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2.

 :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



책을 부치러 우체국에 가자. 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면서 대문을 열어 주고, 나는 이 아이들 웃음을 바라보면서 홀가분하게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마을 어귀 샘터에서 큰아이는 낯이랑 손을 씻는다. 바람이 알맞게 불면서 하늘에는 구름이 끝없이 바뀌고, 그늘과 볕이 갈마들면서 새로운 가을이 싱그럽다. 자, 이제 신나게 달릴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문득 “아버지, 벼리가 예전에는 ‘가자!’라 안 하고 ‘출발!’이라 했어?” “응, 이제는 늘 ‘가자!’ 하면서 예쁘게 말하지.”


자전거를 바쁘게 달려야 하지 않으니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을 옆으로 끼면서 시원하게 달린다. 논마다 나락이 무르익으면서 나락내음이 새롭다.


그런데, 모퉁이에서 꺾은 뒤 오르막이 되는 논둑길에서 자전거가 갑자기 휘청거린다. ‘뭐지?’ 하고 생각할 틈이 없이 손잡이는 벌써 한쪽으로 꺾였다. 마음속으로 ‘아차, 미끄러졌네.’ 하고 느낀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내가 자전거를 놓고 뒹구르르 구르면 내 몸은 안 다치리라. 그러나 이렇게 할 어버이는 없으리라. 나는 자전거를 단단히 움켜쥐기로 한다. 내 몸을 던져서 이 논둑길에서 미끄러진 자전거를 세우기로 한다. 몸을 길바닥에 날린다. 자전거와 함께 길바닥에 꽈당 하고 처박힌다.


길바닥에 처박히면서 뒤를 문득 돌아보니,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는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졌다가 바닥으로 콩 넘어진다. 히유, 두 아이를 모두 건사했구나.


그렇지만, 내 몸은 좀처럼 일으키기 어렵다. 목에 건 사진기는 바닥에 찧지 않았으나 논흙이 많이 튀었다. 어딘가 꽤 다쳤구나 하고 느끼면서 숨을 가쁘게 몰아쉰다. 큰아이가 팔꿈치가 아프다면서 우는 얼굴이 된다. “아버지, 잘 달렸어야지요.” 작은아이는 멀쩡한 몸으로 수레에서 내린다. “난 괜찮은데?”


요 깜찍한 것들. 팔꿈치가 쓰라리다고 느끼면서 두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천천히 자전거에서 몸을 빼낸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 본다. 발바닥이 까끌거려서 고무신을 벗는다. 논둑길 바닥에 핏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버지 무릎에 흐르고 팔뚝에 흐르는 피를 본 두 아이는 “아버지, 피! 피 나와!” 하면서 저희는 이제 더 아프지 않은 듯하다. 큰아이는 논물 흐르는 길바닥에 콩 떨어졌기에 가방이랑 옷이 흙범벅이 된다.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은 뒤에 큰아이더러 “그래, 벼리는 큰길에서 자동차 지나가는지 살피고 집으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 그리고 마른천 하나만 가져다 줘.”


이를 어찌해야 하나 하고 끙끙거리며 생각하다가 마을 어귀 샘터로 가야겠다고 느낀다. 샘터에서 무릎과 팔꿈치와 발등에 찍힌 생채기에 스며든 흙과 짚을 씻어야겠다고 느낀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논물이 많이 흐르는 길바닥을 보니 커다란 물이끼덩이가 있다. 그렇구나, 물이끼가 이렇게 큰 덩이로 이곳에 있네. 이 물이끼를 밟았구나. 논물이 흐르면서 물이끼가 넘쳤나 보구나.


살이 깊이 패인 데에 박힌 돌을 빼낸다. 걸을 수 없어서 바닥에 주저앉는다. 곁님이 집에서 구급약을 챙겨 와서 소독을 해 주고 약을 발라 준다. 이 다리로 우체국에 다녀오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아무튼 우체국에 오늘 다녀와야 하고 구급약을 더 장만해야 한다. 생채기에 소독약을 들이붓느라 다 떨어졌다.


쓰러진 자전거 있는 데로 돌아간다. 쩔뚝거리며 걷는다. 천천히 달리면 괜찮을 테지.


해오라기가 논둑길에 세 마리 나란히 내려앉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가을내음이 짙다. 다친 자리가 얼른 아물기를 빌며 노래하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고 약국에 간다. 약국에서는 면소재지 의원에 다녀와야 소독약을 주겠다고 한다. 면소재지 의원에 간다. 깨진 무릎을 들여다보더니 면소재지 의원에서는 처치를 못하니 읍내에 있는 정형외과로 가라고 한다. 의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간다. 소독약과 거즈를 잔뜩 달라고 하는데 몇 가지 안 준다. 면소재지 약국에는 이런 구급약이 얼마 없나? 병원에 가든 말든 집에서 자주 갈아 주어야 하니 소독약하고 연고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소독약이나 연고를 몇 가지 안 줄까.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힘껏 발판을 구른다. 이 힘을 받아서 집으로 수월하게 돌아온다. 나는 아이들 힘으로 사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이 아이들이 있기에 이 시골에서 자전거를 달리며 노래할 수 있다.


집에 닿아 밥을 짓고 국을 새로 끓인다. 몸에 흐르는 땀하고 흙을 말끔히 씻는다. 다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른 뒤 자리에 드러눕는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다 나은 아버지’라는 이름을 붙인 그림을 그려서 보여준다. 참으로 용하고,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래, 너희 그림처럼 아버지는 실컷 끙끙 앓은 뒤 말끔히 털고 일어날게. 너희 아버지는 ‘일어서면서 웃는’ 숨결이다. 고맙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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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23.

 : 늦여름 골짜기에서



늦여름이 되어 골짜기로 다시 가기로 한다. 올여름에는 집에서 많이 놀았다. 바다에도 골짜기에도 잘 안 가고, 집에 있는 욕조에서 두 아이가 물장구도 치면서 하루에도 너덧 차례씩 놀았다. 이즈막에는 골짜기에 올 사람이 크게 줄거나 얼마 없겠지 하고 여기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마을 어귀 빨래터 앞까지 자전거를 끌고 간다. 두 아이는 벌써 저만치 앞서서 달린다. 나는 배롱나무 밑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기다린다. 두 아이는 이리저리 달린 끝에 자전거 있는 데로 온다. “보라야! 우리 골짜기 가야지! 자전거 타러 가자!” “맞아! 골짜기!” 두 아이는 달리면서 놀다가 골짜기 가기로 한 줄 잊은 듯하다. 재미난 아이들이다.


큰아이가 바람이를 든다. 작은아이가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가 바람이를 작은아이 목에 씌워 준다. 작은아이 바람이는 구멍이 나서 쓸 수 없다. 바람이는 하나만 들고 간다.


늘 가던 길 말고 새로운 길로 가자고 생각하면서 논둑길을 한 바퀴 돌아본다. 논둑길을 달리다가 나락꽃 핀 냄새가 짙어서 발판질을 멈추고 자전거를 세운다. “아버지, 더워. 빨리 가자.” “골짜기에는 곧 갈 텐데. 그보다 이리 와 봐. 나락꽃 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한 해에 꼭 하루만 볼 수 있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단 말이지.” 시골순이와 시골돌이는 아직 나락꽃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아직 우리 논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 논이 있어서 우리가 손수 볍씨를 심고 가꾼다면, ‘우리 나락꽃’이라면서 아주 기뻐할 텐데.


그렇지만 아버지는 다른 논둑길을 달리다가 또 자전거를 세운다. 나락 곁에서 나락 익는 냄새를 맡자고 아이들을 부른다. 모두 더워서 땀이 흐르지만,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우니 여기에서 나락꽃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우리 집 나락꽃이 아니어도 우리 마을 나락꽃이고, 우리한테 새로운 숨결로 깃들 나락꽃이다.


골짜기로 가는 고갯길 한쪽은 몇 해째 공사를 한다. 못물이 흘러내리는 여느 물길을 시멘트길로 바꾸는 공사이다. 길바닥에 자갈을 깐 자리는 몇 해째 그대로 두면서, 못물이 흘러내리는 물길을 시멘트길로 한다면, 앞으로 이 시멘트 물길은 어떻게 될까. 숲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흙에 시멘트가 섞여서 바다까지 가야 하는가. 4대강사업도 그렇지만, 냇바닥을 시멘트로 바꾸는 짓은 숲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바다까지 망가뜨리고 만다. 오늘 정책을 세워서 공무집행을 하는 공무원은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 뒤는 하나도 못 내다본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숲’과 ‘물길’을 망가뜨린 탓에 바다가 망가져서 고기를 못 낚는 끔찍한 일을 겪은 뒤, 숲을 되살리고 ‘흙물길’로 되돌리는 사업을 꾀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흙물길’을 밀어서 없앤 뒤 ‘시멘트 물길’로 바꾸는 짓을 일삼는다.


골짜기에서 한참 논다. 골짝물이 따뜻하다. 차갑지 않고 따뜻하니 아이들이 꽤 오랫동안 잘 논다. 즐겁게 놀고서 바위에 앉아서 몸을 말린 뒤 옷을 갈아입는다. 내리막에서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른다. 집으로 돌아와서 늦은 샛밥을 챙겨서 함께 먹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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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9.

 : 휴가철 끝난 바다와 제비나비



휴가철이 저문다. 우리 마을에도 휴가를 맞이해서 찾아온 ‘도시사람(이 마을에서 태어난 뒤 도시로 떠나 혼인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 꽤 많았으나, 이제 모두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도시로 돌아갔다. 시골은 휴가철이 되어야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여느 때에는 아주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이요, 휴가철에는 더위를 식히거나 깨끗한 숲을 누리고 싶은 도시사람이 몰려들어서 시끌벅적한 시골이다.


이제 휴가철이 저무니 바닷가도 조용하리라 느낀다. 아이들은 칠팔월 여름 내내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기를 바랐으나, 지난 몇 해 동안 휴가철이면 너무 시끄럽고 북적거리고 지저분해서 올해에는 휴가철에 바다에 갈 엄두를 도무지 낼 수 없었다. 칠월 첫무렵부터 바닷가에는 얼씬을 안 했으나 달포 만에 바다내음을 맡으로 가는 길이 된다.


자전거는 면소재지를 지나서 발포 바닷가 쪽으로 달린다. 십이 킬로미터를 달리면 되는 길이다. 오르막에서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바다에 갈 적에 자전거 말고 택시 타면 안 돼?” “왜, 택시가 타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다 보면 힘들어서 발판을 구를 수 없어.” “그래, 그렇구나. 벼리는 힘들면 발판을 안 구르고 가만히 서면 돼. 아버지가 혼자서 달리면 되니까.” “알았어. 근데, 왜 바다에 갈 적에 우리는 자전거를 타?” “우리는 자전거라는 멋진 탈것이 있으니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바람소리를 듣고 하늘에 뜬 구름도 실컷 보면서 갈 수 있어.”


자전거는 ‘잉개들’이랑 ‘돌돌들’을 옆으로 끼고 달린다. 잉개들이랑 돌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있던 ‘들’이다. 매립지 들이 아닌 ‘그냥 들’이다. 오래된 들이기에 오래된 이름이 그대로 있다. ‘잉개들’이랑 ‘돌돌들’은 어떻게 붙은 이름일까? 이 이름이 붙은 까닭을 아는 이웃님이 있을까?


돌돌들이 끝나고 수덕마을로 접어든다. 이제부터 수덕산 기슭을 옆으로 끼고 오르막을 넘는다. 두 봉우리 사이에 언덕길이 있는데, 산이기는 하되 260미터를 살짝 넘기에 그리 가파르지 않다. 그래도 두 아이를 태우고 샛자전거랑 수레를 끄는 자전거로서 땀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기스락 밭에서 마을 아지매 여러 분이 밭일을 하신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언제나처럼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밭일을 하시던 아지매들은 살짝 허리를 펴고 “어디서 이런 이삔 소리가 나나!” 하고 얘기하신다.


참말 그렇다. 아이들이 외치는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 한 마디도 더없이 예쁘다. 밝게 웃으면서 외치는 인사말 한마디로 밭일 아지매는 새 기운을 얻고, 나도 이 오르막에서 새롭게 기운을 차린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을 맞이하는데, 우리는 늘 내발마을 쪽 옛길로 접어든다. 오르막 끝부터 발포 바닷가(해수욕장) 가는 새로운 길은 자동차가 제법 드나들고 땡볕이라서 안 좋다. 내발마을로 들어서면서 돌아가는 옛길은 길가에 나무가 우거져서 싱그러운 숲길과 같다. 더욱이 이쪽 길로 돌아서 바닷가로 가면 자동차하고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나무그늘이 드리운 곳에서 자전거를 세우면서 다리를 쉬고, 두 아이가 물을 마시도록 한다. 자, 한 번 더 고개를 넘으면 바닷가이니, 함께 노래하면서 즐겁게 가자.


마지막 고갯마루를 넘으니 바다가 보인다. 큰아이가 먼저 소리치면서 동생한테 “보라야, 이제 바다야! 바다에 다 왔어!” 하고 알린다. 바람이 꽤 세게 분다. 오늘은 볕도 있고 바람도 있으니 여러모로 놀기에 좋겠구나 싶다.


바닷가에 관광객은 얼마 없다. 채 열 사람이 안 된다. 그러나 관광객은 아주 큰 소리를 지르면서 논다. 이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대로 놀면 된다. 자전거는 평상 사이에 눕힌다. 이런 휴가철에 평상에 엉덩이라도 댔다가는 ‘평상 대여비’를 달라고 한다.


바다에 닿은 아이들은 먼저 모래밭에 신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판다. 다음으로 바닷물에 천천히 들어가서 온몸을 적신다. 이러면서 바닷물을 두 손으로 떠서 자꾸 마신다. 얘들아, 바닷물은 짤 텐데? 큰아이는 거침없이 꽤 깊이 들어가면서 물살에 몸을 맡긴다. 작은아이도 누나 곁에서 놀고 싶지만 물결이 찰랑일 적마다 어푸푸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이윽고 큰아이는 물살이 끝나는 쪽으로 나와서 물결이 일렁일 적에 폴짝폴짝 뛰어넘기를 한다.


한참 몸을 적시며 논 뒤, 몸을 말리려고 모래밭에서 뒹군다. 두 아이는 있는 힘껏 모래를 판다. 이러다가 모래밭에 드러누워서 모래로 덮어 달라고 한다. 모래에 덮이는 아이들이 까르르 노래한다.


늦은아침을 먹이고 나왔으나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먹일 수 없으니, 이제 모래를 씻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공중화장실 앞에 있는 물꼭지에 쇠파이프를 길게 붙여서, 이 물꼭지로 모래를 씻기 아주 어렵도록 바꾸어 놓았다. 일부러 샤워실만 쓰도록 하려고 이렇게 했구나 싶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모래를 다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춥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큰옷을 목까지 덮어쓴다. 큰아이한테는 마른천 한 장을 어깨에 둘러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면소재지 들어서는 어귀에서 제비나비 한 마리를 본다. 아슬아슬하게 낮게 난다. 가만히 보니 자동차에 치여서 다친 듯하다. 비틀거리면서 난다. 이러다가 찻길 한복판 노란 금에 내려앉는다. 큰아이가 “거기 앉으면 안 돼. 위험해!” 하고 소리를 치지만, 나비는 아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큰아이는 “나비 어떻게 해. 저기에 저렇게 있으면 차에 밟힐 텐데.” 하고 자꾸 말한다. 아버지는 이제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자전거를 세워서 오르막을 도로 올라간다. 나비를 살리고 보자.


나비가 내려앉은 옆에 자전거를 세운다. 숨을 돌리고 길을 살핀다. 자동차가 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때마침 자동차 한 대가 올라온다. “아, 왜 이럴 때에?”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동차는 ‘자전거가 선 자리 옆으로 크게 돌아가 준다’는 뜻인지 아예 건너편 찻길로 달려 주지만, 이러면서 한복판 노란 금을 밟는다. 노란 금에 내려앉은 제비나비는 그만 자동차 바퀴에 밟힌다.


자동차가 지나간 뒤에 얼른 달려간다. 제비나비 날개를 가만히 쥔다. 발을 가늘게 떤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자동차 바퀴에 밟히면서도 용케 몸은 안 밟히고 날개만 밟힌 듯하다. 그러나 더 날갯짓을 하지 못한다. 처음 노란 금에 내려앉을 적에도 더 움직일 수 없겠다 싶은 날갯짓이었다.


“다음에는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스럽게 태어나렴.” 하고 말한다. 큰아이도 내 말을 받아서 나비한테 속삭인다. “나비 한 번 더 볼래.” 하면서 나비 옆에 앉아서 날개와 몸을 쓰다듬어 준다.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분들이 빠르기를 늦추어 주기를 빈다. 시골길에서 80킬로미터나 100킬로미터로는 제발 달리지 말고, 60킬로미터나 40킬로미터도 아닌, 30킬로미터 즈음으로 천천히 달려 주기를 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에서는 50킬로미터도 무척 빠르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개구리와 메뚜기와 사마귀와 나비와 벌과 뱀과 도룡뇽과 참새와 제비 주검을 끔찍하게 많이 본다. 길죽음으로 이 땅을 떠난 가녀린 목숨들한테 고운 바람이 불기를 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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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5-08-22 13:31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언제나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사진들,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5-08-22 14:06   좋아요 0 | URL
곰곰이 생각하면
이 모든 사진은
저 스스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고 싶어서 찍어요.

그래서 엊그제 바다마실을 다녀오며
제비나비가 죽어 가는 모습을 찍을 적에
눈물이 흘렀고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바람이 되었습니다... ㅠ.ㅜ
 

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20.

 : 다들 아이들을 묻는다



고마운 이웃님이 두 분 있어서 오늘 책을 부치기로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이튿날로 미룰 수 있지만, 이튿날은 금요일이라서 토요일에는 우체국 일꾼이 쉬기 때문에 목요일인 오늘 택배로 부쳐야 금요일에 닿는다. 금요일에 맡기면 한 주를 지나 월요일에 닿으니.


비가 오는 낮에 두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서 자전거를 탈 생각이 아예 없다. 어머니는 허리가 몹시 결려서 이틀째 방바닥에 드러누워 지내는데, 두 아이는 모두 어머니 곁에서 놀겠노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자전거를 안 타고 싶다기보다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헤아리면서 놀겠다는 뜻일 테지?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면서 비옷도 입고 우산을 쓰면서 놀기를 아주 좋아하는 너희들이 ‘빗길 자전거마실’을 안 한다는 말이 나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비를 맞으면서 천천히 자전거를 달린다. 면소재지에 이를 무렵 상수도 공사를 한다면서 길을 파헤치는 데가 있고, 그쪽 길로는 가지 말라고 알려주는 아지매가 한 분 있다. 비가 와도 비를 맞으면서 그곳을 지키셔야 하네. 이 아지매는 면소재지에서 공사를 할 적에 ‘자동차한테 돌아가도록 알리는 일’을 몇 해째 하신다. 내가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이런 공사장 옆을 지날 때면 늘 활짝 웃으면서 아이들을 예뻐 하신다. 비록 자전거가 아지매 옆을 지나가는 아주 짧은 1∼2초밖에 안 되는 겨를인데에도 그렇다. 오늘도 아지매는 아주 짧은 겨를에 “아이들은요?” 하고 묻는다. “아,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대요.” 하고 말씀을 여쭈면서 지나간다. 코앞에 자동차가 마주 달리기에 자전거를 멈추지 못하고, 달리는 결에 말씀한다.


우체국에서도 아이들을 묻는다. 면소재지 가게에서도 아이들을 묻는다. “아이들은 어쩌시고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삼백예순닷새를 치면 삼백예순 날은 늘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고 닷새쯤은 혼자 따로 바깥일을 보러 움직인다고 할 만하니, 늘 둘레에서 “아이들은 어쩌시고요?” 하고 물으시는구나 싶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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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7.

 : 네 아버지가 힘에 부칠 때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옮겨 놓고, 면소재지에 들러서 소포를 부친다. 바쁘게 볼일을 마쳤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천천히 몬다. 우리가 자전거로 밟아 보지 않은 요 둘레 새로운 길이 있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이곳저곳 달려 본다. 그리 넓지 않은 시골이기는 하지만 안 달려 본 길이 거의 없네 하고 느끼면서 이곳저곳 지나간다. 하늘이 높고 구름이 하얗고 하늘빛은 파랗고 들빛은 푸르고, 이래저래 싱그러운 여름이다.


내 어린 나날을 문득 돌아본다. 팔월 한복판을 넘어서는 이맘때는 학교에서 방학이 끝날 무렵이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하고, 집에서 어머니는 아이들을 하루 내내 쳐다보지 않아도 한시름을 던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 그러나 우리 집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고 집에서 노니까, 방학이든 개학이든 대수롭지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하루 내내 늘 제 어버이하고 붙어서 지낸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한 해 내내 다달이 다르고 나날이 다른 바람을 들에서 쐴 수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는 아침 낮 저녁에 따라 다른 바람결을 언제나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 뭔가 남다르거나 대단한 어떤 놀이나 일을 해야 재미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침바람을 함께 쐬고, 한낮에 뜨거운 뙤약볕을 함께 쬐며, 저녁에 싱그럽게 가라앉으면서 부는 바람결에 실리는 가벼운 기운을 함께 느낀다.


이래저래 길을 좀 돌아서 집으로 가다 보니 다리와 등허리에 힘이 풀린다. 논둑길을 한참 달리다가 아무래도 힘들구나 싶어서 자전거에서 내린다. 히유, 한숨을 돌린 뒤 아이들이 물을 마시도록 한다. 너희들도 참 대단하지, 이런 더위에도 아버지랑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다니잖니.


큰아이는 집에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면서 사뿐사뿐 저만치 앞장서서 달린다. 작은아이도 누나 따라 걷겠노라 하다가 “나 이제 탈래.” 하면서 수레에 탄다. 구름이 그늘을 드리우다가 다시 땡볕이 나다가, 구름이 쉴새없이 새 모습을 베풀어 준다. 등허리와 다리를 웬만큼 쉬었으니 큰아이더러 “자, 이제 타고 가자. 땡볕이 더우니 얼른 가자.” 하고 말한다. 뛰듯이 걸으면서 가고 싶다는 낯빛인 큰아이를 겨우 샛자전거에 태운다. 이렇게 씩씩하고 야무진 아이가 어디 있을까. 참말 큰아이는 십 킬로미터 길조차 씩씩하게 걷는다.


논둑에서 돌콩꽃이랑 돌콩꼬투리를 본다. 살짝 멈추어 들여다본다. 우리 집에도 나는 돌콩이고 논둑이나 밭둑이나 빈 들녘에 가득 돋는 돌콩이다. 마을 어귀에 이를 무렵 작은 군내버스가 지나간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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