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8.


홀가분하게 바깥바람을 쐬려고 마실을 나온 하루. 멀리 가지는 않고 순천까지 가는데, 고흥이라는 시골에서는 이래저래 두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오래 달린다. 함께 바깥바람을 쐬는 큰아이는 “버스를 이렇게 오래 타야 해?” 하면서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한 시간 반 즈음 버스를 탔는데, 나도 좀 어질거리기는 했다. 고흥서 서울로 한 번에 가는 기나긴 버스보다, 이래저래 갈아타서 한 시간 반인 버스길이 외려 머리가 지끈거리기는 하다. 이러니 아무래도 사람들이 자가용을 몰겠구나 싶다. 순천 낙안으로 가는 시골마을에 〈형설서점〉이 새롭게 옮긴 지 여러 달 된다. 큰아이하고 이곳으로 나들이를 왔고, 오늘 이곳에서 만난 《우체부가 사라졌어요》를 시외버스에서 읽는다. 와, 이렇게 재미나게 이야기를 엮은 책이라니. 멋지네. 이렇게 멋진 책이 2008년에 처음 나왔고, 어느새 판이 끊어졌으며, 나는 2017년인 오늘에서야 알아보고서 장만하네. 비록 판이 끊어진 이쁜 책이어도 헌책방에 이 책이 들어와서 고맙게 장만할 수 있었다. 시외버스에도, 집으로 돌아와서도, 자꾸자꾸 되읽으면서 즐거운 맛을 누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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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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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28


어머니만 ‘페미’? 아버지도 함께 ‘평등’으로
―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글/황가한 옮김
 민음사 펴냄, 2017.8.18. 9800원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선물이지만 엄마라는 말로만 자신을 정의해서는 안 돼. 충만한 사람이 되도록 해. (17쪽)


  아이를 낳아 ‘아버지’라는 이름을 비로소 받는 사람은 어떤 말을 들을까요? 우리 삶자리에서는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까요? 사회나 마을이나 학교는 아이를 낳은 사람이 ‘어버이’로서 무엇을 새롭게 익혀서 아이한테 가르치거나 물려주기를 바랄까요?

  더 나아가서 사내랑 가시내가 짝을 지어 보금자리를 일굴 적에 두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거듭나면서 어떤 살림을 어떻게 가꿀 수 있어야 한다고 알려줄까요? 어쩌면 우리는 새로 보금자리를 일구는 두 사람한테 ‘돈을 잘 벌어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낼 수 있도록 하고 …… 같은 말만 들려주지는 않을까요?


‘도움’이라는 표현은 거부해. (남편) 추디가 자기 아이를 돌보는 건 네 일을 ‘돕는’ 것이 아니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아빠들이 ‘돕고 있다’고 표현하면 육아는 엄마의 영역이고 아빠는 거기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거라고 암시하는 것과 같아. (23쪽)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를 읽습니다. 104쪽짜리 얇은 이 책은 나이지리아사람이 썼습니다. 이 책을 읽기 앞서 나이지리아라는 나라는 성평등을 얼마나 이룬 곳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나이지리아라는 곳도 성평등이 그리 안 아름답구나 하고요.

  그렇다면 한국은? 남녘뿐 아니라 북녘은? 우리 겨레는 얼마나 성평등을 이루는 나라일까요? 경제나 정치나 문화 못지않게 평등이라는 대목을 살필 수 있어야 삶이 넉넉하거나 즐거울 만하지 싶어요. 평등한 자리를 이루지 못하고서는 평화를 이루기 어렵고, 평등하고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민주나 자유도 제대로 못 서지 않나 싶습니다.


‘성 중립’은 바보 같아.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성 중립’은 별도의 범주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잖아. 왜 아기 옷을 그냥 나이로만 구분하고 모든 색깔로 만들지 않지? (29쪽)


  《엄마는 페미니스트》에서 살짝 우습다 싶게 다루기도 합니다만, 분홍이라는 배롱꽃빛은 남녀 모두 얼마든지 좋아하거나 즐길 만합니다. 장미빛이나 앵두빛이라 할 만한 빨강도 여남 누구나 얼마든지 사랑하거나 누릴 만하지요.

  제 어릴 적을 돌아보면, 사내가 빨강이나 풀빛이나 분홍 같은 빛깔이 섞인 옷을 입으면 동무들이 놀렸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적이었는데, 같은 사내끼리만 놀리지 않고, 가시내도 놀려요. 옷 빛깔을 두고 ‘성별 가르기’는 남녀 모두한테, 어른뿐 아니라 아이한테까지 깊게 물들었다고 할 만합니다.

  머리카락 길이도 그렇지요. 때로는 반바지 길이를 놓고서도 말이 많습니다. 아주 더디게 달라지는구나 싶으나, 사내는 다리를 훤히 드러내는 반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눈길도 있어요.


네가 아이한테 쓰지 않을 표현들을 정해. 네가 아이한테 하는 말은 중요하니까. 치잘룸이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거든. (47쪽)


  사람한테는 성별이 있습니다. 새나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한테도 성별이 있지요. 성별에 따라 다른 모습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성별에 따라 생김새는 안 같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은 성별이 다르기는 하되,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언제나 같습니다.

  사람으로서 말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놀이를 하고, 웃고 노래하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람으로서 걷고,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책을 읽고, 학교를 다니고, 배우고 가르치고,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저는 두 아이를 건사하는 살림을 열 해 남짓 가꾸는데, 저한테 부엌칼이나 도마나 행주를 선물하는 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사내·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한테 옷을 사 준다 할 적에도 분홍이나 풀빛이나 빨강이나 노랑처럼, 환하거나 이쁜 빛깔이랑 무늬를 살피는 일도 없다시피 합니다.


아이가 존경했으면 하는 자질을 가진 여자들, 즉 이모들에게 치잘룸이 둘러싸여 자라게 해. 네가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얘기해 줘. (77쪽)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이들한테 말을 합니다. 아이들에 앞서 저부터 스스로 참다우면서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어버지·나’로 살려고 합니다.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밥살림을 지을 줄 알고, 옷을 입는 사람으로서 옷살림을 가꿀 줄 알며, 집에서 지내는 사람으로서 집살림을 건사할 줄 알려고 합니다. 딸아들인 두 아이한테 모두 밥·옷·집을 고루 다스릴 줄 알도록 이끌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성평등·페미니즘’ 같은 말은 안 씁니다. ‘즐거운 사람’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어깨동무하는 사람’ 같은 말을 써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모습을 아이들이 차근차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새롭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된 이웃이 있다면, 진작 아이를 낳아 어느새 스물이나 서른이 넘은 아이를 지켜보는 이웃이 있다면, 저는 이분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다 같이 살림지기가 되어 봐요, 하고. 서로 아끼면서 살림을 짓는 즐거운 사람으로 거듭나 봐요, 하고. 기저귀를 빨고 밥을 짓고 아이를 가르치면서, 어버이일 뿐 아니라 슬기로운 어른인 사람으로서, 보금자리에 평화로운 너른 바람이 불도록 꾀하는 길을 함께 걸어요, 하고. 2017.11.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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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6.


이웃님한테 책을 부치려고, 또 읍내에서 ‘게살’을 알아보려고 군내버스를 탄다. 담양에 계신 이웃님이 책을 새로 두 권 사신다고 해서 부치기로 한다. 담양이라는 시골에는 책방이 없지만 누리책방에서 책을 사실 수 있을 텐데, 굳이 나한테서 사신다. 이렇게 나한테서 사면 나는 지은이로서 책에 이름하고 말을 적어 드릴 수 있다. 굳이 지은이한테서 책을 사시는 뜻이라면 글씨를 얻는 기쁨 때문일 테지. 품을 들여서 읍내로 다녀오며 책을 부치지만 이런 일은 즐겁다. 작은아이가 ‘게맛살’을 좋아하기에, 맛을 내는 살점이 아닌 참말 게살을 먹이자는 뜻으로 큰게 값을 알아본다. 1㎏에 48000원이라 한다. 이 값이 싼지 비싼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어릴 적에 인천에서는, 1980년대를 돌아본다면, 그때에는 꽃게 아닌 참게를 아주머니들이 여느 골목에서까지 함지박에 담아서 팔곤 했다. 게잡이를 많이 하는 바닷마을에 살던 이들도 게를 매우 쉽고 흔하게 먹으며 자랐겠지. 이런 일을 떠올리면 1㎏에 48000원, 큰게 한 마리에 12∼13만 원을 한다는 값은 제법 셀 수 있다. 오늘은 큰게 한 마리를 장만하지 못하고 값만 알아보았다. 우체국을 들르고, 아이가 배고프다 하여 순대랑 김밥이랑 떡볶이를 먹는다. 아이는 짜장면집, 김밥집, 빵집, 밥집, 햄버거집 가운데 김밥집을 골랐다. 읍내로 나오는 길에는 군내버스를 타며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를 읽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때하고 안 맞아 택시를 기다리면서 더 읽는다. 이 책을 쓴 분은 중국에서 학자라 한다. 학자가 아니고서는 ‘농민공(도시 노동자로 일하는 농민)’ 이야기를 쓸 수 없을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현장조사를 했다고 하는데, 현장조사를 넘어서, ‘시골에서 흙지기로 지내는 살림을 누리면서 도시에서 공장 일꾼으로 보내는 삶’을 몸으로 겪어 본다면, 어쩌면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엮은 논문인 이 책으로 밝히지 못하는 숱한 이야기를 담을 만하리라 생각한다. 학문은 학자로서 취재원하고 알맞게 떨어져야 한다고들 하는데, 몸으로 생생하게 농민공 삶을 지내 본다면, 학문이 어떤 길을 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담을 적에 참말로 이 땅에 땀방울로 스며들 만한가를 새롭게 볼 수 있겠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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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5.


《자전거 타는 CEO》라는 책을 무척 설레며 기다렸다. 대만에서 ‘GIANT’라는 자전거 회사를 일군 할아버지가 이녁 발자국을 돌아본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이다. 여든이 넘었어도 자전거로 일터를 오간다고 하는 터라, 이 책은 회사를 꾸리는 바탕뿐 아니라 자전거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루리라 여겼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손에 쥐어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읽는 내내 ‘자전거 이야기’는 너무 적다. 게다가 같은 얘기를 너덧 차례나 되풀이한다. 어쩌면 더 되풀이했을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또 나오는 대목은 건성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밥상을 차려 놓고서 아이들 먼저 먹으라 하고 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쪽까지 덮은 뒤에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그처럼 커다란 회사를 일구는 대표인데, 이녁이 쓴 글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얼개로 책을 내놓아도 될까? 텁텁하다. 까끌까끌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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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지음,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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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5



오직 하나는 둘이 아닙니다

― 트윈 스피카 7

 야기누마 고 글·그림

 김동욱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4.9.26. 13500원



“사쿠라 넌 다른 꿈 같은 거 없어?” “있어. 고고학자. 나 있지, 화석을 보거나 조사하는 게 좋아. 언젠가 유적 발굴 같은 것도 해 보고 싶어. 근데 그런 얘기 하면 아빠도 엄마도 표정이 별로 안 좋아져. 여자애답지 않대.” (30쪽)


“우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건 난 몰라. 난 그저 어찌됐든 간에 우주를 꿈꾸는 친구들과 쭉 함께하고 싶은 것뿐인데, 당신이 진짜 내 아버지라면 제발 좀, 제발 좀 알아 달란 말이야!” (146∼147쪽)


“똑같은 사람 같은 건 있을 수 없어. 마리카는 우주를 꿈꾸며 노력 중인 평범한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일세.” (200쪽)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똑같은 것이란 없어요. 나비가 낳아서 깨어나는 애벌레도, 고양이가 낳은 새끼도, 사람이 낳은 쌍둥이도, 똑같을 수 없습니다.


  모두 다른 것은 모두 달라서 뜻있습니다. 모두 다른 목숨은 모두 다르기에 아름답습니다. 모두 다른 사람은 모두 다른 터라 저마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다른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저마다 달리 꿈을 키웁니다.


  그런데 모두 다른 것이든 목숨이든 사람이든 한 자리에서 만나요. 서로 즐거이 어우러지는 넉넉한 마음으로 짓는 고운 사랑이라는 자리에서 만나지요.


  이래라 하고 시킬 수 없어요. 저래라 하고 맡길 수 없습니다. 스스로 움직여서 합니다. 때로는 바지런히 서둘러서 합니다. 때로는 미적거리면서 늦춥니다. 어느 때에 어떻게 하든 모두 제자리를 찾으면서 맞물려요.


  여름에는 해가 높고 겨울에는 해가 낮지요. 늘 높지 않고, 언제나 낮지 않습니다. 만화책 《트윈 스피카》 일곱째 권은 차츰 저무는 여린 아이들하고 천천히 무르익는 아이들이 서로 어우러집니다. 일찍 저물든 천천히 무르익든, 모두 동무가 되어 아낄 줄 아는 마음입니다. 2017.1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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