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들을 재우다가



  어제 아이들을 재우는데 작은아이는 곧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는 숨소리 없이 조용하다. 문득 무엇인가 느끼고 두 아이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노래를 한 가락 부른다. 이마 쓰다듬기와 머리 쓸어넘기기를 그대로 한다. 작은아이는 깊이 꿈나라로 갔다. 그러나 큰아이는 아직 아니다. 큰아이가 깊이 꿈나라로 갈 적에는 으레 몸을 살짝 비틀어 옆으로 눕는다. 가만히 있는 모양새로 보아 하니, 아버지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손길을 즐기는 듯하다. 한참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다가 살며시 입김을 얼굴에 호 분다. 실눈을 뜨고 곁눈을 보던 큰아이가 “에그!” 하고 놀라면서 웃는다. “자, 이제는 자야지. 몸이 힘드니까. 꿈에서 더 신나게 놀고 아침에 즐겁게 일어나자.” 큰아이는 이윽고 몸을 옆으로 돌려누운 뒤 깊이 잠든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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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까치발 안 해도 돼



  얼마 앞서까지 키가 안 닿아 까치발을 해도 마을 어귀 빨래터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없던 산들보라인데, 이제 제법 키가 자라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누나와 나란히 빨래터 울타리에 달라붙어서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다. 넘겨보기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동안 볼 수 없던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건너편에 딱히 대단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누나하고 나란히 서니 기쁘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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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어린이 설거지



  일곱 살 사름벼리가 오늘 아침에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작은걸상을 개수대 앞에 받쳐서 올라간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물을 살살 틀어 졸졸 흐르게 한 뒤 천천히 꼼꼼히 수세미질을 한다. 일곱 살 사름벼리가 설거지를 마치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 “벼리가 아버지 큰 잔도 설거지 했어요!” 하고 외친다. 큰 유리잔을 살핀다. 물때가 남지 않게 잘 헹구었다. 용하구나.


  나도 어릴 적에 곧잘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할 일이 많으면 “나와 봐. 엄마가 할게.” 하면서 부엌일을 거들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어린 내가 설거지를 하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 어린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설 때에는 ‘일하기’가 아닌 ‘놀이하기’이다. 물을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그릇을 곁들여 논다.


  놀면서 설거지를 익힌다. 놀면서 빨래를 익힌다. 놀면서 걸레질과 비질을 익힌다. 놀면서 밥하기와 도마질을 익힌다. 놀면서 호미질과 낫질을 익힌다. 놀면서 가위질과 풀바르기를 익히고, 놀면서 사랑과 꿈을 익힌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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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통을 처마 밑으로



  지난해에 오줌통을 마루 아닌 처마 밑으로 옮기려 했으나 잘 안 되었다. 엊그제까지 오줌통은 마루 한쪽에 놓았다. 이제 이 오줌통은 섬돌 옆 처마 밑에 둔다. 이틀째인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섬돌로 내려선 뒤 처마 밑에 있는 오줌통에 똥이랑 오줌을 잘 눈다. 시골집이니 뒷간은 마땅히 집안에 없다. 마당 한쪽에 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잘 컸다. 새벽이든 밤이든 씩씩하게 바깥에서 쉬를 눈다.


  아이들도 곧 알 테지. 깜깜한 밤이나 희뿌윰한 새벽에 마당으로 내려서서 쉬를 누면, 바람맛이 다르고 바람결이 새로운 줄 느낄 테지. 마루를 한결 넓게 쓸 수 있겠네. 마루에 있는 자질구레한 짐도 마저 치워야겠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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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인형을 보며



  큰아이가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오려서 만든 종이인형이 밥상 귀퉁이에 앉아서 조용히 쉰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밥을 먹을 무렵 큰아이가 밥상에 함께 올려놓았구나. 밥을 다 먹고 난 뒤 큰아이는 다른 놀이에 빠져들면서 종이인형을 잊었네.


  큰아이는 처음에는 종이에 그림을 그린 인형으로 놀았고, 다음에는 가위로 오렸으며, 이제는 팔다리와 허리를 접어서 논다. 큰아이는 앞으로 종이인형을 어떤 모양으로 새롭게 만들까? 큰아이가 이제껏 만든 종이인형이 수북하게 많다. 오리고 만들고 새로 그리고 또 오리면서 날마다 멋진 인형 동무들이 태어난다. 4347.9.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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