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 스웨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8
울프 닐슨 지음, 임정희 옮김, 에바 에릭손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66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에바 에릭손 그림
 울프 닐손 글
 임정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8.5.15.

 


  삼월 이십구일에 딸기꽃을 처음으로 만납니다. 딸기덤불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다가 아주 일찍 하얗게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봅니다. 내 눈에는 오늘 보였지만, 하얀 딸기꽃은 며칠 앞서부터 피었을 수 있습니다. 그제도 그 자리 앞을 지나갔는데 못 알아챘으니, 어쩌면 어제나 오늘 아침이 피었을 수 있어요. 다른 마을 다른 들판이나 밭둑이나 수풀에서는 하얗게 꽃잔치를 이루었을 수 있어요.


  딸기꽃이 핀 둘레에 딸기꽃망울이 조물조물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살 어루만지면서 말을 겁니다. 올해에도 예쁘게 꽃이 피어나렴, 올해에도 맛난 열매 듬뿍 맺어 주렴, 올해에도 즐겁게 딸기알 나누어 주렴.


.. 에스테르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빈 터를 왔다갔다 했어요.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지요. “세상은 온통 죽은 동물들로 가득해. 덤불마다 죽은 새랑 나비랑 쥐가 있지. 이들을 누군가 보살펴 줘야 해. 누군가 친절하게 묻어 줘야 해.” “누가?” ..  (8쪽)

 


  우산을 쓰고 걷습니다. 빗물이 우산으로 떨어집니다. 작은아이는 우산대를 어깨에 걸치고 걷습니다. 이렇게 걷느라 작은아이는 우산을 받았어도 머리와 온몸에 비를 쫄딱 맞습니다. 우산을 바르게 쓰렴 하고 말해도 다시 우산을 어깨에 걸칩니다. 빗물이 머리와 낯에 떨어지는 느낌이 즐거울까요. 빗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를 적에 재미있을까요. 빗소리와 빗내음을 혀로 날름날름 마시면 맛날까요.


  봄비를 맞는 풀을 바라봅니다. 봄비에 젖는 나무를 살핍니다. 빗물을 먹고 풀잎은 더 짙습니다. 빗물을 마시고 풀줄기는 더 올라옵니다. 빗물이 흐르는 나뭇가지마다 새잎이 고개를 내밉니다. 잎망울마다 빗방울이 동그랗게 맺히다가 톡 떨어집니다.


  얼마 앞서 겨울에는 모든 숲과 들을 잠재우는 차가운 비였습니다. 이제 봄에는 모든 숲과 들을 깨우는 따스한 비입니다. 새들은 비가 내리는 오늘 조용합니다. 개구리와 뱀과 맹꽁이는 따스한 빗물이 흙을 더욱 보드랍게 풀어 주니 싱그럽게 노래합니다. 물이 넉넉하게 고인 자리를 찾아 알을 낳을 테지요. 논이나 둠벙에서 올챙이가 깨어나기를 꿈꾸겠지요.

 


.. 꼬마 햄스터 누베는 천 일 동안 쳇바퀴를 돌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지친 발을 편히 쉴 수 있겠지요. 눈을 감은 모습이 아주 귀여웠어요. “그냥 자는 거 아냐?” 푸테가 햄스터를 깨우려 했어요. “일어나!” ..  (17쪽)


  여름이 무르익으면 숲과 들은 복닥복닥합니다. 경운기와 농기계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복닥이지 않습니다. 기쁘게 태어나거나 깨어나려는 숨결이 넘쳐서 복닥입니다. 새는 새끼를 낳습니다. 풀은 씨앗을 터뜨립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푸른 바다에 알록달록한 이야기가 넘칩니다.


  태어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저물 무렵 천천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여러해살이 풀이나 벌레는 가을이 깊어질 무렵 겨우내 웅크릴 자리를 찾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로 접어들면 사람들은 조그마한 집에서 이불을 함께 덮습니다. 겨우내 눈이 덮인 자리에서도 풀은 자라 숲짐승이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바지런히 땔감을 모은 사람들은 겨우내 불을 지피면서 아이들과 포근히 이야기꽃을 피워요. 먼먼 옛날부터 할매와 할배가 들려준 이야기를 아이들이 들어요. 아이들은 할매와 할배한테서 들은 이야기에 따라 새로운 꿈을 담습니다. 어버이는 할매와 할배와 아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삶을 짓습니다.


.. 할머니가 쥐덫에 잡힌 쥐를 아홉 마리가 주었어요. 다른 때 같았으면 고양이 차지였겠죠. 쥐들도 이름이 필요해서 우린 일일이 세례를 해 주었어요 ..  (22쪽)

 


  스웨덴에서 찾아온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시공주니어,2008)을 읽습니다. 에바 에릭손 님 그림하고 울프 닐손 님 글이 어우러집니다. 아이들은 작은 벌레와 짐승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들한테 ‘장례식’을 치러 주는 일(놀이)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여느 때에는 돌아보지 않던 벌레와 짐승을 눈여겨봅니다. 벌레와 짐승이 왜 죽는가 살펴봅니다. 사람들은 사람끼리만 장례식을 치를 뿐, 작은 벌레와 짐승한테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고 깨닫습니다. 집에서 따로 키우던 짐승이 아니라면, 주검을 아무렇게나 다루는구나 하고 깨달아요.


.. 난 누가 죽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우리는 지빠귀 옆에 웅크리고 앉았어요. 지빠귀가 날개를 퍼드덕거렸어요. 부리를 벌리고, 다리를 움찔했어요. 그러더니 잠시 후 숨을 거두었지요 ..  (29쪽)


  우리들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요. 물고기 주검을 먹을까요. 소 주검이나 돼지 주검이나 닭 주검을 먹을까요. 싱그럽게 숨쉬는 목숨을 먹는가요. 토막토막 저미거나 자른 주검을 가게에서 사다가 먹는가요.


  풀잎은 무엇이고 열매는 무엇일까요. 배추와 무한테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요. 능금과 감에는 어떤 넋이 있을까요. 오이와 딸기한테는 어떤 숨결이 있을까요.


  비가 오는 오늘 마을길을 걷다가 머위꽃을 꺾습니다. 아직 꽃으로 피어나지 않은 머위를 한 뿌리 캡니다. 머위뿌리는 우리 집 뒤꼍에 옮겨심습니다. 머위꽃은 아이들과 맛나게 먹을 생각입니다. 아침에는 마당에서 쑥을 뜯어 쑥국을 끓였어요. 마당에서 뜯은 갓잎에 무를 채썰기 해서 된장으로 버무렸습니다. 갈퀴덩굴은 간장으로 무쳤습니다.


  밥 한 그릇에는 수많은 목숨이 깃듭니다. 나락 한 알도 목숨이고, 멸치 한 마리도 목숨입니다. 김 한 조각도 목숨이며, 감자 한 톨도 목숨입니다. 여러 목숨을 즐겁게 지지고 볶아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여러 목숨을 살뜰히 어루만져서 내 목숨을 살립니다. 마을 앞 풀섶에서 머위 한 뿌리를 캐니 땅에서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땅을 파서 머위 한 뿌리를 옮겨심자니 이곳에서도 지렁이가 꼬물거립니다. 모두들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저마다 이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꿈을 품습니다.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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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순이 16. 엉금엉금 올라타기 (2014.3.26.)

 


  여러 해에 걸쳐 오랫동안 아주 많이 타던 자전거가 있다. 세모꼴로 접어서 세울 수 있고, 부피를 적게 차지하기도 하니 버스에도 들고 타는 자전거이다. 서울 남산도 이 자전거로 올랐고, 서울부터 부산까지 이 자전거로 달린 적이 있기도 하다.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 달리다가 벨트가 끊어진 적이 있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짐받이에까지 책을 제법 묵직하게 묶어서 다니기도 했다. 그동안 오래 많이 탔기에 손잡이 뼈대 이음새가 낡고 닳아서 부러지면서 더는 탈 수 없다. 도서관 한쪽에 접어서 고이 모신다. 네 살 작은아이가 이 자전거에 타겠다며 엉금엉금 올라타려 한다. 달리지는 못해도 엉금엉금 올라타기만 해도 즐거울 수 있겠구나.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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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동백꽃

 


  우리 집 마당에 동백나무 한 그루 있고, 우리 서재도서관 마당에 동백나무 여러 그루 있다. 모두 ‘우리 집 동백꽃’을 베푼다. 늘 들여다보고 언제나 바라보면서 즐거운 빛을 얻는다. 살살 쓰다듬으면서 즐겁다.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기쁘다. 꽃빛이란 이렇구나. 눈으로 보면서 배가 부르다. 꽃내음이란 이렇구나. 눈을 살며시 감고 밝은 기운을 받아들인다. 꽃과 같은 넋으로 살아가면 꽃사람이 될까. 꽃아이. 꽃어른. 꽃마음으로 꽃사랑을 나눌 적에 지구별이 아름답겠지. 4347.3.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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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126. 2014.3.16. 마음이 닿는 책을

 


  마음이 닿는 책을 읽는다. 마음이 닿지 않는 책은 코앞에 내밀어도 반갑지 않다. 마음이 닿는 책을 손에 쥔다. 마음이 닿지 않는 책은 누가 거저로 선물해도 달갑지 않다. 마음이 닿는 책을 마음으로 담는다.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운다. 마음을 가꾸고 마음을 다스린다. 풀잎을 쓰다듬듯이 책을 쓰다듬는다. 나무를 포옥 안듯이 책을 가슴에 안는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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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동백꽃 (사진책도서관 2014.3.16.)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사진책도서관 소식지 〈삶말〉을 한 장짜리 사진엽서로 만들어 본다. 얼마나 볼 만한지는 알 노릇이 없다. 아무튼 만들고 볼 노릇이다. 이번에는 이렇게 만들고 다음에는 조금 더 작게 만들 수 있다. 16절지 크기로 만드니 글자를 제법 크게 넣을 만하다. 32절지 크기로 만들면 앙증맞고 예쁠 테지만 글자를 깨알같이 넣어야 한다.


  따스하게 봄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도서관을 치운다. 비질을 하고 이럭저럭 손질한다. 사진 여러 점 곳곳에 붙인다. 창문을 모두 열고 바람갈이를 하다가, 셋째 칸 교실 창밖으로 동백나무를 본다. 활짝 봉오리를 벌린 동백꽃을 본다. 그동안 이 꽃을 못 알아보았을까? 동백나무가 곳곳에 있는 줄 알기는 했는데 이렇게 남다른 빛깔과 무늬로 꽃이 피는 줄 못 알아챘을까?


  창문을 타고 바깥으로 나간다. 동백나무 둘레로 퍼진 등나무 줄기를 걷는다. 등나무 줄기가 얽히는데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구나. 올해에는 잘 보듬어 줄게. 너도 기운을 내어 등나무 줄기더러 함부로 뻗지 말라고 얘기하렴. 네 고운 빛과 내음을 우리 도서관에 그득 나누어 주렴.


  만화책을 보는 큰아이를 부른다. 걸상을 밀며 노는 작은아이를 부른다. “자, 보렴.” “음, 저기 꽃이 있네. 아, 예쁘다.” 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꽃은 스스로 곱게 핀다. 보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꽃은 한결 맑게 노래하면서 웃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큰아이도 수레에 타겠다고 앉는다. 둘이 앉으면 비좁을 테지만 둘이 앉으면 더 재미있겠지.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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