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6.

숨은책 1048


《文學과 民族》

 고은 글

 한길사

 1986.7.20.



  말하는 대로 스스로 살아낼 줄 안다면 아무 말이나 함부로 읊지 않을 뿐 아니라, 먼저 몸소 살아내지 않고서야 섣불리 말하지 않게 마련입니다. 말을 번드레하게 하기란 안 어렵습니다. 몸소 안 하더라도 입으로 읊을 적에는 둘레에서 ‘겉말’에 따라서 모시거나 추키기 쉽습니다. 몸소 안 하지만 글로 남길 적에도 둘레에서 ‘겉글’을 좋아하거나 따르기 쉽습니다. 1986년에도 굳이 한자로 책이름을 적은 《文學과 民族》은 ‘고은 말모음’이라지요. 이녁은 술이 좋아 술에 절어서 살아내는 사이에도 곳곳을 다니며 갖은 ‘좋은말’을 쏟아냈습니다. 이 좋은말을 펴냄터(출판사)와 새뜸(신문)에서 넙죽 받아서 퍼뜨렸습니다. 곰곰이 보면 고은을 비롯한 ‘겉말·겉글 무리’는 ‘까칠말’을 안 합니다. ‘까칠말’이란, 말하거나 글쓰는 사람부터 스스로 바꾸고 일구는 살림살이를 밝히는 말입니다. 몸소 바꾸고 일구는 살림길을 이웃한테 알리고 들려주면서 함께 바꾸고 일구자고 속삭일 적에 비로소 ‘속말·속글’로 피어납니다. 위에 앉아 내려다보는 우두머리 같은 마음으로 쏟아낸 말글이 지나치게 퍼진 이 나라입니다. 나란히 서서 삶글을 짓고 삶말을 펴는 이야기는 도리어 멀리하거나 쳐내는 이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고은 찌꺼기’를 말끔히 털어낸 글밭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ㅍㄹㄴ


지난 10여 년 동안의 수많은 강연을 통해서 얻어진 논설의 일부가 이 책이 되고 있다. 곳곳에 강연의 흔적 그대로의 구술 분위기가 생생한데 굳이 가필하지 않았다. (3쪽)


마지막으로 내가 내 형제이며 내 불가피한 공동체인 오늘의 대학생에게 부탁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민중주체적 통일에의 행진입니다 … 대학생은 고민과 행위의 지성일지 모르나 특권과 소유의 야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대학생은 최후로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368, 36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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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6.

숨은책 1051


《La Mare au Diable》

 George Sand 글

 Librairie Hachette

 1935.



  헌책집을 다니다가 이따금 《La Mare au Diable》을 봅니다. 1846년에 처음 나온 글이라 하고, 손바닥만큼 자그마한 판에 얇게 묶은 ‘Librairie Hachette’ 판입니다. 프랑스는 제 나라 이야기를 퍽 작고 야무지면서 값싸게 1935년에도 알뜰히 여미는구나 하고 느끼는데, 우리로서는 한창 일본총칼에 억눌리면서 숨소리마저 못 내던 즈음입니다. 프랑스말을 익힌 어느 분이 지난 어느 날 이 책을 기쁘게 장만해서 반갑게 읽었을 테지요. 프랑스로 배움길을 다녀오며 읽었을 수 있고, 가까운 일본에서 장만해서 읽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일본책을 다루는 우리나라 작은책집에서 슬쩍 들여와서 팔았을 수 있습니다. 두 나라를 잇는 일꾼(대사)이 아이들을 이끌고서 이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읽다가 책짐이 무거워서 내려놓느라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어른이 읽을 글뿐 아니라 어린이가 읽을 글을 두루 남긴 조르주 상드 님은 1876년에 숨을 거두는데, 1900년 너머까지 살며 글붓을 이었다면 셀마 라게를뢰프 님하고 나란히 보람(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만했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미처 때를 잡지 못 한 이슬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가시밭길을 이슬 한 방울이 되어 걸어간 앞사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날 포근히 살림밭을 누릴 수 있습니다. 봄비가 봄들을 적시고, 봄볕이 봄숲을 북돋우고, 봄별이 모두한테 드리웁니다.


#조르주상드 #악마의늪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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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 1052


《성모는 이것을 원하신다》

 파울 하인쯔 슈미트 엮음

 동항 천주교회

 1965.7.10.



 ‘동항 천주교회’는 부산 부산진구 우암동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1965년에 내놓은 조그마한 꾸러미인 《성모는 이것을 원하신다》를 문득 펴며 그무렵 사람들은 무엇에 하루하루 마음을 기울여야 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한겨레가 두나라로 갈려서 싸운 잿더미를 조금조금 추스르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이니, 숨돌리고 아이를 돌보면서도 미움과 그리움이 엇갈릴 뿐 아니라, 나라를 휘어잡은 서슬퍼런 총칼에 말소리도 섣불리 못 내던 나날은 그야말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버리는 책이란 없으며, 쪽종이 하나가 길에서 구를 일마저 없던 무렵을 살던 어제란, 어쩌면 까마득할는지 모르나 기껏 쉰 해 남짓입니다. 쉰 해 사이를 지나면서 버리는 책이 수두룩하고, 넘치는 종이 사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는지 헤매기도 하고, 좋거나 훌륭하다는 책을 읽더라도 마음까지 빛나거나 거듭나지는 않는 요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묵은책을 넘기면서 ‘걱정’과 ‘싸움’을 읽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거룩하되, 정작 절집부터 이 대목을 못 품는다고 느껴요. 나하고 눈길과 마음결과 삶길이 다른 사람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란 참 어려울는지 모르나, ‘바로 나’라는 넋부터 그대로 맞아들이기가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ㅍㄹㄴ


- 부산시 부산진구 우암동 189


서방 여러 나라에서도 그들의 원조와 경험으로 한국을 도우려고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한국의 곤궁을 덜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꾀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어느때 가서 쏘련이나 중공이 다시 침략하게 되는 날에는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지고 말 것이 아닌가? 저 억센 공산주의 블로크를 대적해 싸우는 일은 이 작은 한반도 한국으로서는 벅차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쪽)


더욱 곤란한 일은 1917년 조직화된 무신론이 공산주의라는 탈을 쓰고 쏘련에서 권력을 잡게 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주께 대한 도전에 대항해서 천상 모후께서는 ‘거룩한 매괴의 모후’로 폴투갈의 파티마에 여섯 번이나 발현하셔서 쏘련의 그 그릇된 사상에 대항하도록 전세계에 호소하신 것이다.(11쪽)


마리아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전했다. “죄인들을 위해 희생하라! 그리고 너희가 희생을 바칠 때면 ‘예수여, 네게 대한 사랑과 죄인들의 회개와 마리아의 하자 없으신 성심을 상해 드린 것을 기워 갚기 위해 하나이다’ 하며 하라고 말씀하시며, 성모께서는 지난번 여러 번의 발현 때 하신 것처럼 당신 손을 펴셨다.” (21쪽)


한국에서 천주의 사업을 위한 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이 책자의 소임이다 … 한국은 기구하기 위해 합장할 수많은 손을 가지고 있다. 비단 가톨릭 교우들의 손만이 아니라, 이 기구 군단의 대열에는 다른 교파들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불교도들도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함게 규모가 큰 기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정치가들이 정책을 수립하고 협상을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기구해야 하는 것이다. (116, 11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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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50


《우리黨의 綱領·政策》

 유진오·김대중 엮음

 신민당

 1969.



  1967년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신민당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사슬로 온나라를 꽁꽁 틀어막은 박정희한테 맞서려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았다고 하되, “박정희한테 맞서는 길”은 있어도 “온나라 수수한 사람하고 어깨동무하는 살림”하고는 아직 한참 먼 모둠이기도 했습니다. 이나마 있었기에 작게라도 촛불을 피워서 얼음나라를 녹였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1969년에 나온 《우리黨의 綱領·政策》을 가만히 훑으면, 1989년에도 2019년에도 그리 안 바뀐 틀이로구나 싶고, 2025년에 우두머리 한 사람을 끌어내리고서 새로 나라일꾼을 뽑는 자리에 이르러도 벼슬꾼(정치꾼) 머릿속은 그대로이구나 싶기도 합니다. 요새는 나이든 사람도 어리거나 젊은 사람도 글이나 책을 꺼리면서 그림(동영상)만 들여다본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왜 글이나 책을 꺼릴는지 살펴봐야겠지요. “읽을 글”이나 “읽힐 책”을 얼마나 썼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목소리만 높인다거나 못 알아들을 글을 그냥그냥 먹물티를 내면서 높다랗게 내세우지 않았나 하고 돌아봐야지요. 나라일꾼(대통령)으로 서고 싶다면, 먼저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서른 해를 살림하기”부터 해야지 싶습니다. 고을일꾼(시도지사·군수·구청장)으로 서고 싶다면, 먼저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스무 해를 살림하기”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작은벼슬(국회의원)이라도 얻고 싶다면 “집안일을 맡으면서 아이를 돌본 열 해를 살림하기”는 밑동으로 두어야 할 테고요. 아이곁에 설 줄 알고, 집살림을 추스를 줄 알아야, 고을도 나라도 아름답고 밝게 다스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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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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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47


《新羅夜話(서라벌 이야기)》

 손대호 글

 선일사

 1956.1.25.첫/1962.3.15.4벌



  서울에서 가난한 책벌레로 살던 무렵, 도무지 사읽을 주머니는 안 되어 책집에서 늘 서서읽기를 했는데, 헌책집에서 서서읽기를 할라치면 책마다 외치는 소리에 귀가 쟁쟁거렸습니다. “나 좀 봐!” “어이, 여기도 봐!” “얘야, 나를 봐주렴!” 책마다 지르는 소리로 귀청이 떨어질 듯했지만,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은 드물거나 없는 듯했습니다. 책한테 다가가서 “그렇지만 널 장만할 주머니는 아닌걸? 널 샀다가는 오늘도 저녁은 굶어야 하는데?” 하고 속삭입니다. “걱정 마. 하루쯤 굶어도 되잖아? 아니, 사나흘쯤 굶어도 안 죽잖아?” “너는 밥을 안 먹는다고 나더러 굶으란 얘기이니?” “아냐. 우리도 밥을 먹어?” “뭔 밥을 먹는데?” “우리는 우리를 매만지는 사람들 손길이라는 밥을 먹지.” “…….” 아무튼 《新羅夜話(서라벌 이야기)》도 갖은 책소리를 듣다가 집었습니다. 또 저녁을 굶겠구나 하고 여겼습니다만, 더는 고개를 돌릴 수 없더군요. 이 책은 “네가 오늘 날 집어들지 않으면 난 이제 죽는다구. 난 이제 사라져버려!” 하더군요. 이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 책끝에 몇 글씨 남겼습니다. 한때 읽혔어도 한참 잊힌 책이 울부짖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할 수 없던 마음이라고 할까요.


2000.3.11.흙. 용산 뿌리서점. 폐지가 되려던 책을 건진셈인가. 어느 책이든 폐지가 될 수 있지. 사람도 죽듯 책도 죽을 수 있지. 살아 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야지.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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