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36


죽었으나 저승에 못 가는 안타까움
― 파란 만쥬의 숲 1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오경화 옮김
 미우, 2011.5.30. 8000원


‘내 모습이 변치 않았다면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24쪽)

“당신은 그냥 당신이니까, 무리해서 신이 될 필요는 없어요. 당신에겐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46쪽)

“서늘한 곳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를, 늘 지켜 주었죠. 어쩌면 당신은 단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이고, 나도 그 발밑에 있었던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린 분명당신 덕분에 살 수 있었던 거예요.” (134쪽)

“어떡해, 어떡해? 우리 마사히로, 벌써 1살이야. 무려 1살이라구. 1살!” “어머님, 아버님한테 죄송해서 어쩌지? 그렇게 맡겨 두고 와서?” “무슨? 괜찮아. 오히려 기뻐하고 계셔. 빨리 돌아가자, 기쁨을 선사해야지.” “너무 들뜬 거 아냐?”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가 있어? 그 아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188쪽)


  한국말에 ‘이승·저승’이 있어요. 산 사람이 사는 곳은 이승이요,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은 저승이라고 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이쪽·저쪽’인 셈입니다. 이곳 너머가 저곳이요, 이 길을 떠나면 저 길을 가는 셈이고요.

  “이리 와”하고 “저리 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리 와” 하고 부를 적에는 이쪽에서 함께 살아가요. “저리 가” 하고 내칠 적에는 한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이곳에서 함께 있으면 싫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보면 이곳 너머가 저곳이지만, 저곳에서 보면 저곳 너머가 이곳이지요. 우리가 선 자리에서 보자면 우리 아닌 너희는 남이지만, 저쪽에 있는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바로 남이 되어요.

  만화책 《파란 만쥬의 숲》(미우, 2011)은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을 다룹니다. 다만 이승하고 저승 사이에 만나는 갈림길이 숲에 있어요. 이 숲은 사람들이 여느 때에 드나들지 않습니다. 더욱이 여느 때 숲 바깥에서는 숲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지요. 그러나 막상 숲에 발을 들이고 보면, 그동안 느끼거나 보지 못한 숱한 ‘다른 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숲 바깥에서는 하찮은 돌멩이입니다만, 숲에서는 ‘스스로 걷고 움직이며 말하고 웃거나 찡그릴 줄 아는’ 목숨인 돌멩이가 되어요. 숲 바깥에서는 그저 흔한 길고양이나 들개라 하더라도 숲에서는 ‘사람하고 똑같이 말하고 웃고 울고 노래할 줄 아는’ 목숨으로 보입니다.

  《파란 만쥬의 숲》에서는 숲 안팎을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사내가 한 사람 나옵니다. 이 사내가 어릴 적에 겪은 이야기를 첫째 권 끝자락에 살며시 담아요. 숲 안팎을, 그러니까 이승저승을 홀가분하게 오가는 사내는 꼭 1살 적에 두 어버이를 교통사고로 잃었대요.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난 어버이가 교통사고로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지만 두 어버이가 저(1살 아기)한테 주려던 장난감 자동차는 멀쩡했다지요.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오랜 장난감 자동차를 가끔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아버지가 예전에 어떤 모습이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를 가만히 되새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 사내는 길을 잃은 ‘돌멩이 정령’을 비롯해서 숱한 목숨붙이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도록 이끄는 몫을 맡습니다. 숲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살이를 하느라 바빠서 쳐다보지 않거나 마음조차 안 쓰는 ‘작은 이웃(사람이 아닌 모든 목숨붙이)’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사람 아닌 숱한 이웃을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말을 섞을 수 있는 눈이나 힘은 대단한 곳에 있지 않을 수 있어요. 엄청난 초능력이 있어야 돌이나 나무하고 말을 섞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바쁘게 몰아치지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걸음을 멈추고 살며시 쪼그려앉고, 따사로운 마음으로 지켜볼 줄 알 적에, 바람소리를 듣겠지요. 잎소리를 들을 테고요.

  죽었으나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맴도는 숱한 이웃들한테 마음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어린이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해요. 사회에 물들지 않기에, 사회에 휩쓸리지 않기에, 사회에 끄달리지 않기에,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살아가려 하기에, 우리는 꽃 한 송이를 아끼고 이웃을 보듬는 넉넉한 삶을 가꾸리라 봅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 약 춤추는 카멜레온
김미라 지음, 키큰나무 그림 / 키즈엠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71


엄마를 괴롭힌 아이가 주는 약
― 엄마 약
 김미라 글·키 큰 나무 그림
 키즈엠, 2017.4.14. 1만 원


  우는 아이는 사탕 한 알로 울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아픈 아이는 따스히 어루만지는 손길로 아픔을 씻기도 합니다. 외로운 아이는 포근히 안는 품으로 외로움을 털기도 합니다.

  어쩌면 어른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사탕 한 알이 달갑지 않다면 떡 한 점으로 울음을 달랠 수 있습니다. 따뜻하게 속삭이는 말 한 마디로 아픔을 씻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내미는 손이나 살며이 어깨동무하는 마음을 받으면서 외로움을 털 수 있습니다.


제가 엄마 허리에 올라가서 콩콩 뛰었어요.
밥 먹기 싫다고 소리도 질렀어요.
또 엄마 눈을 자세히 보려다가 엄마 눈을
손가락으로 찔렀어요. 장난감을 어지르고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손도 씻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또……. (13쪽)


  그림책 《엄마 약》(키즈엠, 2017)은 어머니한테 무엇이 약이 되는가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이와 맞물려서 어머니한테뿐 아니라 아버지한테도, 아이한테도, 또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도 무엇이 약이 될 만한가를 들려주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하루 내내, 어쩌면 이 하루뿐 아니라 여태 내내 어머니를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다가 그만 끙 하고 드러눕습니다. 아이가 하려는 대로 모두 내버려 두기로 합니다. 어질러진 방을 안 치우기로 하고, 손이며 낯을 안 씻는 아이한테 그래 씻지 말라고 하지요. 밥을 안 먹겠다니 밥을 안 짓고 안 차리면 돼요.

  어머니가 끙끙 앓는 모습을 본 아이는 깜짝 놀라요. 아니! 어머니도 앓아눕는다니!

  아이는 어떡해야 할까요? 아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그동안 어머니 곁에서 무엇을 보면서 자랐을까요?


엄마, 나 왔어.
내가 엄마 아픈 거 다 낫게 해 줄게. 이리 와 봐. (19쪽)


  약국에서 대단한 약을 한 자루 사올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훌륭한 의사를 모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이나 대단한 약이나 훌륭한 의사가 있어요. 바로 따뜻한 사랑이 대단한 약이요, 따뜻한 사랑으로 어루만지거나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의사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아이한테 의사 노릇을 합니다. 때로는 아이가 어머니나 아버지나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의사 노릇을 해요.

  사탕 한 알이나 떡 한 점이 약이 되곤 하며, 부드러운 말마디나 고운 노랫가락이 약이 되곤 해요. 무엇보다도 서로 아낄 줄 아는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가장 훌륭한 약 구실을 합니다.

  아플 적에는 바로 사랑이라는 약을 먹습니다. 아프지 않은 여느 때에는 사랑이라는 밥을 먹지요. 아침저녁으로 즐겁게 놀거나 일하는 힘은 우리가 저마다 돌보는 보금자리에서 손수 짓는 사랑에서 비롯하지 싶습니다.

  그림책 《엄마 약》에 나오는 아이는, 그동안 제가 아플 적에 어머니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돌아보면서 그대로 합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괴롭힐 뜻이 없거든요. 어머니하고 신나게 놀고 싶었을 뿐이에요. 어머니가 다시 씩씩하게 기운을 낼 수 있기를 바라지요. 여태 ‘엄마 밥’하고 ‘엄마 약’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이제 어머니한테 ‘아이 약’을 내밉니다. 2017.11.1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문지아이들
유희윤 지음, 김영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시를 사랑하는 시 85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모두 이쁘다
―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유희윤 글·김영미 그림
 문학과지성사, 2017.6.30. 9000원


풀밭 동네 토끼풀 집 아이네.
토끼풀 집 아이들 중에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네.
우리 동네 찬이도 그런데
남다르게 생겼지만 예쁘네.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동시집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문학과지성사, 2017)에는 ‘할머니의 한 움큼’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할머니의 한 움큼은 / 많기도 하다” 하고 두 줄이 나오는데, 군말도 꾸밈말도 부질없이 이 두 줄로 할머니 몸짓이나 마음이나 살림을 잘 헤아릴 만합니다.

  ‘고모 방’이라는 시를 읽으면 “고모 시집가면 내 차지! // 내가 찜한 고모 방 / 썰렁이가 먼저 차지해 버렸다” 같은 이야기가 흘러요. 고모가 시집을 가면서 빈 방이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벌렁 드러누워서 ‘이제 내 방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막상 벌렁 드러누워서 넓고 시원한 방을 느껴 보려 하니 무엇보다 ‘썰렁’을 느낀다고 해요. 두 말도 석 말도 덧없이 ‘썰렁’ 한 마디가 아이 마음을 잘 그리는구나 싶어요.


쥐고 있던 주먹
봉긋이 펴 보이네.

그 애 손은
반쯤 핀 연분홍 꽃

연분홍 꽃 속에
까만 씨앗 몇 개 (연분홍 손 꽃)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풀밭에도 있고, 마을이나 학교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는 그저 잎이 하나 더 있을 뿐이에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요? 우리 사회나 학교나 마을에서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어떻게 마주할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를 이웃이나 동무로 여기면서 ‘잎이 하나 더 있지 않은 아이’하고 함께 한 교실이나 학교에서 즐거이 어우러지는 배움 얼거리일까요? 아니면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들만 한 학교나 학급에 몰아넣는 틀거리일까요?

  어른들은 아이가 조그맣게 쥔 손에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하려나요. 아이가 꽃씨를 곱게 쥐고서 기뻐하는 줄 느낄 수 있으려나요. 아이가 두 손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꿈’을 쥔 줄 알아챌 수 있으려나요.


까치발 들고
엄마 등 뒤로 다가온 아기
두 팔 벌려
엄마 목을 감는다.

“내 손이 뭐게?”

“엄마 목도리지!”

“따뜻해?”

“응, 아주 따뜻해.” (쉬는 시간)


  아이 손이 목도리가 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손도 목도리가 됩니다. 아이 몸이 겉옷이 되어 줍니다. 어버이 몸도 아이한테 겉옷이 되어 줍니다. 우리는 서로 따뜻하게 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두 팔을 활짝 벌려 서로서로 포근하게 보듬고 어루만집니다.

  이러한 마음을 늘 건사할 수 있다면,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결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나 누구나 웃음꽃이나 웃음노래가 될 만하겠지요. 1위부터 꼴찌까지 점수를 매기는 학교가 아닌, 경제성장이라는 숫자를 내세우는 사회가 아닌, 기쁘게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한 발짝씩 내딛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테고요.


동생과 싸운다고 벌!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벌!

벌 잘 주는 엄마
자기에게도 벌을 준다

몸무게가 자꾸 는다고
날마다 벌을 준다. (벌 잘 주는 엄마)


  아이한테 벌을 안 주어도 되어요. 어른도 스스로 벌을 안 주어도 됩니다. 몸무게가 자꾸 늘 수 있지요. 아이들이 뭔가 깨뜨리거나 잘못할 수 있지요. 서로 너그럽게 헤아리면 어떨까요. 오늘은 오늘대로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모레는 모레대로 새롭게 거듭나자고 생각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벌을 주듯이 운동장을 달리면서 몸무게를 빼려는 몸짓이 아니라, 신나게 놀이하듯이 달리기를 누리면 어떨까요. 아이가 잘못한 일이 있을 적에 따끔하게 나무라기보다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걸음을 새로 씩씩하게 내딛도록 이끌어 보면 어떨까요.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가 있듯이, 잎이 하나 더 있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동안 다른 아이나 어른하고 똑같은 잎이었다가도 어느 날 문득 잎이 하나 더 돋을 수 있어요. 때로는 잎이 하나 줄 수 있고요. 이 잎을, 꽃잎을, 풀잎을, 꿈잎을, 사랑잎을, 마음잎을, 생각잎을 고이 마주하는 삶을 빕니다. 아이 마음에도 어른 마음에도 너른 숨결이 흐르는 살림을 빕니다. 잎이 더 있든 덜 있든, 때로는 잎이 하나도 없든, 모두 이쁩니다. 2017.11.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동시읽기/동시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가, 하늘가에서
마틴 프로스트 요가.글, 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사진 / 눈빛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책 읽기 360



가볍게 요가를 하고, 피터 팬처럼 사진놀이
― 요가, 하늘가에서
 다나 레이몽 카펠리앙 사진/마틴 프로스트 요가·글
 눈빛 펴냄, 2015.10.26. 45000원


요가는 몸동작 그 이상의 것이다. 몸동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또 우리가 볼 수 없는 어떤 현상에 요가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 우리가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생각과 의지를 멈출 때, 또 별다른 노력이나 꾸밈 없이, 소음 속에서 고요함을, 소요에서 평정함을, 무질서에서 조화를, 한 점 공간에서 우주를 느낄 때, 비로소 요가의 진정한 기능과 풍부한 가치를 깨닫는다. (6쪽)


  몸짓이란 흐름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몸짓이라 하지 않습니다. 손가락을 까딱이든 눈썹을 치켜뜨든, 어떠한 몸짓이든 흐르기 마련입니다. 몸을 움직일 적에는 늘 흐름입니다. 어떤 이는 좀 뻣뻣해 보일 수 있고, 누구는 대단히 부드러울 수 있어요. 똑같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적에 한 사람은 쭈뼛거리면서 넘어질까 싶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하늘로 발을 뻗고는 팔을 통통 튀길 수 있어요.

  그러나 뻣뻣하기에 어설프지는 않습니다. 매끄럽기에 훌륭하지는 않아요. 저마다 다른 몸을 드러낼 뿐이고, 저마다 다른 삶을 걸어왔구나 하고 나타낼 뿐입니다.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다면, 사진을 놓고서 좋은 사진이나 나쁜 사진을 가릴 수 없는 줄 알아챌 만해요. 이 사진은 그저 이러한 사진이요, 저 사진은 마냥 저러한 사진입니다. 더 뛰어난 사진이란 없이, 그때그때 우리 삶을 보여줍니다. 더 아름답거나 놀라운 사진이란 없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면서 생각을 키우느냐를 담아냅니다.


영원은 네 안에 있다
목으로, 옆구리로 조여 오는 것을 느끼면서
왜 머리로 만들어 내려고 하고
왜 멀리에서 끌어오려 하는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데 (15쪽)


  사진책 《요가, 하늘가에서》(눈빛, 2015)는 요가하고 사진이 만나는 자리를 보여줍니다. 요가란 몸짓 너머에 있다고 한다면, 사진이란 종이에 얹은 그림 너머에 있다는 대목을 살짝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을 몸짓 하나로 드러내는 요가이고, 우리 생각을 그림처럼 하나로 담아애는 사진입니다. 모든 길이 우리 마음에 있다고 하듯, 모든 길을 사진 하나에 머물러 흐르도록 이끌 수 있어요. 먼 곳에 있는 멋진 모습을 찾으려 할 까닭이 없이, 우리 곁 어디에서나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멋지거나 새로운 이야기를 느껴서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좋은 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갈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나 일터가 바로 ‘나 스스로 사진을 가장 즐겁게 찍을 만한 자리’입니다. ‘좋은 모델’을 찾거나 불러야 할 일이란 없습니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사람이나 논밭이나 건물이나 집이나 이웃이나 풀벌레나 새나 물고기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별이 ‘나 스스로 가장 즐거이 담을 만한 모습(모델)’이에요.


바람이 기분 좋게 바순 연주를 들려주는
지붕 낮은 동네를 보호한다 (76쪽)

그림자밟기 하는 소녀처럼 논다
한 줄기 햇빛 사이로 피터 팬을 출현시킨다 (126쪽)


  요가를 하는 마틴 프로스트 님은 어디에서나 요가를 합니다. 마실길에서든 마을에서든, 저잣거리에서든 복닥거리는 도시 한복판이든 가릴 일이란 없습니다. 어디에나 바람이 흐르고, 어디에나 햇볕이 드리웁니다. 어디에나 사람이 있고, 어디에나 흙이랑 풀이랑 나무가 있어요.

  남들한테서 ‘피터 팬’을 찾지 않습니다. 스스로 피터 팬이 됩니다. 남들이 하늘을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고, 스스로 훌쩍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즐거운 몸짓을 펼칩니다.

  곧 내 사진을 내가 바라봅니다. 내 사진을 내가 찍지요. 훌륭하거나 멋스럽거나 이름이 높은 남(다른 사진가)은 그만 쳐다보고, 스스로 걸어가는 길을 가만히 되짚으면서, 내 삶자리에서 내 삶을 담아내어 기쁨을 찾는 사진을 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테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가꾸고 삶을 지으며 사랑을 꽃피우는 사진을 찍는다고 할 수 있어요.


의자에 
서서 
앉는다
바람에 마르는
하얀 천이
된다 (141쪽)

멍청한 호박 덩어리가 되어도 좋고
스타일이 제멋대로라도 좋다 (222쪽)


  사진책 《요가, 하늘가에서》는 대단한 몸짓이나 놀라운 그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단하거나 놀라운 몸짓·그림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언제나 짓거든요. 아기를 어르는 어머니 얼굴에서 대단한 그림이 피어납니다. 마늘쫑 꾸러미나 파 한 묶음을 파는 저잣거리 아지매 얼굴에서 놀라운 이야기가 자라납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손길에서,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손길에서, 전철길에 책을 읽는 눈길에서, 일을 마치고 살짝 눈을 부치며 쉬는 삶길에서, 다 다르면서 저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즐겁게 걸으면 즐거운 나들이입니다. 짜증을 내거나 한숨을 폭폭 쉬면 짜증스럽거나 귀찮은 나들이예요. 웃고 노래하는 몸짓으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어떤 사진을 찍을까요? 웃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 몸짓으로 사진기를 손에 쥔다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더 좋거나 나쁜 사진이 없듯, 더 좋거나 나쁜 장비도 없습니다. 더 좋거나 나쁜 삶마저 없어요.

  가만히 하늘가를 바라봅니다. 저 먼 하늘가는 이곳에서 보기에 멀 뿐, 저 먼 곳에 있는 누구는 이쪽을 바라보며 먼 하늘가라고 느낄 만합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걸음걸이와 몸짓과 손짓으로 하루를 짓습니다. 하루를 짓는 길에 이야기가 흐르고, 이 이야기를 고이 건사하여 글도 그림도 사진도 마음껏 가꿉니다. 2017.1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비평/사진읽기)

* 이 글에 붙이는 사진은 눈빛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8.


순천으로 마실을 가려고 시집 한 권을 챙겼다. 군내버스에서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을 읽는다. 순천에 있는 책방에서 27만 원어치 책을 사면서, 내가 책값에 돈을 너무 많이 쓰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나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책을 살 뿐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배우려면 호미 쥐고 흙이랑 배우면 되지 않니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책방에 놓인 오늘치 신문 머릿글을 읽는다. 책방에 놓인 오늘치 신문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미국 무기를 한국이 수십억 달러 어치를 사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수십억 달러라. 재미있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먼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라는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얼결에 내뱉은 말이다. 트럼프라는 사람도 처음부터 미리 생각하거나 셈하고서 한 말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촛불힘으로 독재 권력자라는 이를 끌어내렸으나, 정작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우리가 모르게 ‘수십억 달러라는 미국 무기’를 우리 몰래 사기로 했단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미국 무기 몇 가지를 이만 한 돈을 들여서 사기로 했다뿐이다. 이밖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데에 어떤 돈을 얼마나 썼는지는 하나도 알 길이 없다. 더 생각해 본다면, 이제껏 어느 한국 대통령도 미국 무기를 사거나 주한미군 유지비로 얼마나 쓰는가를 밝힌 적 없고, 미국 대통령도 이를 안 밝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 대목을 궁금해 하지 않을 뿐더러 묻거나 따지지도 않았다. 순천을 돌고서 고흥으로 돌아와서 읍내에서 엉덩쉼을 했다. 큰아이가 한 마디. “아버지, 우리 버스를 너무 많이 타서 힘들어. 좀 쉬었다 가자.” 집에서 고흥읍 거쳐 순천으로 한 시간 반. 순천에서 고흥으로 시외버스 삼십 분. 큰아이는 오늘 두 시간 탄 버스로도 힘들어서 괴롭단다. 미안하네. 네 마음이랑 몸을 너무 몰라 주었네. 알맞게, 쓸쓸하게, 바람이, 살몃 분다. 시집에 흐르는 바람도, 시골에 부는 바람도, 이 나라에 부는 바람도, 그리고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한테 부는 바람도, 따사롭기를.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