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어렴풋하게 본



  어릴 적에 어머니 모습이 어떠했는지 가만히 떠올린다. 날마다 끼니를 챙겨서 차리는 어머니는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에 어떻게 쉬셨는지 가만히 헤아린다. 어머니는 두 다리 뻗고 등허리를 바닥에 붙일 때까지 쉬는 일이 없이 지내신다. 어머니가 이렇게 일하면 참 힘드시겠네 하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몸이 얼마나 힘든 노릇인지 헤아리거나 짚지는 못했다.


  오늘 나는 어머니가 예전에 서던 그 자리에 서서 밥을 짓는다. 졸립건 힘들건 고단하건 바쁘건 아무튼 밥을 짓는다. 밥을 짓는 동안 온힘을 기울여서 짓는다.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밥상에 밥을 다 차리고 나면 내 마음은 슬그머니 조용히 눕고 싶다. 날마다 문득문득 돌아본다. 어릴 적에 본 어머니 모습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아마 그무렵 어머니는 오늘 나보다 훨씬 고단하면서 등허리가 결렸을 테지.


  어머니가 일하실 적에 뒤에서 어깨를 곧잘 주무르곤 했는데, 어머니 어깨는 늘 딱딱했다. 내 어깨는 어떠한가. 내 어깨도 딱딱한가.


  밥상에 모두 다 차려도 수저는 잘 안 놓는다. 아마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버릇이지 싶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혼자 다 차리셔도 수저만큼은 안 놓으시곤 했다. 아버지가 물으면 “깜빡했지요.” 하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일부러 그러시지는 않았을까. 함께 밥 먹는 한집 사람이라면 수저쯤은 스스로 놓으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수저 놓기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늘 알뜰히 챙겨서 올리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밥상에 수저를 안 놓으면 나도 수저를 안 놓고 가만히 지켜본다. 오늘 아침에 큰아이가 나한테 묻는다. “수저 어디 있어요?” “수저는 네가 좀 놓으면 안 될까?” “네.” 큰아이한테 말하고 나서 조금 더 부드러우면서 재미나게 말하면 한결 나았을 텐데 하고 깨닫는다. ‘밥은 아버지가 차렸으니 수저는 네가 놓으렴’이라든지 ‘응, 네가 수저를 놓으면 되겠네’쯤 말한다면 내 마음도 훨씬 따사로울 수 있으리라. 4347.9.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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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지내는 어버이



  어제 낮에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온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큰아이도 많이 졸린 눈치이지만 낮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 몸을 씻고 빨래를 한 뒤 나도 드러눕고 싶었지만, 작은아이가 달게 자고 나서 일어날 즈음 배고프다 칭얼거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롭게 기운을 내어 밥을 끓인다. 작은아이는 밥이 한창 끓어 익을 무렵 깬다. 이리하여, 돼지고기튀김을 굽고 국을 데우는데, 큰아이가 떡볶이 노래를 불러 부랴부랴 떡을 불려 떡볶이를 끓인다. 등허리와 다리가 쩍쩍 결리는 소리를 낸다. 몸이 많이 고단한가 보네 하고 생각하다가, 씩씩하게 속으로 노래하면서 밥을 마저 차려서 밥상에 올린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에 곯아떨어졌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그래 곧 아침이고, 아침이 되면 새끼 제비들은 밥 달라고 공알공알 노래하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엊저녁에 먹고 남긴 밥이 있어 새로 짓기 어설프다. 그러면, 엊저녁 남은 밥이랑 떡을 버무려 떡볶이밥을 할 수 있겠다고 느낀다. 여기에 미역국을 곁들일까. 마른미역을 국냄비에 넣고 물을 붓는다. 자, 이렇게 했으면 이따 찾아올 아침에 밥을 마련해서 올리는 일은 아주 손쉽지. 나물무침은 밥과 국을 올린 뒤 바로 썰어서 무쳐야 가장 맛나니 그때 하기로 하자. 아침에 밥을 다 먹으면 뒤꼍에 가서 잘 익은 무화과를 따야지.


  여기까지 생각하는데 하품이 길게 나온다. 어서 아이들 사이에 다시 누워야겠다.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아침을 잘 끓여서 먹이리라.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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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일 나서는 새벽밥



  오늘 낮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이야기잔치가 있다. 그곳에 가야 한다. 낮 세 시까지 가는데, 적어도 낮 한 시쯤에는 부산 보수동에 닿아 여러 책방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여러모로 따지니, 우리 마을에서 이웃 봉서마을까지 걸어가면, 그곳에는 새벽 여섯 시 십 분에 지나가는 군내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읍내에 닿은 뒤,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순천에서 부산으로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면 이럭저럭 일찍 닿을 듯하다.


  새벽에 길을 나서야 하기에 새벽밥을 짓는다. 새벽밥을 지으려고 어제는 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한 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쓴 뒤, 새벽 네 시부터 부엌에서 부산을 떤다. 어제 조금 남은 미역국에 콩나물을 넣고 양파를 반 토막 썰어서 된장콩나물국으로 바꾸어 새로 끓인다. 고구마와 감자와 단호박과 달걀을 함께 삶는다. 다섯 시 사십 분에 집을 나설 테니, 꼭 이즈음에 모두 끝마칠 듯하다. 요즈음 우리 집 아이들이 새벽 여섯 시를 살짝 넘으면 일어나서 아침 일곱 시가 안 되었어도 배고프다고 앙앙거리니, 내가 집을 비워도 곁님이 잘 챙겨 주리라 믿는다.


  기지개를 켠다. 몸을 푼다. 가늘디가늘게 걸린 초승달을 바라본다. 고니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헤아린다. 슬슬 가방을 챙겨야겠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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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3] 아이들과 나들이

― 몸을 살리는 하루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닙니다. 나들이란 자가용을 끌고 어느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 아닙니다. 나들이란 ‘쇼핑’도 ‘장보기’도 아닙니다. 나들이란, 말 그대로 우리 집 바깥으로 나가서 살며시 바람을 쐬고는 다시 들어오는 일입니다.


  해가 떨어진 저녁에 혼자 조용히 마당으로 내려서서 별바라기를 하거나 나무바라기를 하면, 작은아이나 큰아이 가운데 한 녀석이 아버지를 알아챕니다. 조용히 저녁빛을 누리면서 저녁내음을 맡으려 했지만, 어느새 아이들한테 둘러싸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작은아이가 “아버지가 깜깜한데, 나간대. 누나야, 얼른 나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기 앞서 마을 한 바퀴를 으레 도니까, 작은아이가 콩콩콩 뛰면서 저녁마실을 하고 싶은가 봐요.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니면서 언제나 느낍니다. 아이들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어디 먼 데를 다녀오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버스이든 기차이든 살짝 타 보기를 바랄 뿐, 오래 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뛰거나 달리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걷기를 바라고, 걷다가 힘들면 어버이 품에 안기거나 업히기를 바라요. 또는, 아무 데나 폭삭 주저앉아서 쉬기를 바랍니다.


  나들이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홀가분하게 다니면 됩니다. 돗자리를 하나 챙겨도 좋고, 물병은 꼭 챙깁니다. 슬금슬금 걷다가 마땅한 풀숲이나 나무그늘이 있으면 즐겁게 앉으면 됩니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파서 쉬겠다고 하더라도, 살짝 앉았다가 일어납니다. 다 쉬었다지요. 그러고는 또 달리고 뛰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어른은 몸을 움직여 일합니다. 아이는 몸을 움직여 놉니다. 어른이나 아이는 모두 즐겁게 움직이면서 몸놀림을 가다듬습니다. 몸놀림이 아름다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잘 놀았다는 뜻입니다. 몸놀림이 부드러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온갖 놀이를 누렸다는 뜻입니다. 몸놀림이 사랑스러운 사람은 어릴 적부터 동무하고 신나게 놀았다는 뜻입니다.


  몸놀림과 함께 손놀림을 헤아려 보셔요. 어릴 적부터 나뭇가지와 돌과 풀과 흙과 모래를 가까이 두면서 늘 만지작거린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손놀림이 멋지거나 야무지거나 곱거나 사랑스러운 어른이 됩니다.


  살가우면서 가벼운 나들이는 언제나 몸을 살립니다. 하하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꽃 피우는 마을 한 바퀴 걷기는 늘 몸을 살찌웁니다.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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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서 아파



  읍내마실을 가려고 마을 어귀로 가는데, 신나게 달리던 사름벼리가 그만 넘어진다. 앞으로 철푸덕 엎어진다. 아이들은 언제나 온몸으로 걷거나 달리니, 한 번 넘어지더라도 그야말로 온몸으로 넘어진다. 대문을 닫고 뒤에서 따라가는데 큰아이가 넘어진 소리를 듣는다. 얼마나 아플까. 그렇지만 달려가서 일으켜세우지 않는다.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도록 지켜본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훨씬 아픈 듯하다. 몸이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니, 앞으로는 넘어질 때마다 더 아프리라. 시골길이 옛날처럼 흙길이라면 모르되, 온통 시멘트바닥이다. 게다가, 시골 길바닥은 채이고 깨지고 깎여서 울퉁불퉁하다. 시멘트바닥이라 하더라도 도시가 시골보다 덜 다칠 만하리라 본다. 시골에서는 시멘트바닥을 깔아도 얇게 깐다. 시늉으로만 깐다고 할까.


  사름벼리야, 아프기는 아프겠지. 그러니까, 아이고 아프네 하고 한 번만 말하고 생각해. 그러고는 아픔은 흘려보내기를 바란다. 네 마음속에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들이를 간다는 즐거움을 담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는 온몸에 즐거운 기운이 새로 솟으면서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다시 힘차게 달리면서 놀 수 있을 테니까. 4347.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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