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하고 같이 잘래



  큰아이가 “아버지하고 같이 잘래!” 하고 노래를 부른다. 저녁나절에 면소재지 도화고등학교에 ‘글쓰기 강의’를 다녀온 뒤 집에서 다른 일을 좀 할까 싶었으나, 큰아이가 노래노래 부르는 터라,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면서 등허리를 살짝 펴기로 한다. 두 아이 머리를 쓸어넘기고, 두 아이 팔다리를 주무른다. 두 아이 이름을 넣어 자장노래를 고쳐서 부르기도 한다. 예쁜 아이 착한 아이 코코 잘 자렴 하고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면 살그마니 일어나서 옆방으로 가려 했는데, 그만 두 아이와 함께 나도 잠들고 만다. 몇 시간쯤 곯아떨어졌을까. 바깥일을 보고 들어오니 등허리가 꽤 결렸는데, 등허리가 거의 풀린다. 아이들은 아버지 몸을 알아보았을까. 고단할 적에는 좀 쉬어야 하니까 얼른 자라고 부른 셈일까. 큰아이는 이불을 걷어차며 잔다. 이불을 거두어 새로 여민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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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82] 시골에서 무엇을 할까

― 함께 노는 숲집



  하루 내내 일터에 매이는 삶이라면 누구나 무척 고단합니다. 하루 내내 일터에 얽매여야 한다면 아이와 마주할 겨를이 없고, 아이와 어울릴 틈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일터에 붙들리는 삶이라면 곁님과 이야기를 나누기조차 어려울 테고, 집에서 느긋하게 쉬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톱니바퀴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어느 자리를 맡아서 지켜야 하는 부속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저마다 다른 하루를 짓는 살림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마을에서 하루를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아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입니다.


  시골에서 무엇을 할까요. 시골지기로서 일하고 놀지요. 도시에서 무엇을 할까요. 도시지기로서 일하고 놀아요. 시골에서는 시골을 가꾸고, 도시에서는 도시를 가꿉니다. 마을에서는 마을을 가꾸며, 나라에서는 나라를 가꿉니다. 들에 서면 들지기가 됩니다. 숲에 가면 숲지기가 됩니다. 학교에서는 학교지기입니다. 집에서는 집지기입니다.


  시골에서 할 일이라면 땅을 밟고, 땅을 만지며, 땅을 노래하고, 이 땅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을 아끼는 일이지 싶습니다. 내 보금자리부터 숲이 되도록 가꾸는 일을 시골에서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예부터 자란 우람한 나무를 앞으로도 잘 자라도록 아끼면서, 내가 오늘 이곳에서 살며 새롭게 사랑할 나무를 심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내 목소리를 틔워 노래를 부릅니다.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온몸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햇볕이 따숩게 들려주는 노래를 듣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이루는 잔치노래를 듣다가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에서는 우리 집부터 푸른 숲집이 되도록 노래를 짓고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짓습니다. 시골에서는 우리 보금자리가 일터요 놀이터가 되도록 나무를 심고 흙을 살찌웁니다. 함께 놉니다. 함께 일합니다. 함께 사랑합니다. 4347.1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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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이랑 고구마랑



  단호박이랑 고구마랑 감자랑 달걀이랑 삶으면, 아이들은 맨 먼저 달걀을 집는다. 다음으로 고구마를 집고, 다음으로 감자를 집으며, 마지막으로 단호박을 집는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할 적에 단호박만 접시에 달랑 놓으면 처음에는 안 먹을 듯 지나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단호박만 놓은 접시를 말끔히 비운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단호박만 억지로 먹일 생각은 없다. 여러 가지 맛을 골고루 느끼면서 누릴 수 있기를 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삶으면 단호박부터 접시에 놓는다. 이 다음에 감자를 놓고, 이 다음에 고구마를 놓는다. 배가 부르면 단호박은 건드릴 생각조차 안 하지만, 배가 불러도 고구마는 낼름낼름 다 먹으니까. 4347.11.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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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을 때 안 먹기



  저녁에 닭볶음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먹을 닭볶음이라 매운 것은 하나도 안 넣는다. 간장으로만 간을 하고, 감자와 고구마와 당근을 큼직하게 썰어서 함께 끓인다. 그래서 ‘묽은닭볶음’을 끓인다.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살점을 바른다.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안 먹어요?” 응? 아버지는 안 먹었나? 그렇구나. 아버지는 너와 동생한테 살점을 발라 주느라 한 입도 안 먹었네.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는 뭔가 맛있는 밥을 장만하신 뒤 우리한테만 먹이셨다. 나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 여쭈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왜 안 드셔요?” 이때에 어머니는 으레 “난 이따 먹어. 그러니 맛있게 먹어.” 어머니가 나중에 드셨을까. 어머니가 나중에 챙겨서 드신 적이 있을까. 두 아이는 닭고기를 맛나게 먹는다. 참으로 잘 먹는다. 그러니 마지막 살점까지 두 아이한테 준다. 이러면서 배고프다고 느끼지 않는다. 참으로 그렇다. 4347.11.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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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4-11-27 23:48   좋아요 0 | URL
첫줄에선 어머니신줄 알았어요.

숲노래 2014-11-28 00:58   좋아요 0 | URL
아이를 기르는 어버이는 모두 어머니요 아버지와 같다고 느껴요 ^^
 

[시골살이 일기 81] 아끼는 마음

― 풀내음 맡는 이곳에서



  톱질을 하는 어버이 곁에 서는 아이들은 톱질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톱은 아직 저희가 손에 댈 수 없는 줄 알아차리면서 바라봅니다. 그러나 톱을 만지고 싶고, 저희도 톱으로 무엇인가 켜고 싶습니다.


  망치질을 하는 어버이 옆에 서는 아이들은 망치질을 가만히 쳐다봅니다. 망치는 아직 저희한테 무거워 망치질을 시늉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망치를 쥐고 싶으며, 저희도 망치고 무엇인가 박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몸에 맞는 것을 차근차근 찾아서 즐깁니다. 단추꿰기를 익히고, 옷입기를 익힙니다. 손발씻기를 익히고, 설거지를 익힙니다. 작은 심부름을 해내고, 제법 무거운 짐을 함께 나릅니다.


  아이들은 작은 손과 몸으로 작은 일을 거듭니다. 아이한테 커다란 일을 맡기거나 짐을 지우는 어른은 없습니다. 아이는 조그마한 일을 살짝 거들 뿐이지만, 어른은 아이가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손길을 느끼면서 새롭게 힘을 얻습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돌보고 아낍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모두 돌보면서 아낍니다. 투박하고 커다란 손으로 아이들을 어루만집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보다 살짝 큰 손으로 동생을 포근히 어루만집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을 키우는 삶입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새롭게 누리는 삶입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뭇가지를 쓰다듬는 까닭도, 내가 나를 아낄 뿐 아니라 한식구와 이웃과 동무를 모두 아끼려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 땅을 내가 가꾸면서 두 발로 씩씩하게 설 때에 마음속에서 새로운 씨앗이 움트는 기운을 느낍니다. 4347.11.2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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