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배웅하는 아이들



  어제 이른아침, 두 아이가 아버지를 배웅하면서 “아버지, 일 갔다가 오면 나랑 놀아 줘야 해요. 약속.” 하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것을 사 오라느니 저것을 바란다느니 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놀자고 말한다. 나도 아이들한테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얘들아, 잘 놀고 씩씩하게 놀고 튼튼하게 놀고 재미나게 놀고 즐겁게 놀고 사이좋게 놀고, 언제나 사랑스럽게 하루를 누리자, 하고 말한다.


  늘 놀자고 말하다 보니, 아이도 인사말이 ‘놀자’이다. 그리고, 아버지더러 일을 줄이고 놀자는 뜻이기도 하다. 맞아. 그렇지. 그렇지만 아버지는 일을 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놀이와 같은 일을 한단다. 너희는 오롯이 놀이가 되는 놀이를 하는데, 바로 너희한테 그 놀이는 모두 일이 된단다. 아름다운 삶이지.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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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무래도 그냥 바깥마실을 할 수 없어서, 아침에 부랴부랴 이것저것 꾸린다. 아무래도 나로서는 바깥일도 바깥일이지만, 집일에 마음을 함께 쓰고 싶은 터라, 빠듯하게 나가서 군내버스를 타야 하지만, 이웃마을까지 달려서 가기로 하고, 신나게 아침을 차린다. 이제 다 끝냈으니 얼른 달려가자. 4347.10.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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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



  늦여름과 구월까지는 지붕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도 시큰둥했다. 풋감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월에 감알 떨어지는 소리가 밤에 쿵 들리면 ‘옳거니’ 하고 생각한다. 낮에는 곧바로 뒤꼍으로 가서 감알을 줍는다. 한밤에는 으레 이튿날 아침에 가서 줍는데, 오늘은 한밤이지만 등불을 들고 뒤곁에 가서 두리번거린다. 어느 감알이 떨어졌는지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쿵 소리와 함께 가랑잎을 부스럭부스럭 굴러가는 소리가 어디로 뻗었는지 어림한다. 불을 요리조리 비춘 끝에 찾는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굵고 야무진 새빨간 감알이다.


  이튿날에는 새벽밥을 짓고 나서 새벽길을 나서야 할 듯싶어, 이렇게 한밤에 감알을 줍는다. 아무래도 부산까지 바깥일을 하러 다녀와야지 싶다. 이동안 곁님과 아이들이 밥을 잘 먹고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 다른 감알은 더 안 떨어지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서 감이 하나둘 떨어져서 즐겁게 주워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빈다.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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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차리는 밥



  한국 사회에는 평등이 없다. 평화도 민주도 없다. 그래서 집집마다 살림살이를 살피면 예나 이제나 ‘부엌데기 가시내’가 넘실거린다. 살림을 함께 맡거나 도맡으려는 사내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이키우기를 가시내한테 떠넘기는 사내만 많을 뿐, 아이와 함께 누리는 삶을 생각하거나 그리는 사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언제부터 사내는 바보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사내는 밥도 못 짓고 옷도 못 짓고 돈만 버는 바보가 되었을까. 언제부터 사내는 가시내가 차리는 밥만 얻어 먹고, 가시내가 빨래하는 옷을 얻어 입으며, 가시내가 마련한 잠자리에 드러눕는가.


  아이와 함께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을 줄 아는 사내가 매우 드물다. 인문책은 읽을 줄 알아도 어린이책은 읽을 줄 모르는 사내만 득시글거린다. 이런 사내가 벼슬아치가 되어 복지나 문화나 교육 행정을 맡는다면 어떤 정책을 선보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는 평등도 평화도 민주도 없기에, 집일을 하는 거룩한 사람은 ‘부엌데기’가 되고 ‘부엌일’을 몹시 힘들거나 싫어하기 마련이다. 가장 맛있는 밥은 언제나 손수 지어서 먹는 밥이건만, 날마다 밥을 차리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밥짓기는 어느새 고단한 ‘일거리’가 되고 만다.


  사다가 먹는 밥이 맛있을까? 전화를 걸어서 시켜 먹는 밥이 맛있을까? 자가용을 몰아 호텔이나 고급식당에 가면 밥이 맛있을까? 지구별 어떤 밥도, 손수 지어서 먹지 않는다면 맛있을 수 없다. 손수 씨앗을 심어서 거둔 뒤 지어서 먹는 밥처럼 맛있는 밥이란 없다.


  가시내도 사내도 제 밥은 제 손으로 차려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제 밥은 제 손으로 차려서 먹을 줄 알아야 하고, 아이들한테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밥을 차려서 줄 수 있어야 한다. 손맛 깃든 집밥을 언제나 맛있게 먹을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에 평등과 평화와 민주가 뿌리를 내려야겠지. 이 나라 수많은 ‘어머니’와 ‘여자’가 “남이 차리는 밥이 맛있다”고 말한다면, 참으로 까마득하다. ‘아버지’와 ‘남자’는 무언가 깨달아야 한다.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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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0-17 01:22   좋아요 0 | URL
갑자기 아~하는 한숨이 나옵니다. 전 아니지만 제 딸은 제발 하는 맘이네요

숲노래 2014-10-17 06:09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 님이 오늘 즐겁게 삶을 지으시면 다 되어요.
미래는 언제나 현재이기에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누리면서
아이와 이야기꽃을 피우면
아이는 모두 잘 받아먹어요~
 

아이들 잠자리 긴옷



  올 2014년 10월 14일 밤부터 아이들을 재울 적에 긴옷을 입히기로 한다. 이제부터 한낮에도 집안이 23∼24도에서 오락가락한다. 밤에도 이 온도가 거의 그대로 간다. 바야흐로 깊은 가을이요, 머잖아 겨울이로구나. 겨울로 접어들면 한두 차례 눈발이 날릴까. 눈발이 날릴 즈음 우리 집 마당 한쪽 동백나무에도 붉은 꽃송이가 환하게 터질까. 해가 뜨면 마당에서는 따스하고, 해가 지면 집에서도 썰렁하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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