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2. 학교에서 온 전화


  큰아이를 제도권학교에 보낼 마음이 없다. 아이를 낳기 앞서부터 생각했다. 나와 곁님은 한마음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보금자리를 배움자리로 지어서 함께 배우고 가르치기로 했다. 우리 집이 곧 학교이고, 우리가 가꾸는 도서관이 바로 학교이며, 우리가 깃든 마을이 언제나 학교이다. 그리고, 우리 땅을 앞으로 마련해서 우리 땅을 숲으로 일구어 이곳에 한결같이 학교가 되도록 누릴 생각이다. 이런 뜻에서 ‘초등학교 입학거부’를 하는 셈인데, 관청에서 행정서류를 꾸리는 자리에서나 이런 이름일 뿐, 우리 집 네 사람은 늘 ‘삶을 읽고 지으면서 쓰는 하루’를 누린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주민등록을 하고 행정서류에 몸이 매이는 터라, 큰아이를 놓고 관청하고 얘기를 해야 한다.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두 군데를 놓고 얘기를 하는데, 면사무소 일꾼은 얼마나 답답한지 말이 안 나온다. 그렇다고 이런 공무원하고 싸울 마음이란 없다. 뭣하러 싸우는가. 즐겁게 아이와 삶을 배우려는 뜻인데. 그래서 초등학교에 새롭게 전화를 걸어서 차분하게 말을 여쭈었고, 우리 아이는 ‘정원 외 관리’가 되도록 처음부터 신청서류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고서 이틀이 지나니 면소재지 초등학교에서 전화가 온다. ‘입학유예’만 말했으면 이쪽에서 아마 ‘왜 학교를 안 보내느냐?’ 하고 따졌을는지 모르나, 서울에 있는 민들레 출판사 분한테 먼저 여쭌 뒤 행정사항을 모두 꿰고 나서 초등학교로 차분하게 물으니, 초등학교에서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준다. 우리 집에서는 일찍부터 이렇게 하려고 모든 것을 챙겼고, 이곳 고흥 시골에서 도서관을 열어서 꾸리면서 차근차근 배움길을 닦았다고 말했다. 아무튼 1월 6일에 예비소집일이 있다고 하니 그날 일찍 오시라 하기에, 그날 일찍 가서 서류를 쓰고 돌아와야지. 초등학교에 아이를 맡길 다른 어버이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용히. ㅎㄲㅅㄱ

(최종규 . 20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난꾸러기 놀이



  두 아이는 두 목숨이고 두 숨결이니 그만큼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큰아이 숨결이고,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작은아이 숨결이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다른 숨결이면서, 아이들하고 서로 맞닿는 숨결이 있다. 하루하루 새롭게 자라는 큰아이를 바라보면서, 나한테 오랜 옛날부터 깃들던 상냥함을 읽고, 날마다 씩씩하게 크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면서, 나한테 참 먼 옛날부터 감돌던 장난스러움을 읽는다. 내가 나이면서 내가 나를 잊은 모습을 두 아이한테서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아하는 모습이고 아니고를 떠나, 언제나 나를 이루던 내가 가장 기쁘며 아름답다고 느끼던 숨결은 ‘상냥함’과 ‘장난스러움’ 두 가지가 어우러진 때이다.


  한 사람이 얌전이와 개구쟁이 두 가지 모습을 건사할 수 있을까? 아무렴, 두 가지 모습을 나란히 건사할 만하다. 그리고, 두 가지 모습은 다른 모습이 아니라 늘 하나이다. 하나는 움직이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지키는 마음이다. 새처럼 하늘을 나는 장난스러움이고, 나무처럼 보금자리를 지키는 상냥함이다.


  따스한 손길로 웃음을 짓고, 너그러운 손길로 노래를 지으며, 사랑스러운 손길로 꿈을 짓는다. 아이와 어른은 모두 이러한 손길로 삶을 가꾼다. 먼먼 옛날부터, 먼먼 뒷날까지. 4348.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작은아이가 잠들기 앞서



  마을 어귀 빨래터를 치우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빨래를 하는데, 작은아이가 누나 밥그릇에 있던 메추리알을 손으로 살짝 집어서 “보라 먹어도 돼?” 하고 묻는다. 빙그레 웃으면서 먹고 싶다는 작은아이한테 “안 돼.” 하고 말하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운다. 빨래를 하느라 손을 쓸 겨를이 없다고 할 만하지만, 빨래를 살짝 그친 뒤 ‘메추리알이 먹고 싶구나? 기다리렴. 그 메추리알은 누나 몫이니 두고, 네 몫은 따로 그릇에 담아 줄게.’ 하고 말하면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웠을까. 빨래를 마치고 나와서 작은아이를 들여다보니 낮잠에 빠져들었다. 새근새근 잠들기 앞서 메추리알을 하나 더 먹고 싶었나 보다. 아무쪼록 꿈에서는 메추리알바다를 헤엄치기를 빈다.


  낮잠을 달게 자고 일어난 작은아이한테 메추리알조림을 다시 끓여서 밥그릇에 담아 건넨다. 4347.12.3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4-12-31 22:3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올 한해도 좋은 글들과 사진들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마음속에 품으신 사랑의 꿈~ 한껏
이루시길 빕니다~*^^*

숲노래 2014-12-31 22:58   좋아요 0 | URL
아아, 고맙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너그럽고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
올 한 해뿐 아니라
새로운 한 해에도
아름다운 삶 누리시기를 빌어요~ ^^
 

[아버지 그림놀이] 두 아이 꿈 (2014.12.25.)



  한참 묵히고 못 그리던 ‘이야기’ 그림을 그린다. 한 달 가까이 묵힌 끝에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앞으로 이루면 즐거웁겠구나 싶은 꿈을 한 가지씩 넣기로 한다. 내 꿈은 내 꿈이면서 이 보금자리에서 함께 누리는 꿈이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이루는 길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란히 즐기는 꿈이 되리라 생각한다. 먼저 큰아이 꿈으로 “사름벼리 인형 그리기”를 그리고, 작은아이 꿈으로 “산들보라 자동차 빚기”를 그린다. 두고두고 꿈을 간직해서 차근차근 이 꿈을 이루렴.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몬맛 제리



  읍내 가게에서는 ‘젤리’를 팔고, 면내 가게에서는 ‘제리’를 판다. 나는 사탕도 젤리도 안 좋아하기에 하나도 안 먹는다. 언제나 곁님과 아이들만 먹는다. 오늘 아침에 큰아이가 일어나더니 “아버지 잘 주무셨어요? 벼리도 잘 잤어요.” 하고 인사를 하더니, “자요, 아버지 먹으라고 하나 남겼어요. 벼리하고 보라는 많이 먹었어요. 아버지도 먹으라고 드릴게요.” 하고 ‘레몬맛 제리’를 내민다. 어젯밤부터 되게 먹고 싶었을 텐데, 먹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참으면서 아버지한테도 ‘즐거운 맛’을 나누어 주고 싶었구나. 나는 아직 몸살 기운이 남아서 물도 밥도 안 먹으니 ‘레몬맛 제리’를 받았어도 책상맡에 올려놓는다. 곧 아침밥을 기쁘게 차려서 맛나게 먹여야겠다.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4-12-30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12-30 11:14   좋아요 0 | URL
아이들은 모두 야무지고 예뻐요.
알라딘서재에서
손수 안 하는 일을 글로 쓰는 분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밥짓기나 삶짓기는
아주 예전부터 즐겁게 하던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