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4


《悅話堂美術文庫 15 韓國의 民畵》

 김호연 글

 열화당

 1976.6.5.



  1996년 여름에 가시울(철책)에서 나왔고, 밀린 말미(휴가)를 보름 받습니다. 싸울아비(군인)는 날마다 헌책집에 가서 책만 팝니다. 이러고서 싸움터(군대)로 돌아간 뒤, 1997년 12월에 마침내 그곳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지 말미를 안 쓰고 틀어박혔습니다. 젊은돌이는 싸울아비로 끌려가면 ‘잊히’는구나 싶어 멧자락에서 멍하니 하늘바라기·별바라기를 하고 눈쓸이를 했어요. 그때 드나들던 헌책집지기는 “군인한테 책값을 받으면 안 되지. 그냥 가져가시게.” 하면서 실랑이를 했습니다. “군인으로 휴가를 나오면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셔야 하지 않아? 왜 맨날 책만 보러 와?” 하고 물으시는 말씀에는 웃기만 했습니다. 《悅話堂美術文庫 15 韓國의 民畵》를 읽으면서 ‘조자용’ 님 말고도 겨레그림을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김호연 님은 ‘겨레그림’이란 이름을 짓기는 했어도 글은 순 한자투성이예요. 한자는 겨레글이 아니고, 중국말·일본말은 겨레말이 아닐 텐데요. 가만 보면, 우리말·우리글을 살핀다는 분들도 ‘國語·國文學’처럼 한자쓰기를 즐겨요. 스스로 작은이로 발을 디디면 말빛부터 바꿀 텐데요. 그나저나 열화당은 1982년에 껍데기만 바꾸면서 마치 처음 펴낸 듯 눈가림을 했습니다.


- 1996.8.8. 용산 뿌리서점. 내가 하는 일을 믿음과 사랑으로 늘 땀흘려 하길 빌며.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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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3


《지구인을 지켜라》

 러셀 글

 편집부 옮김

 소년생활사

 1977.11.15.



  모두 100자락인 ‘소년생활 칼라북스’ 가운데 아흔여섯째인 《지구인을 지켜라》입니다. 1970∼80년대에 잔뜩 나온 이런 꾸러미는 여러 곳에서 조금씩 다르게 선보이는데 ‘옮긴이’ 이름은 없고, 펴냄터 무늬·판짜임은 일본판을 흉내냈고, 줄거리를 베끼거나 훔치면서 우리나라 이야기책을 몇 가지 끼워맞췄습니다. 저는 1982년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글붓집(문방구)을 날마다 드나들었고, 이때 이런 꾸러미를 처음 보았습니다. 여덟 살에 글씨를 익히고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은 뒤로 글붓집에서 그림종이(도화지)·글붓(연필)·지우개 들을 사면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글붓집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물어봐요, “왜? 사고 싶어?” “아. 그렇지만 100자락을 다 살 돈은 없어요.” “하나만 사도 돼.” “네? 그래요?” 어머니는 저한테 날마다 120원을 주었습니다. 집이랑 배움터를 오가는 길삯(차비)이에요. 늘 걸어다니면서 120원을 아꼈고, 책 한 자락 값이 모이면 두근두근하면서 하나씩 샀습니다. 지난날 어린이는 ‘배움터 앞 글붓집’에서 꿈이랑 이야기를 천천히 사모읍니다. 걸어다니며 다릿심이 붙고, 며칠 걸으면 책 하나가 생깁니다. 책으로 읽으며 ‘이런 앞날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참말로 새날이 왔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나 전국 유명서점에서 판매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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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3.5.14.

숨은책 822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

 J.벤딕·R.벤딕 글

 윤상해 옮김

 음향문화연구회·신문관

 1962.3.30.



  우리 아버지나 이웃 아저씨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맞추어 집에 보임틀(텔레비전)을 들이려고 무던히 애썼습니다. 나라에서는 큰 놀이판(스포츠)을 자랑해야 한다면서 작은 살림집끼리 어깨를 맞댄 골목마을을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밀었고, 커다란 가림담(차단벽)을 세워 큰길에서 안 보이도록 했어요. 《테레비전, 그 作用에서 受像까지》는 ‘우리나라 방송국’이 열고서 온날(100일)이 되는 때를 기려서 나옵니다. 1962년이라면 보임틀을 생각조차 못 하던 사람들이 훨씬 많고, 집전화조차 들이기 힘들었어요. 손으로 짓고, 몸으로 일하고, 다리로 걷고, 눈으로 마주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살림인 나날입니다. ‘지음머리(인공지능·AI)’ 같은 말은 우스개로 여겼어요. 2020년대에 태어난 아이는 194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꿈조차 못 꾸던 모습을 스스럼없이 만납니다. 앞으로 2300년에 태어날 아이는 어떤 새길을 스스럼없이 만날까요? 1962년에는 ‘보임틀을 풀이하는 책’이 따로 나와도 몰라보는 사람이 수두룩했으나 2023년에는 ‘지음머리를 풀이하는 책이 굳이 없어’도 스스럼없이 알아보거나 알아차릴 텐데, 2300년 즈음에는 새길을 새롭게 밝히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새기는 아름누리일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우리나라에 텔레비죤이 들어온것은 8년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으로된 분격적인 텔레비죤방송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된것은 인제 겨우 백날밖에 되지 않읍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텔레비죤은 이미 우리 국민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고 있는것이지만 아직도 우리네의 살림이 생활과학에 밝지 못한지라 일반적으로 텔레비죤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깊지 못한터에 이번에 ‘음영문화연구회’ 동지들의 수고로 ‘벤딕크’ 씨의 자미있는 그림과 알기쉬운 풀이로 엮어진 이책을 부드러운 우리말로 옮겨서 까다로운 것으로 생각되기 쉬운 텔레비죤 이야기를 힘들이지않고 알아볼수있게 해준것은 매우 유익하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아니할수 없읍니다. 그 수고를 치하하며 이책이 널리 읽혀져서 우리 텔레비죤의 시청자는 물론 국민전체가 생활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를 마음 깊이 바라면서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 1962년 4월, 텔레비죤방송국 개국 100일을 기념하는날에, 서울텔레비죤방송국 국장 황기오 (책머리에)


또한 텔레비젼은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존재입니다. 무인비행기, 유도탄에 텔레비전·카메라를 장치하면, 모니터로 감시하여 유도할 수도 있읍니다 … 언젠가는 텔레비젼을 부리어 물건을 사들이기도 하며, 친구를 방문하며, 학교에 다닌다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텔레비젼은 우리들의 오늘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 되게 되었읍니다. (62쪽/未來의 텔레비 : 그밖의 텔레비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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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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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5.5.

수다꽃, 내멋대로 41 꾸중돌이



  어릴 적에 내 하루는 꾸중으로 열어 꾸중으로 닫았다. 이른바 나로서는 “하루라도 꾸중을 듣지 않거나,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히나?” 하고 돌아보던 나날이라고 여길 만했다. 뭔가 입을 벙긋하면서 말을 할라치면 말을 더듬거나 소리가 새는 혀짤배기였고, 하루 세끼 밥자리에 둘러앉으면 김치를 비롯해 못 먹는 곁밥이 잔뜩 있으니 깨작질을 한다고 꾸지람에 꿀밤을 맞아야 했고, 어린배움터(국민학교)에서 뭔가 줄을 세워서 시킬 적에 ‘이미 다 알거나 할 수 있거나 풀 수 있는 일’이어도 더듬더듬하거나 쭈뼛쭈뼛하면서 그르치거나 미처 못 하거나 틀리기 일쑤라, 하루에 적어도 열∼스물은 꾸중에 꿀밤에 매에 회초리에 주먹질에 깎음말을 흠씬 맞아들이곤 했다. 이런 하루가 고단하고 괴로워 “어떡해야 빨리 죽을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날마다 숱하게 했다. 날마다 하도 여러 사람, 그러니까 어버이랑 길잡이(교사)하고 또래나 언니한테 얻어맞다 보니까 ‘맞을 적에 어떻게 고개를 살짝 돌리거나 엉덩이나 허벅지나 종아리를 씰룩하면 덜 아프거나 견딜 만한가’ 하고 살피기도 했다. 날마다 숱하게 얻어맞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때에 ‘맞을 적에 숨을 안 쉬면 아픈 줄 못 느끼고 지나간다’고 깨달았다. 저놈(어른이건 언니이건 또래이건)이 나를 때릴 적에 ‘내 몸은 여기에 있을는지 몰라도 내 넋은 다른 데에 있으니, 넋이 없이 빈 몸뚱이를 아무리 두들겨패더라도 난 아픈 줄 못 느껴’ 하고 여기기 일쑤였다.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나 커서 알았는데, 얻어맞을 적마다 ‘몸벗기(유체이탈)’를 했다. 그들은 날 두들겨패지만, 나는 몸을 밑에 내려놓고 넋은 위로 올라와서 빤히 지켜본다. 얻어맞는 몸을 지켜보는 넋은 혼잣말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 저렇게 두들겨패면 사람 죽겠는걸?” 얻어터지는 자리로 살아 본 적이 없는 이는 맞는이(피해자)가 어떤 삶이고 마음인지 하나도 알 수 없다. 아프거나 앓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어떻게 ‘권정생 할아버지’처럼 아파하거나 아픈 이웃을 알 길이 있겠는가? 하나도 없다. 목숨을 내려놓자는 생각은 하루에도 끝없이 했다. 꾸중을 들으며, 김치도 못 먹고 저 밥도 못 먹어서 “넌 한국사람이 아니야!”란 말을 날마다 적어도 석 판은 들으며 살아도, 스스로죽음(자살)을 그리지는 않았다. 스스로 숨을 끊는 길이 이 수렁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르거나 나은 길일까 하고 날마다 헤아리기는 했으나,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서 울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겠구나! 아니, 어머니는 하루쯤 울어 주실 수 있겠구나.” 하고 느끼자, 더더욱 스스로죽음(자살)은 안 하기로 다짐했다. 얻어맞으면서 빙그레 웃고, 얻어터지면서 다시 일어서서 “그래, 더 때려 봐?” 하고 눈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한 마디를 얹고서 더 얻어터지는 하루를 보냈다. 덩치도 키도 힘도 훨씬 큰 또래나 언니나 어른이 흠씬 두들겨팰 적에는 그야말로 넋이 나갈 노릇이었지만 악착같이 견디었다. 열다섯 살 즈음 이르러, 우리 언니가 집어넣은 ‘특전무술 도장’에 들어가서 ‘여태 얻어맞은 주먹질보다 더 얻어맞으면’서 버틴 뒤로는, 스물한 살에 들어간 싸움터(군대)에서 얻어맞을 때까지 더 얻어맞을 일은 사라졌다. 그들(어버이·길잡이·또래·언니)은 왜 나를 두들겨패거나 꾸중했을까? 왜 그들은 날마다 그 짓을 되풀이했을까? 나는 왜 날마다 얻어맞으면서 여덟∼열다섯 살을 살아냈고, 싸움터에서 스물하나∼스물두 살에 죽음벼랑에 내몰려야 했을까? 때리고 밟고 막말을 일삼는 그들 눈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느 누구한테서도 ‘반짝이는 별빛’이나 ‘따뜻한 사랑’이 안 보였다. 얻어맞거나 꾸중을 들으며 늘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들은 사랑을 받은 적도, 사랑을 배운 적도, 스스로 사랑을 그리거나 생각한 적도 없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나도 나이를 먹으면 동생을 때려야 하나? 아니면, 나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철이 들면서 참된 어른이 되어 사랑을 느끼고 찾고 배우고 맞아들이고 온몸으로 녹여내어 둘레에 빙그레 웃음짓으로 보여주면 될까? 그나저나 날마다 얻어터지는 내가 사랑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어느새 쉰 살이란 나이에 이르고서 돌아보자니,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철이 들었’는지, ‘사랑을 보거나 아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나한테 심은 씨앗은 언제나 하나 ‘사랑’인 줄 안다. 꾸중돌이는 사랑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품으려고 웅크리면서 모든 발길질과 주먹질과 깎음말을 흠씬 맞아들이는 길을 걸어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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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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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3.4.30.

수다꽃, 내멋대로 40 모르는 책



  책집에 가면 ‘모르는 책’을 살펴서 읽고 산다. ‘아는 책’이나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사기도 하는데, 이때에도 ‘예전에 읽어서 안다는 마음을 버리고,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책’이라 여기면서 바라본다. 책숲마실(책집마실)이란, 모르는 책을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만나면서, 새록새록 새기려는 꿈으로 읽고서, 싱글벙글 웃음꽃으로 살림을 스스로 짓는 매무새를 가다듬는 나들잇길이라고 느낀다. 책시렁을 돌아볼 적에는 ‘읽을 책’이나 ‘건사할 책’을 찾는다고 할 텐데, “찾는 책을 찾을 마음”이 아니라 “책집에 있는 책을 집어들어 읽을 마음”이다. 어느 책집에서나 책집지기하고 책손 사이에서는 “뭐 ‘찾는 책’ 있으셔요?” “네, 이런저런 책 있나요?”라든지 “사장님, 그런저런 책 있나요?” “네, 그런 책은 있고, 저런 책은 없습니다.” 같은 말이 자주 오간다. 그러나 나는 어느 책집에 가든 “책 좀 보러 왔습니다.” 하고 짧게 말하고는 책시렁만 쳐다본다. 책집에 가면 ‘그곳에 있는 책’을 보려는 마음이다. ‘그 책집 그 책집지기가 여태 건사하고 추스르고 갈무리하고 품은 책’을 돌아보면서 ‘그 책집이 깃든 마을과 고을과 고장에 흐르는 숨결’을 느끼면서 읽는다. 더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바라거나 찾은 적이 없다. 그 책집에 있는 책을 문득 읽다가 장만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어 보는데 참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책이 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고 보니 어쩐지 얄궂거나 허술하거나 모자라구나 싶다고 느끼는 책도 꽤 있다. 아직 모르던 책을 처음으로 만나거나 새삼스레 만나서 아름답다고 느낄 적이든, 이미 알든 여태 몰랐든 읽고 되읽는 사이에 허접하다고 느낄 적이든, 이 푸른별에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르게 바라보고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하고 돌아본다. 저마다 뜻이 있으니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여민다. 저마다 하루를 살아가니 저마다 다른 눈길로 오늘을 바라본다. 낯익은 이름(글쓴이·펴냄터)에 매이면 눈썰미가 흐리게 마련이다. 낯선 이름으로 한 발짝 다가서면 눈망울이 빛나게 마련이다. 조각(지식·정보)을 외우려고 옆에 놓는 책이 아니다. 슬기(어진 눈빛·넋)를 북돋우면서 깨우려고 곁에 두는 책이다. 열 벌을 읽었든, 쉰 벌을 되읽었든, 다시 들출 적마다 ‘모르는 책’이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짚고 새길 줄 안다면, 어느 책을 손에 쥐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가꾸면서 꽃으로 피어난다. ‘남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든지 ‘큰보람(큰상)을 받은 책’을 물결에 휩쓸리듯 빌리거나 장만해서 읽는다면 ‘내 눈(우리 눈)’을 스스로 잊다가 잃으면서, 틀에 박힌 굴레에 잠겨들면서도 굴레를 못 느끼기 일쑤이다. 한집에서 살아가는 아이어른 사이는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지만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어우러지는 사이로 살기에 서로 반갑고 포근하고 아늑하다. 누가 어제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깼다고 이 일을 내내 들먹인다면 한집안이 아니다. 밤마다 고요히 잠들면서 꿈을 그리고, 아침마다 새로 깨어나면서 새마음에 새몸으로 어우러지는 보금자리이다. 어제 읽은 책이어도 오늘 읽을 적에는 다르다. 지난해에 읽은 책도 올해 읽으면 다르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해마다 다르지. 해마다 다를 뿐일까? 날마다 다르다. 어느 하루라도 똑같은 모습이거나 숨결인 나무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무를 자꾸 가지치기를 한다. 모든 나무가 날마다 철마다 해마다 다른데, 늘 다르게 자라는 숨결을 ‘가지치기’란 이름으로 싹둑 쳐낸다. 서울(도시)에서는 나무가 나무스럽지 않다. 꽃도 꽃스럽지 않다. 책도 책스럽지 않다고 할 만하다. 줄기가 곧고 길게 뻗으면서 가지가 숱하게 자라는 나무에 끝없이 돋는 새잎이 찰랑찰랑 춤추는 빛살을 느낄 적에 비로소 ‘나무를 조금 보았다’고 여길 만하다. 나무마다 깃드는 나비는 다 다르다. 나무마다 어떤 나비가 찾아드는지 살피고, 나무 한 그루에 새가 얼마나 자주 찾아오는가를 볼 수 있다면, ‘나무를 조금 더 보았다’고 느낄 만하다.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책을 읽고 마음을 가꾼다. 앞으로 얼마나 클는지 모르지만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책집에서 책시렁을 돌아본다. 우리는 ‘모르는 줄 알기’에 배운다. ‘모르는 줄 모른다’면 배우지 않아 늙고 만다. ‘모르는 줄 아는 눈빛’으로 ‘아직 모르는 책’을 찾아서 새삼스레 한 발짝을 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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