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큰아이와 나눈 말



  국수를 포크를 써서 집고 싶은 두 아이한테 젓가락을 쓰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문득 한 가지가 떠오른다. 이 아이들은 왜 젓가락을 쓰라고 이야기하는지 알까? 어른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젓가락을 쓰지는 않을까? 그래서 “벼리야, 아버지가 왜 젓가락을 쓰라고 하는지 알겠니?” 하고 묻는다. “음, 모르겠어요.” “젓가락을 쓰면 손가락에 힘이 붙기 때문이야. 손가락에 힘이 골고루 붙으라고 젓가락을 쓰라고 하지.” “포크를 쓰면?” “포크를 쓸 적에 어떠한지 생각해 봐. 포크로 찍으면 손가락을 움직일 일이 없지?” “응.” “포크를 쓰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너희가 온몸을 골고루 잘 쓰면서 손가락에도 힘이 붙으라고 젓가락을 쓰라고 하지.” “아, 그렇구나. 난 포크 안 쓸래. 그런데 벼리는 네 살 때 젓가락 썼어?” “벼리는 한 살 때에도 젓가락을 썼지.” “한 살에도? 왜?” “벼리는 그때에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 보고 싶다 해서 젓가락만 썼어.” “벼리가?” “응.” “두 살 때에는?” “두 살 때에도 벼리는 젓가락만 썼지. 그래서 벼리는 어릴 적부터 손가락에 힘이 붙어서 연필도 잘 쥐고 그림도 잘 그리지.” “보라는?” “보라는 아직 어려서 젓가락질을 잘 못 하는데, 옆에서 누나가 차근차근 도와주니까 아직 못 하기도 해. 그렇지만 보라도 곧 다 혼자서 잘 할 수 있어.” 이즈음, 네 살 작은아이가 “나도 포크 안 쓸래.” 하고 말하면서 젓가락을 야무지게 쥔다.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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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29 13:08   좋아요 0 | URL
젓가락을 쓰는데 저런 이유가 있군요. 저도 생각치 못했는데 깨닫고 갑니다.

숲노래 2014-12-29 15:29   좋아요 0 | URL
어릴 적부터 젓가락을 잘 쥐고 노는 아이는
연필도 힘껏 잘 쥐어요.

손가락을 잘 놀리면 그만큼
놀이도 신나게 누릴 테고요.

언제나 아이들과 즐겁게 하루 누리면서
새해도 맞이하셔요~ ^^
 

우리집배움자리 1. 취학유예·정원외관리



  날이 밝는다. 한 해가 저물기까지 며칠 안 남는다. 새로운 한 주를 연다는 월요일을 지난주부터 기다렸다. 왜냐하면, 오늘 월요일에 면사무소나 면내 초등학교에 가서 ‘취학 유예 신청서’를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알아보고 여쭈니, 면사무소에 가서 ‘취학 유예 신청서’를 쓰면 된다 하고, 한 해를 넘기고 난 뒤에는 초등학교에 가서 이 신청서를 쓰면 된다 하는데, 더 살피니, ‘정원 외 관리 신청서’를 써서 ‘정원 외 관리 증명서’까지 받아야 한다. 학교는 공공기관이라서 처음부터 ‘정원 외 관리 증명서’를 내주지는 않고, 석 달 동안 ‘무단결석’으로 두는 때를 기다리고 나서야 이 증명서를 내준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집 큰아이가 여덟 살이 되는 이듬해에 우리 집 아이가 ‘우리 집 배움자리’에서 놀고 배우면서 지내도록 하기까지 앞으로 여섯 달이 남는다. 학교는 삼월에 첫 학기를 열 테니까.


  아침 열 시에 먼저 초등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서 ‘취학 유예 신청서’나 ‘정원 외 관리 신청서’를 학교에서 한꺼번에 쓸 수 있는지 물을 생각이다. 면사무소와 면내 초등학교가 나란히 붙기는 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이래저래 오가려면 두 아이가 힘들어 할 테니까. 한 곳에서 다 볼일을 볼 수 있는지, 어느 쪽에 먼저 가야 하는지 전화로 묻고 나서 볼일은 일찍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야지.


  그러니까, 오늘부터 우리 집 큰아이 사름벼리는 ‘우리 집 배움자리’ 첫날을 보낸다고 하겠다. 벼리야 보라야, 우리 모두 즐겁게 우리 삶을 배우자.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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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 2014-12-29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홈스쿨링을 계획하시는 건가봐요..
벼리는 행복하겠네요
저는 방학이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벌써 버겨워지는데요...ㅎㅎ

숲노래 2014-12-29 15:30   좋아요 0 | URL
이제껏 일곱 해를 이렇게 지냈어요 ^^
앞으로 지내는 나날도 늘 그렇듯이 신나게 배우면서 놀려고 해요~ ^^

자몽사랑 님은 아무쪼록 새롭게 기운을 내어
아이와 신나게 노는 하루가 되시기를 빌어요~~
 

[시골살이 일기 83] 늘 바라보는 대로

― 하루를 여는 생각



  늘 바라보는 대로 하루를 엽니다. 늘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늘 꿈꾸는 대로 생각을 짓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손수 생각으로 짓습니다. 자동차 물결이든 매캐한 잿빛 하늘이든 쳇바퀴처럼 도는 일터이든, 모두 내가 손수 생각으로 짓습니다. 싸워서 얻어야 한다면 싸움을 내가 손수 짓고, 어깨동무하면서 오붓한 두레를 이룬다면 살가운 두레를 내가 손수 짓습니다. 즐겁게 살고 싶으니 즐거움을 짓고, 고단하게 살고 싶으니 고단함을 짓습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내가 손수 겪고 싶은 일을 생각으로 지어서 손수 겪는구나 싶어요.


  나는 늘 작은 멧새를 생각합니다. 작은 멧새는 늘 내 둘레로 찾아옵니다. 시골집에서든, 볼일을 보러 바깥마실을 가는 도시에서든, 참말 작은 멧새가 어디에서나 내 눈에 뜨입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면 내 마음속에는 온통 풀벌레와 개구리입니다. 시골집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흐르는 곳으로 저절로 발길이 가고, 풀벌레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는 곳에서까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작은 들꽃을 늘 생각합니다. 시골집에서는 한겨울에도 작은 들꽃을 누리고,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마실을 다녀올 적에도 곳곳에서 작은 들꽃을 반갑게 만납니다.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고 싶기에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내가 찾아가고 싶은 이웃한테 내가 반가운 길손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다만, 손님은 많이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은 수십 수백 사람이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나 손님이자 이웃일 수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사이좋게 손님이자 이웃이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는 여름에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꼭 어울립니다. 겨울에는 물가에서 다른 놀이를 하기에 걸맞습니다. 꼭 물장구만 쳐야 하지 않습니다. 샘터에 깃든 다슬기와 여러 작은 목숨을 바라보아도 즐겁고, 물 한 모금 쪼려고 내려앉는 딱새나 박새를 바라보아도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니, 종이와 연필을 챙겨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고,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씩씩하게 올라오는 제비꽃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 겨울에 미꾸라지는 어디에 깃드는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늘 바라보는 대로 하루가 흐릅니다.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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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29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4-12-2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는 곳과 크게 멀지 않아요.어릴때 생각하면 아주 아주 먼 거리 였지만.. 풍경이 달라져서 이제 그곳으론 가고싶어도 없다고 생각이 되어져요. 그냥..이런 풍경을 보면 그리워.. 하는 향수로..고향같은 ..8할의 바람이 사라졌네요..그러고 보니.. 덕분에 아침..미소가 다 떠올라서요..고맙습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숲노래 2014-12-29 10:10   좋아요 0 | URL
요새는 도시도 시골도
고향이라고 느낄 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바뀌기 일쑤예요.

그러나, 건물은 사라지고 길이나 마을 모습이 바뀌어도
우리가 그곳에서 태어나서 자랐다는 이야기와 삶은
언제나 그대로 있을 테니,
이러한 생각을 곱게 지녀야지 하고 느껴요~

그장소 님도 섣달 마무리 즐겁게 하면서
새해도 기쁘게 맞이하셔요~
 

밤에 김치찌개



  밤이 깊도록 생강을 까서 생강차를 담다가, 곁님이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해서 김치찌개를 끓인다. 마침 일산에서 보내 주신 김치가 있다. 김치와 김칫국물을 넉넉히 넣어서 끓인다. 개수대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니 어느새 밤 열두 시 가까이 된다. 아이들은 곁님이 재워 주었고, 나는 이불깃만 여미어 준다. 아버지가 두 손에 생강내음이 듬뿍 배어 작은아이 잠옷도 갈아입히지 못하고 토닥토닥 재워 주지도 못했다. 등허리가 많이 결리지만 한잠 자고 나면 모두 풀리리라 생각한다. 새끼 고양이 두어 마리가 우리 자전거수레에 살짝 들어가서 자는 모습을 보고는, 자전거수레에 못 들어오게 여민다. 얘들아, 그 수레는 너희 잠자리가 아니란다. 우리 집 둘레에는 헛간도 있고 풀밭도 있고 여러 쉴 곳이 곳곳에 많으니 다른 데에서 자렴. 오랜만에 생강을 까니 어릴 적에 어머니 일손을 거들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초승달이 무척 밝은 섣달 막바지이다. 4347.12.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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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으며 큰아이와 나눈 말



  국과 밥을 마무리짓고 밥상에 올릴 무렵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네!’하고 ‘먹어요.’ 하고 말할 수 있어?”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일곱 살 큰아이가 곧잘 이 대목을 묻는다. 왜 아버지는 ‘아이 아닌 어른’이면서 왜 ‘아이한테 높임말을 쓰느냐’고 묻는 셈이다. 왜냐하면, 만화영화를 본다든지 만화책을 본다든지, 또 둘레 다른 어른이 쓰는 말이라든지, 또 언니나 오빠라고 하는 사람이 저한테 쓰는 말을 가만히 살피면, 사람들이 쓰는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나이 어린 사람’한테 아주 쉽게 말을 놓는다. 말을 놓는 일이 잘못이라는 뜻이 아니라, 아이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고 툭툭 말을 놓는다는 소리이다. 아이가 어떤 넋이나 숨결인지 헤아리지 않고, ‘아이라면 으레 말을 놓아도 된다’고 잘못 배웠고 잘못 생각하며 잘못 안다는 소리이다.


  낯선 사람한테는 어른이든 어린이이든 함부로 말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말을 놓고 싶다면 먼저 물어야겠지만, 말을 놓겠다고 물을 까닭도 없다. 나중에 가까운 사이가 되면 ‘나이가 어린 아이’ 쪽에서 먼저 ‘말을 놓아도 돼요’ 하고 말할 테니, 그때가 될 때까지는 아이한테나 ‘어린 사람’한테 섣불리 말을 안 놓아야 올바르다고 느낀다. 제대로 쓰는 높임말이라면 말이다. 4347.12.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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