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4


《헌책사랑》 25호

 최종규 글·그림

 함께살기

 2001.8.14.



  1997년 12월 31일에 군대에서 나간다는 부름(명)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이 수렁에서 헤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던 1997년 늦가을에 ‘앞으로 삶터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며 살까?’ 하는 밑그림을 그립니다. 자나깨나 앞날을 그리는데, 첫째는 ‘헌책방 사랑누리’란 이름으로 ‘마을헌책집을 함께 찾아다니면서 책으로 배우고 마을을 생각하며 스스로 길을 배우는 모임’을 꾸리기입니다. ‘나우누리’에 이 모임을 열기로 하고, 모임을 열면 다달이 ‘헌책방 소식지’를 낼 생각을 합니다. 한동안 ‘우리말과 헌책방’ 얼개로 1인 소식지를 냈으나 이내 ‘헌책집 이야기만 다루는 작은 꾸러미’로 바꾸고, 여러 헌책집을 큰마을로 뭉뚱그리는 ‘헌책집 길그림’을 그렸어요. 헌책집 찾아가는 길그림은 피시통신에 파일로도 올리고, 종이로 뽑아 몇 즈믄 자락씩 돌렸습니다. 돈을 모으는 대로 길그림을 새로 복사해서 뿌렸어요. 그러나 아무도 이 일을 안 시켰어요. 스스로 생각해서 했습니다. 교보·영풍 그만 가자고, 마을에 있는 작은 책숲으로 가자고, 겉은 헐었어도 속은 말짱한 이야기를 읽자고, 옛살림에서 새슬기를 스스로 가꾸자고, 우리가 뜻을 모아 조촐히 새터를 짓자고 하는 길을 오롯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붙이고 싶었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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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3


《반갑다 논장》 32호(2001.3·4.)

 안주영 엮음

 논장서적

 2001.3.1.



  고등학교를 마친 뒤로 옷을 안 샀습니다. 첫째로는 책값 대느라, 둘째로는 혼자 엮어 돌리는 소식종이를 복사하느라 살림돈이 빠듯했어요. 신문을 돌릴 적에 새벽에 헌옷 모으는 꾸러미를 뒤적여 맞춤한 옷을 주워 입었어요. 새로 나온 책을 살 주머니는 안 되어도 ‘새책 한 자락 값이면 헌책을 열 자락까지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야말로 숱한 헌책집을 두루 다녔고, 헌책집에서조차 서서 읽고 도로 꽂는 책이 많았습니다. 이러던 즈음 인문사회과학책집이 줄줄이 사라집니다. 적잖은 인문사회과학책집은 헌책집을 닮았더군요. 빼곡하면서 수북히 쌓인 책더미였어요. 이 가운데 〈논장〉은 좀 달랐습니다. 번듯하면서 말끔했고, 《반갑다 논장》 같은 잡지를 작게 여미기까지 했어요. 2000년이 아닌 2020년 〈논장〉이었다면 엄청나게 사랑받는 책터가 되지 않았을까요? 헌옷을 주워 입고 신문을 돌리며 헌책집을 다니던 스물 첫머리에 얼핏 스치고, 출판사 일꾼이 되어 문득 걸음을 디디려 할 즈음에 닫은 〈논장〉 앞에 서면, 또 책집에 들어가 보면, 반짝거리는 차림새인 젊은 물결이 책집은 아예 안 기웃거리면서 흘렀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책집 못지않게 ‘무겁고 딱딱한 책’만 너무 많던 그때였기에 젊은 발길을 못 잡았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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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2


《月刊 책방소식》 1호(1982.10.)

 여승구 엮음

 한국출판판매주식회사

 1982.9.20.



  그저 흔히 쓰는 말 한 마디란 없습니다. 모든 말에는 숨결이 흐릅니다. 아무렇게나 쓰는 말이라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마음, 이른바 얕은 마음이 흐릅니다. 남들이 다 쓰니까 쓸 뿐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따라쟁이 마음이 흘러요. 이오덕 어른 같은 분이 ‘우리 글 바로쓰기’를 얘기한 뜻이라면, 우리 모두 스스로 생각을 가꾸자는 마음이겠지요. 길들거나 물든 말도 아닌, 또 어린이하고 등지는 말도 아닌, 또 나라에서 윽박지르며 퍼뜨린 말도 아닌, 위아래로 가르는 말도 아닌, 스스로 삶을 짓는 자리에서 길어올리는 수수하면서 사랑스러운 말씨를 찾아내자는 길일 테고요. 《月刊 책방소식》은 ‘책방소식’이란 이름이었으나 큰책집에 들여놓고 널리 팔 큰 출판사 책이 바탕이면서 마을새책집이나 마을헌책집 이야기는 쏙 빠집니다. 이러다 보니 ‘변두리 고서점가’라 할 뿐, 헌책집 이름을 하나하나 밝히지 않을 뿐더러 알려주지도 못해요. 값진 옛책을 만나도록 징검다리가 된 오랜 마을책집을 기리지 못하면서 어떤 책살림을 북돋울는지 아리송합니다. ㅅㄴㄹ


“9월 하순의 독서주간에 맞추어 ‘한국고서동우회’의 후원으로 이루어질 제2회전시회가 ‘항일민족운동 관계 문헌전시회’로 결정됨에 따라 출품도서를 준비하기 위하여 변두리의 고서점가 산책을 더 넓히기로 작정하고 불광동의 연신내, 신촌과 연희동은 대학가, 영등포와 상도동, 봉천동, 흑석동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8월 한 달을 지내 왔다.” (여승구/書窓,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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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02

《일본군 군대위안부》
 요시미 요시아키 글
 이규태 옮김
 小花
 1998.8.20.


  1990년이 무르익던 어느 해에 ‘못다 핀 꽃’이라는 그림 한 자락이 태어납니다. 글씨도 그림도 딱히 배운 적이 없던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이녁 마음·삶·사랑을 오롯이 담아내셨는데, 할머니 그림은 으레 꽃잔치였습니다. 파르르 떨면서 피는 꽃, 흐드러지고 싶은 꽃, 못다 핀 꽃, 밟힌 꽃, 모두 꽃입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을 만나기 앞서, 임종국 님이 쓴 《밤의 일제 침략사》를 읽었습니다. 정대협이란 모임이 서기 앞서 적잖은 이들이 ‘꽃할머니’ 발자취를 짚곤 했으나, 이 나라는 언제나 쉬쉬하거나 모르쇠였습니다. 1965년에 박정희가 맺은 한일협정 탓이 크고, 2015년에 박근혜가 ‘한일 위안부 합의’란 이름으로 억지를 부리며 그만 멍울은 더 커졌어요. 일본사람이 쓴 《일본군 군대위안부》를 어느 날 만났습니다. 놀라지도, 안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어리석고 엉뚱하며 엉터리인 일본사람도 있지만, 슬기롭고 상냥하며 사랑스러운 일본사람도 있으니까요. 한국사람도 매한가지 아닐까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아름답거나 안 아름답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꽃인데 꽃인 줄 잊으니 뒤틀리고 말아요. 꽃할머니 가슴에 가시 아닌 꽃을 달아 주셔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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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5

《黨憲 (案)》
 편집부 엮음
 民衆黨
 1965.6.


  세 살 터울인 형이라서, 제가 1991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형은 선거권을 받습니다. 우리 형은 선거권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며 바라본 선거마다 ‘선거권이 있어도 이 권리를 못 쓰겠네’ 싶더군요. 인천·서울·충북·전남에서 선거권을 받는데, 어느 고장에서나 ‘마을사람’인 일꾼은 안 보이고, 삽질을 내세우는 장사꾼만 보이더군요. 뜻있게 마을일꾼이 되어 아름다운 마을살림을 가꾸려는 길이 그렇게 싫거나 어려울까요. 가만 보면, 국민학교 반장 선거조차 ‘심부름하는 일꾼’이 아닌 ‘인기투표’이거나 ‘줄세우기’였습니다. 반장·부반장이 되겠다면 누구보다 교실·화장실 청소부터 즐겁게 잘할 노릇일 텐데요. 1965년에 ‘민중당’이란 정당이 반짝하듯 생겼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내놓은 《黨憲 (案)》이 어느 집 한켠에서 서른 몇 해를 묵다가 헌책집에 나왔습니다. 낡은 종이꾸러미를 살살 넘기는데 새까맣게 한자말투성이입니다. 이 ‘당헌(안)’을 누가 읽을 만할는지 아리송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누가 썼을까요. 일본 말씨를 그대로 옮겼구나 싶은 당헌인데, 오늘날 진보정당 당헌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린이나 시골 할머니 눈높이하고 동떨어진 길이라면 정치하고도 동떨어졌다고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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