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6.19.

숨은책 1056


《시사만평 2호》

 이명숙 엮음

 사시평론사

 1990.2.1.



  낱말책을 뒤적이는 한자말 ‘시사’가 열여섯 가지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세 가지는 쓰지만 열세 가지는 아예 쓸 일이 없습니다. 《시사만평 2호》라는 작은책에 붙은 ‘시사(時事)’입니다. 요즈음에도 ‘시사만평’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데, 거의 ‘정치·사회’를 그림감으로 삼습니다. “크게 벌어진 일”은 으레 나라지기나 벼슬아치하고 얽힙니다. 가만히 본다면 ‘정치·사회를 비꼬면서 속눈을 틔우’려는 붓끝일 테지만, 곰곰이 다시 본다면 ‘정치·사회에 파묻히고 비꼼붓에 사로잡혀서 그만 우리 보금자리·마을·터전·들숲메바다는 모조리 잊거나 등지’려는 붓끝과 같습니다. 모든 ‘시사만평’은 으레 날마다 나오는데, 날마다 이 붓끝을 펴려고 ‘새뜸(신문)’을 뒤적입니다. 몸소(직접경험) 부대끼거나 찾아보는 붓끝이 아닌, 거쳐서(간접경험) 얻은 몇 가지 조각을 잇는 얼거리예요. 또한 모든 붓끝이 서울에 쏠립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나라일(정치·사회)을 꾸린다고 여기느라 온통 서울 목소리인데, 이러다 보니 시골에서 터지는 말썽거리는 아예 눈감거나 놓치거나 흘리기 일쑤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새롭게 살림을 가꾸고 사랑으로 삶을 짓는 길을 붓끝으로 안 담거나 못 담습니다. ‘싸워서 없앨 놈’만 다루려고 한다면 오히려 얕지 않을까요? ‘살면서 풀 이야기’를 다뤄야 비로소 참다이 ‘살림붓(시사만평)’이지 않을까요?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수다꽃, 내멋대로 65 걸으면서 쓴다



  나는 이웃을 만날 적에 미리 옮겨적은 노래(시)를 건네곤 한다. 내가 건네는 노래종이(시를 적은 종이)를 받는 분은 곧잘 “글씨가 참 정갈하네요” 하고 말씀해 주시는데, 나는 자리맡에 앉아서 손글씨를 쓰는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나는 자리맡에 앉을 적에는 ‘낱말책 새로쓰기’로 거의 온하루를 보낸다. 손글씨는 시골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저잣마실이나 나래터(우체국)를 다녀오는 길이라든지, 먼고을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시외버스를 타고서 다녀오는 길에 쓴다.


  ‘버스에서 책읽기’는 열일곱 살 때부터 했다. 열일곱 살 여름에 우리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옮기는 바람에, 늘 걸어서 오가는 배움터를 이때부터 버스를 타야만 오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도 40분 남짓 걸렸는데, 처음 하루이틀은 길을 익히느라 오직 바깥만 바라보았다면, 길눈을 익힌 뒤에는 책을 읽었다. 1991년 인천 연수동은 이제 막 삽질을 하던 무렵이라 길이 어마어마하게 나빴고, “이런 길을 다니다가는 버스가 망가지겠구나” 싶도록 흔들리고 덜컹이는 흙길(비포장도로)을 오르내렸다. 동무들은 “야, 넌 어떻게 이런 버스에서 책을 읽어? 이런 버스에서 영단어를 어떻게 외워? 이런 버스에서 ‘수학 정석’을 푼다고?” 하면서 놀라지만, 나는 동무들한테 이렇게 대꾸했다. “이런 덜컹버스에서는 책을 안 읽거나 수학문제를 풀지 않거나 영단어를 외우지 않으면 오히려 멀미가 나. 책을 읽고 수학문제를 풀고 원서(영어책)를 읽어야 마음을 다스리면서 멀미가 안 나.”


  2008년에 큰아이를 낳으면서 ‘버스에서 책읽기’를 멈췄다. 아기가 있으니 아기를 보면서 아기랑 놀고, 아기한테 끝없이 노래를 들려주고 함께 춤을 추었다. 큰아이가 2009년부터 한글을 익히겠다며 아버지한테 달라붙느라 2009년부터 큰아이한테 읽힐 노래(시)를 썼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버스와 길에서 노래를 쓰고, 버스와 길에서 읽히고, 버스와 길에서 가락을 입혀서 읊었다.


  큰아이는 혼자 마음껏 걸을 수 있던 2010년 무렵부터 ‘걸으며 책읽기’를 했다. 나는 큰아이 곁에서 ‘걸으며 사진찍기’하고 ‘걸으며 책읽기’를 나란히 했다. 다만, 나는 1991년뿐 아니라 1982년부터 늘 큼지막하고 묵직한 등짐을 짊어진 채 걸었고, 버스를 탔고, 버스에서 책읽기를 했고, 걸으면서 책읽기를 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 사이에 나보다 걸음이 빠른 사람을 꼭 하루 스쳤다. 1988∼2005년 사이에 나보다 걸음이 빠른 사람을 새로 한 사람 스쳤다. 2006∼2025년 사이를 사는 동안, 나보다 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우리집 작은아이가 있다. 다만, 나보다 걸음이 빠른 세 사람은 등짐을 짊어지지 않은 맨몸일 뿐이다. 나는 맨몸으로 걸어다닌 일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 늘 앞뒤로 잔뜩 짊어지며 걷는다.


  2006년 무렵이었지 싶은데, 어느 이웃님이 “최종규 씨가 얼마나 빨리 걷는지 궁금해서요, 등짐을 벗고서 같이 걷기를 겨루면 어떨까요?” 하고 여쭈었다. “네? 왜 겨뤄야 해요? 저는 그저 길에서 하루를 흘리기 싫어서 그저 신나게 걸을 뿐인데요.” “그래도, 등짐을 푼 맨몸으로 같이 걸어 봐요.” 열 해에 하루조차 거의 없을, 아니 쉰 해를 살며 등짐 없이 걸어 본 일이란 다섯손가락에 꼽을 만큼 없을 일을, 어느 날 겪어 보았다. 그런데 등짐이 없이 맨몸으로 걷자니, 너무 힘들더라. 이미 나는 무게를 잔뜩 이고 진 몸에 맞게 팔다리를 놀리는 매무새에 익숙한 터라, 아무 짐이 없이 빨리 걸어가기란 오히려 너무 어렵더라. 몇 걸음 떼다가 그만두었다.


  충북 음성 생극면 버스나루에서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까지 8킬로미터 즈음이다. 생극 버스나루에서 무너미마을까지는 오르막이다. 이 오르막을 2003∼2007년에 50분∼70분 사이로 걸었다. 늘 등짐차림이었다. 무너미마을에서 생극 버스나루는 내리막이다. 이 내리막을 두바퀴로 달릴 적에 4분∼7분 사이로 갈랐고, 거꾸로 오르막일 적에는 15분∼24분 걸렸다.


  인천 배다리(창영동)에서 서울 합정나루까지 32킬로미터 즈음 나오는 듯싶은데, 서울과 인천에서 살던 무렵에 이 길을 두바퀴로 50∼70분 사이로 달렸다. 걸으면 두 시간 반이 넘었다. 어떤 분은 말이 되느냐고도 묻지만, 왜 말이 안 될까? 예전에 이 길을 달리거나 걸을 적에는 언제나 때(시간)를 쟀다. 달리거나 걷고서 킬로미터도 쟀다. 이제는 구태여 이런 짓을 안 하지만, 한때 두바퀴에 때바늘(속도계)를 달고서 사람들한테 보여주기도 했다. 두바퀴에 붙인 때바늘은 길에서 쇳덩이(자동차)가 나를 치고서 달아난 탓에 조각나서 사라졌다.


  요즈음 두바퀴를 달리면서 어림해 보니 24∼28킬로미터로 느릿느릿 밟는구나 싶다. 더구나 요새는 예전처럼 안 걷는다. 요새는 ‘걷는읽기’하고 ‘걷는쓰기’를 한다. 그렇지만 내가 ‘걷는읽기’하고 ‘걷는쓰기’를 하더라도 둘레에 나란히 걷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더라. 서울·부산·인천으로 마실을 가면, 쇳길(전철)을 갈아탈 적에도 걷는읽기하고 걷는쓰기를 하는데, 나는 으레 디딤돌(계단)로만 오르내린다. 디딤돌을 오르내릴 적에도 걷는읽기하고 걷는쓰기를 한다. 이미 이런 매무새는 1991년부터 붙인 터라, 등에 묵직하게 책짐을 짊어지고서도 꽤 빠르게 디딤돌을 오르내리면서 읽고 쓴다.


  모든 사람은 모름지기 ‘느리’지 않다.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었을 뿐 아니라, 우리말글 밑동을 처음으로 닦은 주시경 님이 있는데, 주시경 님이 새길(신학문)을 배울 적에, 서울에서 인천 싸리재(중구 답동·경동)까지 날마다 걸어서 오갔다고 했다. 이오덕 님이 남긴 글을 보면, 경상북도 멧골마을 아이들은 아침저녁으로 멧길을 네 시간 남짓 걸어서 오가기 일쑤였다. 우리는 구태여 빨리걷기를 해야 할 까닭이 없다만, 고작 쉰 해 앞서만 해도 “누구나 꽤 빨리 걸어서 길을 오갔다”고 할 수 있다. 늘 걷는 사람은 ‘걷기’가 그다지 느리지 않은 일인 줄 안다. 오히려 늘 걷고 오래 걷는 동안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생각을 가다듬고 몸을 북돋우는 줄 알게 마련이다.


  아기수레를 굳이 써야 할 까닭이 없다. 아기를 안고 업고 걸리면 된다. 이따금 짐을 쇠(자동차)한테 맡길 수 있되, 언제나 스스로 짊어지고서 걸어다니면, 우리 몸은 오래오래 한결같이 튼튼하면서 빛난다고 느낀다. 무엇보다도, 등짐으로 걸어다니면 이동안 책읽기와 글쓰기를 실컷 누린다. 등짐걷기를 하면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한다면, ‘껍데기 아닌 속읽기’에다가 ‘글치레 아닌 삶쓰기’를 스스럼없이 하게 마련이다. 반듯한 책마루(서재)가 있어야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는다. 부엌에서 쓰고, 마당에서 쓰고, 길에서 쓰면 된다.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달래되, 다른 손으로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다. 걸으면서 읽고 쓰는 이웃이 한 사람씩 늘어난다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별이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본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14.

숨은책 968


《百濟 百濟人 百濟文化》

 박종숙 글

 지문사

 1988.8.10.



  제가 삶터로 고른 전라남도 고흥은 제법 오래도록 ‘마한·백제’라는 나라가 있던 곳입니다. 마을 분들이 삽차를 쓰지 않고 삽을 써서 땅을 파도 웬만한 곳에서 옛살림(유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곳뿐 아니라 전라남북도 웬만한 시골에서는 옛살림이 나오면 바로 삽으로 깨부숩니다. 옛살림이 나온 땅은 논밭으로 못 일구고 팔지도 못 하거든요. 《百濟 百濟人 百濟文化》를 읽었습니다. 작은아이한테도 읽히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지난날 일본이 이 땅을 차지하는 동안에 우리 옛책을 남몰래 숱하게 빼앗겼다고 하는데, 빼앗긴 옛책도 많지만, 박살난 옛살림도 많고, 1945년 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스스로 없앤 옛살림도 수두룩합니다. 우리는 우리 옛자취를 돌아볼 만하지 않아요. 몇 안 되는 부스러기로 끼워맞출 수밖에 없으며, 이마저도 대단히 버겁습니다. 스스로 잊고 잃어서 사라진 살림길은 되찾지 못 합니다. 더구나 백제뿐 아니라 고구려나 가야나 신라 적에 살던 수수한 논밭지기는 어떤 집에서 어떤 옷차림에 어떤 밥살림을 꾸렸는지 아예 못 짚는 판입니다. 먼발치가 아닌 오늘 2025년을 짚어 봐요. 2025년 ‘여느사람(일반인) 밥옷집 살림살이’를 무어라 책에 남길 만할까요? 마을과 골목과 고샅을 이룬 작은사람은 이미 ‘소수자’조차 아닌 ‘사라졌거나 사라질 귀퉁이’입니다. 그리고 붓을 쥔 이들 가운데 마을사람은 없다시피 해요. 마을에서 안 살면서 ‘취재’만 하고 ‘기록’만 들추려 한다면, 마을자취도 삶자취도 옛자취도 늘 맴돌이에서 그칩니다. 오늘살림을 잊는 나라에는 어제살림도 모레살림도 아득합니다. 스스로 빚을 잊은 사람한테서는 빚더미만 쌓일 뿐, 별빛도 숲빛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ㅍㄹㄴ


《百濟 百濟人 百濟文化》(박종숙, 지문사, 1988)


그들이 이용했을 海路에 대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海路

→ 그들이 탔을 바닷길은 적어도 세 가지

→ 그들이 다녔을 뱃길은 적어도 세 가지

34쪽


고고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또 체질학적으로 고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지배는 語不成說임이 밝혀지고 있다

→ 옛길살림으로 말밭으로 몸으로 옛날 일본이 이 땅을 다스릴 수 없는 줄 밝혔다

→ 오래빛으로 낱말꽃으로 바탕으로 옛 일본이 이 땅을 못 다스린 줄 드러났다

48쪽


백제의 國敎는

→ 백제 나라길은

→ 백제 나라빛은

→ 백제 나라밑은

97쪽


지금 전통 옷이라고 하는 한복과 똑같은

→ 오늘 겨레옷이라고 하는 한옷과 똑같은

→ 오즘 나라옷이라고 하는 한옷과 똑같은

124쪽


한복과 한식 그리고 한옥이 다 백제의 의복와 음식 그리고 가옥이라는 뿌리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 한옷과 한밥과 한집이 다 백제 옷과 밥과 집이라는 뿌리이지만

→ 한옷과 한밥과 한집이 모두 백제라는 뿌리에서 나왔지만

→ 한옷과 한밥과 한집은 백제에서 비롯했지만

124쪽


누에를 치고 목화를 재배했다

→ 누에를 치고 솜꽃을 길렀다

→ 누에를 치고 솜을 가꿨다

126쪽


천으로 만든 관을 썼는데

→ 천으로 짠 갓을 썼는데

129쪽


특히 生食이나 自然食은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 그냥밥이나 숲밥이기에 튼튼하다고 한다

→ 날밥이나 푸른밥이라서 튼튼몸이라고 한다

136쪽


분명 병자에게 이로운 식이요법임에 틀림없다

→ 틀림없이 앓는 사람한테 이바지할 밥길이다

→ 아픈 사람을 도울 밥살림이 틀림없다

136쪽


함께 火食도 했으니

→ 함께 불밥도 했으니

→ 함께 굽기도 했으니

→ 함께 익혀 먹었으니

136쪽


당시 중국과 거의 같은 세시풍습이 있었다

→ 그때 중국과 거의 같은 놀이꽃이 있었다

→ 그무렵 중국과 거의 같은 밑길이 있었다

→ 그즈음 중국과 거의 같은 살림길이 있었다

154쪽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古文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 깊이 알려면 중국 오래글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 바탕을 살피려면 중국 옛글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16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14.

숨은책 1059


《표준 새 국어사전》

 한갑수 엮음

 대일서관

 1979.10.5.



  1979년에 나온 《표준 새 국어사전》을 펴면, 앞뒤 속종이에 “박 정희 대통령, 새마을 노래”를 싣습니다. “한글학자 한갑수”라고 하되, 책자취에 “세종대왕의 앉아있는 동상”을 실을 뿐, ‘한글’이란 이름을 짓고 우리말틀을 세운 주시경이라는 사람을 놓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싶습니다. 1957∼60년에 “이기붕 비서실장”을 맡으면서 “박정희 곁에 있던 글바치”였던 터라, 높은 임금님을 모시듯 높은 우두머리를 섬기는 길이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표준 새 국어사전》을 가만히 보면 일본 한자말이나 뜬금없는 영어가 잔뜩 있어요. ‘후박나무’는 우리 나무가 아닌 일본 나무로 풀이를 합니다. 척 보아도 일본 낱말책을 슬쩍 베끼거나 훔친 티가 곳곳에 흐릅니다. 한갑수 씨는 ‘바른말 고운말’이라는 이름을 붙인 풀그림을 서른일곱 해나 꾸렸다고 합니다만, 이분이 외친 ‘바른말’은 바로 ‘새마을 ·바르게살기’하고 나란히 걸은 ‘바른’일 뿐입니다. 쓸쓸한 뒷낯과 발자국입니다.


가든(Garden) : 뜰, 정원

가든골프(Garden glfo) : 정원에서 하는 규모가 작은 골프

후박나무 : 1. 목련과에 딸린 교목. 산에 나며 잎이 크고 직경이 10센티미터 정도의 큰 자홍색의 꽃이 향내를 풍기며 사오월 경 핌. 그 나무는 약재, 그릇을 만드는 데 씀. 2. 녹나무과에 딸린 상록 교목. 제주도, 울릉도 등지에 저절로 남.


https://blog.naver.com/ecopiagp/223546828788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5.14.

숨은책 1060


《안전운전 (신규자교재)》

 경찰청 감수

 도로교통안전협회

 1994.7.22.



  예전에는 서울이며 큰고장에서 골목이나 거님길에 쇠(자가용)를 댄 사람이 잔뜩 있었다면, 요사이는 꽤 줄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바로 알리고 곧장 값(벌금)을 물리기에 확 줄어들 만합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바로 알려도 값을 안 물리고, 어쩌다가 값을 물린다면 “언놈이 날 꼰질렀어?” 하면서 누가 알렸는지 찾아내어 괴롭히려고 합니다. 시골살이를 꾀하며 서울을 떠난 분 가운데에는 “그냥 걷거나 시골버스를 느긋이 타려는” 이웃이 꽤 있지만, 막상 걷거나 “아예 안 오는 시골버스”를 기다리다 못해서 다시 쇠를 모는 분이 많더군요. 가난하거나 나이든 할매할배는 걷거나 시골버스를 타는데, 정작 시골 벼슬꾼(군수·국회의원·군의원·교육감)은 이 대목을 아예 안 쳐다봅니다. 1994년에 나온 《안전운전 (신규자교재)》이라는 꾸러미를 헌책집에서 구경했습니다. 이런 꾸러미가 예전부터 나왔구나 싶어서 놀랍고, 요즘에도 이런 꾸러미를 “쇠를 새로 뽑는 모두”한테 나눠줄는지, 또는 종이(면허증)를 따는 모든 이한테 읽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고 얇은 꾸러미만 제대로 익혀도 모든 사람이 아늑하고 즐겁게 달리거나 어울릴 테니까요. 그런데 1994년치 꾸러미는 부릉순이(여성 운전자)를 얕보거나 노리개처럼 다루는 그림이 꽤 깃듭니다. 고작 서른 해 앞서만 해도 우리 눈높이는 이렇게 낮았습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