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9.28.

 : 고운내 듬뿍 들이켜면서



- 자전거마실은 언제나 즐겁다. 왜냐하면, 내 자전거에 샛자전거와 수레를 붙인 길고 무거운 자전거를 질질 끌면서 땀을 쪽쪽 빼는 마실길이 언제나 즐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이 즐거운가? 맑은 날에는 맑은 바람을 쐬어 즐겁고, 추운 날에는 칼바람에 살갗이 에듯 손발이 시려서 즐거우며, 비오는 날에는 비를 맞아 즐겁고, 눈오는 날에는 눈바람을 맞으면서 즐겁다.


- 가을에 자전거마실을 누린다. 아직 볕이 따스하기에 아이들은 맨손으로 탈 수 있다. 그러나 해가 떨어지고 바람이 차면,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한손씩 호호 불면서 덜덜 떤다.


- 마당에서 주운 후박나무 가랑잎을 한손에 쥔 자전거순이는 늘 씩씩하다. 스스로 씩씩하게 놀려고 하는 아이인 터라 참말 늘 씩씩하다. 가을볕과 가을들을 누리려고 천천히 달린다. 달리다가 곧잘 멈춘다. 군내버스를 멀거니 구경하고, 여뀌와 피와 나락을 함께 구경한다. 어느새 돋는 유채잎도 구경한다.


- 시골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바퀴 소리와 발판 구르는 소리를 빼면, 온통 바람소리와 멧새 노랫소리이다. 자전거를 멈추고 구름을 올려다볼 적에는 구름이 흐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날에는 햇살이 들려주는 소리도 와닿는다.


- 고운내 듬뿍 들이켜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면내마실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폭 박는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보라 자요.” 하고 알려주는데, 큰아이가 알려주기 앞서, 뒷거울로 작은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았다. 다 알아. 그래서 조금 천천히 달린단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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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6.

 : 가을들 샛노랗게 물들어



- 여름에는 비가 자주 오더니 가을로 접어든 뒤로는 빗방울이 거의 안 듣는다. 들마다 나락이 알알이 여문다. 나락 익는 내음이 마을마다 퍼진다. 일찍 심은 나락은 일찍 베고, 조금 늦게 심은 나락은 햇볕을 더 머금으면서 샛노랗게 빛난다. 이 가을은 볕이 좋고 바람이 상큼하니,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하기에 아주 좋다.


- 누렇게 물결치는 들판 한복판을 달린다. 들빛과 하늘빛을 함께 본다. 아이들더러 들과 하늘을 보러고 얘기하는데,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새롭게 흔들리는 이를 만지면서 더 흔드느라 바쁘다. 그래, 너한테는 흔들리는 이를 더 흔들어 빼는 일이 훨씬 대수롭겠구나.


-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바라본다. 가을에 맞이하는 시골내음을 마신다. 저녁 군내버스가 지나간다. 이제 군내버스는 누런 물결을 가르면서 온 마을을 구비구비 돌겠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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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9.27.

 : 사진순이 바깥마실



- 바깥마실을 가자. 맑고 밝은 가을을 듬뿍 누리도록 바깥마실을 가자. 자전거를 타 볼까. 자전거도 좋고, 두 다리로 걸어도 좋지. 우리는 즐겁고 씩씩하게 들길을 달린다. 서로서로 빙긋방긋 웃는 얼굴로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자. 사진순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놀지. 산들보라는 수레에 앉아 누나를 바라보고 아버지를 지켜보지. 들빛이 곱다. 들빛은 왜 고울까. 온갖 풀열매를 그득그득 품에 안아서 고울까. 사람도 벼알과 콩알을 먹고, 참새도 벼알과 콩알을 먹는다. 들쥐도 벼알과 콩알을 먹고, 메뚜기와 풀벌레도 벼알과 콩알을 먹는다. 다 같이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이 땅에서 모든 목숨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산다. 네가 먹고 내가 먹는다. 네가 웃고 내가 웃는다. 네가 노래하고 내가 노래한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신나게 달리고 얼크러지면서 어깨동무를 하자. 싱싱 달리는 자전거는 바람을 가른다. 한창 달리다가 스르르 멈추면서, 들판에 일어나는 노란 물결을 바라본다. 억새가 춤추는 곁에 갈대가 춤을 춘다. 논둑이 있고 도랑이 있으며 냇물이 있다. 돌콩이 톡톡 터지면서 까만 알맹이를 퍼뜨리는 소리를 낸다. 참새가 무리를 지어 난다. 까마귀와 까치는 어디에 있을까. 직박구리와 콩새와 박새는 무엇을 먹을까. 잃어버린 숲동무를 찾자. 떠난 들동무를 부르자. 이 가을에 함께 바깥마실을 누리면서 서로 손을 맞잡자.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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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9.24.

 : 가을비 살짝 멎은 날



- 비가 제법 쏟아지는 날, 부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우체국에 다녀오기도 해야 하지만, 차가운 가을비가 내린다고 하루 내내 집에서만 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깥마실을 다녀오고 싶다. 비가 가늘어졌다가 다시 내리다가, 해가 방긋 나왔다가 부슬부슬 흩뿌리다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바라본다. 이러다가 삼십 분 즈음 비가 멎은 하늘을 가만히 살핀다. 비가 다시 오더라도 가 보자고 생각한다.


- 낮잠을 건너뛰고 놀던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로 곯아떨어진다. 이렇게 고단했으면서 왜 집에서는 안 자고 그렇게 버티었니. 꼭 아버지가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태워 주어야 잠을 자니.


- 큰아이는 비옷을 입는다. 비가 그쳤어도 길바닥에는 빗물이 마르지 않았으니 자전거가 달리면서 물이 튀겠지. 나는 비옷을 안 입는다. 내 비옷은 수레 바닥에 댄다. 빗길을 달리며 물이 튀면 수레바닥이 젖으니, 작은아이가 앉은 수레에 빗물이 스미지 않도록 이곳에 비옷을 놓는다.


- 비가 멎은 시골길은 구름과 안개가 호젓하다. 조용한 길에 바람소리와 빗내음이 물씬 어우러진다. 비가 안 오고 맑은 날에 타는 자전거는 그런 자전거대로 즐겁고, 비가 살짝 멎은 때에 빗내음을 마시며 달리는 자전거는 이런 자전거대로 재미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묵은 밭을 본다. 묵은 밭 곳곳에 돋은 서숙을 본다. 누가 따로 심지 않았을 텐데 서숙이 스스로 올라왔다. 아마 예전에 이곳을 서숙밭으로 가꾸었을 때에 서숙을 베면서 낟알이 조금 떨어졌겠지. 그때 떨어진 서숙알이 올봄부터 천천히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이렇게 익었겠지. 묵은 밭 서숙 한 포기를 뽑는다. 묵은 밭이란 임자가 없는 밭인데, 몇 해 앞서까지 이 밭을 일구던 할매나 할배는 어떻게 지내실까. 조용히 숨을 거두셨을까.


- 큰아이와 조금 걷는다. 큰아이가 손이 시렵다고 한다. 나는 괜찮지만, 아이들은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면 손이나 몸이 많이 춥구나.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작은아이는 안 깬다. 십 분 즈음 천천히 들길을 걷다가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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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9.12.

 : 뱀이 살아갈 곳



- 자전거 바람주머니를 장만하려고 읍내에 갔더니, 읍내에는 없단다. 읍내 자전거집에 바람주머니를 갖다 놓지 않으셨단다. 순천으로 나가든지 인터넷으로 사야 한다. 수레와 샛자전거를 끄는 내 자전거는 앞뒤 겉바퀴를 모두 갈아야 하고, 앞바퀴는 바람주머니도 갈아야 한다. 바퀴를 손질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다닐 수 없다.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두 통 부치려 하는데,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한다. 아쉬워도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동호덕마을 앞을 지나려는데 길바닥에 널린 주검을 하나 본다. 뱀이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서 죽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하니, 뱀은 틀림없이 아스팔트 따스한 기운을 받으려고 나왔으리라. 따순 기운을 받으면서 몸을 추스르다가 그만 밟혔으리라.


- 뱀 주검을 지나칠 수 없다. 새 주검도, 벌레 주검도, 개구리 주검도, 모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풀숲으로 주검을 옮긴다. 부디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서 즐겁게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에는 사람 손길 안 닿는 깊은 숲에서 태어나 조용히 삶을 누리렴.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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