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순이와 함께 살면서



  일곱 살 편지순이가 큼지막한 그림종이에 편지를 석석 잘 쓰고 그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참으로 야무지다. 이 야무진 빛과 숨결은 어디에서 태어났고, 앞으로 어떻게 자라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즐겁게 이을 수 있을까 하고 헤아린다.


  나는 이 아이 편지에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머잖아 곧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씩 짚으며 알려줄 수도 있으나, 아이는 스스로 다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다른 글놀이를 함께 하면서 찬찬히 알려줄 수도 있다.


  편지쓰기에서 가장 깊이 살필 대목은 언제나 ‘마음’이다. 마음을 쓰는가 안 쓰는가를 살핀다. 마음을 쓸 때에 비로소 편지가 빛난다. 마음을 안 쓸 때에 편지는 안 빛난다. 밥 한 그릇에도 마음을 담을 적과 안 담을 적이 사뭇 다르다. 반찬 가짓수가 스무 가지가 되더라도 마음이 하나도 안 담겼다면 맛도 없지만 속이 더부룩하다. 반찬은 한두 가지라 하더라도 마음을 살뜰히 담았으면 맛도 있고 즐겁다.


  나는 편지순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편지순이는 어버이를 일깨우고 가르치고 따사로이 이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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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8] 유자 바구니
― 우리 집 살림살이는 나무


  곁님 어머니가 김치를 보내 주었습니다. 커다란 상자 가득 담긴 김치를 보고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우리 집 뒤꼍으로 갑니다. 우리 집 유자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올려다봅니다. 나무가 아직 그리 안 크고 가지도 많이 안 뻗습니다. 그렇지만 열매가 제법 달립니다. 잘 썰어서 차로 담기에 얼마 안 되는구나 싶지만, 두 집으로 나누어서 선물로 보내자고 생각합니다. 두 아이를 불러 함께 유자를 딴 뒤, 작은 종이상자에 담아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서 부칩니다.

  유자알만 넣으니 선물상자가 살짝 허전해서 굵은 모과알을 둘씩 보탭니다. 굵은 모과알을 둘씩 더하니 선물상자가 제법 도톰합니다.

  덜 여문 유자는 따지 않습니다. 제대로 여물 때까지 여러 날 기다리기로 합니다. 유자나무에 남은 열매를 마저 따면 이 열매를 우리가 건사해서 쓸 수 있을 테지만, 남은 열매도 사랑스러운 이웃한테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에 지난해에 심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는 올해에 꽤 잘 자랐어요. 이듬해에는 복숭아알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많이 서툴고 잘 모르며 제대로 보듬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나씩 다스리고 건사하면서 우리 집 살림살이인 나무를 살뜰히 사랑하자고 생각합니다.

  살림살이란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무엇보다 첫째로 ‘나무’이지 싶습니다. 마당에서 우람하게 자라는 후박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후박나무 곁에 있는 초피나무와 동백나무도 우리 집 대단한 살림입니다. 가녀린 장미나무도 우리 집 살림이요, 매화나무와 감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뽕나무와 모과나무도 우리 집 살림입니다.

  열매를 주기에 살림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풀고, 늘 푸른 그늘을 베풀며, 늘 푸른 노래를 베푸는 한집 숨결이기에 살림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하고 우리 집 나무 곁에 서서 굵직한 나뭇줄기와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살살 쓰다듬거나 껴안을 적에 무척 즐겁습니다.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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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부름말



  일곱 살 큰아이가 이제는 으레 ‘어머니’라고만 말한다. 네 살 작은아이도 누나처럼 으레 ‘어머니’라고만 말한다. 일곱 살 큰아이는 저 스스로 “나도 이제 ‘어머니’라고만 할래.” 하면서도 곧잘 ‘엄마’라는 말을 섞더니, 요즈막에는 ‘어머니’라는 말만 하는구나 싶다.


  큰아이한테 틈틈이 말하기도 했지만, ‘엄마’라는 낱말은 ‘아기 말’이다. ‘어른 말’도 ‘아이 말’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낱말을 잘못 쓰거나 잘못 말한다고 해서 우리까지 따라서 써야 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옳게 쓰는 말이라면 우리도 즐겁게 옳게 쓰면 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못 쓰는 말까지 우리가 따라서 써야 할 일이란 없다.


  살면서 늘 느끼는데, 잘못된 것이 뿌리를 내리는 때가 더러 있으나, 잘못된 것은 언젠가 뽑힌다. 백 해나 오백 해가 흐른 뒤에라도 뽑히고야 만다. 잘못된 것은 천 해나 만 해가 흐른 뒤에라도 뽑힌다. 뽑힐밖에 없다. 잘못되었으니까.


  옳은 길은 늘 옳다. 옳은 길이 짓밟히건 가려지건 대수롭지 않다. 옳은 길은 앞으로 언제가 되든 열린다. 다시 말하자면, 참은 언제나 참이고, 거짓은 언제나 거짓이다. 좋고 나쁨이 아닌, 참과 거짓이다. 이리하여, 옳은 길을 생각하며 참된 넋으로 가다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늘 옳은 길을 걸으면서 참된 넋을 북돋울 수 있다.


  나는 곁님을 ‘어머니’라 부르고, 곁님은 나를 ‘아버지’라 부른다. 어느 날 돌아보니 우리는 서로 이렇게 부르면서 지낸다. 문득 헤아리니, 아이들은 늘 어버이 말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배우는 터라, 우리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해야 하기도 하다. 그래야, 두 아이는 어린 나이에 헷갈리지 않고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익힌다. 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 만 한 나이가 되면, 곁님과 나는 서로 다른 부름말로 가리킬 수 있겠지.


  아이들은 나와 곁님이 서로 ‘아버지·어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늘 듣기 때문에 이런 말씨에 익숙하다. ‘엄마·아빠’ 같은 소리를 갓난쟁이 적에 쓰기는 했으나, 나와 곁님이 ‘아기 말’은 아이들이 갓난쟁이에서 벗어난 뒤부터 집에서 한 번도 안 썼으니, 아이들은 차츰 나이가 들면서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깨닫는다. 아이들 이불자락을 여미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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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진 얻기



  언제나 ‘사진 찍는 자리’에 있으니 내 사진을 찍을 일이 없다. 아이들이 사진놀이를 하면서 더러 찍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갖고 노는 사진기에만 더러 깃든다. 바깥에서 손님이 찾아올 적에 가끔 ‘아이와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사진에 찍힌다. 이때에 사진을 보내 주는 이웃이 있으면 ‘내가 아이와 있는 모습’을 고맙게 얻는다.


  집에 거울을 안 두니 내가 내 얼굴을 보는 일이 없다.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모습을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으로 가만히 바라본다. 내 얼굴은 아이들한테 어떤 모습이 될까. 아이들은 어버이를 겉모습으로 바라볼까, 아니면 마음으로 바라볼까, 아니면 둘 모두 바라볼까.


  나는 ‘웃으면서 찍힌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웃는 모습이 이렇게 보이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쩌면, 내가 가장 아늑하거나 느긋하다고 여기는 웃음이 이러한 모습일 수 있고, 아직 나는 마음속에 그림자나 그늘을 많이 짊어지거나 붙안은 채 살아가는 모습일 수 있다. 사진에 담긴 두 아이는 참 작다. 참 작은 아이들이 아버지를 믿고 자전거를 함께 달리는구나. 4347.10.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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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보금자리 1 (2014.10.27.)



  내 ‘그림’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본다. 요즈막에 들어 나 스스로 내 그림을 제대로 안 그렸구나 하고 깨닫는다. 왜 나는 내 그림을 안 그렸을까. 우리 집이 어떤 모습이 되고, 우리 도서관이 어떤 숨결이 되며, 우리 숲이 어떤 보금자리가 되기를 제대로 바라지 않았는가 하고 되새기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먼저 또박또박 한 글자씩 쓴다. 이러고 나서 글자에 빛을 입힌다. 빛이 띠가 되도록 씌운다. 빛띠에 숨결이 흐르기를 바라면서 해무지개를 얹는다. 별비와 꽃비와 달비와 사랑비와 사마귀비와 잎비와 엄지비 들을 그리다가 그림 그리기를 멈춘다. 요즈막에 몸이 퍽 고단했구나 싶어 어깨가 뻑적지근해서 손아귀에 힘이 잘 안 붙는다. 하루나 이틀쯤 쉬었다가 마저 그리자.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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