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6.2.17.

 : 해가 진 뒤



해가 진 뒤 혼자 자전거를 달린다. 저녁을 차려서 아이들이 먹도록 하고 혼자 면소재지로 간다. 빨래비누를 살 생각으로 가는데, 내가 쓰는 빨래비누를 파는 가게인 면소재지 하나로마트가 일찍 문을 닫는다. 고작 여섯 시를 살짝 넘었을 뿐인데 벌써 닫나?


애써 나온 보람이 없네 싶지만, 구름을 보고 바람을 마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장갑을 끼고 자전거를 달리지만, 바람이 퍽 달라졌다. 올겨울에는 드센 바람이 얼마 안 불었다. 다른 마을이나 고장은 모른다. 내가 사는 이 마을에서는 매서운 바람이 무척 누그러졌다. 처음 고흥에 깃들어 겨울에 자전거를 탈 적에는 맞바람과 찬바람에 얼마나 고되었던가 하고 돌아본다. 참 아련하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예전 일은 안 떠오른다. 언제나 오늘 여기에서 달리는 이 자전거만 떠오른다.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 앞 큰길에 마을고양이 두 마리가 살짝 떨어져 앉아서 논다. 우리 아이들처럼 이 마을고양이는 큰길 한복판에 떡하니 앉는다. 워낙 자동차가 안 다니니 큰길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놀 수 있겠지. 내가 자전거로 옆을 스치며 지나가도 꼼짝을 않는다. 하기는, 이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밥을 함께 먹는 사이인 터라 내가 옆을 스치며 지나가도 놀랄 일이 없겠지.


집으로 돌아와서 밤에 인터넷을 켜고 빨래비누를 살펴본다. 인터넷으로 장만하면 값이 훨씬 싸다. 더군다나 무거운 빨래비누를 애써 싣고 나르지 않아도 된다. 그렇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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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6.1.31.

 : 인형하고 놀이터로



인형을 안고 간다. 자전거수레에 도서관으로 옮길 책을 싣는다. 도서관까지 걸어서 간 다음, 놀이터로 신나게 달린다. 차츰 길어지는 해를 느끼지만, 아직 바람은 차기에, 알맞게 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볼도 손도 빨갛도록 뛰고 달리면서 모래투성이가 되는 놀이순이랑 놀이돌이는 조금 더 놀고픈 마음이 있지만, 찬찬히 달랜다. 겨울은 여름하고 달라서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면 살짝 얼어붙는 날씨가 되지. 오늘은 어쩐지 골이 띵하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쿵덕쿵덕 찧는 시소를 함께 타다가, 끙끙거리면서 몸을 다스리는 발판질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호덕마을을 지날 즈음 큰아이가 “저기 새떼!” 하고 외친다. 어디에 새떼가 있나 하고 두리번거리니 하늘 높이 있다. 까마귀떼이네. 퍽 높이 날며 우짖는 까마귀 소리가 아스라하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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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6.1.17.

 : 까마귀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온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마당에서도 고샅에서도 새떼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는다고 얘기했는데, 마을 들녘에 까마귀가 잔뜩 내려앉았다. 겨울에만 무리를 지어서 어울리는 까마귀하고 까치이다. 이 새들은 여느 철에는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다가 한겨울이 되면 무리를 지을까. 들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겨울에 아주 고즈넉한 시골길을 천천히 달린다. 까마귀 울음소리를 듣고, 까마귀가 하늘을 가득 덮을 적에는 자전거도 살짝 세워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마을 곳곳에 걸린 ‘돼지 농장 반대’ 걸개천도 본다. 곧 마을 빨래터에서 물이끼를 걷어야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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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2.1.

 : 추워도 재미있어



겨울에 타는 자전거는 바로 추운 맛이다. 찬바람이 그야말로 차가운데, 때로는 자전거가 휘청거릴 만큼 드세게 분다. 두꺼운 겉옷을 단단히 여미고, 두꺼운 장갑을 끼어야 겨울 자전거 나들이를 할 만하다.


어떠니? 이 겨울바람을 쐬면서 달리는 자전거가 재미있니? 찬바람을 한가득 쐬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무척 포근하니? 이 겨울에는 차가운 바람이 온 들을 잠재우면서 우리가 마음속으로 깊이 꿈을 꾸도록 북돋운단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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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2.24.

 : 다시 길어지는 저녁



동짓날이 지난다. 동짓날까지 해가 얼마나 더 짧아져서 저녁이 얼마나 짧은가를 보여주더니, 동짓날이 지나고부터 살갗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저녁이 천천히 길어진다. 도시에서 살 적에도 절기를 헤아리면서 해님 길이를 보았다. 시골에서 사는 동안 언제나 해님하고 바람을 살핀다. 섣달은 이제 막 들어서는 겨울이라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동짓날이 지나면 비로소 겨울이 저물려 하는구나 하고 느낀다. 대한이랑 소한도 있지만 대한이랑 소한 같은 절기는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러 용틀임을 하는 날씨라고 느낀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내가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산타’가 되기로 하고 면소재지 가게로 자전거를 달리기로 한다. 두 아이더러 ‘바라는 한 가지’를 말하라 하니, 큰아이는 ‘콜라!’를 노래하고 작은아이는 ‘맥주!’를 노래한다. 응? 네가 맥주를 마시겠다고? 이달 들어 12월 7일 아버지 생일에만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안 마셨는데 모처럼 한 병을 사 볼까?


동짓날을 지났기에 해는 살짝 길어졌지만 그냥 살짝 길어졌을 뿐 겨울은 틀림없이 겨울이다.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끌고 마을을 벗어나서 논둑길을 달리다가 문득 ‘어라, 장갑을 안 끼고 나왔네’ 하고 알아차린다. 그만큼 고흥 저녁 날씨가 폭하다는 뜻이다. 바람이 제법 불기는 하지만 맨손에 반바지로 자전거를 달린다. 자전거를 달리기에는 반바지 차림이 페달이나 체인에 옷이 안 끼이니 좋기도 하고, 아주 추운 날이 아니라면 자전거를 달리며 땀이 솔솔 피어나기 때문에 반바지 차림이 한결 낫기도 하다.


해 떨어진 겨울에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노래한다. 올 구월에 이 논둑길을 아이들하고 자전거로 달리다가 미끄러져서 무릎하고 팔꿈치가 아주 크게 다쳤다. 그 뒤로 이 논둑길을 자전거로 달릴 엄두를 한동안 못 냈다. 겨울이기에 논둑에 미끄러울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기에 논둑길을 달리는데, 고작 석 달 앞서만 해도 서거나 걷지 못하면서 방바닥을 기어다니던 일이 아스라하다. 자전거 사고가 난 뒤 한 달 남짓 기어다니기만 했는데 석 달이 채 안 되어 무릎이 말끔하게 나았다. 팔꿈치는 아직 덜 나았지만 짐을 들거나 일을 하면서 아프거나 어렵지 않다.


겨울 달빛과 별빛을 받으면서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생각한다. 자전거를 달릴 적뿐 아니라 여느 때에도 늘 노래를 부르고 노랫결을 고스란히 두 손길에 담아서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릴 수 있으면 아픈 데도 고단한 데도 없으리라 느낀다. 스스로 노래하기에 스스로 튼튼한 몸이 되고, 스스로 노래하지 않기에 스스로 안 튼튼한 몸으로 바뀌지 싶다.


가방 가득 성탄절 주전부리를 장만해서 집으로 돌아간다. 시골 찻길은 저녁에 자동차가 더욱 없어서 훨씬 깜깜하고, 시골 논둑길은 저녁에 찻길보다 더더욱 깜깜하다. 그러나 이렇게 깜깜한 길이기에 밤눈을 밝혀서 한결 느긋하게 잘 달릴 수 있다. 깜깜한 길이기에 자전거로 논둑길을 달리면서 달이며 별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얼굴로 맞아들이면서도 등짝에는 땀이 솟아 후끈후끈하다. 언제나 기쁜 하루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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