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5.3.19.

 : 우체국에 늦겠다



- 우체국에 가야 한다. 오늘은 소포 부칠 일이 아니라 카드 때문에 가야 한다. 소포는 저녁 여섯 시까지만 우체국에 가면 되지만, 은행 일을 보자면 네 시 반까지 가야 한다. 집에서 느긋하게 있다가 시계를 보고 부랴부랴 짐을 꾸린다. 아이들은 샛밥을 먹었으니 든든하고, 쉬도 누고 똥도 누었으니 개운하다. 자전거를 꺼내서 얼른 달리면 된다.


- 봄을 맞이한 들판에 푸릇푸릇한 기운이 오른다. 몇 해 앞서부터 군청에서 벌이는 ‘경관사업’으로 뿌린 유채가 싹이 돋는 듯하다. 지난해까지는 아무 때나 돋았는데 올해에는 얼추 자리를 잡으려는지 모두 한꺼번에 싹이 돋는다. 지난해까지는 들쑥날쑥했는데, 올해에는 모든 논에서 한꺼번에 유채싹이 돋고 유채꽃이 필 듯하다.


- 봄이 되어 바뀐 바람을 신나게 맞으면서 달린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은 비스듬한 내리막이다. 비스듬한 내리막을 바닷바람으로 앞에서 맞으면서 달린다. 시원하고 상큼하다.


- 우체국에 닿아 자전거를 세우니, 자전거순이가 우체국 동백꽃을 보면서 논다. 나도 꽃순이 옆에 서서 동백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우체국에 늦은 줄 까맣게 잊고 논다. 이러다가 아차 싶어서 우체국으로 들어간다. 네 시 반에서 사 분쯤 지나갔다. 다음에는 때 맞춰 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미안한 노릇이다. 도시에서는 어떠했을까? 도시에서는 ‘영업 끝’이라면서 볼일을 안 보아 줄까? 어제도 우체국에 왔는데, 어제는 다른 카드를 가져왔다면서 오늘 다시 와야 했다. 아마 어제 헛걸음을 했기에 오늘은 너그러이 봐주었구나 싶다.


- 집으로 천천히 돌아간다. 볼일을 다 보았으니 후련하다. 아이들은 저마다 과자를 한 점씩 집어서 신난다. 작은아이는 이내 수레에서 잠든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몬다. 날이 갈수록 ‘자전거 타며 노래 부르기’가 더 잘 된다. 아무래도 나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하다. 큰아이가 앉는 샛자전거는 안장을 3센티미터 올렸다. 큰아이는 키가 쑥쑥 자라는 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뒷거울로 살피니, 이제 큰아이 발판질이 홀가분해 보인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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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2.23.

 : 아버지 혼자 다녀와



- 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왔다. 설을 앞두고 보일러 기름이 거의 바닥이 났다. 설날에 기름값을 마련하자고 생각했는데 기름값만큼 돈이 모이지는 못한다. 이달에도 작은아이 통장에 들어온 ‘양육수당’을 덜어서 기름을 넣기로 한다. 이래저래 더하면 되지. 아침 일찍 자전거를 몰고 면소재지 기름집으로 가려 한다. 바람이 그리 불지 않고 볕이 좋은데, 오늘은 어쩐지 두 아이가 아버지하고 함께 자전거마실을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얘들아, 너희들 설 언저리에 자전거를 거의 못 탔는데, 안 타고 싶니? 도무지 자전거를 탈 뜻을 안 비치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은 샛자전거와 수레를 떼기로 한다. 나 혼자 자전거를 몰기로 한다.


- 작은아이가 대문을 빼꼼 열고 “아버지, 잘 다녀오셔요.” 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손가락을 깨물어 먹는다. 참말 오늘 너희들이 자전거마실에 아무 마음이 없구나. 그래, 아주 오랜만에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타 볼게.


- 큰아이는 이모한테서 받은 머리띠를 하면서 마당에서 뛰논다. 그래, 잘 다녀올게. 고맙다. 천천히 발판을 구른다. 아이들도, 샛자전거와 수레도, 아무것도 없이 달리는 자전거는 대단히 가볍다. 자전거가 워낙 이렇게 가볍던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한다. 샛자전거와 수레와 두 아이가 없이 홀로 달리니, 이 자전거로 우리 뒷산인 천등산도 꼭대기까지 씩씩하게 오를 만하겠다고 느낀다. 날마다 폭하게 바뀌는 바람을 먹는다. 바람을 타고 가뿐하게 면소재지를 다녀온다. 면소재지 기름집에서 기름값이 850원으로 내렸다. 달포 앞서 기름을 넣을 적에는 950원이었다. 살림돈 2만 원을 아끼는구나.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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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2.11.

 : 기침하는 작은아이



- 도서관 이야기책을 부치러 면소재지에 간다. 2월 첫날에 펴낸 도서관 이야기책은, 오늘 열여섯 통을 마저 부치면서 다 보낸다. 작은아이도 함께 자전거에 태우고 싶지만, 어제부터 기침을 밭게 해서 못 데려간다. 작은아이한테 네가 몸이 힘들어서 이렇게 기침이 밭으니 찬바람을 쐬는 자전거마실에는 못 데려간다고, 집에서 누워서 쉬어야 한다고 말하니, 작은아이는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스스로 몸이 고단한 줄 알아서 이부자리로 들어간다. 자, 자, 이럴 때야말로 더 신나게 이부자리에 드러누워서 몸을 달래야 얼른 기침을 털고 씩씩하게 일어서지. 일어서면서 웃어야지. 네 몸을 네 스스로 얼른 달래어 자전거마실을 누나랑 기쁘게 다녀야지.


- 이레 만에 자전거마실을 하는데, 바람결이 더욱 포근하다. 바닷바람이 제법 무르익는다. 살랑살랑 따사롭다고 할 만하다. 바야흐로 겨울이 끝자락에서도 더 끝자락으로 왔구나. 우체국만 들러서 편지를 열여섯 통 부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래를 부른다. 논둑길을 달리면서 노래를 부른다. 아버지가 목청껏 노래를 부른 뒤, 큰아이도 샛자전거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며 논둑길을 달릴 수 있는 자전거란 얼마나 즐거우면서 멋진가. 내가 보기에도 우리 자전거는 참으로 즐거우면서 멋지다.


- 논둑길을 한참 달리다가 겉옷 한 벌을 벗는다. 면소재지에 들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반소매를 입어도 되겠다. 반바지를 입어도 되겠다. 볕도 바람도 아주 폭하다. 큰길에 군내버스 한 대가 천천히 지나간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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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2.4.

 : 바람이 다시



- 이튿날(2.5.)부터 바깥마실을 가기로 한다. 곁님은 고흥집을 지키고,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과 일산에 가기로 한다. 열흘 뒤에 아이들 큰아버지 생일이기도 하고, 큰아버지가 올해 설에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못 간다고 하기에, 두 아이가 큰아버지한테 설인사를 하도록 할 뜻에다가, 큰아버지한테 미역국을 끓여 주려 한다. 이러고 나서 일산으로 건너가서 일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와 이모부와 삼촌한테도 설인사를 하도록 하자고 생각한다. 바깥마실을 가기 앞서 자전거를 달린다. 한동안 자전거를 못 탈 테니까.


- 도서관 이야기책을 봉투에 꾸려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간다. 우리 집에서 면소재지로 달리는 길은 ‘뭍에서 바다’로 가는 길이다. 가을이 저물면서 겨울이 될 무렵에는 바람이 바뀌어 ‘뭍바람’인데,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될 무렵에는 다시 바람이 바뀌어 ‘바닷바람’이다. 오롯이 바닷바람은 아니나 제법 바닷바람다운 결을 느낀다. 아, 그래, 참말 철이 바뀌는구나. 올해 겨울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 아이들은 바람결이 바뀐 줄 알까. 아마 아이들도 느끼리라. 바람결이 겨울바람치고 그리 차갑지 않을 뿐 아니라, 해가 길어지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바람결이 어떠하느냐고 묻지 않아서 아이들은 몸으로는 느끼되 머리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해가 길어진 모습은 내가 아이들한테 묻지 않아도, 큰아이가 먼저 알아보면서 이야기한다.


- 우리 자전거마실은 참으로 기쁘면서 즐겁지. 철마다 철을 느끼니 기쁘고, 철마다 새로운 바람을 마시니 즐거워. 이월바람을 끝으로 겨울바람이 저문다. 이 끝자락 겨울바람을 맛나게 먹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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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1.11.

 : 놀이터가 그리운 아이들



- 아이들이 놀이터를 그린다. 바람이 불건 비가 오건 놀이터에 가고 싶다 말한다. 그래, 우리 집 뒤꼍을 놀이터로 삼으면 뒤꼍에서 언제나 놀 수 있을 테지. 다만, 아직 뒤꼍을 놀이터로 꾸미지 못했으니,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 놀이터로 가야 한다. 한겨울이건 한여름이건 놀이터에는 즐겁게 가자. 씩씩하게 자전거를 달리자. 뜨거운 바람도 쐬고 차가운 바람도 맞자. 따사로운 바람도 먹고 시원한 바람도 마시자.


- 놀이터에서 실컷 논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폭 잠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하니 졸려도 잠들 수 없다. 씩씩하게 함께 달린다. 그런데 바람이 꽤 드세어 들길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세우기로 한다. 집까지 걸어가자. 걸어가면 바람을 덜 맞으니까. 큰아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둑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집으로 간다. 다음에는 바람이 잔잔한 날에 놀이터로 나들이를 가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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