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마흔하나



  일산에서 케익이 날아온다. 곁님 동생이 일산에서 손전화로 케익 선물 쪽글을 보냈고, 우리 집 네 사람은 읍내로 마실을 가서 케익 한 점으로 바꾼다. 케익 한 점으로 바꾸고 나서 아차 하고 깨닫는다. 꼭 케익이 아니어도 그 케익값과 마찬가지로 다른 빵을 고를 수 있었구나 싶다. 그러니까, 곁님은 호두파이였나, 그것으로 하나 고르고, 나는 생크림 잔뜩 바른 케익이 아닌 롤케익으로 하나 고르면 딱 좋았을 텐데. 나는 어릴 적부터 생크림이 몸에 안 받아서 케익은 한 숟가락조차 입에 안 대고 살았는걸.


  이러구러 집으로 케익상자를 들고 온다. 작은아이가 자꾸 케익을 노래한다. 고단하지만 케익까지 뜯기로 한다. 두 아이는 케익에 붙은 초콜릿부터 떼어먹는다. 기쁘니? 기쁘면 되지. 나는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오늘 하루도 고맙고, 오늘뿐 아니라 다른 삼백예순나흘도 고맙다. 오늘 하루는 우리 어머니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제껏 걸은 길과 앞으로 걸을 길을 돌아본다. 방에 불을 끄고 마흔하나에 이르는 촛불을 끄는 동안 세 가지 꿈을 살그마니 빈다. 사랑·도서관·숲집. 4347.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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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2-07 23:57   좋아요 0 | URL
케익 앞에서 기뻐하는 아이들 얼굴이 어둠 속에서 보이진 않아도 느껴지네요. 함께살기 님 태어나신 날 축하합니다!

숲노래 2014-12-08 01:55   좋아요 0 | URL
방에 불을 끄니 두 아이가 깔깔대며 웃고 노래했어요.
뒷모습에 깃든 멋진 이야기를 읽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
 

불 넷



  우리 집 부엌에는 가스불이 셋 있다.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며 반찬을 익히면 불 셋을 다 쓴다. 오늘은 모처럼 고기를 굽기로 하면서 불을 넷 쓴다. 따로 불판을 꺼내어 부엌에서 불 넷을 쓴다. 두 아이가 꽤 자랐구나. 두 아이를 먹이고 두 어른이 먹을 밥을 지으면서 불을 여럿 써야 하는구나. 재미있다. 재미있구나.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혼자 불을 다룰 수 있을 즈음에는 네 식구가 먹는 밥을 어떻게 지을까. 궁금하면서 웃음이 난다. 4347.1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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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7] 책읽기

― 책을 왜 읽고 읽히는가



  누군가 나한테 묻습니다. ‘융’이란 사람을 얼마나 잘 아느냐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융’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을 스무 해쯤 앞서 읽은 일이 떠오르지만, 막상 이분이 쓴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렀는지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융’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셈입니다. 요즈막에 이분 책을 읽은 사람이야말로 이분을 안다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즈막에 융을 읽은 사람은 융과 얽혀서 무엇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책에 적은 줄거리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이녁 삶으로 녹여서 펼친 이야기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걸어간 길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펼친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으로 녹여서 삶을 즐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알까요.


  책을 읽는 까닭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새롭게 배워서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씩씩하게 가꿀 기운을 내가 스스로 길어올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다른 사람은 책읽기를 달리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입니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요, 도시내기는 도시내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숲과 하늘과 들을 바라보는 사람과 오늘 이곳에서 자가용을 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책은 왜 읽어야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책을 읽으라고 신나게 말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지옥에 갇히도록 하는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아름답게 엮어서 아이들한테 베풀까요.


  아름다운 책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못 알아보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한편, 아름다운 책을 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고 읽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안 알아보고 안 읽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 ‘아름다운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은 그저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은 그저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지만, 삶을 일구지 못하거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있는 줄 모르지만,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가까이한 적이 없으나,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도 안 거들떠보는 책에 깃든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면서,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면, 책을 왜 읽는지 먼저 생각하고 느끼면서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밥을 먹을 적이나 길을 나설 적이나 학교를 다닐 적이나 흙을 일굴 적이나 나무를 심을 적에도 모두 같습니다.


  자, 밥을 왜 먹는가요? 길을 왜 나서는가요? 학교를 왜 다니나요? 흙을 왜 일구나요? 나무를 왜 심나요?


  남이 이 까닭을 밝혀서 나한테 알려주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이 까닭을 알아내야 합니다. 밥을 왜 먹는지 남이 나한테 알려주어야 ‘밥을 왜 먹는지’ 안다면, 이런 사람은 바보입니다. 여행길이든 마실길이든 왜 길을 나서려 하는지 스스로 모르면서 남한테 묻는 사람은 여행도 마실도 다니지 못합니다. 학교를 왜 다니는가 하는 까닭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흙을 왜 일구는지 모른다거나 나무를 왜 심는지 모른다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하나도 모르는 셈입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까닭은 언제나 스스로 찾아야 환하게 깨닫습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즐거움은 늘 스스로 살펴서 느껴야 제대로 깨닫습니다.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기쁘거나 재미있는가 하는 대목은 노상 스스로 짚고 되새길 수 있어야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곱게 깨닫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로 삼는 책입니다. 어느 책이든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아무 책이나 동무로 삼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가슴에 담는 책은 한결같이 하나입니다.


  빛이 되고 숨이 되며 노래가 되는 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꿈이 되고 사랑이 되며 삶이 되는 책은 어떻게 알아볼까요. 이야기가 되고 바람이 되며 햇살이 되는 책은 누가 쓸까요. 내 가슴속에서 자라는 씨앗을 들여다봅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내 넋으로 살찌우는 숲을 껴안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눈을 뜨고, 스스로 사랑스럽게 다시 태어나면서 스스로 사랑스럽게 책 하나에 손길을 따숩게 내밉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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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저자마실



  아이들을 데리고 네 식구가 읍내로 저자마실을 하는 길에 생각한다. 큰아이는 곧 여덟 살이 되고, 작은아이는 이제 다섯 살이 된다. 두 아이는 가방을 메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무거운 짐을 나르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저희 몫으로 조그맣거나 가벼운 짐은 저희 가방에 넣어서 다닐 수 있다. 무럭무럭 자란 이 아이들은 씩씩하고 야무진 일꾼이 되리라 본다. 아니, 이 아이들은 튼튼하고 멋지게 자란다.


  굳이 짐을 들어 주지 않아도 된다. 애써 짐을 날라 주지 않아도 된다. 바깥마실을 하느라 고단해서 아이들은 군내버스에서 잠들고, 읍내를 다니면서 힘들다며 곁님한테 업히거나 아버지한테 안긴다.


  쉴 사이 없이 뛰고 논다. 아이들은 입에 밥이나 주전부리를 넣지 않으면, 조잘조잘 노래를 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 마음에는 끝없이 온갖 꿈이 올라온다. 하루가 온통 재미난 이야기가 되어야지. 어제와 오늘은 언제나 새롭지. 4347.1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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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함께 짓기



  혼자 하기 힘들면 둘이 하면 된다. 둘이 하기에 힘들면 셋이 모여서 하면 된다. 셋이 모여도 힘들면 넷이 모이고, 또 다섯과 여섯이 모이면 된다. 서로 돕는다. 함께 짓는다. 손을 모아서 함께 하고, 마음을 엮어 함께 나아간다. 동생한테 글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큰아이를 가만히 옆에서 지켜본다. 두 아이는 씩씩하게 잘 한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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