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5.4.11.

 : 다시 유채밭 사이로



- 새봄이 되어 들녘에 유채꽃이 필 무렵은 이 들길을 다니기에 싱그러우면서 즐겁다. 아직 농약을 칠 때가 아니요, 온통 꽃바람이 분다. 꽃가루를 먹고, 꽃내음을 마신다. 자전거 발판을 천천히 구른다. 아이들은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아서 향긋한 냄새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한 시간 반 즈음 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군내버스가 저 앞에서 다가오는 모습을 본다. 자전거를 길섶에 바싹 붙이며 기다린다. 군내버스가 유채밭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예쁘다. 이 유채밭 들길을 누군가 걸어서 지나가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도 무척 예쁠 테지. 사람들이 제주섬이나 여러 시골로 봄마실을 다니는 까닭을 알 만하다. 이 유채꽃이 모두 샛노랗게 춤을 추면 얼마나 어여쁠까.


- 유채꽃이 가득 필 무렵에는 자전거를 집에 두고 두 아이와 천천히 이 들길을 걸어야겠다. 그때에는 자전거조차 성가시리라.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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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3.28.

 : 새로운 봄들



- 새로운 봄들을 달린다. 도서관에 책짐을 조금 부린 뒤 기쁘게 놀이터로 달린다. 면소재지 놀이터로 가는 길은 들길을 가로지르기로 한다. 오늘 이 들길은 시멘트로 덮은 길이지만, 우리는 이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 흙과 풀로 덮인 길’로 여긴다. 흙내음과 풀내음이 가득하고 도랑에서 물이 맑게 흐르던 지난날을 그리면서 이 길을 달린다. 시골에 아이들이 가득하고, 시골아이가 도랑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마음으로 그리면서 달린다.


- 놀이터에는 우리 아이들만 있다. 홀가분하게 이리저리 달리면서 뛰논다. 나는 미리 챙긴 시집 한 권과 동화책 한 권을 읽는다. 아이들과 놀러 다니면, 두 아이가 개구지게 뛰놀고, 나는 곁에서 조용히 책을 누린다.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놀이터까지 오면 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저희끼리 새로운 놀이를 지으면 된다.


- 우리 자전거를 수선화 곁에 두었다. 우리 자전거에 수선화 냄새가 조금 배었을까. 아이들 땀냄새를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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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2.1.

 : 자전거가 달리는 곳



- 놀이터가 그리운 아이들은 겨울에도 놀이터에서 뛰놀고 싶다. 찬바람이 불든 물이 꽁꽁 얼든 대수롭지 않다. 게다가 우리 집은 전남 고흥이지 않은가. 다른 고장이 꽝꽝 얼어붙어도 우리 고장에는 볕이 포근하지. 구름 한 조각 없이 짙푸른 하늘이 맑은 날을 골라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달린다. 우리 자전거가 달려가는 곳은 바로 놀이터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바다에서 논다. 길에서 놀고, 골짜기에서 논다. 들에서 놀고, 숲에서 논다. 어디이든 함께 놀면서 쉴 곳으로 달려가는 자전거이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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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3.7.

 : 장갑아 잘 쉬렴



- 삼월 자전거는 장갑을 마지막으로 끼는 자전거이다. 이월에도 볕이 아주 포근한 날에는 며칠쯤 장갑 없이 자전거를 몰았다. 삼월에도 바람이 차면 장갑을 끼지만, 차츰 따스하게 바뀌는 바닷바람을 쐬면서 장갑을 벗는다. 처음에는 장갑을 끼고 집을 나섰으나, 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웃옷을 한 벌 벗고, 장갑도 벗어서 손잡이에 꽂는다. 등과 이마로 땀이 줄줄 흐르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달린다. 장갑아, 겨우내 고마웠어. 도라에몽 털장갑아, 겨우내 네 삼차원주머니 같은 멋진 장갑이 내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구나. 이제 새겨울이 찾아올 때까지 폭 쉬기를 빌어. 겨울에 다시 만나자.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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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3.27.

 : 저녁에



- 저녁에 자전거를 탄다. 겨울이라면 벌써 깜깜한 저녁이었을 텐데 삼월 막바지이니 아직 해가 하늘에 걸린 저녁이다. 우체국은 문을 닫지 않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 보고 싶지만, 우체국만 들러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차려야 한다. 너희들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넘어가면 배가 고플 텐데, 집으로 돌아가면서 얼마나 힘들겠니.


- 꽃바람을 마신다. 면소재지 중학교 건물 옆으로 벚꽃은 일찌감치 졌고, 개나리가 한창이다. 학교 울타리를 보면 개나리가 퍽 많다. 왜 학교 울타리로 개나리를 많이 심을까? 예전에는 울타리라면 으레 찔레나무나 탱자나무였는데, 이제 학교나 건물 울타리는 쇠로 된 가시그물이기 일쑤이고, 드문드문 개나무를 척척 박는구나 싶다.


- 멧자락 한쪽에는 철쭉꽃이 군데군데 피었다. 철쭉꽃이 핀 지 이레쯤 되었을까? 진달래꽃을 보기는 어렵다. 시골마다 ‘철쭉제’이니 ‘철쭉잔치’는 많이 하는데 ‘진달래잔치’를 하는 곳이 있는지 아리송하다. 그러고 보면, ‘매화꽃잔치’보다 ‘벚꽃잔치’가 훨씬 잦다. 벚꽃을 멀리할 까닭은 없지만, 이 나라 삶자락을 헤아린다면, ‘벚꽃잔치’뿐 아니라 ‘능금꽃잔치’와 ‘배꽃잔치’와 ‘앵두꽃잔치’와 ‘매화꽃잔치’와 ‘복숭아꽃잔치’와 ‘살구꽃잔치’를 두루 할 만하리라 느낀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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