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4.28.

 : 보슬비 맞는 자전거



- 작은아이가 잘 듯 말 듯하면서 안 잔다. 마침 비가 그치기도 해서 자전거를 끌고 도서관을 들렀다가 면소재지 마실을 할까 생각한다. 어제 하루 내내 비가 제법 내렸기에 도서관에 비가 샜으리라 느낀다.


- 생각보다 빗물이 많이 스몄다. 빗물을 밀걸레로 치우느라 조금 걸린다. 큰아이가 자전거와 도서관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아버지, 빨리 와요!” 하고 자꾸 소리친다. 알았어. 빗물은 걷어내고 가야지.


- 바람은 불지 않는다. 비는 그쳤다. 찻길은 빗자국이 마른다. 자전거를 타기에 썩 좋은 날이다. 그런데 우체국에 닿을 무렵 가늘게 빗방울이 듣는다. 다시 비가 오려나. 바람이 불지 않는 가느다란 빗줄기이니 보슬비로구나.


- 우체국에서 소포를 하나 부친다. 아이들은 우체국 마당에서 비를 맞으며 뛰놀아도 까르르 웃고 즐겁다. 면소재지 가게와 빵집을 들른다. 보슬비가 그치지 않는다. 서둘러야겠다고 느낀다. 큰아이더러 모자를 쓰라 한다. 큰아이가 겉옷 단추를 여미지 않는다. 앞자락을 열고 가겠단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빗줄기는 그대로 이어진다. 군내버스가 앞에서 달려온다. 저녁 다섯 시가 되었나? 그러면 뒤에서도 곧 군내버스가 와서 서로 엇갈리겠네. 자전거를 세우고 군내버스를 찍는다. 내 생각대로 뒤에서도 군내버스가 달려와서 엇갈린다. 우리 뒤에서 달려오던 군내버스는 자꾸 빵빵하고 울린다. 우리 식구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손을 흔들지는 못하고 사진기에 눈을 박고 군내버스 지나가는 흐름에 맞추어 찰칵찰칵 사진을 찍는다. 유채꽃이 지는 사월 끝무렵 들판을 지나가는 군내버스를 아스라이 바라보는 사진이 된다. 유채꽃이 지니 이제 마을마다 트랙터로 논을 갈겠지. 논을 갈면서 약을 한 차례 뿌릴 테고, 모내기를 할 테며, 모내기를 하고 나서 또 농약을 한 차례 뿌리겠지.


- 집으로 오는 길에 이웃 호덕마을 들판을 날아다니는 제비를 꼭 여섯 마리만 본다. 이레쯤 앞서 본 제비와 같다. 이 가운데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가 두 마리 있다. 다른 네 마리는 어느 마을 어느 집에 깃들었을까. 지난해 이맘때에 보던 수백 마리에 이르던 제비가 아련하다. 그 제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참말 지난해 고흥 항공방제 농약물결 때 죄다 죽었을까. 농약물결이 싫어 모두 고흥으로 안 오고 다른 고장으로 갔을까. 내가 제비라도 이 끔찍한 농약물결이 싫어 이 고장에 안 오고 싶으리라. 그나마 우리 집은 이 둘레 시골마을 가운데 ‘꼭 한 군데 아이가 있는 집’이고 제비하고 놀려고 하는 집이니 제비가 다시 찾아와 주었지 싶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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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집 45. 비 그친 마당에서 2014.4.29.



  방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마당으로 나온다. 큰아이를 불러 잡으라고 시킨다. 큰아이가 마당으로 나오니 작은아이도 따라 나온다. 작은아이는 처음에 아버지 옆 작은 걸상에 앉겠다고 떼를 쓰다가 누나 바지에 구멍난 자리를 기우느라 누나가 잡아야 한다고 얘기하니, 이윽고 떼를 그치고 바느질을 지켜본다. 밤새 울던 개구리 소리는 조용하고, 제비가 처마 밑과 전깃줄과 들을 오가면서 노래한다. 바람이 후박나무를 흔든다. 후박꽃과 후박잎이 꽤 떨어졌다. 싱그러운 빛과 소리를 느끼면서 바느질을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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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6) 선정의 1 : 책 선정의 방법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워하는 그림책 육아의 지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책 선정의 방법’을 들겠습니다

《박은영-시작하는 그림책》(청출판,2013) 19쪽


 책 선정의 방법

→ 책 고르는 방법

→ 책을 고르는 법

→ 책 고르기

 …



  보기글을 가만히 살피면, “하나를 꼽으라면”이라는 대목이 있고 “선정의 방법”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한국말 ‘꼽다’와 한자말 ‘선정’은 서로 같은 뜻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런 글흐름을 옳게 깨닫는 분이 뜻밖에 퍽 적습니다. 한국말 ‘고르다·가리다·뽑다·추리다·꼽다’를 알맞게 쓸 수 있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이와 같은 한국말을 즐겁게 쓰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이냥저냥 한자말 ‘선정’에 매달리다가 토씨 ‘-의’까지 얄궂게 붙이지는 않는가요. 4347.4.2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많은 분들이 모두 어려워하는 ‘그림책으로 아이키우기’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첫째로, ‘책 고르기’를 들겠습니다


‘공통적(共通的)으로’는 ‘똑같이’나 ‘모두’나 ‘다 같이’로 다듬고, “그림책 육아(育兒)의 지점(地點) 중(中)”은 “그림책 육아 가운데 하나”나 “그림책으로 아이키우기 가운데 하나”로 다듬습니다. ‘단연(斷然)’은 ‘무엇보다’나 ‘바로’나 ‘첫째로’로 손봅니다. 한자말 ‘선정(選定)’은 “여럿 가운데서 어떤 것을 뽑아 정함”을 뜻한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뽑다’나 ‘고르다’인 셈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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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5) 목도


이 순간을 목도하기 위해 나는 그 멀리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내려왔고, 길에서 몇 년을 보냈었구나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127쪽


 이 순간을 목도하기 위해

→ 이 한때를 두 눈으로 보려고

→ 이 한때를 내 눈으로 보려고

→ 이 한때를 지켜보려고

 …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목도 = 목격’으로 풀이합니다. 한자말을 다른 한자말로 풀이해요. 그런데, 한국사람은 먼 옛날부터 이런 한자말을 안 썼습니다. 한국사람은 먼먼 옛날부터 ‘보다’라는 낱말을 썼어요. ‘바라보다·지켜보다·살펴보다·들여다보다·쳐다보다’처럼 온갖 낱말을 썼습니다.


  보는 모습과 매무새는 모두 다릅니다. 때와 곳에 따라 다르게 봅니다. 어떻게 보는가를 잘 헤아리면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 한때를 두 눈으로 보려고 나는 그 멀리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내려왔고, 길에서 몇 해를 보냈구나


“이 순간(瞬間)”은 그대로 두어도 될 만하지만 ‘이때’나 “이 한때”로 손볼 수 있습니다. “-하기 위(爲)해”는 “-하려고”로 손보고, “몇 년(年)”은 “몇 해”로 손봅니다. 한자말 ‘목도(目睹)’ 뜻풀이를 살피면 “= 목격(目擊)”으로 나옵니다. 한자말 ‘목격’은 “눈으로 직접 봄”을 뜻합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지켜보려고”나 “두 눈으로 보려고”나 “내 눈으로 보려고”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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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95) 시작 41 : 시작해 볼까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할아버지가 괭이로 푹, 푹 땅을 팠어요

《마쓰타니 미요코/햇살과나무꾼 옮김-안녕 모모, 안녕 아카네》(양철북,2005) 163쪽


 시작해 볼까

→ 해 볼까

→ 땅을 파 볼까

→ 땅을 팔까

→ 무덤을 팔까

 …



  이 글월에서는 땅을 파는 일을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가 아닌 “땅을 파 볼까”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또는 “자, 그럼, 해 볼까” 하고만 말하면 됩니다.


  요즈음 나오는 웬만한 그림책은 이 글월처럼 “시작해 볼까”와 같은 말을 아주 자주 씁니다. 이제 이 나라 아이들은 예닐곱 살이나 서너 살부터 “시작해 볼까”와 같은 말씨를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한국말이 아닌 ‘시작’이지만, 아주 뿌리 깊이 박히듯 파고드는 ‘시작’입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 그럼, 해 볼까?” 할아버지가 괭이로 푹, 푹 땅을 팠어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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