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11.10.

 : 다 함께



- 자전거마실을 가자고 한 마디 말이 떨어지면 두 아이는 아주 부산하다.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이 아이들은 놀이순이에 놀이돌이인 터러, 더운바람이건 찬바람이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순이와 자전거돌이로 바뀐다. 더구나, 작은아이가 손을 야물딱지게 놀리면서 대문 밑걸쇠를 열고, 큰아이는 디딤판을 밟고 올라서서 윗걸쇠를 열 만큼 키가 자라고 힘이 붙었다. 두 아이는 날마다 새롭게 자라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 수레에 쓰레기봉투를 싣고 마을 어귀로 끌고 간다. 마을 어귀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내려놓는다. 두 아이를 태우고 논둑길을 빙 돌아 도서관에 먼저 간다. 우체국으로 가서 부칠 책이 있기에 도서관에서 챙긴다. 짐을 꾸린 뒤 도서관에서 나온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웃마을 할매가 고구마를 썰어 잔뜩 널었다. 빼때기를 얻으려고 말린다.


-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는다. 언제나처럼 차근차근 발판을 굴린다. 언제나처럼 큰아이가 먼저 노래를 부르고, 작은아이가 따라 부른다. 앞에서 자전거를 모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노래를 부른다. 다 다른 노래를 부르지만 다 함께 노래를 부른다. 천천히 천천히 발판을 구르면서 늦가을 들길을 달린다. 바람이 제법 찰 텐데 큰아이는 장갑을 안 끼고 맨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는다. 손이 시릴 텐데?


- 우체국을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존다. 읍내 가게에서 빵 한 봉지 샀는데, 작은아이는 손에 빵봉지를 꼭 쥔 채 존다. 동호덕마을로 접어든 뒤 자전거를 세운다. 빵봉지를 뜯어 작은아이 손에 빵조각을 쥐어 주니 부시시 눈을 뜨고는 졸린 몸으로 우적우적 씹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맞바람을 쐬면서 빵조각을 씹는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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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7.

 : 빈들을 천천히



- 빈들을 천천히 달려 우체국으로 간다. 곁님이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손을 놀려 뜨개옷을 한 벌 지었는데, 이 옷을 오랜 동무한테 보내기로 했다.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뜨개옷이다. 뜨개질을 잘하는 이라면 우리 곁님처럼 열흘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새우듯이 손을 놀리지 않았을 테지만, 품이 아주 많이 가는 겨울 털옷이다.


- 이제 고흥 들녘에 샛노란 나락이 남은 논은 몇 군데 안 남는다. 거의 모두 베었다. 나락을 벤 논을 일컬어 ‘빈논’이라 하는데, 막상 시골에서 이 논을 바라보노라면, ‘빈’ 채 있지 않다. 나락은 베었어도 볏모가지가 있고, 볏모가지에 새로운 줄기가 올라온다. 꽁당이만 남은 둘레로 여러 들풀이 돋고, 가을볕을 받으며 유채나 갓도 돋는다. 억새가 바람 따라 나부끼고, 강아지풀이랑 여뀌고 한들한들 춤추기도 한다.


- 늦가을을 맞이한 시골들이 고즈넉하다. 벼 베는 기계도 없고, 논을 돌아볼 할배도 없다. 논에 마늘을 심는 바지런한 분이 더러 있지만, 해마다 나이를 먹는 시골지기는 이제 마늘심기를 많이 줄인다. 마늘을 심을 기운이 모자라기도 하고, 마늘값이 예전 같지 않기도 하다. 군청에서 벌이는 경관사업 때문에 빈논에 기계를 끌고 나와서 골을 내어 유채씨를 뿌리는 할배가 몇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 일을 마치고 가을들이 아주 호젓하다.


- 바람을 타고 면소재지로 나들이를 갔다가, 바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온몸에 가을바람을 묻힌다. 오늘 저녁에 지을 밥은, 그래, 가을밥이겠네. 늦가을밥.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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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3.

 : 해는 일찍 떨어지고



- 우체국에 다녀오려 한다. 작은아이는 틀림없이 수레에서 잠들 듯하다. 그래서 아이들 저녁을 좀 일찍 차려서 주기로 한다. 배가 부르면 더 느긋하게 잠들 수 있을 테지.


- 우체국에서 부칠 책꾸러미가 제법 많다. 두 아이가 즐겁게 타기도 하고, 짐도 곧잘 싣는 이 수레는 두 개째인데, 바닥천이 많이 해졌다. 질기고 야무진 천이라 이듬해에도 괜찮을 듯싶기는 한데, 새봄이 오면 수레 바닥천을 더 단단히 여미는 길을 생각해야겠다고 느낀다.


- 우체국으로 달리는 길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가는 길이다. 그래서 늦가을과 겨울에는 바람이 마파람이 된다. 우체국으로 달리는 길에는 수레가 무거우니 등에 바람을 지고 달리면 느긋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이니 몹시 힘들다.


- 두 아이가 서로 조잘거리면서 논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고개만 뒤로 돌려서 동생을 부르고, 동생은 수레에 앉아 앞에 있는 누나를 쳐다보며 대꾸한다. 해는 일찍 떨어진다. 그늘진 길에 차가운 바람을 옴팡 뒤집어쓰면서 달린다. 해가 일찍 떨어지지만 아직 하늘은 파랗다. 파란 하늘 한쪽에 달이 있다. “보라야, 저기 봐. 달이야. 달이 곧 동그래질 거야.”


- 우체국에서 뛰놀던 아이들. 수레에 태워 집으로 돌아가니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잠든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느라 얼굴이 빨갛다. 모자를 안 쓰겠다고 했으니 얼굴이 더 시리지? 그래도 나는 앞에서 모든 바람을 맞아들이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한다. 오직 노래만 생각한다. 바람이라든지 해 떨어진 쌀쌀한 날씨라든지 아무것도 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노래만 생각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렇게 맞바람을 듬뿍 맞으면서 노래를 부르면 곧 숨이 차서 노래를 더 부르지 못했다. 지지난해에는 맞바람을 맞으면서 노래를 부를 엄두를 아예 못 냈다. 우체국에 있는 저울에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 때 슬쩍 살피니, 작은아이는 19.5킬로그램이 나가는 듯하고, 큰아이는 21.5킬로그림애 나가는 듯하다(옷 무게를 빼면). 나날이 몸무게가 느는 아이들이지만, 외려 나는 날이 갈수록 아이들을 데리고 자전거마실을 다닐 적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낀다.


-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품에 앉아 잠자리에 누인다. 겉옷 한 벌 벗기고 이불을 덮는다. 많이 추웠지? 따스한 곳에서 쉬렴. 자전거를 바깥벽에 붙인다. 천막천을 씌운다. 마을고양이 여러 마리는 우리 집 자전거를 밤잠 자는 곳으로 삼는다. 어미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 자전거 밑에서 옹크리면서 잔다. 새끼 고양이 세 마리는 큰아이 자전거 앞에 둔 종이상자에 들어가서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잔다. 다른 어미 고양이 한 마리는 내 자전거 앞에 놓은 종이상자에 앉아서 잔다. 모두 여섯 마리 마을고양이가 우리 집 자전거 둘레에서 함께 지낸다. 오늘은 바람이 제법 찬데, 마을고양이들 모두 새근새근 잘 쉬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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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22.

 : 장갑과 모자를 찾는 철



- 장갑과 모자를 찾는 철이다. 들길을 거닐 적에는 굳이 장갑과 모자를 찾지 않아도 되지만,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장갑과 모자를 찾아야 한다. 찬바람이 싱싱 불고, 샛자전거나 수레에 앉아서 함께 움직이자면 자칫 몸이 얼 수 있으니까.


- 자전거순이는 모자를 안 쓰겠다고 앙앙거리더니 우는 얼굴이 된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맛을 네가 아직 못 깨닫는구나. 아무리 따스한 고장인 고흥이지만, 이제는 저녁이 되어 해가 기울면 저녁바람이 몹시 차단다. 너는 엊그제 손이 시렵다면서 샛자전거에서 언손을 호호 불면서 녹였어.


-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들길에서 한 차례 세운다. 돌콩이 자라는 곳에서 살짝 쉬기로 한다. 아이들이 저녁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추울 테니 숨을 돌리는 한편, 아직 알맹이가 달린 돌콩이 보여 얼마쯤 훑는다. 돌콩 씨앗을 주머니에 넣는다. 우리 도서관 둘레에 뿌리려 한다. 이듬해 봄에 우리 도서관 둘레에서 딸기싹도 새로 돋고 돌콩싹도 씩씩하게 날 수 있기를 빈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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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0.9.

 : 들바람 천천히 마시며



- 들바람 마시는 자전거마실을 나온다. 들바람을 마시는 마실이니 천천히 달린다. 천천히 달리다가 한동안 들 한복판에 멈추어 들내음을 맡는다. 바람이 불 적마다 샛노란 물결이 일어난다. 한가을에만 누릴 수 있는 빛물결이요 소리물결이다. 쏴아쏴아 흐르는 나락물결은 구수한 냄새와 함께 멋들어진 노랫소리인데, 샛노란 빛까지 어우러진다. 그리 넓지 않은 고흥 도화면 신호리 들녘이 이만 하다면, 훨씬 넓은 다른 고장 가을들에서는 얼마나 깊은 냄새와 소리와 빛이 어우러질까.


- 시골에는 높은 건물이 없다. 시골에 높은 건물을 짓는 사람은 없다. 멧자락이 우뚝 서지 않는다면, 시골에서는 어디에서나 확 트인 하늘을 만난다. 하늘이 더 높다고 하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려면 시골 들에 서야 한다. 파랗게 부서지는 하늘빛을 받는 들판에 서면서 비로소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뛰는 소리를 듣는다.


- 억새밭을 지나면서 꽃순이는 억새를 한 포기 끊으려 하는데 쉽지 않다. 네가 용을 써야 끊겠지. 산들보라는 수레에서 잠든다. 면소재지에 닿아 초등학교 놀이터에 간다. 올해부터 한글날은 쉬는날이니까, 초등학교도 쉴 테고, 우리 아이들이 낮에 놀이터에 가도 되겠지.


- 사름벼리는 놀이터에서 땀을 뻘뻘 내면서 달린다. 폭 잠든 산들보라가 내처 잘 듯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든다. 놀이터까지 마실을 하는 줄 아는 산들보라는, 오늘도 또 수레에서 잠들며 놀이터에서 못 놀까 봐 걱정을 했구나 싶다. 졸음을 잔뜩 머금은 몸으로 어기적거리면서 수레에서 내린다. 누나한테 쪼르르 달려간다. 놀이란 이렇게 힘이 세구나.


-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바라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이다. 더 놀고 싶어 입술을 삐쭉 내미는 사름벼리를 겨우 달랜다. 얘야, 여름은 끝났어. 이제 가을이야. 해가 떨어지면 갑자기 춥지. 시골은 더 추워. 얼른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네 몸에서 땀이 다 식어서 몸살이 들어. 달래고 달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해는 벌써 떨어지고, 놀이순이는 춥다고 개미 기어가는 소리를 낸다. 춥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따순 물로 씻고 따순 국 끓여서 먹자. 마을 할매와 할배는 해 기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락을 비닐로 다시 덮느라 부산하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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