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자는 동안



  두 아이와 자는 나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는다. 왜냐하면, 이듬해 여름에 셋째가 올 테니까. 이 작은 집에서 세 아이와 지낼는지, 조금이나마 넓은 집을 마련할 수 있을는지 아직 모르지만, 두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 제법 길게 눈을 붙이던 일도 얼마 안 남은 셈이다.


  갓난쟁이를 곁에 누워 재우자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때에는 첫째와 둘째는 어떠할까? 두 아이도 갓난쟁이와 함께 밤에 잠을 깰까?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깊이 잠들까?


  두 아이와 자는 동안 틈틈이 잠을 깬다. 이리저리 뒹군 아이를 바로 눕힌 뒤 이불깃을 여민다. 한 시간에 한 차례쯤 이렇게 한다. 요즈음은 철이 바뀌는 때라,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으면 바로바로 다시 덮어 주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찬바람이 들 테니까.


  스무 살 언저리부터 새벽신문 돌리는 일을 했기에 밤잠을 미루거나 밤에 일어나는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지난 일곱 해 동안 두 아이와 살며 밤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으나, 이때마다 ‘이래서 내가 젊은 날에 그렇게 신나게 신문배달을 했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아이들아 너희 마음껏 자렴. 네 어버이는 너희를 재우느라 밤잠을 이룰 틈이 없지만, 너희가 쑥쑥 자라 스무 살 즈음 되면, 바야흐로 너희 어버이도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꿈나라를 누빌 수 있겠지.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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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노래 (2014.10.2.)



  이웃님한테 보내려고 그림을 그린다. 사진책을 펴내고 사진강의를 하면서 사진길을 걷는 이웃님한테 ‘노래’를 그려서 보내기로 한다. 노래란 무엇일까? 사진이란 무엇일까? 동그라미 하나가 다른 동그라미를 만나고, 동그라미 안쪽에서 온갖 빛깔로 무지개가 드리운다. 물결이 치고, 꽃과 별이 하나둘 돋더니, 어느새 잎이 나는 나무가 자란다. “흐르는 삶이 고스란히 품에 안겨 사진 한 장”이라고 한 마디를 짤막하게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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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5] 함께 자라는 사람들

― 아이를 얼마나 바라보는가



  빨래터와 샘터를 치우러 가자고 하면 두 아이가 모두 신나게 웃으면서 얼른 신을 뀁니다. 그야말로 잰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신과 옷을 갖추고는 “다 됐어요!”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빨래터 치우기는 아주 재미난 놀이인 터라, ‘빨래터 가자’ 하고 한 마디만 꺼내면 모든 일을 아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빨래터 가야겠는데, 마룻바닥에 어지른 소꿉을 치우자’ 하고 말하면 1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장난감을 척척 치웁니다.


  우리 집에서 빨래터까지 꽤 가깝습니다. 너덧 집을 지나면 바로 빨래터입니다. 짧은 길이지만 아이들은 이 길을 춤추면서 걷고, 노래하면서 갑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이기에 아이들 노랫소리는 온 마을로 퍼집니다. 외치듯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온 들로 스밉니다.


  빨래터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들과 숲은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들과 숲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던 어른들 숨결을 함께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어요. 들과 숲은 곡식과 열매와 남새로 사람들을 살찌우고, 들과 숲은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살찌웁니다.


  아이들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으니 나는 늘 아이들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낼 적에는 늘 아이들이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이와 달리 면소재지나 읍내만 가더라도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앞장서서 걷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손을 잡고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싶은데, 때로는 달리기나 뜀뛰기를 하면서 가고 싶은데, 자동차 때문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하는 사회 얼거리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시끄럽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며 이것저것 눈을 홀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바람이 싱그러운 곳에서 아이들이 맑게 웃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무그늘을 누리며 냇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이 맑게 일합니다. 아이가 자랄 만한 데에서 어른이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느긋하게 뛰노는 곳에서 어른이 즐겁게 일합니다. 아이 입에서 노래가 터져나오는 곳에서 어른도 저절로 노래를 터뜨리면서 날마다 잔치를 이룹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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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 숨을 쉬지 못할 적에



  권정생이라는 할배가 숨을 거둔 때가 2007년 봄이다. 나는 2003년 여름부터 2007년 이월까지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고, 이동안 경상도 안동에 몇 차례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 권정생 할배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늘 가슴에 남는 대목은 “나 대신 아파 해 달라”이다. 권정생 할배는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끼운 노란 고무호스를 보여주었다. 오줌을 이렇게 빼내야 한다면서, 이 고무호스를 아침저녁으로 갈아끼우는데 참으로 아프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마흔 해나 하며 살자니 아주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찬찬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때에나 이제에나 거의 없지 싶다. 권정생 할배가 손님들한테 자주 들려준 말, “나 대신 아파 해 달라”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다.


  나는 코로 숨을 잘 못 쉰다. 때때로 코가 잘 뚫려서 숨을 그럭저럭 잘 쉬기도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지내자면 숨쉬기가 갑갑하기 일쑤이다. 어느덧 마흔 해를 이렇게 산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숨을 쉬는 일이 고단하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어 코를 훌쩍이거나 풀지만, 아무리 풀고 풀어도 콧물은 끝없이 나온다. 콧물이 나올 뿐 아니라 코가 꽉 막힌다. 나중에는 골이 아프고 온몸을 비틀어 용을 쓰지만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밤새 코를 풀고 다시 풀기를 여러 시간 하면 아주 깊은 밤에 겨우 한쪽 코가 살짝 뚫려 가늘게 숨을 쉴 수 있다. 이때에 비로소 잠이 든다.


  한 해 내내 숨쉬기가 힘겨운 나날이다 보니, 냄새와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웬만한 일에는 무디거나 무덤덤하게 지내자고 여기곤 한다. 숨을 한 차례 쉬는 일보다 대수로운 일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늘 막히고 갑갑하던 코가 처음으로 뚫린 때는 군대에서이다. 스물한 살 나이에 비로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시골이라기보다 두멧자락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야 했는데, 군대에서는 숨을 쉬는 걱정이 없었다. 다만, 군대에서도 한겨울이나 한여름은 괜찮았으나 봄과 가을은 죽을 노릇이었다. 그래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코가 확 트인다고 깨달았다. 예부터 몸이 나쁜 이들이 시골로 가서 맑은 바람과 밝은 햇볕을 머금으면서 싱그러운 물과 꽃내음과 나무노래를 들으면서 몸을 되살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잘 느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몸이니, 군대라는 데에도 안 가야 했다. 신체검사를 맡은 군의관은 나더러 어떻게 군대에 가려 하느냐며 거꾸로 나한테 따졌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받던 때 군의관더러, 그렇게 잘 알면 그렇게 검사 결과가 나온 대로 하십쇼 하고 말했는데 면제가 아닌 현역을 주었다. 군대를 안 갔다면 내 오늘이 어떤 모습이었을는지 모르겠는데, 군의관이 부정을 저질러 준 탓에 나는 ‘두멧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군대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니 다시 괴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었다. 참말 다들 어떻게 이런 도시에서 같은 바람을 마시면서 살는지 아리송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도시를 떠나지도 못했다. 시골에 아는 사람이 없고, 밑돈도 없었으니까.


  숨을 쉬기 몹시 어려운 몸이기에 ‘몸이 아픈 사람’을 볼 때면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몸이 아플 적에는 작게 다쳤건 크게 다쳤건 똑같이 아프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일이란 없다. 그런데 나는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한다. ‘자네는 숨을 쉴 수 있잖아? 숨을 못 쉬니?’


  숨은 쉬더라도 숨통이 안 붙은만 못하다 싶은 삶도 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워 골골대야 할 적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한다.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그리고 숨을 쉬지도 못한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한다. 참으로 어정쩡하게 코를 부여잡고 산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 숨쉬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다문 십 분만 입으로 숨을 쉬어 보라고, 아니 일 분만 입으로 숨을 쉬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입으로도 숨을 쉴 수야 있겠지. 그런데 입으로 숨을 쉬면 곧 목이 막힌다. 목이 말라서 재채기가 끝없이 나온다. 재채기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피가 나오고, 입으로 더는 숨을 쉴 수 없다.


  우리 몸은 왜 밥을 먹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숨을 쉬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물을 받아들여야 할까. 어릴 적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숨쉬기가 몹시 힘들어 날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다 보니, 참말 나는 어릴 적부터 ‘밥·숨·물’이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밥도 숨도 물도 없는 몸으로는 살 수 없는가. 넋이 깃드는 몸은 오롯이 홀가분할 수 없는가. 스물다섯 살 무렵이던가, 권정생 할배가 쓴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책에서 토끼가 풀잎이 아닌 이슬과 바람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하느님한테 눈물로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었는데, 참말 나는 토끼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게다가 이슬과 바람조차도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꼭 한 가지를 느낀다. 숨을 제대로 쉬기 벅차서 몸은 가없이 힘들고 괴롭지만, 내 넋은 몸과 달리 참으로 고요하다. 아프기 때문에 배운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왜냐하면 안 아파도 얼마든지 배우기 때문인데,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아픈 몸으로 넋과 마음을 늘 새삼스레 되돌아볼 수 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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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코가 막혀 거의 잠을 못자요

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글에 공감이 합니다
 

[시골살이 일기 74] 조용히 지나가는 시골

― 가을에 하늘과 들을 함께 바라보기



  하늘이 트인 곳에서 살면 트인 하늘을 봅니다. 하늘이 막힌 곳에서 살면 막힌 하늘을 봅니다. 바람이 싱그러이 부는 곳에서 살면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살면 매캐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이 탁 트이고 들이 곧게 열린 시골길을 두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달립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천천히 노래합니다. 처음 이 시골길을 달릴 적에는 노래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달리자니 몸이 퍽 힘들었어요. 이제 나는 예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무게가 나가는데, 외려 예전보다 가볍게 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까지 스스럼없이 부릅니다. 아이들은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으레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조용히 아이와 거닐 만한 데라고 느꼈습니다. 조용한 골목에서 꽃을 만나고 바람을 마시며, 언덕받이 골목동네에서 비로소 탁 트인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 못했어요. 좁은 골목을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면 이웃집에 소리가 퍼지는데, 노랫소리를 반기지 않을 사람들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는 집에서도 마당에서도 길에서도 곧잘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이 참으로 없기에 노래를 불러도 될 만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보다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내 마음을 하늘처럼 열고, 내 생각을 들처럼 보듬으며, 내 넋을 아이들과 함께 들여다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천천히 달리다가 때때로 멈춥니다. 자전거 발판 구르는 소리마저 없는 조용한 들 한복판에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물결을 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내처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에 감겨 들에 퍼지는 결을 느낍니다.


  어디에서든 삶은 흐릅니다. 어디에서든 우리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어디에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 스스로 삶을 일구어 아름다이 노래하면 됩니다. 매캐하거나 메마르다 싶은 도시라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 골목을 이루는 사람들은 골목밭을 일구어 골목꽃을 피웁니다.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 어디에서나 숲이면서 꽃밭입니다. 마음을 참다이 돌보면 언제나 하늘이면서 맑은 숨결입니다. 파랗게 밝은 하늘을 등에 지고 조용히 들길을 지나갑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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