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나란히 앉은 군내버스



  2014년 12월 11일 낮, 마을 어귀를 지나 읍내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는데, 두 아이가 나란히 앉는다. 어라, 너희끼리 앉게? 괜찮겠니? 큰아이 일곱 살에 작은아이 네 살인 올겨울, 곧 한 살씩 더 먹을 이즈음, 두 아이가 처음으로 따로 앉는다. 큰아이가 바깥쪽에 앉고 작은아이가 안쪽에 앉는다. 큰아이는 내내 손잡이를 잡으면서 작은아이가 밀리지 않도록 하는구나 싶다. 뒤쪽에 앉아서 20분 동안 지켜본다. 이쯤이라면 앞으로도 두 아이가 따로 앉을 만하겠다고 느낀다. 살짝 서운하지만, 두 아이는 두 아이대로 즐겁게 노닥거리면서 누릴 이야기가 있으리라 본다. 새로운 놀이를 빚고, 서로 아끼는 마음을 한껏 키우면서 더욱 야무지고 똘똘하게 클 테지.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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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안 먹으면서 살기



  사람은 밥을 꼭 먹어야 살 수 있을까.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밥 때문에 몹시 힘들었기에 곧잘 이 생각을 했다. 어릴 적부터 ‘먹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었다. 김치를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니, 오늘날 한국에서는 밥상맡이 늘 거북할 뿐 아니라 고단했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우물거리다가 삼켜야 했는데, 김치를 억지로 씹어서 삼키면 뱃속이 좋을 턱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김치를 먹지 않았으면, 나는 어릴 적에 밥을 즐겁게 먹었을까? 어쩌면 그러했을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김치뿐 아니라 찬국수(냉면)도 못 먹는다. 어릴 적에는 크림이 조금이라도 있는 빵이나 케익을 손에 대지도 못했다. 크림빵이나 케익을 먹으면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언젠가는 생일상에 올라온 크림케익을 먹다가 그만 왈칵 게우고 나서 넋까지 잃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달걀이나 떡도 잘 먹지 않았다. 여느 때에는 그럭저럭 먹지만, 한동안 안 먹다가 모처럼 먹으면 꼭 사나흘 배앓이를 하면서 모질게 물똥을 누었다.


  어머니는 이것저것 ‘새로운 먹을거리’를 자꾸 먹이셨다.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에는 공장에서 찍는 가공식품이 쏟아질 때였고, 유럽에서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우유를 몽땅 내버려야 하던 터라, 우유를 ‘가루’로 만들어서 한국에 아주 값싸게 팔기도 하던 때요, 이러저러해서 ‘새로운 유제품’이 무척 많이 나왔다. 요플레라든지 푸딩 비슷한 것이라든지 요구르트라든지, 그리고 우유라든지 참으로 많이 돌았다. 이런 것 가운데 처음 내 입에 닿는 것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불렀고, 아무리 먹어도 입에 맞지 않아서 누가 거저로 주어도 먹고픈 마음이 없었다.


  밥도 힘들고 주전부리도 고단했다. 다른 사람은 단팥빵이니 크림빵이니 무엇이니 저것이니 하는 빵을 즐긴다지만, 내가 가장 즐긴 빵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식빵’이고, 그나마 ‘식빵 아닌 빵’을 고르라 할 적에는 ‘소보루빵’만 골랐다. 식빵도 기름을 많이 쓴다지만, 식빵보다 기름을 더 쓴 빵은 어김없이 배앓이와 물똥을 낳았다.


  어릴 적에 ‘하루 세 끼니’란 죽음과 같았다. 아침 낮 저녁에 먹어야 하는 밥은 그저 무시무시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갔는데 동무네 어머님이 ‘밥 먹고 가라’고 하면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김치처럼 삭힌 것을 못 먹는데, 이런 반찬이 있으면 동무네 집에서까지 얼마나 끔찍한가. 게다가 김치를 못 먹는 모습을 바깥에서 들키면 학교나 동네에서 얼마나 놀림을 받는가. 아니, 알 사람은 웬만큼 알아, 동네에서 놀다가도 아주머니들이 “쟤는 김치를 못 먹는 아이라지?” 하고 수다를 떨면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밥은 왜 먹을까? 밥은 왜 먹어야 할까? 몸에 기운을 불어넣어 즐겁게 일하거나 놀려고 밥을 먹는가? 그러면, 즐겁게 먹어야 하지 않을까? 못 먹는 것을 억지로 먹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피를 먹을 수 있지 않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고, 많이 먹어도 모자란 사람이 있다.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조금만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줄이고 줄여서 거의 안 먹다시피 해도 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그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 있으리라. 국민학교 산수 수업에서, 나는 혼자 이런 ‘수열’을 생각했다.


  나흘째 아무것도 못 먹고, 닷새째 밥이나 물을 조금도 입에 못 대면서 보낸다. 엿새나 이레가 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뭘 조금만 입에 대도 곧바로 물똥이 나온다. 아이들은 밥을 먹어야 하니 밥을 차려서 주지만, 나는 멀거니 구경을 하거나 자리에 드러눕는다. 밥내음은 따로 욕지기가 나지 않는다. 밥을 보아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배앓이와 물똥 때문에 안 먹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밥을 부르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에는 그때대로 즐겁게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를 또렷하게 깨닫는다. ‘단식’이나 ‘금식’이 아니어도 ‘밥 없는 삶’이 될 수 있고, 밥에다가 물조차 없는 삶으로 여러 날 보내면서 몸이 허전하거나 힘들지 않다.


  어릴 적에 한 가지 더 생각한 적이 있다. 하도 밥먹기가 힘들다 보니 ‘밥 안 먹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했는데, 풀이나 나무를 보면 뿌리가 땅속에서 양분을 빨아들인다지만, 따로 ‘밥을 먹는 얼거리’는 아니다. 해와 바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여기에 비가 있으면 무럭무럭 자란다. 아니, 모든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만 있으면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 풀씨와 나무씨는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즈믄 해를 살 수도 있다.


  사람은 어떠할까? 사람도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와 바람 두 가지 기운으로 사람이 살 수 있으면, 입으로 넣는 것이 없으니, 밑으로 나올 것도 없다. 입으로도 밑으로도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이 없으니 몸은 늘 그대로 흐를 테며, 몸에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다시 넣어서 태워 삭이고 없애고’ 하는 흐름이 사라진다면, 몸이 아프거나 늙을 일도 없으리라 느낀다. 4347.12.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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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몸이란


  우리 집 큰아이와 곁님 동생(나한테는 처남)한테 참으로 모질고 끔찍한 일이 터졌다. 이 일을 추스르는 동안 나는 아주 모질면서 끔찍하게 앓는다. 나흘에 걸쳐 밥 한 술과 물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고, 섣불리 밥 한 술이나 물 한 방울 댔다가 속이 제대로 얹히며, 속에 넣은 밥이 없는데에도 두세 시간에 한 차례씩 물똥을 꽤 누는 나날이었다. 오늘은 똥구멍이 너무 아파서 두세 시간마다 치를 볼일을 겨우 버텨서 서너 시간이나 너덧 시간에 보기도 했지만, 고되며 힘들기는 참 고되며 힘들다.

  그렇다고, 늘 하던 대로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재우고’ 하던 일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못한다.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이를 악물면서 버티지는 않았다.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견디지는 않았다. 아파서 말이 안 나온다는 얘기를 온몸으로 느꼈고, 아플 적에 힘겨이 말을 쥐어짜내는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오롯이 깨달았다. 내가 열 살 안팎이던 때이지 싶은데, 똥을 못 가리고 드러누운 할아버지는 언제나 우리(나와 형과 어머니)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셨다고 떠올린다. 내가 많이 어려서 잘못 떠올릴는지 모른다.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인 만큼 제대로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튼, 몸져누운 할아버지는 말이 아주 드물었고 어쩌다 말문을 열 적에 참으로 부드러웠다. 이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했다. ‘아니, 아픈 할아버지가 어떻게 얼굴도 안 찡그리고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할 수 있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는 틈틈이 몸져누워 끙끙거리다가 아이들을 부른다든지, 밤에 아이들을 재우며 자장노래를 부른다든지 하면서, 내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목소리는 참으로 부드러웠다. 아마 지난 일곱 해를 돌이켜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였구나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아이들과 주고받을 목소리요, 이 목소리로 곁님과 다른 이웃 모두를 마주할 삶을 열겠구나 하고 느꼈다.

  그런데, 나흘이 지나 닷새로 접어들려는 무렵에 살몃살몃 ‘옛 목소리’가 불거지려고 한다. 옛 목소리가 몇 마디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내 ‘새 목소리’에 눌려서 사라진다. 나 스스로 내 ‘옛 목소리’와 ‘새 목소리’를 느끼면서 빙긋 웃는다. 무엇보다, 요 나흘 사이에 내가 아이한테 들려준 목소리는 바로 내가 ‘열일곱 살’까지 지키던 목소리였다고 불현듯이 알아챈다. 나는 내 ‘마음 시계’를 그동안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멈추어 놓고 살았구나 싶다.

  두세 시간마다 똥구멍이 아프도록 물똥을 눌 적에 ‘내가 아프게 한 이웃’이 누구였을까 하고 마음에 그린다. 자리에 드러누워 등허리를 펴고 세 가지만 마음에 그렸다. 첫째, 옳게, 둘째, 바르게, 셋째, 아름답게.

  옳게 가고 바르게 가야지, 그런데 아름답게 가야지. 아름답지 않다면 옳지도 바르지도 않아.

  나는 다시 깨어나려고 한다. 몸살을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다시 일어나려고 한다. 묵은 똥을 내보내어 새로운 몸이 되려고 한다. 헌 몸이 1차원에 있든 2차원에 있든 3차원에 있든 대수롭지 않다. 3차원에 있어도 1차원보다 높지 않다. 3차원에 있는 몸은 곧 1차원으로 떨어지고, 1차원에 있는 몸은 이윽고 3차원으로 올라올 수 있지만, 다시 1차원으로 돌아간다. 4차원을 지나 5차원과 6차원을 그릴 수 없다면, 이리하여 7차원으로 옷을 벗을 수 없다면, 1차원과 2차원과 3차원 사이에서 맴돌이를 하는 몸은 무엇이 될까. 도토리 키재기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 아니라, 깨어나야 할 삶이나 몸이나 지식이다.

  내 마음속에 먼먼 옛날부터 깃들어 오래도록 잠든 넋을 깨우려고 비로소 한 꺼풀을 벗는다. 아니, 예전에도 수없이 많은 꺼풀을 벗었으니, 아직 나한테 남은 꺼풀을 한 번 더 벗은 셈이다. 꺼풀은 벗을 만큼 앞으로 더 벗으리라 본다. 그리고, 굳이 꺼풀을 벗기보다 ‘홀가분한 넋과 얼’이 된다면, 어떤 꺼풀을 뒤집어쓴 몸이라 하더라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을 만하리라 느낀다. 아직 내가 걸을 길은 ‘꺼풀 벗기’이니, 꺼풀부터 제대로 벗자고 생각을 모은다.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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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앓으며 아이와 나눈 얘기



  “벼리야, 아버지가 아파서 밥도 못 먹어. 이렇게 누워서 쉬어야 해. 그러니 너희가 아버지가 드러누운 방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시끄럽게 뛰지 말고, 전등을 들고 마당으로 가서 마당에서 뛰면서 불놀이를 해.” “아버지 어떻게 아파?” “응, 온몸이 다 아파.” “그래? 아버지가 안 아팠으면 좋겠다.” “응, 아버지도 곧 나을 테니까 괜찮아. 아버지가 쉴 수 있게 너희가 옆방에서 놀거나 하면 좋겠어.” “알았어.”


  아픈 몸을 이끌고 밥을 차리려고 냄비에 불을 올릴 무렵, 곁님이 다가와서 묻는다. 아플 적에 냄새 맡기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 서기도 힘들 텐데 억지로 참느냐고 묻는다. 한 마디 대꾸를 하고 싶으나, 대꾸할 힘이 없어서 미처 말을 못 한다. 다만, 냄새를 맡기 힘든지 헤아려 본다. 아니다. 그야말로 끔찍하게 아프니 냄새는커녕 맛이고 뭐고 하나도 안 들어온다. 무엇보다 너무 아픈 탓에 물 한 방울조차 몸에서 안 받는다. 등허리가 몹시 결려 쓰러질 판이지만 참말 억지로 버티면서 밥을 끓였고, 냄새도 맛도 느끼지 않았다. 간은 아예 볼 수 없으니 느낌으로 얼추 맞출 뿐이다. 찬물이 손에 닿을 적마다 온몸이 쩌릿쩌릿 울리면서 뼛속까지 모질게 시렸지만, 곁님도 아픈 사람이니 곁님더러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주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며칠 더 이 몸을 버티거나 견디면서 밥을 잘 차리면 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잠자리에 눕는다. 비로소 두 아이를 눕히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감자씨〉 노래를 부르니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보라는 왜 〈감자씨〉 노래를 부를 적에 ‘감자씨는’이라 안 하고 ‘아저씨는’이라 하고 ‘묵은 감자’라 안 하고 ‘뿌부 감자’라 해?” “응, 이제는 그렇게 안 하는데,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혀가 짧으니까 예전에 그렇게 했어.” “아, 그렇구나.” “보라는 아직 아기라서 못 하는 것도 많으니까 벼리가 많이 도와줘야 해. 그냥 보라한테 다 줘야 하는 것도 있어.” “응. 그런데 벼리는 아기 아냐?” “응. 보라는 볼도 감처럼 탱글탱글해서 감볼이잖아. 그런데 벼리는 아기에서 벗어나서 배가 ‘슈박(수박) 배’가 아니고, 볼도 감볼이 아니야.” “아, 그렇구나.”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까 했더니 잠들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더 깨어 책을 본다느니 뛰논다느니 한다. 허허 웃으며 그대로 둔다. 아이들이 그야말로 더 놀아서 지쳐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이제 더 두면 안 되겠구나 하고 느낄 무렵 “자, 이제 불을 끈다. 다 눕자. 쉬 할 사람은 더 쉬 하고.” 큰아이가 먼저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동생이 누나를 따라 쉬를 하고 나서 물을 마신다. 자리에 눕는 모습을 보고 불을 끈다. 이불깃을 여민다. 1분 뒤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진다. 큰아이도 이내 곯아떨어진 듯하다. 십 분쯤 지나서 슬쩍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우리 예쁜 아이들 이제 잠들었나?”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길게 하품을 하면서 돌아눕는다. 이 말, ‘예쁜 아이’라는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어서 눈을 감고 기다렸는가 보다. 자, 자, 이제는 더 기다리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파란 거미줄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꿈누리로 날아가렴. 4347.12.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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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냐옹 2014-12-15 23:39   좋아요 0 | URL
어서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숲노래 2014-12-16 06:38   좋아요 0 | URL
네, 번쩍번쩍 하루 만에 다 나을 수도 있을 테지만,
제 성격으로는 천천히 나으면서
`몸이 낫는 결`까지 곰곰이 살피리라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유디트 님은 튼튼하게 하루를 즐겁게 여셔요~~ ^^
 

어머니가 아플 적에


  어제보다 오늘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 밥을 먹을 만한 몸이 아니다. 물을 한 모금 마셔 보는데 속에서 잘 받는다고는 느끼기 어렵다. 이러면서 새벽부터 너덧 차례 물똥이 나온다. 물똥이 나오면서 속이 가라앉는다. 엊그제 먼뎃손님을 맞이하면서 바깥밥을 먹을 적에 크게 얹히며 몸이 앓았구나 싶다. 반갑게 맞이할 손님이 아니라 고단한 일 때문에 찾아온 손님이었기에, 참으로 힘들게 말을 꺼내야 해서 속이 이렇게 고단하구나 싶다.

  오늘 아침에는 아이들한테 배와 감을 썰어서 내준다. 넉넉히 먹은 배와 감이 가라앉을 즈음 밥을 끓인다. 작은아이 입에서 “아, 배고프다!” 하는 말이 튀어나올 즈음 밥을 다 끓였고, 작은아이더러 “자, 보라가 수저 놓으렴.” 하고 말한다. 작은아이는 누나 수저까지 곱게 밥상에 올린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못 먹으니까 오늘도 너희끼리만 먹으렴.” “아버지 어디가 아파요?” “온몸이 다 아파.” “아버지 얼른 나아서 밥 같이 먹으면 좋겠다.” “그래, 고마워.”

  지난날 우리 어머니는 이녁 몸이 아플 적에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 어머니는 아픈 티를 내신 적이 아주 드물다. 아픈 티를 내지 않으면서 날마다 세 끼니를 차리고 도시락을 꾸리셨다. 아픈 몸으로는 간을 보기도 힘들 텐데, 어머니는 어떻게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고 도시락을 꾸리셨을까. 4347.12.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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