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6


《祖國江山》

 이은상 글

 민족문화사

 1954.7.1.



  바람이 쏴락 불면 나뭇가지가 춤을 추며 모든 잎이 반짝반짝합니다. 바다에서는 물이 반짝이고, 숲에서는 잎이 반짝여요. 바다에서는 물노래가 번지고, 숲에서는 잎노래가 퍼집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서 나온 《祖國江山》은 둘로 갈린 나라가 아파서, 서로 싸운 나라가 아파서, 군홧발에 밟히고 나서 다시 잿더미가 된 나라가 아파서, 이 땅 골골샅샅에 솟은 봉우리랑 이 땅 굽이굽이 적시는 냇물을 노래하지 싶습니다. 그런데 봉우리를 품에 안으려 하면서 독재 우두머리를 기리는 글을 같이 쓴다면, 또 냇물에 손을 적시려 하면서 독재판에 몸을 담는 길을 걸었다면, 이 엇갈린 모습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글 따로 삶 따로이지 않아요. 말 따로 일 따로이지도 않고요. 사랑스러운 나라가 되자면 어느 쪽에서든 총칼을 버릴 노릇입니다. 아름다운 터전이 되려면 주먹·돈·이름으로 윽박지르거나 끼리질을 하는 모든 이가 사라질 노릇입니다. 착하게 살기란 어려울까요? 아이들이 착하면서 맑고 푸르게 자라기를 바란다면, 어른부터 착하면서 맑고 푸르게 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오늘 선 곳에 따사로이 손길을 뻗어야 아름나라가 됩니다. 먼 멧골 아닌 마을 보금자리가 아늑하도록 이쪽저쪽 모두 손에 호미를 쥐고 숲을 가꾸기를 빌어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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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11


《표준 한국우표목록》

 편집부 엮음

 대한우표회

 1960.6.30.



  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사이다 보니, 스승날이 아니어도 ‘스승한테 보내는 글월’이 날마다 몇씩 있었어요. 처음에는 글월에서 우표 붙은 자리를 오리고 물에 불리고 신문종이에 펼쳐 말리며 우표만 얻었습니다만, 나중에 우표가게 일꾼이 말하길 ‘우체국 소인 찍힌 우표’가 값있을 뿐 아니라, 옛자취를 읽는 길이 된다 해서, 그 뒤로는 글월자루째 건사했습니다. 숱한 소인을 살피니 ‘고무 소인’인지 ‘기계 소인’인지 알아볼 만하고, 고장마다 다른 결을 느꼈어요. 지난날에는 모두 사람손으로 우표를 붙이고 소인을 찍은데다가 인쇄솜씨가 떨어져 ‘우표조차 빛깔이며 무늬나 글씨가 다르기’까지 했습니다. 우표모으기를 하느라 해마다 ‘우표목록’을 장만했어요. 《표준 한국우표목록》처럼 오랜 우표목록을 헌책집에서 찾아내면 무척 반가웠습니다. 참 작은 종잇조각인 우표이지만, 이야기를 띄우고 조촐한 살림자취를 남겨요. 2020년으로 접어들어 사라지는 우체국이 생깁니다. 택배한테 밀려 돈이 안 된다는데, 우체국만 우표를 빚을 수 있는 만큼, 모든 우체국이 다 다른 우표를 새롭게 선보여 글월 주고받는 보람을 퍼뜨리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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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3


《소케트군 1》

 김성환 글·그림

 고려가

 1988.3.30.



  국민학교를 다닐 적에 신문을 날마다 들췄습니다. 까맣게 한자로 덮은 신문이라 하더라도 귀퉁이에 네칸만화가 깃들었거든요. 왜 신문에 네칸만화가 깃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글만 빼곡하기보다는 느긋하게 그림으로 이야기를 여미어 보이는 길이란 무척 사랑스럽지 싶어요. 길디길게 늘어뜨리는 말이 아닌, 그림 한 칸으로 오히려 깊으며 너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거든요. 다만 어린이신문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고, 어른신문을 뒤져서 어디에 네칸만화가 나오는가를 엿보았어요. 어쩌다가 만화가 없는 날이면 “아, 무슨 신문이 이래!” 하면서 골이 났어요. 살림이 넉넉한 몇몇 동무는 어른신문 아닌 어린이신문을 보더군요. 이 동무네에 놀러가고서 알았어요. 이때 어린이신문에 깃든 만화를 하나하나 챙겨 읽으면서 ‘이 재미있는 만화가 가득한 어린이신문을 지겹다고 안 보고 구석에 밀어놓는다고?’ 하고 생각했어요. 1998년에 서울 이문동 헌책집 〈신고서점〉에서 《소케트군 1∼5》 꾸러미를 만났습니다. 어릴 적에 보기 어렵던, 어쩌다 겨우 한두 자락 빌려서 보던, 풋풋한 네칸만화를 한자리에 모은 만화책은 몹시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스라한 예전 살림·어린이·마을·골목·어른이 아기자기하게 얼크러지면서 수수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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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05


《우리말 말수 사용의 잦기 조사》

 문교부 엮음

 문교부

 1956(4289).12.31.



  2001년 1월부터 ‘국어사전 새로 쓰는 편집장’으로 일한다는 얘기를 들은 헌책집지기님은 “그럼 이런 책도 이바지할까?”나 “이런 책은 보셨소?”나 “이런 책 아는가요?” 하고 늘 물어보셨어요. “예전에 산 책이지만 하나 더 있으면 좋겠네요.”나 “오늘 처음 봤어요.” 하면 다들 반기는 낯빛, 보람찬 얼굴이셨어요. 어느 날은 서울역 둘레에 있던 〈서울북마트〉 지기님이 “종규 씨라면 벌써 찾아내셨을는지 모르지만, 이런 책이 있는데요.” 하면서 《우리말 말수 사용의 잦기 조사》(1956)하고 《우리말에 쓰인 글자 사용의 빈도(잦기) 조사》(1955)를 보여주셨습니다. ‘語彙 使用 頻度 調査’라 하면서 꼭 ‘1000책만 박아 찍음’을 밝힌 말꾸러미입니다. 사람들이 드물게 쓴대서 사전에서 덜어낼 까닭이 없는데요, ‘글로 옮긴 낱말’이 어느 만큼 쓰였는가를 1950년대 첫머리에 두루 살핀 적이 있다니 놀라웠어요. 이 말꾸러미를 찾아낸 이듬해인 2002년에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를 선보였습니다. 나라에서 거의 쉰 해 만에 엮은 말꾸러미이지요. 얼추 석 달쯤 들여서 두 꾸러미에 나오는 ‘다른 잦기’를 손으로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바탕말(기본어휘)’을 어떻게 뽑으면 좋을까를 어림하였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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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325


《이서지풍속화집, 정겨운 시절 이야기 6》

 이서지 그림

 선바위아트

 2002.3.8.



  제가 어린 날을 보낸 마을은 다섯 겹으로 올린 집이 높다랬습니다. 두 겹으로 올린 집조차 드물 만큼 어깨동무하는 마을이요 골목이었습니다. 곳곳에 빈터랑 모래밭 놀이터가 있었어요. 자동차는 드물고 걸어서 오가는 사람이 수두룩했습니다. 어린이는 뛰거나 달렸고, 어른은 볕바라기나 그늘바라기로 나란히 앉아 수다꽃을 피웠어요. 늘 바라보고 같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러했기에 버스나 전철을 한참 달려서 찾아가는 커다란 작은아버지네에서는 ‘여기도 사람이 사나? 사람은 안 보이고 자동차하고 높다른 집만 보이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꾸로 작은아버지랑 그집 동생들은 제가 사는 마을이나 골목이 낯설었을 테지요. 《이서지풍속화집, 정겨운 시절 이야기 6》에 나오는 모습 가운데 제가 어릴 적에 본 모습은 하나도 없다시피 합니다. 1934년에 충북 청주에서 나고 자란 이서지 님은 어릴 적에 늘 바라보고 스스로 살아낸 모습을 가만히 떠올리며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1970∼80년대가 되면 겨레옷을 입은 사람은 찾아볼 길 없고, 1950∼60년대에도 겨레옷이며 겨레살림은 가뭇없이 사라지고서 공업화·경제개발·새마을 물결이 출렁였습니다. 이제 그림으로만 남은, 웅성웅성 옹기종기 왁자지껄 수더분한 마을빛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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