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날 밥 차리기



  몸이 아픈 날에는 물을 만지기조차 싫다. 몸이 아픈 날에는 물을 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고 아이들한테 밥을 안 차릴 수 없어서 해롱거리는 몸과 머리로 아침을 짓는다. 아이들은 배가 고플까?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 않을까? 내가 몸이 아프다 보니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먹었는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잘 모른다. 두 아이가 툭탁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저러나 싶어 아침을 짓는다.


  모처럼 고기밥을 짓는다. 얼어붙은 고기를 녹이자니 손이 더 시리다. 끙끙거리면서 겨우 고기를 볶아 밥에 얹는다. 따뜻할 때에 아이들이 먹기를 바라지만 밥술을 뜨는 시늉만 한다. 잔소리를 몇 마디 하다가 자리에 눕는다. 두 시간 즈음 끙끙 앓으니 살짝 나은 듯하지만 아직 어지럽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잘 논다. 자리에 누워 앓는 아버지 배와 등허리를 타면서 ‘자동차 놀이’도 한다. 아버지가 얼른 나으라고 주물러 주는 셈인가. 그렇지만 몹시 아프다. 얼른 제자리를 찾자. 핑핑 도는 머리가 어서 낫기를 빈다. 4347.12.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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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이가 울 적에



  밤에 작은아이가 운다. 울면서 일어난다. 쉬가 마렵니? 응아가 마렵니? 물을 마시고 싶니? 이도 저도 모두 아니니? 그럼 안아 줄까? “응.” 그래, 안아 주마. 네 살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엉덩이를 토닥인다. 토닥토닥 다독이고 나서 자리에 눕겠느냐고 묻는다. 말은 않고 고개만 까딱한 듯하다. 천천히 자리에 눕히고 이불을 여민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두 가락 뽑을 무렵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꿈나라로 간다. 큰아이는 이불을 걷어찼다. 큰아이 이불도 여민다. 나한테는 두 손이 있고 우리 집 잠자리에 두 아이가 누웠으니, 두 손으로 두 아이를 쓰다듬고 다독인다. 모두 기쁘게 꿈을 그리면서 이 밤을 누리렴. 실컷 자고 개운하게 아침에 일어나서 놀자. 이튿날 아침에는 새로운 놀이가 너희를 기다린단다. 4347.12.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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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2-13 02:05   좋아요 0 | URL
헉 맨발 아이쿠 추워라.
아이들은 추운것두 모르구 놀지요.

숲노래 2014-12-13 06:28   좋아요 0 | URL
손발이 차가워도 그저... 잘 놀더라구요 @.@
 

[당신은 어른입니까 38] 과학읽기

― 삶을 이루는 알갱이



  제대로 살피고 배워야, 이러한 바탕과 넋과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곁님과 나는 여느 어버이입니다만, 시골에서 마을도서관을 꾸리면서, 우리 아이들부터 다닐 수 있는 시골마을 작은학교를 열 생각입니다. 여느 교과서는 쓰지 않고, 제대로 된 지식을 제대로 다루는 책을 즐거운 길동무로 삼아서 아이와 함께 배우는 이야기꾸러미로 삼으려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배울 과학은 교과서에 있는 시험지식이 아닌, 지구와 우주와 사람과 삶을 이루면서 어우르는 알갱이가 무엇인지 헤아리는 길에서 비롯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리나 생물이나 화학을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칩니다. 삶을 과학으로 바라보고 수학으로 바라보며 말(한국말)로 바라봅니다. 삶을 바느질로 바라보고 자전거로 바라보며 책으로 바라봅니다. 삶을 밥짓기로 바라보고 집짓기로 바라보며 옷짓기로 바라봅니다.


  수식이나 기호가 과학이 아닙니다. 연산이나 조합이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삶이 태어나는 바탕을 살핍니다. 과학은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살면서 두 발을 디딘 지구별이 온누리에 어떠한 터로 있는지를 살핍니다. 과학은 사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피고, 과학은 나무와 풀과 꽃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살핍니다.


  풀잎과 풀뿌리가 몸 어느 곳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짚는 과학입니다. 물 한 방울이 몸에 어떻게 스미면서 돌고 돌아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지를 돌아보는 과학입니다. 두 눈으로 무엇을 보고, 두 손으로 무엇을 만지며, 두 발로 어느 곳을 밟으며 돌아다니는가를 헤아리는 과학입니다.


  삶을 이루는 알갱이를 찾을 때에 과학입니다. 삶을 이루는 알갱이가 너와 나 사이에 어떻게 흐르는지를 깨달을 때에 과학입니다. 과학은 지식이 아닌 슬기입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로 밝히는 과학입니다. 책을 덮고 눈을 뜰 때에 볼 수 있는 과학입니다. 비행기나 엔진이나 핵무기나 발전소가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전쟁무기나 잠수함이나 미사일이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과학입니다. 풀 한 포기 과학입니다. 밥 한 그릇이 과학입니다. 실 한 오라기가 과학입니다.


  과학을 제대로 읽을 때에 삶을 제대로 읽습니다. 과학을 똑바로 바라볼 적에 사랑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과학을 옳게 배울 때에 꿈을 옳게 배웁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과학을 곱게 익혀서 기쁘게 북돋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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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발이니



  우리 집 아이들은 안기기를 아주 좋아한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든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든 큰아버지와 이모한테든, 저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누구한테든 안기기를 아주 좋아한다. 산들보라가 아버지 앞쪽으로 서며 등으로 안긴다. “여기 누구 발이야?” 하고 물으면서 아이 발을 척척 밟는다. 산들보라가 “오잉?” 하면서 발을 빼면 다시 따라가서 발을 밟는다. 여느 때에는 참 똘망똘망 크게 자랐구나 싶다가도, 이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할 적이나 씻길 적에 보면 얼마나 자그마한 아이인가 하고 새롭게 느낀다. 오늘 나는 네 발을 척척 밟을 수 있지만, 머잖아 네가 내 발을 척척 밟을 수 있을 테지. 오늘은 내가 너를 업거나 안으며 다니지만, 머잖아 네가 나를 업거나 안으면서 나들이를 다녀 주렴.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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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이가 나를 깨운 잠꼬대



  새벽 두 시 무렵 작은아이가 아버지를 깨운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이들이 밤에 내는 조그마한 소리나 몸짓에도 퍼뜩 잠을 깬다. 아이들이 갓난쟁이였을 적에는 기저귀를 갈려고 작은 소리에도 깼고, 아이들이 좀 자란 뒤에는 밤오줌을 누이려고 깬다. 네 살 작은아이는 쉬가 마려운가? 아니다. 그저 잠꼬대이다. 그런데, 작은아이가 문득 뱉은 잠꼬대가 “아버지, 그거 어떻게 만들었어요?”이다. 꿈나라에서 아버지하고 노는구나. 고맙네. 아버지가 너랑 꿈에서 신나게 노는가 보구나. 그런데 아버지가 네 꿈에서 무엇을 만들었니? 밤에서는 꿈나라에서 놀고, 낮에는 우리 집 마당과 뒤꼍과 도서관에서 놀자. 4347.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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