 4월에 처음 나온 《샘터》를 만났습니다. 궁금해서 집어들어 펴는데, 겉종이 안쪽에 ‘근대화의 샘, 샘터지 창간에 즈음하여 1970.3.10. 대통령 박정희’라는 글씨하고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옵니다. 이 글씨하고 사진을 보고서 쫙 소름이 돋았습니다. 1970년은 군사독재 군홧발이 ‘근대화’란 이름을 한창 드날린 해예요. 그래요, 잡지 《샘터》는 “근대화의 샘”이 되려고 나라에서 이바지한 잡지요, 군대를 휘감은 글뭉치였습니다. 이 잡지가 쉰 돌을 못 채우고 사라질 뻔하다가 되살아나서 쉰 돌을 넘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일인지 대단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젠 어떤 샘인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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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25


《느티나무》

 오수 기획

 황재모 그림

 최금락 글

 서울문화사

 1997.6.28.



  ‘오수’라는 이름을 내걸고 나온 《천재들의 합창》은 동무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만화가 썩 재미없더군요. 그즈음 널리 사랑받은 “천사들의 합창”이란 연속극이 있는데, ‘천사’를 ‘천재’로 바꾸어 ‘학교살이’에서 우당탕 부대끼는 모습을 그리는 줄거리는 안 내켰어요. 가만히 돌아보면, 1988∼1990년에 다닌 중학교는 몹시 고단했어요. 이름은 중학교이되 어른들은 날마다 푸름이를 두들겨패거나 손지검을 하거나 막말을 퍼부었고, 또래는 날마다 주먹다짐으로 시끌시끌했습니다. 허울은 ‘학교’이되 그야말로 ‘미친싸움터’이자 ‘바보불구덕’이었어요. 삶자리에서 학교살이는 끔직한데 만화책에서 학교살이를 재미나게 그린다니, 너무 두동지고 뜬구름이지 싶더군요. 1995년 11월에 군대에 가서 1997년 12월에 마쳤습니다. 이동안 나온 책은 하나도 몰랐는데, 겨우겨우 하나하나 찾아내어 읽다가 《느티나무》를 보았고, 이 만화책으로 ‘오수’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그린 두 분 손길을 새롭게 되새겼어요. 느티나무를 둘러싸고 시골 조그마한 배움터에서 마음으로 아끼는 어른하고 어린이 살림을 웃음꽃이랑 눈물꽃으로 그렸거든요. 그런데 이 만화 겉에 ‘18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빨간딱지를 붙였으니 나라가 미쳤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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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24


《제소리》

 유영모 말씀

 김흥호 엮음

 풍만

 1983.11.30.



  이제 사라진 헌책집으로 서울 삼선교 〈삼선서림〉이 있습니다. 이곳에 찾아간 2005년 4월 26일 저녁나절, 저보다 먼저 책집 안쪽에서 주섬주섬 책을 살피던 아저씨가 한참 책을 잔뜩 고르고서 밖으로 나와 값을 셈하면서 저더러 “미안합니다. 좋은 책을 다 골라 가서요.” 하고 말씀합니다. “네? 좋은 책을 다 고르셨다니요? 아직 좋은 책 많은걸요? 제가 보는 책하고 아저씨가 보는 책은 다를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런 말을 나누고서 〈삼선서림〉 한켠에서 《제소리》를 만납니다. 유영모란 분은 이녁이 가르친 몇 사람이 있고, 이들 가운데 김흥호 님은 ‘사색’이란 이름으로 책을 열 자락 꾸리는데, 여기서 마지막 열쨋책이 《제소리》요, 김흥호 님을 가르친 어른 말씀을 고이 갈무리한 꾸러미입니다. 저보다 먼저 이 헌책집에 찾아와서 책을 멧더미처럼 장만하신 분한테 왜 이 책이 안 걸렸는지 아리송하지만, ‘김흥호·유영모’라든지 ‘풍만 출판사’를 다 몰랐을 수 있어요. 제가 《제소리》를 찾아내어 살피니 “아니, 그 책이 어디서 나왔어요? 제가 한참 볼 적에는 없던데.” “어, 저기 잘 보이는 데에 있던걸요.” 먼저 찾아간대서 다 알아보진 않아요. 오래 둘러본대서 다 찾아내진 않아요. 고요히 기다리면 돼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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