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5.1.6.

 : 찬바람, 초등학교



- 1월 6일 아침에 면소재지 초등학교에서 예비소집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 예비소집에 가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뜻을 알리러 간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 수 없고 배울 수 없다고 느끼기에 학교에 아이를 넣을 마음이 없다. 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을 내세워 모든 아이가 반드시 학교에 다녀야 하도록 내몰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저절로 입시지옥에 휩쓸려야 하고, 입시지옥에서 빠져나올 즈음에는 직업훈련을 받는다.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한다. 아이를 그냥 안 보낼 수 있으면 가장 나을 테지만, 나라에서도 학교에서도 서류를 받아야 한다. 이 서류를 쓸 적에 부드럽게 빨리 단출하게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모저모 미리 알아보면서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마음이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가야 하기에 큰아이를 일찌감치 깨워서 옷을 입히는데 바람이 대단히 드세다. 바람이 드세건 말건 자전거는 그냥 달리면 되지만, 아침부터 찬바람을 잔뜩 먹어야 하는구나.


- 옷을 단단히 챙겨 입히고 길을 나선다. 큰아이하고만 조용히 길을 나서려 했는데, 작은아이가 잠에서 깬다. 작은아이는 왜 아버지와 누나 둘만 따로 자전거를 타고 어디에 가는지 알지 못하니 서운하게 여긴다. 그러게. 그러니 너는 더 자야지.


-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닿는다. 삼십 분 남짓 멍하니 기다린다. 큰아이가 볼 책을 한 권 챙겨야 했을까.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할 줄 몰랐다. 큰아이는 삼십 분 남짓 기다리면서 매우 따분해 한다. 뛸 수도 없고 달릴 수도 없고 노래할 수도 없는 이곳에서 참으로 고단하겠구나 싶다. 곰곰이 돌아본다. 어느 아이라 하더라도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고 싶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할 만할까. 하루 수업 가운데 몇 분쯤 마음껏 떠들고 내달리면서 놀 수 있을까. 놀고 싶은 아이들한테 학교는 어떤 지식을 가르치려 하는가.


- A4 종이로 한 장짜리 서류를 쓰고, ‘학부모 소견서’까지 쓰는 데에 한 시간 이십 분 즈음 걸린다. 참 오래 있었다. 앞으로 한 번 더 학교에 와야 할는지 모르지만, 아무것 아닌 서류 때문에 흘려야 하는 겨를이 나로서도 아이로서도 몹시 아깝다. 그래도, 서류 쓰기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돌아나오는 길에, 이 초등학교 꽃밭에 핀 하얀 동백꽃하고 나무쑥갓꽃을 보면서 마음을 달랜다. 오늘 이곳에 와서 한겨울꽃을 두 가지 보았구나. 나무쑥갓꽃이 무리를 지어 핀 자리에 코딱지나물꽃도 몇 송이 살그마니 피었다. 나무쑥갓꽃이 아닌 쑥갓꽃이라면 한결 고울 텐데 하고 혼자 생각한다. ‘구경하려는 꽃’이 아니라 ‘나물로 먹는 풀’을 심어서 꽃도 보고 씨도 받는다면 참으로 멋질 텐데 하고 조용히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시골마을에 있는 학교이니까.


- 작은아이한테 주려고 면소재지 가게에서 젤리를 한 봉지 산다. 맞바람이 대단히 드세서 자전거로 더 달릴 수 없기에 마을 어귀부터는 자전거에서 내려 큰아이와 함께 걷는다. 등판으로는 땀이 흐른다. 이 바람을 맞으면서도 유채꽃 몇 송이가 논둑에 피었다.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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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5.1.2.

 : 새해 첫 자전거마실



- 1월 1일보다 바람이 덜 불지만, 1월 2일에도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분다. 자전거마실을 할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이 바람을 쐬면서 마실을 하자고 생각한다. 낮잠을 안 자려는 작은아이를 재우는 한편, 우리가 한겨울을 지내는 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면 재미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나 혼자 재미있을는지 모르나, 겨울답게 싱싱 생생 신나게 부는 바람을 쐴 만하리라 느낀다.


- 옷을 단단히 입고 모자도 씌우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아이들은 추울는지 모른다. 누런 빛이 가득한 들길을 달리면서 노래를 부르자. 나는 나대로 부르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를 테지. 저 멀리 군내버스 지나가는 모습도 보고, 물총새가 먹이를 찾는 모습도 보며, 억새와 갈대가 흐드러진 도랑도 본다. 구름도 보고 하늘도 본다. 모두 우리 가슴에 담는다. 사이좋게 얼크러지는 모습을 보고, 이 시골에서 우리가 누리는 하루를 생각한다.


- 작은아이는 동호덕마을을 지날 무렵 잠든다. 많이 졸렸구나. 그러게, 집에서 낮잠을 자면 얼마나 좋니. 그러나 너희 누나도 너와 같았단다. 집에서는 졸음을 끝까지 견디고, 자전거수레에 앉기 무섭게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잠들곤 했단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맞바람이 아주 드세다. 큰아이가 발가락이 시리다고 말한다. 그래, 시리구나. “괜찮아, 안 추워. 따뜻해.” 하고 말한 뒤, “바람아 멈추어라. 바람아 쉬어라. 바람아 푹 쉬어라. 바람아 이제 그쳐라. 햇볕아 포근하게 내리쬐어라. 우리 아이들 발가락도 따뜻하지.” 하는 말을 외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내 말을 따라한다. 이 말을 들었을까? 어느새 바람이 그친다. 그토록 모질게 불던 바람이 참말 뚝 그친다. 게다가 구름이 걷히면서 해가 난다. “벼리야, 이제 따뜻하지?” “응.” 어마어마한 맞바람을 한참 먹다가, 집에 닿기까지 5분 동안 바람 한 점 없는 길을 천천히 달려서 집에 닿는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아주 깊이 잠들었다. 살며시 안아 잠자리에 누인다. 나는 온몸에 흐르는 땀을 씻고 옷을 몽땅 갈아입는다.


(최종규 . 2-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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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2.27.
 : 놀이터로 달리는 자전거


-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면 어디로 가고 싶을까. 예전에는 바다였고, 여름에는 골짜기였는데, 이도 저도 아닌 때에는 놀이터이다. 예전에는 고흥에서 바닷가로 자주 놀러갔다. 그러나, 우리가 늘 가던 바닷가에 ‘광주교육청 청소년수련관’을 짓는다면서 숲과 바닷가를 몽땅 망가뜨리기 때문에, 더구나 이런 끔찍한 공사를 일삼으면서 커다란 짐차가 수없이 드나들기 때문에, 아예 그쪽으로는 발길을 끊는다. 모든 관광단지와 숙박시설과 수련관 따위는 ‘다른 고장에서 놀러오는 관광객’만 헤아린다. 이 고장에서 뿌리내려 살아가는 사람은 헤아리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토박이는 제 고향마을을 떠나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 놀이터로 달린다. 바람이 조용하고 볕이 따사로운 주말을 골라서 놀이터로 달린다. 여느 날에는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수업을 하니 못 가고, 주말을 골라서 볕과 바람이 모두 포근한 날에 놀이터로 달린다. 놀이터에 닿자마자 두 아이는 신을 벗고 웃옷을 벗는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웃옷을 수레에 포갠다. 양말차림으로 뛰놀다가, 나중에는 양말까지 벗는다. 멋진 아이들이다. 예쁜 아이들이다. 다 받아 주는 줄 알기에 이렇게 놀 수 있다. 거리끼지 않고 놀면 되는 줄 알기에 마음껏 뛰놀 수 있다.

- 두 시간이 조금 못 되게 놀고 집으로 돌아간다. 겨울해는 짧고, 이제 돌아가서 밥을 먹을 때가 되었으니까. 발바닥 모래를 털고 손과 낯을 씻긴다. 두 아이는 얼마나 잘 놀았는지 서로 갈마들면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다. 손과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가게에 들른 뒤 집으로 달린다.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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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4 06:59   좋아요 0 | URL
우와 자전거와 수레네요.
유용한 탈거리. ^^
언덕배기에 사는 저는 엄두도 못낼 것이지만요.

우리동네에는 놀이터가 없어요. 아파트단지도 근처에 없고 학교운동장은 휑하죠.

숲노래 2015-01-04 07:11   좋아요 1 | URL
놀이터 찾기도... 요새는 거의 일처럼 되지 싶어요.
어른들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어른들 쇼핑센터와 무슨무슨 단지와 공장과 고속도로와 찻길과 발전소와
군부대와 운동경기장과...
수천억 원씩 들여서 경기장을 짓지 말고
동네와 마을마다 쉼터와 놀이터가 있어야 할 텐데요..
 

​자전거쪽지 2014.12.25.

 : 성탄절 찬바람 자전거



- 성탄절에 자전거를 탄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에 갈 생각이었지만 바람이 드세다. 더 일찍 길을 나서야 했을까. 찬바람이 온몸으로 파고든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무척 포근한 날일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면소재지에 닿으니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낮잠을 건너뛰더니 수레에서 자는구나.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서 선물을 받는다. 이곳에서 물건을 살 적에 주는 선물권을 그동안 160장을 모았다. 100장으로는 부탄가스 한 상자를 받고, 60장으로는 가스버너를 받는다. 제법 묵직하지만 두 아이를 수레에 앉힌다고 생각하면 그리 무겁지 않다.


- 큰아이가 면소재지 가게에 있는 인형을 사고 싶다면서 샐쭉거린다. 내 나름대로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벼리야, 네가 갑자기 본 것을 갑자기 사 달라고 한대서 사 주는 일은 없어. 이 장난감을 네가 가지고 싶으면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써서 이런 것을 받고 싶어요 하는 뜻을 양말에 넣어 산타클로스한테 빌었듯이, 벼리도 집으로 가서 이 장난감을 그림으로 그리자. 그림으로 그리면서 생각하고 바랄 때에 비로소 이 장난감이 벼리한테 와.” 하고 말하는데, 샐쭉거리는 입술을 툭툭 내뱉을 뿐이다.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입을 비죽 내민다. 집에 닿아서도 비죽거리기만 한다.


- 면소재지를 벗어나 집에 닿을 무렵 우리 도서관 어귀에서 탱자나무 큰 줄기를 하나 수레에 챙긴다. 그제 미리 잘라서 흙에 묻어 두었다. 우리 도서관 탱자나무 한 그루는 스무 날쯤 앞서 뜬금없이 뿌리가 뽑혔는데, 그제 가만히 살피니 아직 말라죽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줄기 한쪽을 옮겨심으면 살아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아니, 꿈을 꾸고 빈다. 우리 집 마당 한쪽에 옮겨심으려 한다.


- 집에 닿아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하면서 생각한다. 큰아이가 인형을 갖고 노는 그림을 내가 따로 그릴까 싶다. 내가 먼저 스스로 ‘인형으로 노는 아이’ 모습을 그리면, 큰아이도 무엇인가 스스로 느낄 수 있겠지.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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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4.18.

 : 우리가 지나간 노란 물결



- 아직 바람이 차가운 사월에 자전거마실을 하다가 살짝 멈춘다. 아이들한테 묻는다. “어때? 많이 춥니?” “응.” “저기 뒤를 좀 돌아봐.” “뒤?” “우리가 지나온 길이 온통 노란 빛이야. 아직 한껏 무르익지 않았지만, 곧 온통 노란 물결이 되지.” “우와, 그러네. 예쁘다.” 지난날에는 밥을 먹으려고 보리를 심어서 보리물결이 쳤다면, 오늘날에는 도시사람이 시골길을 지나갈 적에 ‘구경하기 좋으’라는 뜻에서 경관사업으로 유채를 뿌린다. 우리 아이들이 유채물결이 아닌 보리물결을 누리도록 하자면 우리 땅을 장만해서 가을에 보리를 심어야 할 테지.


- 바람이 차츰 따숩게 바뀌니 머잖아 두툼한 옷을 벗을 수 있다. 손은 덜 시려우니 장갑은 벗지만 두툼한 옷까지 아직 벗을 수 없다. 작은아이가 수레에서 낮잠을 잔다. 큰아이도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낮잠을 재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하자면 더욱 큰 수레를 장만하거나 네 사람이 타는 자전거를 몰아야 할 테지.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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