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6.30.


아침 일찍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나서 순천마실을 간다. 저녁 일곱 시에 순천역 건너편 마을책방 〈책방 심다〉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로 했다. 고흥을 떠나는 시외버스에서 《용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나요?》를 읽는다. 용하고 바이올린이 어떻게 이어지느냐고 여길 수도 있으나, 책이름부터 어떤 이야기가 흐를는가를 넌지시 일러 준다. 그런데 되느냐 안 되느냐는 대수롭지 않다. 무엇을 하거나 이루겠다는 꿈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한 걸음씩 나아가느냐가 대수롭다. 이러한 살림살이와 마음을 차분하면서 따스히 잘 담은 예쁜 어린이책이로구나 싶다. 시외버스는 순천에 닿았다. 먼저 중앙시장 건너편 골목에 깃든 〈그냥과 보통〉에 찾아간다. 이곳에서 느긋하게 책내음을 맡은 다음 〈책방 심다〉로 갔고, 이야기 손님이 오시기 앞서 이 책 저 책 살피다가 곽재구 님을 뵙기도 한다. 곽재구 님이 수수한 책방 손님으로 마을책방에 자주 찾는다는 말은 들었는데 막상 이렇게 뵈니 반갑다. 내 책 두 권을 선물로 드린다. 곽재구 님도 이녁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신다. 지난날 나는 곽재구 님 시집이나 산문책을 읽기만 하던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을 드릴 수 있네. 나도 틀림없이 날마다 조금씩 자라면서 피어나는 숨결이라고 할 수 있겠지? 다음에 다시 뵐 적에도 새로운 책을 선물로 즐거이 살그마니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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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강
한영수 지음 / 한스그라픽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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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950년대를 흐르던 한가람은 더없이 따사롭고 너그러우면서 아름다운 물줄기였다고 한다. 나는 서울사람도 1950년대 사람도 아니라서 모른다. 사진으로 시간을 거스르면서 한가람을 바라보는데, 참말로 한가람이네 싶다. 이 너른 물줄기가 참말로 하늘처럼 착하게 흐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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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지음, 김동욱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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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04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면?

― 불멸의 그대에게 1

 오이마 요시토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7.5.31. 5500원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태어났을까요? 우리는 태어나서 사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기였을 적이나 무척 어린 아이였을 적에는 이 대목을 딱히 궁금해 하지 않으리라 느껴요. 아기나 무척 어린 아이일 적에는 그저 무럭무럭 자라면서 신나게 뛰노는 데에 온마음을 기울이지 싶습니다.


  이러다가 차츰 철이 들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이 대목, ‘어떻게 태어나’고 ‘왜 태어났’는지를 궁금해 하지 싶어요.



처음에 그것은 구체였다. 단순한 구체가 아니라, 온갖 것들의 모습을 본뜨고 변화할 수 있는 구체. 나는 ‘그것’을 이 땅에 던져놓고 관찰하기로 했다. (7쪽)



  오이마 요시토키 님이 새 만화책 《불멸의 그대에게》(대원씨아이,2017)를 내놓습니다. 이녁은 앞선 만화책 《목소리의 형태》에서 목소리에 담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다루었어요. 우리 목소리는 입으로만 나오지 않고, 마음에서 먼저 샘솟는다고 하는 대목을 여러모로 짚었지요.


  《불멸의 그대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나서 왜 이곳에서 살아가는가 하는 수수께끼를 만화라는 얼거리로 풀어내 보려는 뜻을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삶과 죽음을 파헤쳐 보려 하고, 사랑과 꿈을 헤아려 보려 합니다. 너와 나를 생각해 보려 하고, 이웃과 동무를 돌아보려고 해요.



“나 여길 떠날까 생각 중이야.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끼고 싶어. 분명 좋은 일만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난 세상을 알고 싶어.” (33쪽)


“안 돌아가. 난. 그렇게 폼 안 나는 짓을 어떻게 해? 식량이 다 떨어진 것도 아닌데. 내일도 걸어갈 거야. 모레도, 글피도.” (47쪽)



  맨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였다고 하는 데에서 이야기를 엽니다. 어느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일 수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해요.


  지구라는 별이, 지구가 깃든 별누리가, 또 지구가 깃든 별누리를 품은 더욱 커다란 별누리가, 참으로 어떻게 태어났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부터 이야기를 짚어 보자고 이끌어요.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 하나는 처음에는 동그라미였지만, 돌도 되어 보고 이끼도 되어 봅니다. 이것저것 되어 보다가 늑대가 되어 보기도 해요. 그리고 늑대를 곁에 두고 아끼던 어느 어린 사내 모습이 되어 보지요. 그러니까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을 획득했다. 획득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자극’이다. 그것은 새로운 자극을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앞으로 여러 사람과 만나고 여러 가지를 느낄 것이다. 소년이 그리 하고 싶어 했듯이. (80∼81쪽)



  돌이나 이끼가 되어 보았을 적에는 딱히 어려운 일도 없고 말썽도 없습니다. 그러나 늑대가 되어 볼 적에는 늑대처럼 네 다리를 써서 걸어야 하고, 때때로 무언가 먹기도 해야 합니다.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때로는 갈갈이 찢겨서 죽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서 또 죽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먹기도 하다가,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목숨을 만나서 ‘사람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해요.


  자, 그러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이제 ‘사람이 하는 말’을 배워서 쓸 수도 있을까요?


  아마 그러할 테지요. 아직은 겉모습만 사람으로 보일 뿐이지만, 말을 익히고 몸짓을 배우며,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길까지 지켜본다면, 아주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제 나름대로 거듭나기를 하리라 느껴요. 이른바 진화를 하겠지요.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스스로 어른이 되길 선택하면 되는 거야!” (174∼175쪽)



  만화책 한 권이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만화책 한 권에서 ‘태어나고 죽고 살아가는 뜻’이 무엇인가를 모두 살피거나 배우거나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도 느끼지 않아요. 그러나 이 만화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가만히 되새겨 봅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꿈은 무엇이고, 우리가 스스로 나누려는 사랑은 무엇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관습 따위 지킬 필요 없어” 하고 외치면서, 뜻없는 죽음은 손사래치겠다고 일어서는 몸짓은, 낡은 모습은 끊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첫걸음이 됩니다. 어린 가시내를 어느 님(신)한테 바치는 낡은 관습은 지키지 않겠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앞으로 새로운 살림(문명)이 태어나도록 이끄는 첫 발자국이라 할 만해요.


  처음에는 멋모르고 따른다고 하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생각을 해 보면서 바꾸거나 고치는 길이에요. 처음에는 그저 뒤따르기만 하더라도, 차근차근 스스로 생각을 지피면서 가다듬거나 갈고닦는 길이에요.



“조안, 나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날 쭉 기억해 줘.” (69∼70쪽)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입니다. 죽었으나 다시 살아나니, 곰곰이 따진다면 꼭 죽었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에요. 그렇기에 ‘불멸’이라 할 테고, 이 만화책 이름이 《불멸의 그대에게》가 되는구나 싶어요.


  죽은 뒤에 늘 다시 살아날 뿐 아니라, 스스로 바라는 대로 새로운 모습이 되는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어린 사내가 남긴 말 한 마디를 마음에 새겨요. “기억해 줘”라는 말을 새기지요. 그래서 이 조그마한 동그라미는 사람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하는데요, 우리가 이 땅 이 별에서 살아가는 뜻도 어쩌면 되새기거나 떠올리고(기억) 싶은 마음 때문일 수 있으리라 느껴요. 잊지 않고 싶어서, 다시 생각하고 싶어서, 다시 살아내면서 이제는 무언가 이루어 보고 싶어서, 자꾸자꾸 새로 태어나서 살아가려고 하지 싶어요.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백 살 언저리에 삶을 다해서 죽음으로 가는데, 이 죽음 뒤에 새롭게 태어나는 삶이 있다면 우리는 이 삶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이 삶을 한 번 마치고 새로 맞이할 적에는 어떤 길을 가면 좋을까요? 굳이 죽음 뒤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오늘 이곳에서 누리는 삶은 우리한테 어떤 뜻이라고 생각해 볼 만할까요? 가볍게 읽고 덮을 수도 있는 만화책이지만, 이 만화책 한 권을 되읽으면서 우리 삶을 조용히 되짚어 봅니다. 2017.6.2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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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화요일 비룡소의 그림동화 84
데이비드 위스너 글.그림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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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나온 책은 “이상한 화요일”이 아닌 그냥 “화요일”일 뿐이다. 굳이 ‘이상한’을 앞에 달아야 하지 않는다. 화요일이 되면 ‘재미난’ 일이 벌어진다. 신나거나 놀랍거나 즐겁거나 멋진 일이 벌어진다. 또는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 꿈을 꾸며 날아오르는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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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말을 건다 -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김영건 지음, 정희우 그림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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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3


‘책방이 있는’ 이쁜 고장을 생각한다
― 당신에게 말을 건다,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
 김영건 글
 정희우 그림
 알마 펴냄, 2017.2.20. 11500원


  저는 어느 고장을 떠올릴 적에 다른 분들하고 참말로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경주라고 하는 고장을 들면 흔히 불국사나 첨성대를 떠올리는 분이 많겠지요. 그러나 저는 경주라고 하면 ‘소소밀밀’이라고 하는 그림책 전문 책방이 있는 고장이라고 떠올립니다.

  제주라고 하면 ‘책밭서점’이라는 오래된 헌책방이 이쁘게 있는 고장이라고 떠올려요. 춘천이라고 하면 ‘경춘서점’이라는 아름다운 헌책방이 있는 고장이라고 떠올리고, 전주라고 하면 ‘홍지서림’이나 ‘책방 같이’나 ‘조지 오웰의 책방’ 같은 곳이 어여쁜 고장이라고 떠올립니다.

  그리고 속초라고 하면 중앙시장 언저리에 있는 작은 헌책방이 살뜰한 고장이라고 떠올리면서, ‘동아서점’ 같은 씩씩한 책방이 있는 알뜰한 고장이라고 떠올립니다.


서점 해볼 생각 있느냐? 2014년 8월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막 일어난 내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버지였다. (17쪽)

속초에서 서점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내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1쪽)


  아버지가 지은 책방살림을 새롭게 가꾸는 젊은 책방지기 김영건 님이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 속초 동아서점 이야기》(알마,2017)를 읽으면서 속초라는 고장에서 책방 한 곳이 새롭게 태어나는 흐름을 헤아려 봅니다. 글쓴이요 책방지기인 김영건 님은 책방집 아이로 태어나고 자랐으나 딱히 책방지기라는 길을 걸을 생각이 없었다고 해요.

  마땅한 노릇입니다. 책방집에서 태어났대서 굳이 책방지기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빵집에서 태어났대서 꼭 빵 굽는 일꾼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청소부 어머니를 두었기에 꼭 청소부가 되어야 하지 않고, 교사 아버지를 두었기에 꼭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별것 아니었다. 좋은 기능을 갖추고 튼튼해 보이는 서가들 사이에서 느꼈던 뭔지 모를 부족함은 바로 그것들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는 것. (42쪽)

서가의 분류도 서점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인터넷서점이 아닌 ‘서점’에 갈 최소한 한 가지 이유는 확보한 셈일 것이다. (61쪽)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책방집 아이로서 어떤 어린 날을 보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비롯해서, 책방집 아이로서 다른 책방과 이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짚습니다. 얼결에 책방지기 길을 걷는 삶이 되고부터 생각이나 눈썰미가 어떻게 거듭나는가 하는 이야기도 차곡차곡 털어놓습니다. 함께 책방지기를 하는 곁님이 김영건 님을 어떻게 이끌어 주면서 속초 책방 〈동아서점〉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서도록 북돋우는가 하는 이야기도 담아내요.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다루어야 하지도 않고요. 책이름처럼 ‘말을 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속초를 아직 더 속속들이 헤아리지 않는 이웃님한테 말을 거는 이야기가 흘러요. 속초를 좋아해 주거나 사랑하고 싶은 이웃님한테 넌지시 말을 거는 이야기가 흐르지요. 속초라는 고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웃님을 마주하는 책방지기로서 하루하루 길어올리는 이야기가 흐른답니다.


라면에 양은냄비까지 얹어주기로 했던 어느 힘센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의 합작은 나 같은 동네서점 사람에겐 그저 웃어넘겨야 할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울상 지어 봤자 봐줄 이 하나 없으므로. (105쪽)

구매로 이어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꼭 구매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방문한 손님들이 독립출판물 매대에 잠깐이라도 머무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흐뭇했다. (112쪽)


  책방이 있는 고장을 생각해 봅니다. 저는 책방이 없는 고장은 그다지 마음이 안 끌립니다.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는 고장일 적에 비로소 마음이 끌립니다. 모든 사람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즐겁게 삶을 새로 배우고 아이들을 새롭게 가르칠 수 있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책으로만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에서만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손수 밭을 일구거나 집살림을 건사하면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삶이 있어요. 손수 구름이나 하늘을 읽으면서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배를 저어 고기를 낚는다든지 미역을 걷는다든지, 또는 갯벌에서 조개나 바지락을 캔다든지, 들에서 나물을 훑는다든지, 숲에 나무가 우거지도록 따사로운 손길을 보태면서 배우거나 가르치는 살림이 있지요.

  책 한 권이란, 이 책을 쓴 사람이 지은 모든 삶을 알뜰히 갈무리한 슬기꾸러미라고 느껴요. 모든 책이 슬기꾸러미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책을 새로 지으려고 하는 분이라면, 이 책 한 권에 지은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피고 배우고 찾고 받아들인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슬기를 담는다고 느껴요.

  한자말로는 작가라고 합니다만, 한국말로는 글쓴이나 지은이라는 이름을 써요. 글쓴이는 이름 그대로 글을 썼다는 뜻이고, 지은이는 새로 짓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책 한 권만 새로 짓지 않고, 책에 깃들 이야기와 삶을 스스로 새로 짓는다고 하기에 지은이 같은 엄청난 이름을 붙여 줍니다.


할머니가 어찌나 힘찬 목소리로 아버지를 맞았는지, 매장의 모든 손님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때부터 그녀는 순진한 학생처럼 아버지에게 자신이 찾는 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좀 전의 불안은 온데간데없이 한없는 안도감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124쪽)


  책방이 있는 고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한나절을 즐거이 일하고, 다른 한나절을 즐거이 살림을 지으며, 다른 한나절은 느긋하게 쉬다가, 다른 한나절은 책 한 권을 곁에 두면서 새로운 길을 배울 수 있도록 책방이 있는 고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도 아이도 스스로 마실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도록 쉼터 구실을 하는 책방이 있는 고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마을사람도 나그네도 홀가분하게 찾아와서 스스럼없이 여러 가지 책을 살피다가, 아하 하고 무릎을 치면서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꾸러미를 만나도록 이음터 노릇을 하는 책방이 있는 고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속초에 〈동아서점〉이 즐겁게 뿌리를 내린다면, 고성 양양 동해 강릉 양구 인제 화천 홍천 정선 평창 횡성 원주 같은 고장에는 어느 책방이 즐겁게 뿌리를 내리려나요. 강원도 골골샅샅, 그리고 이 나라 골골샅샅, 꼭 커다란 책방이어야 하지 않으니, 작고 조촐하게 이야기꽃밭이 되는 마을책방이 한 곳 두 곳 태어나고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느 고장이든 저마다 고운 책방을 여러 곳 품으면서 마을사람한테 싱그럽고 슬기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삶터로 날개돋이를 할 수 있다면, 이 나라는 가없이 멋스럽고 해맑은 길을 걸을 만하지 싶습니다. 2017.6.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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