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7


《獨逸史學史》

 Georg von Below 글

 讚井鐵男 옮김

 白水社

 1942.7.10.



  독일이 걸어온 자취를 살피는 일을 어떻게 갈무리했느냐를 다룬 《獨逸史學史》는 독일사람이 쓰고 일본사람이 옮깁니다. 1942년에 나온 책이니, 일본은 이웃나라 발자취까지 꽤 깊이 파고들었구나 싶습니다. 배우려면 끝없이 파고드는 길이로구나 싶은데, 이 책은 일본 아닌 우리나라 책집에서 사고팔렸습니다. 책끝을 보면 ‘釜山府 ○○町 金文堂書店’ 쪽종이가 붙어요. ‘부산시’나 ‘○○동’이라 안 적고 ‘府·町’이라 적으니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무렵입니다. 〈金文堂書店〉은 이제 부산에 없지 싶은데, 이 책집이 어느 자리에 언제부터 있었는가는 수수께끼입니다. 일본 책집이 적잖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하고, 그 책집은 일본책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사는 일본사람’이며 ‘일본을 따르고 배워야 하던 조선사람’한테 책을 선보였겠지요. 1942년이면 조선말(우리말)은 아예 엄두를 못 낼 즈음이니 책집에는 온통 일본글로 찍은 책밭이었으리라 봅니다. 앞길이 까마득한 나날일 텐데, 1950년이나 1955년이나 1960년까지 오직 일본말만 쓰고 일본글만 읽어야 하던 수렁이었다면 우리는 우리 말글·삶·살림을 얼마나 돌보거나 가꿀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우리다운 넋을 얼마나 보살피거나 일굴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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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6


《문장연습》

 고려대 교양학부 교양국어연구실 엮음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3.1.



  적잖은 글꾼은 ‘우리말에 한자말이 매우 많다’고 합니다만, 이는 오직 한문으로 글을 쓰던 버릇으로 일컫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이 수수하게 널리 쓰던 말씨를 몽땅 한문으로 담아내려 하다 보니 얼핏 ‘우리말’만큼 ‘중국 한자말’하고 ‘일본 한자말’을 끌어들인 탓이라 할 텐데, 중국·일본 한자말을 배운 적이 없이 살림하는 사람들 말씨를 헤아리노라면 ‘우리 삶은 우리말로 넉넉히 담아낼’ 만해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으니 우리말을 모를 뿐입니다. 《문장연습》은 ‘열린배움터 교양국어’를 가르치며 쓰던 곁책입니다. 온통 새까맣게 한자로 글을 쓰도록 이끕니다. 쉽고 부드러이 우리말을 쓰도록 이끌지 않아요. ‘우리말로 생각하고 우리말로 삶·살림·사랑을 담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틀은 언제 세울까요.


우리의 先祖들은 이 漢字로써 漢文을 지어 썼으니 그 고통은 오늘날 英語를 배워서 글을 짓는 것보다 더했을 것이다. 그러나 古來로 우리말을 적어 보려는 强한 意慾이 있어 新羅時代의 鄕歌를 보면 당시의 國語를 漢字로 表記하고 있다 … 매우 不便한 文字이지만 現在 우리는 그것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累千年來의 慣習 탓도 있지만 우리말에 漢字語가 많기 때문이다. (128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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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00


《농촌극 입문》

 하유상 글

 마을문고본부

 1976.9.26.



  놀면서 신나거나 일을 즐겁게 하려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노래는 ‘잘’을 안 따져요. 누구나 마음껏 부릅니다. ‘바보상자’라는 이름을 얻은 ‘텔레비전’이 퍼지기 앞서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같이 놀거나 일하고, 함께 노래했어요. 저마다 지은 하루를 되새기고, 서로서로 새 하루를 누리면서 놀거나 일해요. 바보틀(텔레비전)이 퍼지면서 어린이는 더 어울려 놀지 않고 어른은 더 두레를 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즐거이 나누던 노래를 잊은 채 뿔뿔이 흩어져요. 《농촌극 입문》은 조각난 사람살이에서 마당놀이(연극)로 끈을 잇도록 북돋우는 책처럼 보이지만, 속을 보면 바보틀 연속극을 고스란히 흉내냅니다. ‘마을문고’란 뜻은 나쁘지 않되 ‘새마을총서’란 이름으로 시골울 ‘서울 흉내’로 가둡니다.


- 이 총서는 새마을사업의 하나로 정부 보조와 본회 자금으로 제작하여 전국 35,000 마을문고와 공공도서관 및 문화원 도서실에 차례로 무상 기증하고 있는 비매품입니다. 마을문고 독서회원의 희망할 때는 본회 자금으로 제작한 재판본을 반포실비(100원·송료 포함)만으로 배본하고 있읍니다. (책자취)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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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5


《육군문고 4호》

 정훈감실 엮음

 육군본부

 1959.



  1959년에 《육군문고 4호》가 나왔으니, 앞서 석 자락이 더 있다는 뜻입니다. ‘문고’란 이름처럼 손바닥에 쥘 만큼 조그마한 책이요, 바지 뒷주머니나 옆주머니에 넣고서 다니다가 쉴틈에 펼 만합니다. 그러나 막상 군대에서 총칼·총알·등짐을 잔뜩 짊어지고서 하루 내내 멧골을 타넘고, 들에서는 내달려야 하다 보면, 또 저녁에는 천막을 치거나 비질·걸레질로 하루를 마감하다 보면, 붓을 쥐어 하루를 남기거나 뭘 읽을 기운이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아니, 조그만 종이꾸러미조차 무거워서 못 들고 다녀요. 군대는 총알이나 등짐 무게를 줄이도록 하면서 싸울아비(군인) 주머니에 손바닥책 하나를 넣어 줄 수 있을까요? 나라는 군대를 없애면서 젊은이 가슴에 참사랑이며 참살림이란 빛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손바닥책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요? 참사랑·참살림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삶을 짓는 길을 밝히는 불이 될까요? 가벼운 글도 그림도 좋습니다만, 이 땅을 누비며 멧골을 가로지르는 젊은이한테 흙내음이며 풀꽃나무를 포근히 돌보는 길을 알려주는 이야기를, 곁짝이 될 사람을 보드랍고 상냥히 아끼는 눈을 밝히는 줄거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군인이 되는 나이’란 마음도 몸도 슬기롭게 무르익을 나날이거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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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490


《거듭 깨어나서》

 백기완 글

 아침

 1984.10.15.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84년에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써서 내라는 말에 한참 헤매고 망설이다가 ‘나’라고 적었습니다. 동무들은 ‘부모님·선생님’을 비롯해서 이름나거니 훌륭하다는 사람을 적는데, 저는 도무지 어느 누구도 우러를(존경) 수 없다고 느꼈어요. 어버이는 그저 사랑일 뿐 우러를 빛이 아니요, 대단하다는 어른도 그저 대단할 뿐 남을 높이거나 섬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내가 존경하는 사람 = 나’라고 적어서 내니 실컷 얻어맞았습니다. 배움터 길잡이는 제가 장난을 친다고 여겼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느 누구도 존경할 수 없어요. 대단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솜씨나 슬기를 배울 뿐, 그이를 높일 수 없어요. 나중에 제가 대단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되더라도 누가 저를 섬겨야 하지 않아요. 그때에도 그저 저한테서 뭔가 배울 뿐이에요. 사랑을 물려주는 어버이하고 저는 ‘사랑’ 사이일 뿐이지, 높거나 낮은 사이가 아니에요. 우리가 높일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나’이지 싶어요. 남이 아닌 ‘나’를 아껴야지 싶어요.” 《거듭 깨어나서》는 힘꾼·돈붙이·이름바라기한테 억눌리지 않는, 또 우리가 스스로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깨닫자고 외처요. 스스로 빛이 되어 설 적에 ‘나’입니다.


ㅅㄴㄹ


아이들한테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지 말고,

남을 존경하도록 내몰지 말고,

언제나 스스로 사랑하고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만 북돋우기를

비는 마음으로...

옛생각 한 자락을 떠올려서 적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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