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6.23.


이틀 만에 다시 우체국으로. 얼마 앞서 《앞으로의 책방》을 읽으며 처음 만난 ‘여름의숲’ 출판사에서 선보인 《서점을 둘러싼 희망》을 읽어 본다. 세 사람을 만나서 오늘날 책방 이야기를 나누는 얼거리인데, 그동안 나온 책하고는 다르구나 싶으면서도 아쉬운 대목이 보인다. 책방을 열어 가꾸는 즐거움이나 새로움을 놓고는 이야기가 얼마 안 흐른다. 오늘날 책방을 열어서 가꾸는 뜻이나 마음에 더 무게를 두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즐겁지 않을까? 다른 책방들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이곳에서 책방을 가꾸는 이야기에 더 마음을 쏟아야 재미나지 않을까?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책방을 꾸린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이야기를 했기에 깊거나 넓게 못 짚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책방지기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분 스스로 책방마실을 오래오래 꾸준히 즐겁게 흐드러지도록 누려 본 발걸음을 녹여낼 수 있을 적에, 책방지기하고 책손이라는 자리에서 서로 멋진 이야기꽃을 피울 만하리라 생각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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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6.21.


우체국에 가는 길. 시집 한 권을 챙겨서 군내버스에 오른다. 《풀꽃 경배》. 풀꽃을 마주할 적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자는 이야기가 흐른다. 군내버스에서 풀꽃한테 절을 하자는 시를 읽다가, 절만 하지 말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잔치를 벌여도 재미있을 테지, 하고 생각한다. 이 풀꽃이 있어서 풀밭이 곱고, 저 풀꽃이 있어서 풀밭이 푸르다. 이런 풀꽃이 피기에 이 풀밭에서 이야기가 피어나고, 저런 풀꽃이 피기에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풀노래가 흐드러진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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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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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뭔데?

[내 사랑 1000권] 12. 레프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



  레프 톨스토이라는 분이 쓴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책을 처음 읽은 2008년 여름을 떠올려 봅니다. 1890년대에 쓴 글이라고 하는데, 이 글은 백 해를 가로질러서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뜻깊게 읽을 만할 뿐 아니라, 가슴에 새길 만하네 하고 느꼈어요. 삶과 살림을 꿰뚫을 줄 알 때에 이처럼 나라 얼거리를 읽을 수 있구나 싶었고, 사람과 사랑을 헤아릴 줄 알 적에 이렇게 나라 틀거리를 바로볼 수 있구나 싶었어요.


  《국가는 폭력이다》를 세 번쯤 다시 읽을 무렵 레트 톨스토이 님이 쓴 짧은 글이 떠올랐어요. 한 사람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다룬 글인데요, 이 글은 1930년대에 한국말로 옮겨진 적이 있어요. 서슬퍼런 일제강점기에 뜻있는 분이 이 얘기를 옮기셨더군요.


  우리한테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 보면 저절로 한 나라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짚을 수 있어요. 한 사람하고 한 나라는 똑같아요. 한 사람은 스스로 보금자리를 지어서 가꿀 수 있을 만한 땅을 누려야 합니다. 한 나라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사랑스레 어우러질 수 있을 만한 길을 걸어야 하지요.


  한 사람이 보금자리를 이룰 만한 땅을 거의 못 누리거나 지나치게 많이 거머쥘 적에는, 바로 이 한 사람부터 고달픕니다. 한 나라가 사람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길이 아닌 돈이나 권력에 이끌린다면, 또는 사람들이 사랑스레 어깨동무하는 길이 아닌 군대와 경찰과 막삽질에 끌려간다면, 이는 바로 독재로 이어지고 말아요.


  우리는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시골에는 군대도 전쟁무기도 경찰도 없어요. 사랑스러운 숲에는 대통령도 시장도 군수도 없지요. 스스로 삶을 지으면 돼요. 스스로 밭을 가꾸면 돼요. 스스로 아이를 돌보며 가르치면 돼요. 스스로 하루를 짓고 기쁨을 지으면 돼요. 《국가는 폭력이다》라는 책은 우리한테 있는 특권부터 우리 스스로 떨쳐내어 홀가분한 사람이 될 적에 비로소 한 나라도 아름답게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017.6.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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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 - 전4권 - 바다어린이만화
이진주 글 그림 / 바다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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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바람처럼 달리는 아이

[내 사랑 1000권] 11. 이진주 《달려라 하니》



  아이들은 달리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저도 어린이라는 나이를 살아가는 동안 달리기를 대단히 좋아했어요. 마을에서 으레 달리면서 살았어요. 심부름을 할 적마다 4층부터 1층까지 펄쩍펄쩍 뛰어내리고는, 가게까지 냅다 달음질을 했어요. 집하고 학교 사이를 오갈 적에 한 번도 안 쉬고 달려 보기도 했고요.


  달리기는 어른이라는 몸을 입은 뒤에도 좋아합니다. 요즈음은 짐을 잔뜩 짊어지고 다니느라 좀처럼 빨리 달리지는 못하지만, 온갖 짐을 짊어지고 아이를 한 팔로 안은 채 달리기도 해요. 재미있거든요.

  달릴 적에는 바람을 가릅니다. 매우 빨리 달려야만 바람을 가르지 않기에, 가볍게 달려도 바람을 가를 수 있어요.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릴 적에는 몸을 이리저리 옮기며 달리는 맛이 새롭습니다. 한참 달리며 땀이 방울져서 톡톡 떨어질 적에는 땀방울이 떨어지는 느낌이 새삼스러워요.


  달리기를 하면서 문득 생각해 보는데, 어쩌면 사람은 걷는 재미와 달리는 재미가 있어서 날지는 않을 수 있겠다 싶어요. 걷거나 달리는 재미를 넘어서 새로운 재미를 찾으려 한다면 어쩌면 사람도 새처럼 하늘을 날며 바람뿐 아니라 구름을 가를 수 있을는지 몰라요.


  이진주 님이 빚은 만화책 가운데 《달려라 하니》는 한국에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1986년과 1988년에 치른 커다란 운동경기 때문에 어린이 만화에서도 운동경기를 자주 많이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달려라 하니》는 예나 이제나 한국에서 인기가 없다는 달리기에 눈길을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요. 작은 아이 마음속에 불꽃처럼 타오르는 꿈을 달리기로 풀어내고, 작은 아이 가슴속에 불꽃처럼 피어나고 싶은 사랑을 달리기로 담아내지요.


  첫째가 되려는 달리기가 아니라 바람처럼 달리며 눈물을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내는 달리기를 보여주는 《달려라 하니》입니다. 으뜸이 되려는 달리기가 아니라 바람처럼 달리는 동안 웃음을 바람에 얹어 훨훨 날려 보내는 달리기를 보여주는 《달려라 하니》예요. 2017.6.2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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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학개론 리토피아포에지 55
윤종환 지음 / 리토피아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말 295


멈춘 시계도 별빛과 같으니
― 별빛학개론
 윤종환 글
 리토피아 펴냄, 2017.2.25. 9000원


  고등학교 2학년이던 무렵, 저는 시를 적는 공책을 따로 챙겨서 들고 다녔습니다. 무언가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 공책을 따로 마련해 보았고, 늘 책상맡에 놓고서 무언가 떠오르면 그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딱히 누구한테 읽히려는 마음으로 무엇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날마다 똑같은 날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어요. 대학입시를 바라보며 달리는 하루가 아니라, 어제와 오늘과 모레는 모두 다르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적어 보고 싶었어요.


그대는 알까
며칠 뒤 우편함에 담길 사연과
손마디 끝에서 묻어나온 떨림
그 흔적이 흥건하게 젖은
부끄러운 한 사람의 끄적거림을 (우표)


  고등학교를 다니며 적던 시 공책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혼자 쓰고 혼자 되읽었습니다. 이러다가 3학년에 이르는데, 어느 날 자율학습을 하던 때, 국어 교사 한 분이 교실을 죽 돌아다니다가 제 책상맡에 놓인 시 공책을 문득 보았어요. 국어 교사한테 교과서도 참고서도 문제집도 아닌 뭔가 다른 공책을 올려놓은 모습이 보였구나 싶었지요. 그분은 제 시 공책을 집어들고 아주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무언가 떠오르면 적으려고 늘 책상맡에 두었는데, 이럴 줄이야. 보여줄 마음이 없던 글을 누가 말도 없이 집어들어 읽을 적에는 대단히 싫으면서 부끄럽습니다. 국어 교사는 제 시 공책을 다 읽고서 “부지런히 잘 써 봐.” 하고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날 뒤로 시 공책을 치웠어요. 더는 시 공책에 하루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내 손을 감싸던
내 맥박 소리를 가장 가까이 듣던 이가 오늘 떠났다
나와 이리저리 부대끼며 체온을 나누고
심지어 손목의 때마저도 공유하던 이 (멈춘 시계)

그간 찍은 작품을 보니
가장 아름다운 햇볕
가장 아름다운 바람이 들려옵니다
검지로 셔터를 누르는 순간
한쪽 귀에 찰칵 소리가
다른 한쪽에는 내 심장이 터졌습니다 (사진가)


  대학생이면서 시를 쓰는 윤종환 님이 선보인 《별빛학개론》(리토피아,2017)을 읽습니다. 윤종환 님은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고, 어릴 적부터 꾸준히 글을 써서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학생으로서 ‘멘토링&강연 교육기부 봉사단’을 꾸려서 이끌기도 하고, 군대에서 젊은 날을 보내는 동안에 책읽기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해요.

  시집 《별빛학개론》은 젊은 넋으로 하루하루 짓는 윤종환 님이 그동안 마주한 모든 사람과 사물을 별빛으로 바라보면서 그려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뜬 별도 별이요, 내가 마주한 사람도 별이며, 내가 손에 쥔 온갖 물건도 별이라고 하는 마음을 시 한 줄로 담아냅니다.


점과 점을 연결하다 보면
밤하늘 별자리처럼 그려집니다
별자리가 그물처럼 얽혀 있는데
그 사이로 물고기와 전갈과 황소도 지나가고
무엇이 우리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도
그물에 걸리지 않습니다 (점과 선의 밤하늘)

보라색 별의 뿌리를 씹었을 때
입안을 메우는 도라지의 쓴맛
흙의 깊은 숨결까지 끌어 모은 듯
풍성하게 퍼지는 별의 혈관 냄새
우주는 이 특유의 쓴맛을
도라지의 애환이라 일컫는다 (도라지꽃의 속사정)


  멈춘 시계를 별빛으로 볼 수 있다면, 여름에 부치는 부채도 별빛으로 볼 수 있습니다. 찻길 끄트머리에 쪼개진 아스팔트 조각도 별빛으로 볼 수 있을 테고, 닳아서 몽툭한 연필도 별빛으로 볼 수 있을 테지요. 물에 젖은 광고종이도 별빛으로 볼 수 있을 테며, 이가 빠진 오랜 부엌칼도 별빛으로 볼 수 있을 테고요.

  도라지 한 뿌리는 보라빛 별이 됩니다. 나물 한 접시가 별이요, 밥 한 그릇이 별입니다. 능금이나 살구나 복숭아 한 알도 별이 되어요. 콩 한 톨도, 볍씨 한 톨도 모두 별이 되고요.

  우리는 별에 둘러싸여서 별을 먹고 별을 마신다고 할 만합니다. 아름다운 별을 먹고 마시기에 아름다운 별사람으로 하루를 누리겠지요. 사랑스러운 별을 보고 느끼고 듣고 만지기에 사랑스러운 별사람으로 하루를 짓겠지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고운 별말입니다. 네 입에서 나와 내 귀로 스미는 말도 고운 별말입니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이야기는 미리내처럼 흐드러지는 눈부신 별노래라고 할 만합니다.


만든 이의 소망을 지키려는 듯
탄생에 보답이라도 하듯
끝까지 눈덩이에 붙어있는다
녹아도 가장 나중에 녹는 웃음
겨울에 태어나서
겨울에 사라지는 눈사람 (눈사람)


  젊은 시인 윤종환 님이 스물이라는 별바다 같은 나이를 즐거이 가로질러서 서른이라는 새로운 별바다를 맞이할 때까지 어떤 별누리를 가슴에 담을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윽고 마흔이라는 별바다를 만나고 쉰이라는 별바다를 만날 적에는 어떤 별노래를 부를 만할까요.

  이른 아침에 낫을 쥐고 풀을 베며 생각해 봅니다. 어느새 쑥쑥 자란 풀을 벨 적에는 이 아이들(풀) 참 잘 자라네 하고 바라보면서 손이며 몸에 풀내음이 벱니다. 갓 돋은 풀을 벨 적에는 엊그제 싹이 돋는다 싶더니 벌써 이렇게 앙증맞도록 올라왔구나 하고 노래하면서 낫질을 석석 하며 새삼스레 온몸에 풀내음이 뱁니다.

  베어 놓은 풀은 한창 키가 오르는 옥수숫줄기 옆에 놓습니다. 베어 놓은 풀이 새로운 흙이 되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여름볕에 옥수수가 타지 않도록 땅을 덮어 주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우리 집 밭자락에서 자라는 옥수수는 해와 바람과 비를 먹기도 하지만, 온갖 풀포기가 시들며 흙으로 돌아가서 나누어 주는 기운을 먹기도 해요. 우리 집 옥수수가 잘 익어 즐거이 따서 삶을 적에는 옥수수에 깃든 모든 기운을 우리 몸으로 받아들이는 살림이 되리라 느낍니다. 이 옥수수에도 따스한 별빛이 스미겠지요.

  《별빛학개론》에 이어 조금 더 쉽게 별빛 이야기를 들려줄 시를 기다려 봅니다. ‘-학개론’이라는 딱딱한 이름 말고, 젊은 숨결로 새롭게 길을 짓는 수수하면서도 고운 이름을 붙이는 살림 이야기를 시 한 줄에 담아 볼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대학생으로 지내는 나날은 매우 짧아요. 대학생은 네 해로 그치고, 나머지 기나긴 나날은 ‘별사람’으로 짓는 삶입니다. 오롯이 흐를 별살이를 헤아리는 이야기를 적어 본다면 도시에서도 밤하늘에 별빛이 더욱 밝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2017.6.2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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