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9.21.


도화중학교를 다녀온다. 도화중학교 1학년 푸름이하고 ‘장래취업탐방’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고흥군 도화면에 있는 도화중학교에는 1학년이 모두 열다섯 있다고 한다. 참 작지. 세 학년을 통틀어도 쉰 아이가 되기 힘들겠네. 요즈음 시골 중학교를 헤아리면 읍내 아닌 면소재지로서는 그럭저럭 푸름이가 있는 곳이라 할 만하다. 이곳 열다섯 아이 가운데 ‘사전 쓰는 이(사전 집필자)’라는 일을 궁금하게 여기는 아이가 있다. 나는 이 아이하고 둘이서 사십 분을 아주 짧으면서 굵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가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이 알고 겪고 살고 일하는 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우리 친구가 사전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더라도, 나중에 이 일로 일자리를 잡을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사전을 쓰는 사람이 들어갈 곳은 한 곳도 없거든요. 몇 해에 한 사람을 뽑을까 말까 하니, 아예 처음부터 일터를 찾을 생각을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이런 길을 걸어온 사람이 코앞에 있으니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남이 짓는 사전을 돕는 곁일꾼이 아닌, 스스로 사전을 짓는 일꾼이 될 수 있어요. 다만 이렇게 하자면 적어도 열 해는 모든 낡은 버릇을 버리면서 새로 배우는 날로 삼아야 해요. 스스로 열 해를 새롭게 배우려 하면 얼마든지 스스로 새 사전을 쓸 수 있어요.” 읍내 우체국에 가서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거의 마지막 교정종이’를 서울로 부쳐야 한다. 시월 둘째 주에 책이 나오려면 이주에는 서울로 부쳐야 하기에 서두르려 한다. 도화중학교에서 진로상담 시간을 기다리며 교정종이를 백쉰 쪽쯤 보았고, 이곳에서 읍내 우체국까지 포두파출소 소장님 차를 얻어타고 가는 길에도 스무 쪽쯤 보았다. 이렇게 해서 우체국에 닿기 앞서 끝! 우체국 바로 앞에 아주 깨끗하고 큰 상자 하나가 버려졌기에 고맙게 주워서 커다란 교정종이를 담는다. 무게를 달아 보니 5킬로그램이 넘는다. 엄청난 사전을 곧 새로 내는구나 하고 스스로 돌아본다. 구워서 먹을 고기를 한 근 장만해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웃 봉서마을에서 내려 걷는다. 시골에서는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타기 어렵지만, 이웃마을로 지나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번 있어서, 이 버스를 타면 삼십 분을 걸어야 하더라도 집에 돌아갈 수 있다. 들길을 걸으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다. 한 손에는 저자마실을 한 꾸러미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쥔다. 《맛의 달인》을 찬찬히 읽는다. 111권까지 나온 이 만화책을 1권부터 읽어 보기로 한다. 이 오래된 긴 작품에 깃든 맛이란 멋이란 삶이란 사랑이란, 그리고 이 모두를 잇는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고 돌아보면서 읽는다. 집에 닿아서 고기부터 굽는다. 고기를 구워 밥상을 차린 뒤에 비로소 씻는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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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섭지 않아 웅진 세계그림책 41
미셀 게 글.그림, 이경혜 옮김 / 웅진주니어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2



무서움이 무엇인지 얘기를 한다면

― 난 무섭지 않아

 미셀 게 글·그림/이경혜 옮김

 웅진주니어, 2002.12.30.



“엄마 아빤? 엄마 아빤 무서운 꿈 안 꿔?” 주가 물었어요.

“그럼. 엄마 아빠는 어른이라 하나도 안 무섭거든.”

엄마 아빠가 말했어요.


주는 화가 났어요. 나도 하나도 안 무섭단 말이야!

주는 침대에 누워서 마구 발길질을 했어요.

찌익! 침대보가 찢어져 구멍이 뻥 뚫렸어요. (3∼4쪽)



  아이들은 안 무섭다고 배짱을 부리려 하지만 막상 무서운 일이 닥치면 화들짝 놀라서 어머니 아버지 옷자락에 매달립니다. 아이들은 그저 배짱을 부리려 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앞에 둔 어버이는 어떤 말을 하거나 몸짓을 보일까요? 아이들이 무서움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알도록 차근차근 짚거나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아이들이 ‘무서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할 적에, 어른들은 영화보기를 멈추고는 ‘무서운 영화’란 막상 없을 뿐 아니라 ‘무섭다는 느낌’은 사회가 심는 생각인 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어른이라서 안 무섭지 않습니다. 어른이라는 핑계를 댈 뿐입니다. 무서운 줄 모르기에 무섭지 않고, 삶과 사람과 사랑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기에 무섭지 않아요. 아직 철이 들지 않았어도 온누리를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가르기를 안 할 적에는 무서움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을 어떻게 이루거나 짓는가를 제대로 알 적에 무서움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모르기에 어버이 곁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아이들은 아직 제대로 모르는 터라 학교나 책이나 마을에서 엉뚱하게 퍼뜨린 이야기에 휘둘리기도 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지어낸다는 대목을 알려주면서 아이하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른끼리만 보아야 하는 영화가 있으면 그 까닭을 제대로 짚어 주셔요. ‘아이라서 볼 수 없는’ 영화가 아니라, 아직 깊거나 넓게 배우지 않은 탓에 ‘못 알아들으니 보여줄 수 없는’ 영화라는 대목을 일러 주셔요. ‘아이라서 무섭기 마련’이라는 말로 아이를 길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요 어버이입니다. 2017.9.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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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9.22.


밥을 짓는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다. 하루 두 끼니 짓기에 밥 한 끼니를 짓고 나서 쉴 겨를이 있다. 하루에 세 끼니 밥을 짓는다면 쉴 겨를이 있을까? 아마 조금도 없으리라.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면 밥상맡에 앉기 힘들다. 되도록 빨리 그릇을 비운 뒤에 자리에 눕고 싶다. 밥을 다 짓고서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차분하게 수저를 들며 말꽃을 피울 줄 아는 어버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돌아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너무 많은 사내가 밥살림을 모른다. 만화책 《엄마 냄새 참 좋다》에도 이런 이야기가 여러모로 흐른다. 곁에 있는 살가운 한집 사람 권리나 인권이나 평등이나 평화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내 모습이 언뜻선뜻 비친다. 허울뿐인 아버지뿐 아니라 철거용역 깡패 노릇을 하는 사내도, 미혼모한테 아기를 떠넘기고 사라진 미혼부도, 가시내를 깔보는 숱한 사내도, 손수 밥을 지어서 먹는 살림을 꾸린다면 무언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어쩌면 사내들은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질은 할 줄 알아도, 정작 부엌에서 밥살림을 지을 줄 모르기에, 아직 이 땅에 참다운 평등이나 평화나 인권은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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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박수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6


시인이란 마을을 사랑하며 노래하는 사람
― 시인의 마을
 박수미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9.15. 13800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한자로 ‘詩 + 人’인 얼거리예요. 그런데 시라고 하는 글(이야기)을 쓴 사람은 이러한 한자가 없던 무렵에도 있습니다. 먼먼 옛날 한자라고 하는 글이 없던 때에 ‘시’라고 하는 글이나 이야기를 빚은 사람을 헤아려 봅니다. 그때 그 옛사람은 아마 ‘노래’를 읊었으리라 생각해요.

  가락을 입힌 말이기에 노래입니다. 말 한 마디가 마치 가락을 입은 듯해서 노래입니다. 노랫가락이라는 낱말이 있으니 ‘말가락’ 같은 낱말도 썼을 만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십 년간 묵호를 오가며 그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 이동순 시인에게 묵호는 곧 묵호 사람들의 삶을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선은 늘 하늘로 솟은 산비탈 동네나 해 지기 전 항구에 모여 앉아 그물을 수리하는 어부들의 일상을 향한다. (13쪽)

오랜 전통을 지닌 마을은 누군가에겐 역사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고향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에겐 현재 사는 집이기도 하다. (83쪽)


  오늘날 노래는 무대에 서거나 방송에 나오거나 여러 악기가 곁에 있어야 부를 수 있다고 여기곤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무대도 방송도 악기도 없이 얼마든지 노래할 수 있어요.

  어른들이 일을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릅니다. 즐겁게 일하니 즐거운 노래예요. 즐거이 노니 즐거운 노래이지요. 고단하게 일할 적에는 고단함을 씻으려고 노래해요. 힘들게 일하거나 슬픈 날에는 힘듦도 슬픔도 털어내려고 노래합니다.

  반가운 벗을 만나 반가움을 노래해요. 신나는 일을 맞이하면서 신나는 기운을 노래하고요. 가을걷이를 하며 고마운 가을볕을 노래하고, 아기를 낳은 어버이가 아기한테 온사랑을 담아서 자장노래를 비롯한 사랑노래랑 살림노래를 고이 들려줍니다.


평생 혼자 살았지만 그에게는 친구가 많았다. 자주 흙집을 찾아오던 생쥐, 아기 종달새와 까마귀, 다람쥐, 메뚜기를 벗 삼아 그들과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들을 이야기로 때로는 시로 옮겼다. (68쪽)

시인은 땅을 일구듯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청년기에 접한 문학 전집은 소소한 비료일 뿐, 그가 일궈 낸 글들은 보다 단단한 땅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228쪽)


  박수미 님은 시인 한 사람이 나고 자랐거나 살아가는 마을에서 태어난 시를 찾아서 마실길을 나섭니다. 시 한 줄을 찾는 나그넷길(나그네가 떠나는 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그넷길 이야기가 《시인의 마을》(자연과생태, 2017)이라는 책에 오롯이 흐릅니다.

  가만히 보면 시인은 마을로 찾아가고, 여러 마을을 나그네처럼 떠돌아요. 시인이 남긴 글 한 줄은 마을 이야기, 곧 ‘마을노래’이기도 하면서 ‘나그넷말(나그네가 남긴 말)’이기도 합니다.


통영 여행의 목적은 백석 시를 따라 걷는 것이었으므로 숙소를 잡은 강구안 주변을 기웃거리며 내내 걸어 다녔다. (149쪽)

다시 김영갑 선생의 사진을 떠올렸다. 사진으로도 그렇게 아름다운데 실제로 마주한 제주 풍광은 어땠을까. 그가 말한 삽시간의 황홀이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자유였을지, 그리고 그의 인생에 얼마나 긴 기다림이었을지 고작 40여 분 눈밭을 바라보다 산을 내려온 나로서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267쪽)


  어제 시인 한 사람이 마을 한 곳을 사랑하며 남긴 글이 노래처럼 흘러 오늘 우리가 나들이를 떠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새롭게 걷는 이 마을 이 길에서 어제 흐르던 노래를 되새기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수 있습니다. 어제 노래를 들으며 오늘 노래를 짓고, 이 오늘 노래는 앞으로 새로 태어나 자랄 아이들한테 참말 새노래가 되어 새롭게 이 땅을 가꾸는 바탕이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시인의 마을》은 이동순, 함민복, 권정생, 한하운, 이성부, 백석, 박노해, 서정주, 김용택, 이중섭·김영갑, 이렇게 여러 사람 발자국을 좇으면서 나그네처럼 골골샅샅 누빕니다. 어느 모로 보면 아무개는 시인이 아니라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시집이 몇 권 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중섭 님이 빚은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닌 노래를 닮은 그림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김영갑 님이 찍은 사진은 그냥 사진이 아닌 노래하고 같은 사진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살림노래를 그림에 담아요. 바람노래를 사진에 옮겨요. 사랑노래를 그림으로 빚지요. 꿈노래를 사진으로 찰칵 아로새깁니다.


시란, 시인이 그리는 마음의 지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7쪽)


  마음에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바람이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사랑이라는 바람이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서로 사랑하며 짓는 보금자리가 앞으로 지나갈 길을 그립니다. 마음에 서로 사랑하며 짓는 보금자리가 깃든 마을이며 숲이 앞으로 지나갈 길에 태어나 자랄 어여쁜 아이들이 노래하는 길을 그립니다.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며 나그네가 됩니다. 노래 두 가락을 부르며 살림지기가 됩니다. 노래 석 가락을 부르며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 넉 가락을 부르며 오늘 이 땅에서 활짝 웃음짓는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노래지기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삶을 사랑하며 노래하는 고운 숨결이 될 수 있습니다. 2017.9.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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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시선집
박남준 지음 / 펄북스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떡국 한 그릇을 나누고 싶은 사이. 송편 한 점을 나누려는 사이. 잡채나 국수 한 접시를 주고받는 사이. 쌈짓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사이. 아이들이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사이. 처마 밑에 제비집을 두는 사이. 상냥히 웃음을 건네는 사이. 따사로이 오가는 말에서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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