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자전거 타며 읽은 책 2017.11.4.


낮에는 따뜻한 가을볕을 두고볼 수만은 없는 노릇. 아직 마치지 못한 일감이 있지만, 두어 시간쯤 쉬면서 아이들하고 함께 놀자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먼저 책숲집에 들러 큰아이가 바라는 만화책을 읽으라 한다. 이다음으로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간다. 아이들하고 ‘시소’를 타다가 문득 생각한다. 예전에는 ‘시소’라는 놀이틀 이름을 ‘널방아’로 지어 보았는데, 오늘 떠오르기로는 ‘엉덩널’이 한결 재미나지 싶다. 엉덩이를 쿵쿵 찧으니 엉덩널이라고 할까. 엉덩널을 한참 놀고서, 달팽이 출판사에서 새로 낸 《나무》를 읽는다. 번역 말씨는 여러모로 아쉽다. 번역 말씨를 정갈하게 한국 말씨로 가다듬어 줄 일꾼이 한국에 없을까? 내가 보기로 앞으로는 ‘번역가’ 못지않게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읽고 듣고 말하도록 돕는 글손질지기’가 나와야지 싶다. ‘나무’하고 얽힌 이야기를 수수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어여쁜 《나무》라고 느낀다. 참 멋스럽다. 한국에서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하늘이나 바람을 놓고서, 이렇게 수수하면서 어여삐 이야기를 풀어낼 이웃님이 얼마나 있으려나. 두 아이들이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전거길은 맞바람. 이제 겨울을 앞둔 맞바람이 제법 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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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 2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철수와영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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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 올리려고 씁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시민기자가 책을 새로 내면
[책이 나왔습니다]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책을 알리는 기사를 쓰도록 합니다.

새로 써내는 책을 스스로 알리는 일이란
때로는 부끄럽거나 멋쩍을 수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새롭게 써내어
이웃님하고 너르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으로
책을 한 권 썼기에
시민기자는 저마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 이야기를 적어요.

저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내기까지 이래저래
흘린 땀방울하고 얽혀서 이처럼 글을 하나 지었습니다.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면서 읽어 주시고
<겹말 사전>이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며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며
<읽는 우리말 사전>이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며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이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같은 책을
알뜰살뜰 장만하여 마음으로 벗삼아 주시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_ _)

+ + +

원고종이 5000쪽으로 써낸 두 권째 국어사전
[책이 나왔습니다] ‘숲노래’가 지은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처음은 아주 작았습니다. 대학입시를 바라보던 열여덟 살 푸름이는 주마다 두 차례씩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갔고, 그곳에서 ‘아벨서점’이라는 자그마한 책숲을 만났어요. 둘레에서는 그 작고 낡은 헌책방에서 무슨 책을 읽느냐고 핀잔을 하거나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로 그 작고 낡은 헌책방에서 주마다 이틀씩 하루 여덟 시간을 오로지 책읽기를 누렸습니다.

  아니, 책읽기를 누렸다기보다 책을 새로 보고 느끼며 배웠어요. 저는 마을마다 작게 있는 헌책방을 놓고서 이때부터 ‘책숲’이라고 여겼습니다. 숲이 고스란히 옮겨온 책터요, 도시에서 마음을 놓고 쉴 뿐 아니라 새로운 기운을 얻는 샘터라고 느꼈어요.

  이렇게 책숲에서 책하고 숲하고 사람하고 삶을 새로 배울 무렵, ‘콘사이스 국어사전’을 통째로 두 차례 읽는데, 너무 어처구니없을 만큼 일본말이나 일본사람 이름이나 뜬금없는 영어나 외국말이 잔뜩 실린 모습을 보았어요. 이때 저도 모르게 “국어사전이 이 따위라면 차라리 내가 짓겠다.”는 말을 한숨처럼 내뱉았습니다. 이 작은 말이 빌미가 되어 저는 어느새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새로 짓는 길에 섰고, 지난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스물 몇 해 만에 제 작은 ‘말씨(문득 내뱉아서 씨가 된 말)’를 이룬 셈인데, 이 작은 말씨를 이루고 나서 이듬해인 2017년에 두 가지 우리말 책하고 사전을 새로 써냅니다. 하나는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이고, 다른 하나는 ‘읽는 우리말 사전’이라고 간추려서 말하는 《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 1 겹말풀이와 돌림풀이 다듬기》(자연과생태 출판사 펴냄)입니다. 그리고 2017년 11월에 764쪽에 이르는 도톰한 사전을 새로 하나 더 냅니다. 바로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출판사 펴냄)입니다.


오늘날 글을 쓰는 분이 부쩍 늘지만, 사전을 곁에 두는 분은 뜻밖에 무척 적구나 싶어요. 작가나 기자나 전문가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누구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멋진 오늘날입니다만, 막상 ‘글을 쓰’면서 사전을 찬찬히 살피는 손길은 매우 적구나 싶어요. 사전을 곁에 두느냐 안 두느냐는 매우 달라요. 아주 흔하게 쓰는 낱말이더라도 이 ‘흔한 낱말’을 사전을 뒤적여 다시 읽고서 새롭게 헤아리며 글을 쓰는 사람하고, ‘흔한 낱말’이니까 구태여 사전을 안 뒤적이고 그냥 글을 쓰는 사람하고는 똑같을 수 없어요. (4쪽)


  2016년에 써낸 《비슷한말 사전》은 원고종이로 3000장이 넘습니다. 이를 꾸밈지기가 곱게 매만져서 496쪽으로 묶었어요. 2017년 가을에 선보인 《겹말 사전》은 원고종이로 4900장이 넘습니다. 이를 꾸밈지기가 알뜰히 매만져서 764쪽으로 묶었습니다.

  아마 이쯤에서 물을 만하지 싶어요. 《겹말 사전》이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겹말 얼거리로 글을 잘못 쓴 보기를 묶은 사전일 텐데, 어찌하여 원고종이로 거의 5000장에 이르도록 잘못된 보기를 엄청나게 찾아내어 도톰한 사전으로 엮느냐고 말이지요.


‘겹말’이란 “뜻이 같은 낱말을 겹쳐서 쓰는 말”을 가리킵니다. ‘초가집’이나 ‘처갓집’이나 ‘외갓집’ 같은 낱말이 겹말이요, ‘향내’나 ‘늘상’이나 ‘한밤중’이 겹말입니다. “도구와 연장을 쓴다”나 “느끼고 의식하다”라든지 “궁리하고 생각한다”나 “다른 대안”이나 “다시 반복하다”도 겹말이에요. “둥근 원”이라 하거나 “땅과 대지”라 말할 적에도 겹말이요, “똑바로 직진하다”나 “미리 예측하다”도 겹말입니다. ‘모래사장’이나 ‘모양새’가 겹말이고, ‘본보기’와 ‘살아생전’이 겹말이에요. “서울로 상경한다”라든지 “부정적이고 나쁘다”라든지 “아름답고 화려한”이 겹말이요, ‘삼세번’이나 “삼시 세끼”나 ‘시시때때로’가 겹말이지요. ‘아침조회’나 ‘야밤’이나 “헌신적인 희생”이나 “함께 연대”가 겹말이고, ‘연거푸’와 ‘이따금씩’과 ‘하나둘씩’이 겹말이에요. “잘못이나 실수”가 겹말이고 “저녁 만찬”이 겹말이며 “참고 인내하다”가 겹말입니다. 이밖에도 겹말은 수없이 많습니다. (8쪽)


  《겹말 사전》은 모두 1004가지 보기를 다룹니다. 이 사전을 내려고 2001년 1월 1일부터 2017년 7월 1일까지 모은 겹말 보기는 모두 1287꼭지입니다. 이 가운데 1004꼭지를 사전으로 묶었어요. 출판사로 글을 모두 넘기고 사전이 나온 뒤 오늘(2017.11.5.)에 이르도록 겹말 보기 181꼭지를 새로 모았습니다. 넉 달 사이에 벌써 181꼭지를 더 모은 셈인데, 저 스스로 새로운 사전을 쓰면서 날마다 꾸준히 배움길을 새삼스레 걷다 보니, 우리가 이제껏 제대로 안 느끼거나 지나친 겹말이 곳곳에서 자꾸 튀어나옵니다.

  이제 내놓은 《겹말 사전》에는 못 실었으나 요즈음 찾아낸 겹말 보기를 든다면, “소수의 몇 그루”, “일렬종대로 가지런하고 반듯하게 열 맞춰”, “이상하여 정상이 아니야”, “적갈색 빛”, “나뭇잎과 나무의 잎사귀”, “매일 일상 속에서”, “조금 더 과하게 애써”, “간절히 애걸복걸”, “구름 떼가 무리 지어”, “노동일”, “적성에 맞다”, “온기 없이 따뜻한 밥”, “언어로 말하는”, “빼앗기고 약탈당한”, “용의주도하여 철저히 빈틈없는”, “집에 돌아오는 귀가”, “나누고 공유하는”, “스스로 자발적”, “미리 선점”, “몸으로 실천”, “체득하고 경험한”, “희게 탁해지다”, “겹겹 포개다”, “야생에서 들로”, “이쪽 방향”, “모으고 저축하다”, “엔터테인먼트화로 즐겁다”, “시작한 것이 처음”, “좋아하고 호감을 가지다”, “키 작은 관목”, “올리고 업로드” 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꽃이 한창 만발하다”처럼 겹말을 쓰면서도 못 느끼기 일쑤입니다. “한도 끝도 없이”나 “혼자 독식”이 겹말이라는 생각을 안 하기도 하고, “회색빛”이나 “초록빛” 같은 겹말도 아무렇지 않게 쓸 뿐 아니라, 때로는 이런 겹말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버젓이 오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도 겹말풀이로 나오기 일쑤이고요.


한자말 ‘경운’은 ‘갈다’나 ‘갈아엎다’를 나타냅니다. “경운으로 갈아엎는”으로 쓰면 겹말이에요. 보기글을 쓴 분은 ‘경운·무경운’이라는 한자말을 잇달아 씁니다. 한자말로 짝을 맞추다 보니 이 같은 겹말이 나왔구나 싶어요. 처음부터 쉽게 ‘갈다·안 갈다(갈아엎다·안 갈아엎다)’만 썼다면 겹말도 아니 되면서 쉽고 부드러운 말씨가 될 수 있을 테지요. (74쪽)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못 쓰면서 겹말이 불거지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못 가르치는 탓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사전뿐 아니라 교과서도 한국말다운 한국말로 갈무리하지 못하니까요. 여기에 여느 신문이나 책이나 방송에서도 겹말이 툭툭 불거져요.

  방송 이름으로까지 널리 퍼진 “삼시 세끼”는 어찌해야 할까요? 이런 겹말은 널리 알려진 방송 이름이니 손질을 안 하고 그냥 써도 될까요? 방송에 흐르는 말이니 무턱대고 따라서 써도 될까요? 왜 “하루 세끼”나 “세끼니”나 “기쁜 세끼”나 “세끼 밥상”이나 “서로 세끼”나 “즐거운 끼니”처럼 새롭고 알맞게 말마디를 가다듬는 길로는 못 나아갈까요?


깊이 생각한다고 해서 한자말로 ‘사색’을 쓰니, “깊은 사색”이라 하면 겹말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사색’만 쓸 노릇이고, 누구나 쉽게 알아듣도록 말하려 한다면 “깊은 생각”으로 손보면 돼요. 더 헤아려 보면, ‘깊은생각’을 아예 새롭게 한 낱말로 삼을 수 있습니다. ‘깊은생각·좋은생각·너른생각·숨은생각·멋진생각·기쁜생각’처럼 즐겁게 새 낱말을 지어 볼 만해요. (117쪽)


  한국을 뺀 모든 나라에서는 사전을 ‘나라 규범’으로 내세우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국에서만 사전이 ‘나라 규범’이 됩니다. 이리하여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에서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를 반듯하게 갈무리하는 글’을 다루지요. 표준말·맞춤법·띄어쓰기로 사람들을 옭아맵니다.

  우리가 생각을 나누려는 말을 하자면 서로 ‘같은’ 말을 써야 할 테니, 표준말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여러모로 살필 만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이 나라 규범이 지나치지요. 즐겁게 말을 하도록 이끄는 틀이 아닌, 이렇게 해야 맞고 저렇게 하면 틀리다는 사슬이 되고 맙니다.


빛이 아주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을 가리켜 ‘눈부시다’라 하는데, ‘황홀하다’는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하거나 화려하다”를 가리킨다고 해요. 돌림풀이예요. 더욱이 ‘찬란하다’나 ‘화려하다’는 모두 ‘아름답다’를 가리켜요. “눈부실 정도로 화려한”처럼 쓰면 겹말입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뜻풀이도 모두 겹말풀이에다가 돌림풀이가 되고요. ‘눈부시다’ 한 마디면 넉넉하고, ‘아름답다’를 알맞게 쓰면 됩니다. (164쪽)


  적잖은 분들은 ‘짜장면·자장면’ 이야기를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을 슬기롭고 즐겁게 쓰도록 북돋우지 않고, 오직 위에서 시키기만 하는 사슬을 내세우는 국립국어원은 ‘자장면’만 쓰도록 오랫동안 윽박질렀으나 이제 살며시 두 손을 들었어요. 다만 살며시 두 손을 들었을 뿐입니다. 사전 뜻풀이나 보기글이 수두룩하게 엉망인데, 이를 손질하거나 가다듬는 데에서는 아직 나 몰라라예요.

  지난 2014년에 국립국어원은 드디어 ‘신나다’를 올림말로 삼았습니다. 저는 국립국어원에 ‘신나다’가 왜 올림말에서 빠졌느냐고 2001년부터 따졌어요. 2014년 가을까지 표준 맞춤법하고 띄어쓰기로는 ‘신 나다’로만 해야 했습니다. 이리하여 “재미나고 신 나는”처럼 써야 맞춤법에 들어맞은 셈이었지요.


‘따뜻하다’는 “정답고 포근하다”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포근하다’는 다시 ‘따뜻하다’를 가리킨다고 나와요. 돌림풀이입니다. ‘정답다’는 “따뜻한 정”이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하니, 다시금 돌림풀이입니다. 그런데 ‘따뜻하다 = 정답다 = 따뜻한 정이 있다’라고 하는 돌림풀이 얼거리인 터라, “따뜻한 정”이라고 할 적에는 겹말이에요. 생각해 보셔요. ‘따뜻하다 = 따뜻한 정이 있다’라고 하는 뜻풀이나 말마디는 얼마나 얄궂은가요. 보기글에서는 “따뜻한 정”을 “따뜻한 마음”이나 “따뜻한 손길”이나 “따뜻한 눈길”이나 “따뜻한 품”으로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228쪽)


  그런데 말예요, 나라에서 ‘신나다’를 올림말로 비로소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신명나다·신바람나다’는 아직 안 받아들입니다. 앞뒤가 어긋난 모습이라 할 테지요. 비슷한말 갈래를 넓게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짜증나다·싫증나다’는 아직 사전 올림말이 못 됩니다. ‘쓸모없다’는 사전 올림말이지만, ‘쓸모있다’는 사전 올림말이 아닙니다. 뒤죽박죽이에요.

  이런 뒤죽박죽인 표준 맞춤법 띄어쓰기에서 머무는 터라, 한국말로 새로운 문화나 살림이나 이야기를 담아내도록 하는 데에 이 나라 사전은 매우 많이 못 미칩니다.

  바람이 나오도록 해서 손을 말리는 것이 있어요. 이를 가리켜 영어로 ‘에어타올’이나 ‘핸드드라이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만, 왜 한국말로 알맞게 새 이름을 붙일 생각을 안 할까요? 손을 말리니 ‘손말리개’라 하면 됩니다. 바람을 일으켜 손을 말리니 ‘바람말리개’라 해도 되고요. 이처럼 알맞게 새로 짓는 이름을 그때그때 사전이 살뜰히 담아서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몫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묵묵하다’는 “말없이 잠잠하다”를 뜻한다는데, ‘잠잠하다’는 “말 없이 가만히 있다”를 뜻한다고 하니, ‘묵묵하다 = 말없이 말없이 가만히 있다’인 꼴입니다. 겹말풀이예요. 더군다나 한국말사전은 ‘묵묵하다’에서는 ‘말없이’로 적으나, ‘잠잠하다’에서는 ‘말 없이’로 적으면서 띄어쓰기도 오락가락이에요. (291쪽)


  말을 담는 한국말사전은 백과사전이 아닙니다. 이것저것 잔뜩 뭉뚱그리면 한국말사전이 못 됩니다. 말을 말답게 가누도록 이끌고, 말마다 다른 결을 밝힐 적에 비로소 한국말사전입니다.

  우리가 사전에서 낯설거나 어렵다 싶은 낱말만 찾아보다 보니, 사전을 곁에 놓고서 말을 새롭게 배우려는 몸짓이 안 되다 보니, 이런 흐름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새 한국말사전은 대단히 부질없는 종이꾸러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처음 배울 적에 어떻게 하나요? 일본말이나 프랑스말을 처음 배울 적에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낯선 외국말을 새로 배울 적에 어김없이 책상맡에 그 외국말을 담은 사전을 둡니다. 모든 외국말을 사전에서 하나하나 찾아보기 마련입니다.


시골에 있는 닭이라 ‘촌닭’이요, 촌스러운 사람이라 ‘촌닭’이라 한답니다. “시골 촌닭”은 겹말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니 ‘촌스럽다’는 “시골에 사는 사람답다”라든지 ‘시골스럽다’로 풀이하지 않아요. 어수룩한 데가 있는 사람을 가리켜 ‘촌스럽다’라 한다네요. 시골이라는 터전을 얕보거나 낮보거나 깔보려는 생각이 ‘촌닭·촌스럽다’ 같은 낱말에 스미는구나 싶습니다. (417쪽)


  제가 《비슷한말 사전》에 이어 《겹말 사전》을 써낸 뜻이라면, 아직 한국은 사전다운 사전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비슷한말을 먼저 한동아리로 묶어서 보여주면서 결이 다른 뜻하고 보기를 밝히려 했어요. 이다음으로는, 말뜻을 더욱 또렷하게 짚어서,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한국말이든, 제자리에 제대로 쓸 수 있는 길을 우리 스스로 익히고 살피자는 마음을 밝히려 했고요.

  《겹말 사전》은 짜임새를 보자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흔히 잘못 쓰는 겹말 보기’를 다룹니다만, 잘못 썼다고 나무라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왜 잘못 쓰고 말았는가를 살피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겁고 알맞으면서 또렷하고 쉽게 쓸 수 있는가를 헤아리려 합니다.

  ‘의사소통’에서 그치지 않고 ‘생각을 나누는 이야기’를 이루도록 우리 스스로 말에 깃든 숨결을 읽어 보자는 뜻을 《겹말 사전》으로 펼치려 해요.


처음으로 지어내는 모습을 가리키는 ‘창출’은 “새로 만듦”으로 고쳐써야 한다고 합니다. “새로 만들다”를 가리키는 ‘창출하다’인 셈이에요. “새롭게 창출되어”처럼 쓰면 겹말이 되지요. ‘창출’이라는 한자말을 처음부터 안 쓴다면 이 같은 겹말이 안 나타나리라 봅니다. (379쪽)

즐겁다’라는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는 ‘흐뭇하다 + 기쁘다’로 풀이합니다. ‘흐뭇하다’는 ‘흡족 + 만족’으로 풀이하고, ‘기쁘다’는 ‘흐뭇하다 + 흡족’으로 풀이해요. 이런 뜻풀이라면 벌써 겹말풀이가 됩니다. ‘만족 = 흡족’으로 풀이하고, ‘흡족 = 만족’으로 풀이하는 한국말사전이에요. 더구나 ‘행복 = 만족 + 기쁨 + 흐뭇함’으로 풀이하니 아주 뒤죽박죽입니다. ‘즐겁다’하고 ‘기쁘다’하고 ‘흐뭇하다’는 틀림없이 다른 낱말이에요. ‘행복’이라는 한자말을 꼭 써야 한다면 ‘행복’만 쓸 노릇이면서, ‘즐겁다’나 ‘기쁘다’나 ‘흐뭇하다’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맞게 살펴서 써야겠습니다. 한국말사전은 몽땅 뜯어고쳐야 할 테고요. (576쪽)


  저는 2016년 《비슷한말 사전》, 2017년 《겹말 사전》에 이어, 2018년 새해에는 “살려쓰기 사전”을 쓰려고 합니다. 이러면서 새해에는 “5살 어린이 첫 사전”을 함께 쓰려고 해요.

  틀에 가두거나 사슬에 매이도록 위에서 억누르는 사전이 아닌, 우리가 서로 이웃이라는 대목을 느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길에, 말로 나타내는 싱그러운 마음을 넉넉히 어우르는 살림을 짓도록 북돋우는, 신나면서 푸른 사전을 지으려 합니다.

  다 다르기에 저마다 아름다운 비슷한말입니다. 겹치지 않게 가다듬을 줄 알기에 슬기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보태어 본다면,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새로운 말을 짓는 손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자말 ‘협력’은 “힘을 합하여 서로 도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힘을 모아 협력할”처럼 쓰면 “힘을 모아 힘을 모아 서로 도움” 꼴이 돼요. “힘을 모을”이라고만 하든지 “서로 도울”이라고만 해야 올바릅니다. 한자말을 쓰고 싶으면 ‘협력할’로만 적습니다. (760쪽)


  저는 어제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 초등학교 놀이터로 나들이를 다녀오면서 함께 웃으며 놀았어요. 서로 마주보며 걸상에 앉아서 쿵쿵 엉덩방아를 찧는 놀이틀 한 가지를 함께 즐기면서 문득 “‘엉덩널’ 재미있지?” 하고 작은아이한테 말했습니다.

  우리 겨레 오랜 놀이인 널뛰기는 서서 발을 굴리면서 높이 오릅니다. 놀이터에 있는 놀이틀은 걸상에 앉아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엉덩이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즐겁습니다. ‘널방아’라 할 수도 있고, 재미있게 ‘엉덩널’이라 할 수 있어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이 이웃님한테 새로운 말을 새로운 생각으로 지어서 새로운 삶을 새로운 사랑으로 가꾸는 길동무책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해마다 새로운 사전을 한두 권 또는 여러 권을 써낼 수 있도록 더욱 힘쓰려고 합니다. 넉넉한 마음하고 따사로운 눈길로 지켜봐 주셔요. 고맙습니다. 2017.1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전 짓는 책숲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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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디에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61
토네 사토에 지음, 엄혜숙 옮김 / 봄봄출판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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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9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아름다운 선물
― 마음은 어디에
 토네 사토에 글·그림/엄혜숙 옮김
 봄봄, 2017.6.16. 11000원


  깊어 가는 가을입니다. 해가 떨어진 밤이 되면 퍽 춥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두 아이하고 마당에 섭니다. 작은아이는 동그란 달을 보더니 “달이 해야. 해가 뒤에 있어.” 하고 외칩니다.

  겨울을 앞둔 가을밤을 밝히는 보름달이 대단히 밝습니다. 이 밝은 달을 보면서 해를 떠올리는 아이가 이쁩니다. 달은 햇빛을 받아서 밝다고 과학으로 말하는데, 어느 모로 본다면 달이란 밤에 뜨는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밝은 달빛을 느끼면서 마당에서 가볍게 달리기를 하고서 잠자리에 듭니다. 깜깜한 밤에 고운 달빛을 품에 안고서 조용히 꿈나라로 갑니다.


“이 빛을 모두 너에게 선물할게.
 어때? 근사하지?” (4쪽)


  그림책 《마음은 어디에》(봄봄, 2017)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나옵니다. 두 고양이 가운데 수고양이는 암고양이를 숲 깊은 곳에 있는 맑은 못으로 이끕니다. 못가에 선 수고양이는 암고양이한테 ‘못에 비친 빛’을 모두 선물하겠노라 말합니다.

  맛난 먹을거리 아닌 빛을 선물한다니, 숲에 사는 고양이는 제법 멋스럽습니다. 못물에 비친 빛물결을 선물한다는 수고양이는 저 스스로도 즐겁고, 곁에 나란히 선 암고양이도 환한 얼굴입니다.

  그런데 수고양이는 빛물결을 선물한다고 하면서 ‘빛을 손에 잡으’려고 합니다. 손에 빛을 쥐고서 암고양이한테 건네고 싶은가 봐요.


쿠로는 빛을 잡으려고 했지만, 나뭇잎이 잡혔어요. (6쪽)

이번에는 조개껍데기가 잡혔어요.
쿠로는 슬펐어요.
시로에게 빛을 주지 못했으니까요. (7쪽)


  빛을 손에 잡아서 선물할 수 있을까요? 별빛이나 달빛을 손에 쥐고서 선물할 수 있을까요? 햇빛이나 꽃빛을 선물할 수 있을까요? 빛도 여느 먹을거리나 물건처럼 손으로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숲에서 수고양이는 못에 그물을 던져 보기도 하고 풍덩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도 빛을 손에 잡지 못합니다. 수고양이는 암고양이한테 선물하고픈 빛을 도무지 제대로 못 줄 수밖에 없다고 여겨 슬퍼 합니다. 이런 모습을 모두 지켜본 암고양이는 말없이 웃습니다. 이러면서 수고양이를 토닥토닥 달래요.

  아무래도 암고양이는 무엇을 알아챈 듯합니다. 저한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은가 하는 마음을 알아챘고, 빛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챘을 테지요. 그리고 수고양이가 암고양이 저한테 선물하려는 빛이 어디에 있는가를 넌지시 알아챘겠지요.


쿠로는 울면서 물 위로 올라왔어요.
너무나 슬퍼서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이제는 빛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20쪽)

시로가 살며시 웃으며 쿠로를 달래 주었어요.
시로는 빛이 있는 곳을 알게 됐거든요. (21쪽)


  저는 아이들한테 달빛을 손에 잡아서 건네지 않습니다. 아마 건넬 수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을 불러서 우리 시골집 마당에 나란히 서서 별바라기랑 달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이나 마을을 정갈하게 돌보는 손길로 이곳에서 반딧불이가 깨어나서 날아다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틈틈이 마을 샘터랑 빨래터를 치우는 일을 하면서 이곳에서 사는 다슬기를 알뜰히 건사해 놓아요. 이 다슬기는 바로 반딧불이한테 먹이가 되거든요. 반딧불이가 한 마리 깨어나든 두 마리 깨어나든, 부디 이 시골자락 밤빛에 아롱다롱 어여쁜 빛날개를 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빛이란 하늘에도 있으며 우리 가슴에도 있지 싶어요. 빛이란 낮에도 있고 밤에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보금자리에도 있다고 느껴요. 빛이란 아이를 돌보며 사랑하는 어버이 마음자리에도 있고, 어버이를 바라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마음밭에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책 《마음은 어디에》는 서로 아끼는 곳에서 마음이 빛물결로 파랗게 물든다고 하는 이야기를 포근하게 들려줍니다. 2017.1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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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농사 이야기 - 사람 땅 작물 모두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8
전희식 지음 / 들녘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327


‘비료·농약·새마을운동’은 독재정권 감시 정책?
― 옛 농사 이야기
 전희식 글
 들녘 펴냄, 7.28. 12000원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요즘 고향으로 돌아와 보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거나 곱씹고 추억할 만한 풍경이 다 사라지고 없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농사의 목적이 자급자족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바뀐 데 있다. (6쪽)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전희식 님이 마음먹고 《옛 농사 이야기》(들녘, 2017)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에서 자취를 감추는 ‘옛 흙살림’을 다루면서, 오늘날 시골은 흙살림 아닌 ‘농업’만 있다고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옛날에는 흙을 살리면서 먹고살았으며, 오늘날은 흙을 죽이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얼거리라고 해요.


요즘 누가 분무기나 드론으로 제초제를 뿌리면서 ‘논매기노래’를 부르겠는가. 논일하면서 부르던 농요는 농기계가 등장하면서 사라져버렸다. (22쪽)

슬레이트 지붕 개량은 볏짚 길이가 짧은 통일벼 등 개량 벼가 등장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동네마다 있던 삼밭도 사라졌다. (34쪽)

이때(1974∼1975)부터 화학비료와 농약이 농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학계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농촌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한 새마을운동은 미국의 동남아시아 개발 전략과 한반도 안보 전략에 따른 기획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안보 취약지구에 건설된 ‘전략촌’이 그 효시다. 종적인 관의 주도성과 마을 단위의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77∼78쪽)


  전희식 님이 《옛 농사 이야기》에서 밝히는 이야기를 이제는 함께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들이 애틋하거나 그립게 떠올릴 만한 모습이 참말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미꾸라지나 가재를 잡을 만한 흙도랑이 빠르게 사라지지요. 어쩌다 시멘트 아닌 흙으로 도랑이 남았어도 농약 때문에 섣불리 못 들어갑니다. 농약 때문에 논둑이나 밭둑에 섣불리 앉기 어려우며, 맨발로 들을 달리기 어렵지요. 연을 날릴 곳이 없고, 시골길에서도 자동차를 걱정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지만, 요새는 그리 별이 안 쏟아집니다. 옛날에는 여름 밤을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날았으나, 요새는 반딧불이를 볼 만한 시골이 적고, 그나마 숫자도 매우 크게 줄었어요.

  더구나 요즈음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트로트나 대중가요는 부르지만, 시골노래가 없어요. 논매기노래뿐 아니라 방아를 찧거나 콩바심을 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기계로 심고 기계로 거두니 심거나 거둘 적에 노래를 부를 일조차 없어요.


옛날에는 해충이 없었고 농장에 해로운 균이 번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촌로들이 똑같이 얘기한다. 비료를 주면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급격히 악화된다. 통기성과 배수성, 물리적 구조 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흙이 죽어버린다는 얘긴데,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라지게 되니 결국엔 특정 개체의 벌레가 농장을 독점하게 된다. (110쪽)


  새마을운동은 안보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독재정권이 시골을 감시하는 얼거리였다고 하지요. 이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요. 북녘은 북녘대로 주민을 감시하는 얼거리가 있었는데, 남녘은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도시에서는 반상회로 주민이 서로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살기 좋은 새마을”이 아닌 “독재하기 좋은 새마을”이었다고 할까요.

  이러다 보니 서로 돕는 두레나 품앗이가 줄어들밖에 없어요. 게다가 기계로 심고 거둘 적에는 두레나 품앗이가 부질없어요. 기계가 널리 번지면서 농약하고 비닐도 널리 번졌고, 이러는 동안 시골에서는 장구를 치거나 꽹과리를 울리는 일이 사라지고 노래가 함께 사라졌어요.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노는 마을이 아닌,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들여놓고서 ‘위(서울)에서 내려보내는 방송에 목을 매는’ 얼거리가 됩니다. 시골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는 만큼도 안 나오는 방송을 시골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도시로 떠나기’를 꿈꾸고, 시골을 떠난 젊은 일꾼은 도시에서 값싼 공장노동자가 되었어요. 이는 1970∼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우리 시골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배추 뿌리를 얻어먹기 위해 김장하는 어머니 곁을 얼쩡댔다. 오래전 기억으로나마 남아 있는 추억이다. (161쪽)

고구마잎은 나물도 해 먹지만 소여물로도 최고였다. 볏짚만 끓여 주다가 말린 고구마 넝쿨을 작두로 썰어 한 줌 넣어 주면 누워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여물통으로 달려오곤 했다. (221쪽)


  요즈음 시골은 도시로 떠날 젊은 일꾼이 없습니다. 시골에까지 이주노동자가 들어와서 밭일을 하거나 김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아직 어린이가 있어요. 시골 어린이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얼른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 흐름이 꺾이지 않는다면 참말로 시골은 한국에서 모조리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옛 흙살림 이야기만 사라지는 시골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이 사라질 수 있어요. 더욱이 사람이 크게 준 오늘날 시골에서 이 숫자마저 더 줄어들면 기계하고 농약하고 비료를 더 많이 쓰는 기업농만 불거지겠지요.


옛날에는 벼농사를 전년도 10월에 시작했다. 타작할 때를 1주쯤 앞두고 완숙 단계에 들어가는 벼를 베어내서 씬나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직 몇몇 겉잎사귀가 푸릇한 청장년쯤 되는 벼를 조심스레 베어서 천천히 말렸다. 그리고는 일일이 홀태를 이용해서 손으로 낟알을 훑어냈다. 탈곡기에 넣으면 요즘말로 스트레스 받을까 봐서다. (93쪽)


  씨로 삼는 나락 한 톨(씨나락)이 기계(탈곡기)를 거칠 적에 힘들까 봐 걱정했다는 지난날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대목을 걱정하는 눈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가 지나갈 적에 소리가 대단히 크고,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고 나면 마을 어디에서도 새나 풀벌레나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모두 죽기 때문이지요.

  올봄에 저희 보금자리에 깃들던 제비는 유월 끝자락까지 튼튼히 잘 살았으나, 바로 이 유월 끝자락에 마을 곳곳에서 드론으로 농약을 뿌려대니 얼마 안 가서 모두 죽어서 사라졌습니다.

  제비 같은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땅에서 한살이를 거치는 동안 한 마리마다 날벌레나 풀벌레를 1만 마리쯤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참새도 가을에 낟알을 얻어먹으려고 하기 앞서까지 한 해 동안 1만 마리가 훌쩍 넘는 날벌레하고 풀벌레를 먹고요.

  우리는 흙살림을 잊거나 잃으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흙을 살리지 않는 농업이 춤추는 오늘날 우리한테 돈이나 기계나 비닐이나 농약이나 드론은 남는다지만, 돈·기계·비닐·농약·드론만 남은 시골에서 어느 어린이가 어떤 애틋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만 남는 시골에 나이든 분들이 시골을 떠올리거나 그리워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흙이 살고 숲이 살며 마을이 살아나는 자리에서는,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싶습니다. 흙이 죽고 숲이 죽으며 마을이 스러지는 자리에서는, 기계와 농약을 뺀, 그리고 이 기계와 농약을 시골에 끌어들인 새마을운동 깃발을 빼고는 남아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가을이 저물려고 합니다. 2017.1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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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1.3.


한동안 들여다보지 못했더니 마을 어귀 빨래터에 물이끼가 잔뜩 꼈다. 어제 비로소 알아챈다. 오늘 낮에 치우려 했으나 낮을 지나친다. 마당에 넌 빨래를 걷어 마루로 옮기고서 큰아이하고 빨래터에 간다. 큰아이더러 물이 차니 담에 앉아 책을 읽으라 하지만, 큰아이는 굳이 소매를 걷고서 일손을 거든다. “아버지는 발 안 시려?” “응, 안 시려.” 빨래터에 잠자리가 둥둥 떠다닌다. “여기 잠자리가 빠져서 죽었어. 왜지?” “잠자리가 여기에 알을 낳으려고 했나 보네. 알을 낳고 죽었나 봐.” “어디? 알 안 보이는데?” 큰아이가 죽은 잠자리 두 마리를 손으로 건져서 풀숲으로 옮겨 준다. 나도 죽은 잠자리를 한 마리 건진다. 아무리 포근한 남녘이라 해도 11월이면 잠자리도 숲이나 흙으로 돌아가야지. 이듬해에 새로운 알이 깨어나서 물속에서 힘차게 노닐어야지. 요즈막에 마을 할매랑 할배한테서 들은 ‘샘터님(또는 샘터지기)’을 그려 본다. 우리가 마을 빨래터랑 샘터를 정갈하게 치워 놓으면 모두 잠든 밤에 살며시 이곳에 나타나서 신나게 물놀이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어쩌면 작은 시골마을 빨래터에 밤마다 하늘에서 선녀님도 샘터님도 이런저런 숱한 님도 내려와서 노닐는지 모른다. 왜 일본 만화영화에도 이런 얘기가 있잖은가. 센하고 치히로가 나오는. 선녀님이든 샘터님이든 모두 우리 마을 정갈하며 싱그러운 물을 누리시기를 빌어 본다. 이렇게 일을 마치고서 나는 아프리카 오카방고를 다룬 《지구의 마지막 낙원》을 읽는다. 이 책은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면서 이웃 숲짐승한테 말을 거는 얼거리로 이야기를 편다. 이 책에 실은 사진도 좋고, 그림도 좋다. 글은? 글도 시원스레 읽는다. 평화로운 아프리카뿐 아니라 지구라는 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눈길이 좋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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