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121] 아끼다

 


  아낌없이 먹고
  아낌없이 노래하며
  아낌없이 즐거운 새가 난다.

 


  나무 한 그루 있으면 벌레가 깃들 수 있습니다. 벌레가 깃들 수 있으면 나비가 알을 낳아 애벌레가 자라서 새롭게 깨어날 수 있습니다. 애벌레와 나비가 깃들 수 있는 나무라면, 새들이 먹이를 찾아 다리를 쉬며 내려앉을 수 있습니다. 새가 내려앉아 쉴 수 있는 나무 둘레에서는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푸른 노래가 흐릅니다. 저마다 아낌없이 누리는 삶이요, 아낌없이 사랑하는 하루이고, 아낌없이 노래하고 웃는 이야기밭입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이 나눕니다.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어깨동무합니다. 즐겁게 꿈꾸는 사람이 알뜰살뜰 가꿉니다. ‘아끼기’는 ‘안 쓰기’가 아니라 ‘즐기는 삶’이라고 느껴요.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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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1
히구라시 키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29

 


눈물 나는 삶
―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 1
 히구라시 키노코 글·그림
 최미정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11.30.

 


  반가운 손님이 시골집으로 찾아옵니다.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아이들도 곁에서 늦도록 잠들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너무 고단한 나머지 하나둘 곯아떨어집니다. 어른도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니 고단하지요. 깊은 밤을 밝히며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조용한 시골마을 한밤에 개구리 노랫소리가 드문드문 들립니다. 마당으로 내려서지 않아도 집안으로 개구리 노랫소리가 스며들어요.


  ‘참 좋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숲에서 깨어나는 바람을 마시니 ‘참 좋네’ 하는 생각이 찬찬히 샘솟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푸른 노래와 숨결과 이야기가 있어서 살아가노라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아도 왜 화를 내는지 모를 때가 있다.’ (18쪽)
- “으아, 눈물 날 것 같아. 스물여덟이나 먹고.” (45쪽)
- “이것 보세요! 여자친구가 만들어 줬어요!” “뭐야? 점심밥?” “아뇨, 아침이에요! 제 로망!” (47쪽)

 


  늦게 잠든 사람은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습니다. 느즈막하게 잠들었으나 어른보다 일찍 잠든 아이는 일찌감치 일어나고 싶습니다. 큰아이는 우리 집에 손님이 왔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납니다. 저랑 같이 놀아 주기를 바라면서 이른아침부터 종알종알 노래를 합니다. 어서 일어나라 노래를 하고, 혼자 만화책을 읽으며 노래를 합니다. 또랑또랑 맑은 소리로 큰아이가 노래를 하니 작은아이는 누나 목소리에 잠을 깹니다.


  너희는 하루 내내 놀고 놀아도 기운이 새로 솟는구나. 너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을 안 쉬고 조잘조잘 노래해도 힘이 다시 나는구나.


  즐겁게 놀기에 즐겁게 기운이 납니다. 기쁘게 일하면 기쁘게 힘이 나요. 아주 마땅합니다. 웃으면서 노는 아이들은 하루 내내 놀아도 지치지 않습니다. 노래하며 일하는 어른들은 일거리가 많아도 고단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혼자 먹는 건 이렇게 다르구나.” (61쪽)
- “요 8년 간 나는 리츠코가 없으면 온전한 나로 생활조차 못 하게 됐구나.” (63쪽)

 

 


  손님을 치르고 난 뒤 온몸이 뻑적지근합니다. 등허리가 쑤시고 팔다리가 결립니다. 빨래를 하루 미루자고 생각합니다. 마을 샘터를 오늘쯤 치워야 할 텐데 작은아이 낮잠을 재우고 느긋하게 하자고 생각합니다.


  큰아이가 책을 보다가 내려놓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훑어야 비로소 내려놓습니다. 선물받은 사인펜꾸러미를 엽니다. 한쪽이 빈 동그란 종이를 찾아 무언가 그립니다. 여러 빛깔로 알록달록하게 그리더니 나한테 살짝 내밉니다. “아버지 그렸어요.” 하면서 큰나무랑 작은나무를 나란히 넣은 그림을 선물합니다. 아버지가 나무를 좋아하니 나무를 그려 넣었을까요. 아버지가 나무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려 넣었을까요. 아버지가 큰나무 되어 저를 작은나무로 여기며 아끼기를 바라는 뜻을 그려 넣었을까요. 큰아이 스스로 곧 큰나무 되어 우리 집을 보살피겠다는 넋을 그려 넣었을까요.


  따로 누구한테서 그림을 배운 적 없는 아이는 늘 스스로 그림을 즐깁니다. 스스로 책을 즐기고, 스스로 노래를 즐기며, 스스로 이야기를 즐깁니다. 스스로 놀이를 빚고, 스스로 웃음을 자아내며, 스스로 콩콩 뛰고 달립니다.

 

 


- “있잖아. 슈이치, 생각해 본 적 있니?” “뭘요?” “남자에게 10년과 여자에게 10년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르단걸. 엄마랑 아빠는 네 결혼을 재촉하는 게 아니야. 다만 너희 두 사람이 정말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127∼128쪽)
-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난 왜 슈이치를 고른 걸까? 그리고 어떻게 8년이나 같이 살고 있는 걸까?’ (145쪽)


  눈물 나는 삶을 그린 만화책 《먹고 자는 두 사람 함께 사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3)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을 그린 히구라시 키노코 님은 ‘슬픈’ 이야기를 담지 않습니다. 애틋하며 살가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은 눈물 나는 삶을 그립니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삶을 그리고, 눈물이 나도록 사랑스러운 삶을 그립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어떻게 만나고 피어나면서 흐드러지는가를 찬찬히 그립니다.


- “난 센스도 없고 여자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지만, 리츠코에겐 내가 직접 고른 선물을 주고 싶어.” (168쪽)
- “좋았어! 오늘부터는 ‘준비, 시작’ 하고 달려나가지 않고, 느긋하게 산책하듯 한 걸음씩.” (195쪽)

 


  남이 내 그림을 그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내 그림을 그립니다. 남한테 내 그림을 맡기지 못합니다. 내가 내 그림을 씩씩하게 그립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저희 그림을 그리고, 어른은 어른대로 우리 그림을 그려요.


  사랑을 바라면 사랑을 그립니다. 어깨동무를 바라면 어깨동무를 그립니다. 바라는 대로 그리고, 그리는 대로 이룹니다. 이루는 대로 삶을 새롭게 지으며, 삶을 새롭기 짓는 결에 따라 아름다운 말과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사람은 밥만 함께 먹지 않습니다. 생각을 함께 나누고 꿈을 같이 주고받습니다. 이야기를 도란도란 꽃피우고 웃음을 소복소복 길어올려요. 아이들은 낮이나 밤이나 노래를 좋아합니다. 놀이노래를 좋아하고 자장노래를 좋아해요. 어른들은 일노래로 스스로 웃고, 자장노래로 아이들을 다독이면서 스스로 삶을 빛냅니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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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아이 54. 들빵 먹기 (2014.3.27.)

 


  우리 집 찾아온 손님이 아이들 먹으라고 빵을 꽤 많이 사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배웅을 나간 뒤 돌아오는 길에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 서재도서관으로 쓰는 옛 흥양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풀밭으로 간다. 이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았을 적에는 운동장 둘레로 온통 논이다. 이 학교가 문을 닫은 오늘날에도 운동장 둘레는 모두 논이다. 이 학교를 다닌 아이들은 언제나 어버이 숨소리를 느꼈겠지. 어버이가 들일을 하는 모습을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겠지. 고즈넉한 시골자락을 울리는 고운 새소리를 듣는다. 풀벌레가 함께 울려면 아직 멀다. 아이들은 들밥 아닌 들빵을 먹는다. 풀내음 맡고 새소리 들으면서 먹는 풀빵도 꽤 맛나지? 이 좋은 봄날, 들밥이나 들빵 먹으러 자주 마실해야겠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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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머금은 동백꽃

 


  이웃마을에서는 동백꽃이 지느라 바쁘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 이와 달리 우리 집에서는 동백꽃이 피느라 바쁘다. 늦게 핀 꽃은 오래 간다. 먼 데서 우리 마을을 바라보면 마당 한켠 동백꽃송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 참 곱게 눈에 뜨인다. 후박나무가 짙게 그늘을 드리우고 동백꽃이 한창 벌어지는 우리 집은 어느 모로 보나 이쁘다. 내 눈이니 우리 집이 이쁘달 수 있는데, 내가 우리 집을 이쁘다 말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 집을 이쁘다 말하겠는가.


  일찍 피어나기에 더 반가운 꽃은 아니라고 느낀다. 꽃은 언제이든 핀다. 모든 풀과 나무는 꽃을 피운다. 그야말로 아주 일찍 꽃잎을 벌릴 수 있고, 그야말로 아주 늦게 꽃잎을 내놓을 수 있다. 저마다 제 결과 가락이 있다. 남들처럼 달려야 하지 않는다. 남들과 나란히 달려야 하지 않는다. 내 결을 스스로 믿고 아끼면서 걸어가면 된다. 내 빛을 스스로 사랑하고 꿈꾸면서 어깨동무하면 된다. 빗물 머금은 우리 집 동백꽃을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날마다 보고 또 보면서 웃는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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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에도 새잎이

 


  우리 집 초피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지난해 맺은 열매는 다 훑어 주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본다. 왜냐하면, 숲에서 자라는 초피나무도 사람이 열매를 모조리 훑어 주지 않을 테니까. 사람이 사는 집에 있는 나무라면 열매를 다 훑어 주어야 한결 나을는지 모르지만, 그대로 두고 지켜본다. 해마다 차츰 키가 자라면서 씩씩하게 줄기를 뻗는 우리 집 초피나무를 가만히 바라본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매화라든지 앵두는 눈에 잘 뜨인다. 봄이 되면 사람들은 으레 산수유나무라든지 벚나무를 찾는다. 우리 집 마당에 초피나무가 없었다면 나도 초피나무 새잎을 생각조차 못했으리라. 날마다 보고 또 보는 나무이다 보니 새잎이 어떻게 벌어지는가를 하나하나 새긴다. 이 잎이 돋고 잎빛과 같은 꽃이 피는 초피나무를 두근두근 설레면서 기다린다.


  초피잎이 돋을 이무렵에 느티나무에도 잎이 돋는다. 푸른 빛깔 초피꽃이 필 즈음에 느티나무도 느티꽃이 핀다. 나무마다 기지개를 켜며 활짝 피어나려 한다. 나무는 꽃을 맺어도 피어나지만, 잎을 틔워도 피어난다. 4347.3.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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