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13.

 : 걷고 걷는다



도서관에 들른 뒤 우체국으로 달린다. 오월이 한껏 무르익으니 가만히 서서 해를 바라보면 덥고, 나무그늘에 서면 시원하며, 자전거를 달리면 바람맛이 아아아 상큼하다. 어느덧 이런 철이 되었구나. 달력이 아니라 바람과 하늘을 보니 이렇게 철이 사뭇 바뀌는구나.


면소재지로 가는 길목인 호덕마을 앞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한창 공사를 한다. 상수도 공사를 한다. 시골마을에 수돗물이 흐르도록 하겠다면서 벌이는 공사이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이 공사를 모두 반기는 듯하다. 관청에서 자꾸 ‘지하수’는 나쁘다고 떠벌이고 ‘수돗물’이 몸에 좋다고 외치니까, 시골에서조차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구나 싶다.


늘 느끼는데, 시골에서조차 도시처럼 수돗물을 마신다면,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시골로 와서 살고 싶을까 궁금하다. 도시를 떠나려는 사람은 손수 흙을 일굴 뿐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과 맑은 물과 고운 볕과 넓은 하늘과 푸른 숲을 누리려는 마음이라고 본다. 아닐까? 도시에서 애써 시골로 가서 살려고 하는데, 맑은 물이 아니라 수돗물을 마셔야 한다면 즐거울까? 수돗물을 마셔야 하는 곳으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고픈 도시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가 잠든다. 바람 따라 길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빈 쌀푸대를 하나 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면서 땀을 흘릴 즈음, 큰아이가 “나, 자전거에서 내릴래. 걷고 싶어.” 하고 말한다. 참말 걷고 싶은 마음일까, 아니면 아버지를 아껴 주려는 마음일까. 아무튼, 자전거를 세워서 걷기로 한다. 자전거순이에서 걷기순이로 바뀐 큰아이는 들길을 노래하면서 총총총 달린다. 하하하 웃으면서 춤을 춘다. 큰아이가 보여주는 멋진 ‘걸음춤’을 기쁘게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걷기순이야, 아버지가 자전거를 끌어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끌어야 한단다. 자전거를 달려도 이 긴 자전거를 영차영차 달리지. 그러니까, 네가 참말 스스로 걸으면서 들바람을 쐬고 싶으면 그저 그 마음 그대로 기쁘게 걸으렴. 네 아버지는 자전거를 달리든 걷든 모두 즐거우니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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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5.

 : 똑똑한 자전거순이



자전거를 몰고 나들이를 가려고 하면 두 아이가 다 알아채고는 바지런히 마당을 치우랴 대문을 열랴, 그리고 자전거가 나가면 대문을 닫으랴 부산하다. 대문 걸쇠는 위와 아래에 있다. 아래쪽은 으레 작은아이가 열고, 위쪽은 으레 아버지가 열지만, 때때로 큰아이가 연다. 어느 때에는 걸상을 받치고 손을 쪽 뻗어서 여는데, 오늘은 빗자루를 써서 톡 하고 밀어서 연다. 머리 좋네. 그렇게 하면 네 팔이 길어지는 셈이지.


도서관에 들러서 짐을 옮긴다. 다 읽은 책을 도서관에 옮기고, 이제 작아서 더 못 입는 아이들 옷을 도서관에 둔다. 아이들한테 작은 옷을 다른 이웃한테 주지는 못한다. 두 아이가 워낙 돌려입으며 해지고 낡았기 때문이다. 낡고 작은 옷은 나중에 어디엔가 쓸 일이 있겠지.


봄볕을 받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들길을 아주 천천히 달린다. 자전거순이가 샛자전거에 앉아 묻는다. “왜 이렇게 천천히 가?” “응, 고운 볕을 듬뿍 받으려고 천천히 가지.”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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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1.

 : 봄바다를 보러 달리다



아침 일찍 이불을 빨래한다. 신나게 이불을 빨아서 마당에 넌다. 여러 날 잇달아 퍼붓던 사월비가 그치고 새로 접어든 오월 첫날 기쁘게 이불을 빨래한다. 앞으로 여러 날 더 햇볕이 고우리라 느낀다. 이 고운 볕에 겨우내 묵은 이불을 맡기자고 생각한다.


이불을 빨래하고 난 뒤 아침을 차려서 함께 먹는다. 우리 집 마당에서 뜯은 풀을 고맙게 누린다. 마루문도 열고 부엌문도 연다. 마당과 뒤꼍에 가득한 유채꽃과 갓꽃이 노란 봄내음을 가득 베푼다.


오늘은 어느 바다로 갈까. 발포로도 가 볼까 싶으나, 그곳은 청소년수련원 공사를 하느라 시끄럽기도 하고, 물빛도 더러워졌다. 녹동까지는 멀지만, 풍남까지는 가 볼 만하다 싶다. 풍남 쪽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먼저 면소재지에 들러서 빵 몇 조각을 장만한다. 바닷가에서 놀 아이들이 먹을 주전부리이다. 면소재지 빨래집 처마에 제비가 깃든 모습을 본다. 자전거를 달리다가 멈추고는 제비 날갯짓을 바라본다.


면소재지를 벗어나 풍남 쪽으로 달리니 길이 시원하다. 시골길이니 자동차가 드물기도 하지만, 이 깊은 고흥 시골자락까지 자동차를 몰고 찾아오는 관광객은 매우 적다. 더없이 호젓한 마실길이다.


길가 감나무마다 감잎이 옅푸르다. 새봄에 돋는 감잎은 노랑이 듬뿍 밴 푸른 빛깔인데, 이를 가리킬 만한 빛이름이 있을까 궁금하다. 나는 ‘노푸르다’ 같은 말을 한 번 지어 보았다. 노랗고 푸른 빛깔이라는 뜻이다. 사월에 처음 돋는 감잎은 오월 첫무렵까지 ‘노랑이 듬뿍 밴 풀빛’인데, 여름에는 짙푸른 빛깔로 바뀌고, 가을에는 알록달록 새로운 빛깔로 거듭난다. 철마다 다르면서 고운 감잎빛이라고 느낀다.


시골길이든 도시길이든, 이 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달릴 때면 ‘나무가 있느냐 없느냐’로 크게 달라진다고 느낀다. 나무가 잘 자란 길을 걷거나 달리면 온몸이 상큼하면서 즐겁다. 나무가 없는 길을 걷거나 달리면,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매섭도록 춥다. 나무가 있는 길을 걷거나 달리면, 눈이 맑게 트이면서 홀가분한 몸이 된다. 나무가 없는 길을 걷거나 달리면, 눈을 둘 데가 없이 바쁘기 일쑤이다.


나무가 있건 없건 나 스스로 마음을 곧게 다스린다면 홀가분하거나 즐거울 만하리라 본다. 그런데, 나무가 있는 길과 없는 길은 매우 다르다. 그리 크지 않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늘이 드리우는 나무라면, 이 나무 곁을 스치고 지나갈 적마다 ‘아, 시원하네’ 하고 느낀다.


시골에서는 논이나 밭에 그늘이 진다면서 나무를 모조리 벤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을 텐데, 새마을운동 뒤부터 이런 짓이 널리 퍼졌다. 바닷가조차 나무가 몇 없다. 바람막이 나무가 없는 바닷가도 있고, 마을에서도 바람막이 구실을 할 나무가 없기 일쑤이다.


나무가 우거져서 그늘을 짙게 드리우면 햇볕을 덜 먹는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해님은 하늘을 가로질러서 골고루 비춘다. 해는 빛뿐 아니라 볕을 베푼다. 햇빛을 덜 받아도 햇볕은 늘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무가 서기에 드센 바닷바람을 많이 막아 줄 뿐 아니라, 나무뿌리가 흙을 단단히 움켜쥐고, 나무 둘레로 여러 풀이 골고루 자라서 거센 빗줄기에도 흙이 덜 쓸린다. 나무는 열매와 꽃을 사람한테 베풀고, 그늘을 주며, 푸른 숨결(바람)을 나누어 줄 뿐 아니라, 흙이 한결 기름지도록 북돋아 준다. 이러면서 땔감을 주고, 커다란 나무는 제 몸을 바쳐서 사람이 집을 짓도록 해 준다.


자전거는 지등마을과 이목동마을을 지나고 가화정미소 자리를 지난다. 황촌마을에 닿을 무렵부터 바다가 보인다. 풍남까지 가려는 생각이었는데, 황촌마을에서 바다가 보이기에 이쪽 바닷가를 달리기로 한다. 바다를 바라보고 바닷내음을 맡으면서 자전거를 천천히 몰다가, 여의천마을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황촌마을 바닷가에는 나무 한 그루조차 없어서 자전거를 세울 만한 데가 없지만, 여의촌마을 바닷가에는 바람막이 나무가 제법 있고, 평상과 걸상도 있다.


나무그늘에 자전거를 세운다. 무너진 시멘트계단을 아슬아슬하게 밟으면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곳까지 가 본다. 아이들이 오르내리기에는 너무 높은 시멘트계단인데, 바닷물을 맞고 계단이 쩍쩍 갈라졌다. 어느 계단은 길에서 퍽 먼 데까지 흩어졌다.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곳에는 시멘트계단이 무너지고 부서진 조각이 곳곳에 널브러진다. 이 볼꼴사나운 모습은 무엇일까 아리송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볼꼴사납도록 팽개쳐졌을까. 늘 물결이 치는 바닷가인데, 시멘트계단은 어쩜 이렇게 허술하게 지었을까. 철근조차 안 쓰고 시멘트만 부어서 어설피 꾸민 듯하다.


곳곳에 널브러진 시멘트조각이 많은데다가, 쓰레기도 많다. 이곳에 놀러온 사람이 버린 쓰레기일까, 아니면 바닷물에 쓸려 온 쓰레기일까. 바닷가를 아이들과 거니는데, 저쪽에서 뭐가 하나 떠내려 온다. 작은아이가 그것을 보더니 “저기 뭐가 와!” 하고 소리치며 그쪽으로 간다. 아이와 함께 다가서니 스티로폼 상자이다.


온갖 쓰레기만 널브러진 바닷가에 서고 싶지 않아 나무 그늘로 돌아간다. 나무 그늘 둘레로 조그맣게 풀밭이 이루어졌고, 큰돌이 많다. 두 아이는 돌을 타면서 나무 둘레에서 논다. 봄바다를 보러 왔지만 봄바다를 바라보는 맛은 없다. 그래도, 바닷바람을 쐬면서 나무와 함께 이곳에서 놀고 쉬자고 생각한다. 두 아이는 땀이 나도록 뛰놀고, 나는 바람과 햇볕을 누리면서 책을 읽는다. 틈틈이 주전부리를 나누어 먹는다.


한 시간 반 즈음 놀고 나서 손과 낯을 씻는다.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큰아이도 기운을 많이 쓰며 놀았는지 샛자전거에 앉아 힘들어 한다. 나긋나긋 노래를 부르며 우리 집으로 돌아간다. 마을마다 어르신들은 마늘밭에 농약을 치느라 부산하다. 농약바람이 일지 않는 곳으로 돌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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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5-02 09:50   좋아요 0 | URL
올려주신 사진 덕분에~속이 다 시원하게 뻥 뚫립니다~~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5-05-02 10:32   좋아요 0 | URL
오늘도 어제에 이어 맑고 아름다운 날이 될 듯해요.
오늘 하루도 기쁘게 누리셔요~~~
 

자전거쪽지 2015.4.22.

 : 가볍고 보드랍게



- 우리는 자전거를 탄다. 가볍고 보드랍게 탄다. 우리는 봄마실을 간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긋나긋 상큼한 바람을 마신다. 논갈이를 앞두고 노랗게 물결치는 꽃보라를 누리고, 비록 일곱 마리밖에 안 되지만,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노니는 제비를 본다. 오늘은 제비가 일곱 마리밖에 깃들지 못하지만, 이 제비가 새끼를 까서 서너 곱으로 늘어난다면, 그리고 이 제비가 농약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남아서 따스한 고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듬해에는 한결 넉넉하고 부산스러운 제비춤을 볼 수 있겠지. 우리는 자전거를 타면서 날자. 꽃내음을 마시면서 날고, 제비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날자. 파랗게 빛나는 바람을 마시면서 날고, 가볍게 발을 구르면서 날자.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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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4.16.

 : 날마다 다른 들빛



- 여름과 가을과 겨울에도 들빛은 날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더 푸르게 달라지는 들빛이고, 가을에는 더 노랗게 달라지는 들빛이며, 겨울에는 더 누르스름하게 달라지는 들빛이다. 봄에는 옅푸르게 달라지는 들빛인데, 요즈음은 논마다 유채씨를 뿌리기에 가을과 다른 노란 물결이 춤을 춘다. 유채꽃송이가 차츰 벌어지면서 노란 빛물결은 날마다 더 눈부시다. 그런데, 이 노란 빛물결이 가장 흐드러질 무렵 모두 밀어 버린다. 왜냐하면, 유채꽃물결이 가장 넘실거릴 무렵 경관사업은 끝이 나고, 논마다 트랙터로 갈아엎어서 논삶이를 해야 하니까.


- 봄에는 날마다 다른 마실길이 된다. 우리 집 마당에 서도 날마다 다른 기운을 느낀다. 이웃마을을 자전거로 지나갈 적에도 늘 다른 기운을 느낀다. 아침과 낮과 저녁 사이에도 달라지는 기운을 느낀다. 그렇구나. 이제 해가 날마다 차츰 길어지지. 새벽동도 더 일찍 밝고, 저녁햇살도 오래도록 뻗는다.


-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다가도 자주 멈춘다. 노란 꽃물결이 눈부신 곳에서는 아예 자전거를 세우고 꽃바람을 듬뿍 마신다. 꽃바람을 마시는 아이들 가슴에 꽃노래가 흐르기를 빈다. 아이들과 함께 내 가슴에서도 꽃노래가 피어나기를 빈다. 아주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밟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버지가 자전거에서 부르는 노래를 즐겁게 귀여겨듣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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