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6] 여기, 시골에서 놀아요

― 놀이터가 삶터가 될 때에



  자동차가 드물었을 적에,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아이들은 마음껏 뛰면서 놀았습니다. 자동차가 없었을 적에, 도시라는 곳은 따로 없이 서울도 똑같은 시골이었고, 이때에는 어디에서나 모든 아이들이 신나게 뛰면서 놀았습니다.


  자동차가 아주 많다 못해 넘치는 요즈음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아이들이 뛰놀기 어렵습니다. 시골은 도시와 대면 자동차가 없다 여길 만하지만, 경운기와 트랙터와 콤바인이 쉴새없이 지나다니고, 오토바이가 꽤 많습니다.


  얌전히 앉아서 놀 수 없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온몸을 개구지게 놀려야 튼튼하게 자랍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이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튼튼하게 자라면서 씩씩하고 아름다운 넋을 가꿀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집에서고 마당에서고 길에서고 언제나 뛰거나 달립니다. 그야말로 쉬지 않고 뛰거나 달립니다. 기운이 늘 넘치고, 기운이 다하도록 놀았으면 새로운 기운을 뽑아내어 놉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치워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자동차를 끌고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을 섣불리 자동차에 태우지 말고,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리도록 하기를 바랍니다. 어른들도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리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고샅이나 골목에서 일거리를 찾고 하루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까지 가야 하는 곳은 어른한테도 안 알맞은 일터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녀야 여행이나 나들이가 아닙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에서 즐거운 숨결과 노래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숲을 찾지 말고, 우리 보금자리와 둘레가 아름다운 숲이 되도록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극장이나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어야 합니다. 고속도로나 발전소를 새로 닦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무를 보듬어 숲을 돌보아야 합니다. 궁궐을 짓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지 않던 지난날에는 사람들 누구나 나무로 집을 짓고 땔감으로 삼았어도 나무가 모자랄 일이 없었고, 숲이 망가질 일이 없었습니다. 큰 건물을 세우고 고속도로와 발전소와 온갖 문화시설을 만드는 오늘날에는 기름만 뽑아서 쓰지만 나무가 아주 빠르게 사라지고 숲이 허물어집니다.


  우리가 두 다리로 딛고 선 어느 곳이나 시골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이도 어른도 바로 오늘 이곳에서 놀고 일하며 쉴 수 있기를 꿈꿉니다. 놀이터가 삶터로 되고, 삶터가 일터인 나라를 모든 사람이 누리기를 꿈꿉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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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러미 선물



  오늘 아침과 낮에 도서관에 가서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해야 했기에, 새벽 일찍 밥을 끓였고, 아침 일곱 시 즈음부터 배고프다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여덟 시 살짝 넘어서 밥상을 차려서 먹인다. 이러구러 집일을 마치고 나서 아침 열 시 반 즈음 도서관으로 나와 책걸상을 맞추면서 자리를 잡는다. 비가 샌 곳은 걸레질을 해서 바닥을 훔친다. ‘이야기 나누는 일’은 세 시 즈음에 마친다. 손님을 모두 떠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손님들이 ‘아이들 주라’면서 빵을 두 꾸러미 선물로 주셨다. 집에 닿아 빵꾸러미를 펼치니 두 아이가 달라붙는다. 작은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면서 빵을 한 조각이라도 더 먹겠다면서 낮잠을 버틴다. 그리고, 낮잠 버티기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아침 열한 시부터 낮 세 시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몸이 좀 고단했을까. 등허리가 결려 자리에 드러누워 허리를 펴려는데 쉬 펴기 어렵다. 빵꾸러미 선물이 아니었으면 오늘 샛밥을 어째 먹였을까 싶다. 다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 손님이었으니 이런 선물을 챙겨 주셨구나 싶기도 하고, 나도 아이들 옆에서 몇 조각 집어먹으면서 새삼스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저녁 여덟 시 이십 분이 되어 겨우 두 아이를 자리에 눕힌다. 작은아이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도 거의 곯아떨어지려 하는데 쉬 잠들려 하지 않다가, 자장노래를 두 가락 뽑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니 느긋하게 꿈나라로 간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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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먹으려고 열매를 딴다



  집에서 얻는 열매를 딴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고운 숨결들과 나누려고 열매를 딴다. 집에서 따는 열매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먹음직스러울 때에 톡 따면 된다. 입에 군침이 돌 적에 톡 따면 된다. 조금 맺혔으면 조금 따고, 넉넉히 맺혔으면 넉넉히 딴다. 신나게 딴다. 웃으면서 딴다. 노래하면서 헹구고, 흥얼흥얼 부엌으로 불러 밥상맡에 둘러앉아 한 점씩 날름날름 집어서 먹는다. 아, 더 먹고 싶다, 하는 소리가 나오면 더 따도 되고, 더 익어야 한다면 이튿날에 따든 며칠 뒤에 따면 된다.


  집집마다 나무 몇 그루씩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집집마다 ‘우리 집 열매나무’를 건사하면서, 이 가울에 열매 하나 톡 따서 오순도순 나누어 먹는 즐거움과 사랑을 누릴 수 있기를 빈다. 스스로 나무를 아끼고 스스로 나무를 돌볼 적에 삶이 새롭게 거듭나리라 느낀다. 4347.10.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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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이 되자



  아마 열다섯 살이었지 싶다. 이무렵부터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은 모두 거짓말투성이라고 깨달았지 싶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이렇게 깨닫기만 할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비로소 글쓰기를 할 무렵, 나 스스로 한 가지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이 모두 거짓말투성이라 한다면, 덧없고 부질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가득 채워 애먼 나무를 괴롭히는 짓만 일삼는다면, 내가 스스로 신문이 되자고 생각한다.


  신문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신문이 될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글이나 말’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신문이 되자’ 하고 생각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이야기를 글로 찬찬히 갈무리하여 날마다 꾸준하게 띄울 수 있으면, ‘사람을 바보나 종이 되도록 가두는 굴레’인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 이웃과 동무부터 천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느꼈다.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지어서 배우고, 내가 배운 내 삶을 이웃과 동무한테 보여주는 동안, 내 이웃과 동무는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짓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느꼈다.


  참말 내 꿈대로 나는 천천히 신문이 된다. 종이신문도 누리신문도 아닌 ‘이야기신문’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지으려 하는 이웃이나 동무라면, 내가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으리라 본다.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은 이웃과 동무는, 또 이녁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겠지.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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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뒷모습



  읍내마실을 갔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앞에서 신나게 달린다. 뒤에서 신나게 좇다가 문득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집에서 조금 얻고 저 집에서 조금 얻은 옷을 입은 아이들인데, 큰아이 바지는 아버지가 모처럼 사 주어서 입혔고, 작은아이 가방은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부산에서 사 준 가방인데 이제 큰아이한테 작아서 작은아이가 물려받았다. 큰아이가 발에 꿴 신은 문을 닫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뒤 잘 빨고 말려서 신겼고, 작은아이 벌레신은 곁님이 새로 장만해 주었는데, 작은아이가 골짝물에 담가서 반짝반짝 나오던 불이 꺼지고 말았다.


  가만히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이들 옷차림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깨닫는다.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게 입히면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은 아이들 마음이고, 아이들이 나한테서 물려받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니까.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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