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배우자 역사 2
서해경 지음, 이선주 그림 / 풀빛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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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8


군대·돈을 앞세워 문화재를 빼앗은 프랑스·영국
―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
 서해경 글·이선주 그림
 풀빛미디어, 2017.8.11. 14000원


  어린이 인문책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풀빛미디어, 2017)를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은 지구에서 숱한 나라가 끝없이 전쟁을 일으킨 까닭 가운데 하나를 날카롭게 다룹니다. 숱한 나라가 전쟁을 자꾸 일으킨 까닭은 ‘이웃나라가 우리를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쳐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고 해요. 이웃나라가 품은 멋지거나 아름답거나 놀랍거나 훌륭하거나 값진 보물이나 문화재를 거저로 빼앗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적잖은 나라나 겨레가 하루아침에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해요.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무기가 없이 평화롭게 살던 나라로 마구 쳐들어가서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집하고 마을을 불태울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든 ‘돈 될 만한 것’을 깡그리 빼앗았다고 합니다.


이집트가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나폴레용이 이집트를 침략했을 때 함께 간 학자들이 이집트에 관해 연구하고, 책을 내면서부터예요. 유럽에 이집트풍이 유행했지요.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관광하는 것도 유행했어요. 이집트 문명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이집트를 찾아왔고, 더 많은 이집트 문화재를 도굴하고 훔쳐갔어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속의 보물을 훔치고, 스핑크스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 보물을 찾으려고 스핑크스의 등에 구멍을 내어 폭약을 터뜨리기도 했어요. (25쪽)

(1797년 나폴레옹 군대) 군인 중 한 명이 들고 있던 칼로 ‘가나의 혼인 잔치’를 반으로 잘랐어요. 235년 동안 (이탈리아) 성당의 자랑거리였던 ‘가나의 혼인 잔치’가 칼로 잘리는 모습을 보며 수도사들은 슬픔이 북받쳤어요. (92쪽)


  우리는 중세나 현대라고 하는 때에 유럽 여러 나라가 저지른 그악스러운 전쟁판을 세계사로 배울 수 있습니다. 그즈음 유럽은 저마다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다고 하면서 전쟁무기를 이끌고 돌아다녔어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어마어마하게 죽였고, 그곳에 있던 값진 것을 낱낱이 가로챘어요. 지도로 아프리카를 보면 나라하고 나라 사이가 반듯한 금이에요. 아프리카 나라들이 서로 그처럼 금을 그었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나라가 서로 식민지 다툼을 하면서 멋대로 그은 금이기 때문이에요.

  프랑스 나폴레옹은 스핑크스를 보고는 나룻(수염)이 건방져 보인다면서 대포를 쏘아서 부수었다지요. 그런데 나폴레옹은 스핑크스를 망가뜨리기만 하지 않았답니다.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정벌’ 이른바 ‘침략전쟁’을 일으킬 적마다 언제나 학자를 잔뜩 데리고 다녔다는군요.
  아니, 전쟁통에 웬 학자를?

  이웃나라에 있는 값진 문화재나 보물을 알아보려면 학자가 있어야 했다는군요. 프랑스 학자는 프랑스 군대를 따라 이곳저곳 함께 움직이면서 이웃나라 문화재를 짓밟거나 망가뜨리거나 빼앗는 짓을 저질렀다고 해요.


조국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강제로 떼어내져서 남의 나라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들을 보고 메르쿠리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슬픔이 북받쳤지요. 메르쿠리는 이 일을 잊지 않았어요. 그 뒤 메르쿠리는 그리스가 독재국가가 되자, 영화배우의 삶을 버리고 그리스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웠어요. 그리스에서 추방당하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았지만, 메르쿠리는 그리스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폭기하지 않았어요 … 문화부 장관이 된 메르쿠리는 당장 영국으로부터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품을 돌려받기 위해 나섰어요 … “영국은 약탈한 아크로폴리스 신전 조각품들을 돌려줘 원형을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 (31, 32쪽)

로제타석은 이집트의 것일까요, 아니면 로제타석을 발견하고 해석한 프랑스의 것일까요, 아니면 지금 로제타석을 가지고 있는 영국의 것일까요? (63쪽)


  군대하고 함께 다닌 학자는 프랑스에만 있지 않았어요. 중남미나 아프리카로 원정 군인을 보낸 유럽 여러 나라도 학자를 꼭 함께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들 학자는 새로운 땅을 ‘연구’한다는 뜻을 내세웠는데요, 그러나 이들 학자는 전쟁 우두머리가 바라는 ‘값진 보물하고 문화재 빼앗기’를 앞장서서 도와준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는 이 대목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문화재를 빼앗는 군대와 전쟁을 다루면서 우리가 앞으로 이룰 평화를 가만히 밝힙니다. 멀쩡한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까닭은 거의 모두 전쟁 때문이요, 이 전쟁은 돈 때문입니다. 눈먼 돈을 가로채려는 뜻으로 전쟁무기를 키우려고 돈을 쓰지요. 전쟁무기에 돈을 쓴 만큼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려고 하지요. 어느 한 나라로 쳐들어가서 그 나라 보물하고 문화재를 훔치거나 빼앗았어도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전쟁무기하고 군대는 고스란히 있으니 끝없이 전쟁을 더 일으키고 자꾸 일으켜요.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다’는 이름을 내세워 ‘착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운 나라를 짓밟는 짓’을 그치지 않습니다.


열흘 만에 베닌 왕국은 영국군에게 점령당했어요. 1897년 2월 18일이었지요. 수백 년간 평화롭게 살았던 베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베닌의 군사와 국민이 얼마나 희생되었는지는 알 수도 없었어요. (111쪽)

베닌 왕국이 있던 나이지리아는 1900년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60년 10월 독립했어요. 그 뒤, 나이지리아는 세계에 흩어진 베닌 브론즈를 돌려받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영국은 베닌 왕국이 필립스 일행을 공격한 대가라며 베닌 브론즈를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영국 다음으로 베닌 브론즈를 많이 가진 독일과 미국 등은 베닌 브론즈를 영국 정부에 정당하게 돈을 주고 샀으니, 베닌 브론즈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요. (119쪽)


  한국은 문화재를 많이 빼앗긴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문화재는 왜 다른 나라에 갔을까?》를 쓴 분은 이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빼앗긴 문화재를 다루었고, 지난 2015년에는 한국이 빼앗긴 문화재 이야기를 다룬 《빼앗긴 문화재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들 책은 어린이한테 조용히 묻습니다. 앞으로 어른이 될 어린이한테 ‘이웃나라한테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를 묻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좋거나 값지구나 싶은 것을 이웃이 건사할 적에, 이를 힘이나 돈을 앞세워서 빼앗거나 가로채도 될는지를 물어요. 우리가 이웃한테서 값진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도 우리를 얼마든지 괴롭히거나 닦달하면서 우리한테 값진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도 되는 얼개일 테지요.

  우리 스스로 우리 보물이나 문화재를 지킨다고 할 적에는 이웃도 이웃 보물이나 문화재가 언제까지나 곱게 그곳에 있을 수 있도록 함께 마음을 기울이면서 아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빼앗은 문화재를 돌려주도록, 그러니까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도록 힘쓰기도 해야 할 텐데, 이와 맞물려서 ‘빼앗고 빼앗기는 전쟁과 돈이란 무엇인가?’를 찬찬히 돌아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1914년 스타인은 다시 둔황석굴을 찾아가서, 왕원록에게 돈을 조금 쥐여 주고는 두루마리 600개를 가져갔어요. 스타인은 자신의 행동이 중국의 소중한 문화재를 도둑질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랫동안 잊힌 보물을 내가 구출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라는 자부심이 넘쳤어요. 영국인들도 스타인을 높게 평가했고, 영국 정부는 그의 신분을 귀족으로 높여 줬어요. (165쪽)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면서 우리나라에서 쫓겨나자, 그 문화재들은 우리나라에 남겨졌어요. 지금 둔황 막고굴의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오타니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구분된 그 문화재는 4500여 점이나 되지요. 중국은 우리나라에 둔황의 문화재들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176∼177쪽)


  둔황 보물을 빼앗은 영국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녁은 영국에서 귀족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뿐 아니라 ‘잊혀진 보물이 빛이 나도록 했다’는 말을 내세운다고 하지요. 그런데 둔황 보물을 영국사람이 어떻게 훔칠 수 있었을까요? 이 영국사람은 어느 중국사람한테 돈을 주고서 둔황 보물을 찾아나섰다고 합니다. 중국 보물을 빼앗은 영국사람이 한쪽에 있다면, 이 영국사람한테서 돈을 받고 ‘중국 보물을 영국사람이 빼돌리도록 다리를 놓은 중국사람’이 있다는 뜻이에요.

  지난 일제강점기에 이 비슷한 일을 한 사람을 두고 친일파라고 합니다. 때로는 총칼에 눌리고, 때로는 돈에 눈이 멀어서 바보짓을 한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문화재가 문화재로 있을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돈 몇 푼에 넘어가서 ‘내 것이 아닌 우리 보물’을 누가 훔쳐가도록 몰래 도와주는 이들은 어리석기도 어리석지만, 삶에서 무엇이 대수로운지를 모르는 셈이에요.

  그런데 한국에도 ‘둔황 문화재’가 있다고 해요. 예전에 일본사람이 훔쳐다 놓은 것들이라는군요. 둔황 문화재를 훔쳐서 건사하던 일본사람은 한국이 해방을 맞이한 자리에서 이를 챙기지 못했대요. 얼결에 한국에 남은 둔황 문화재라는데, 한국은 이 둔황 문화재를 아직 중국한테 안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한국도 다른 여러 나라한테 문화재를 많이 빼앗겼으니, 문화재를 빼앗긴 아픔을 모를 수 없는 나라인데, 한국 것이 아닌 이웃나라 것이 이 땅에 남았다면, 우리부터 이 값진 이웃나라 문화재를 깨끗하게 돌려줄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웃나라 문화재를 이웃나라한테 안 돌려주면서 다른 나라더러 우리 문화재를 돌려주기를 바랄 수 없는 노릇입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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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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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30



기쁘게 배워서 좋아하는 길로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1

 야마시타 카즈미/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3.11.25.



“아저씨 얼굴을 잊지 않겠어. 언젠가 아저씨한테서도 소중한 걸 빼앗고 말 거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꼬마야. 공교롭게도 내겐 소중한 게 없단다.” (13쪽)


“모든 것은 계기입니다. 획일적이어 보이는 공부도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짧은 만남을 통해 개개인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22쪽)


“루돌프 애그리콜라가 날 흡수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흡수시켜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된 애그리콜라는 보고 싶지 않아요.” (58쪽)


“아이디어를 스스로 생각해 봐. 장난감이든 생필품이든 상관 없어. 우리 중에서 가장 큰 수요가 있었던 물건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거야.” (77쪽)



  배울 수 있는 사람하고 배울 수 없는 사람은 한 가지가 다르지 싶어요.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살아가려는 마음이 있어요. 배울 수 없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산 목숨 아닌 죽은 목숨하고 닮아요. 삶을 노래하고 웃으면서 즐거운 마음이 되는 사람은 스스로 씩씩해요. 삶을 노래하지 못하거나 웃지 못하는 사람은 즐겁지 못한 나머지 스스로 씩씩하지 않습니다. 다만 즐겁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단단할 수는 있겠지요.


  어느 모로 본다면 스스로 찬피짐승처럼 살더라도 안 배우지는 않아요. 스스로 마음을 차갑게 닫아 버리니 배울 수 없거나 배우지 않는다는 모습을 배우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더운피짐승인 줄 알아챌 수 있다면, 늘 뜨겁게 타오르거나 샘솟으면서 기운을 차리는 숨결인 줄 생각할 수 있다면, 날마다 하나씩 배울 수 있어요. 배우는 사이에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서면서 기지개를 켤 수 있습니다. 작은 실마리 하나를 찾아내어, 이 작은 실마리에서 삶을 이루는 바탕이나 삶을 짓는 밑틀을 새롭게 살릴 만해요.


  《천재 유교수의 생활》 스물첫째 권에서는 전쟁 뒤에 와르르 무너진 터전에서도 배움이라는 끈을 가늘고 단단히 붙잡으면서 차근차근 새로 배우자고 하는 마음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빛도 어둠도 무엇인지 볼 수 없는 까마득한 수렁에서 뒹굴기만 하다가, 이렇게 뒹굴더라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수렁을 물놀이터로 바꾸는 길을 저마다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는 대목을 배우지요. 2017.10.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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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특별한 그림 이야기 키다리 그림책 9
바바라 매클린톡 지음, 정서하 옮김 / 키다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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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7


춤추는 장미꽃을 보는 아이
― 다니엘의 특별한 그림 이야기
 바바라 매클린톡 글·그림/정서하 옮김
 키다리, 2009.7.15. 9500원


  아이가 그림을 그립니다. 크레파스나 연필을 쥐고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나뭇가지나 돌을 쥐고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아이한테 그림은 아이 마음에 흐르는 꿈을 나타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 그림에는 잘 그리거나 못 그린 그림이 없어요. 모든 그림에는 저마다 다른 꿈이 새로운 이야기로 흐릅니다.

  아이는 누구나 그림을 즐겁게 그립니다. 둘레에서 어른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같은 핀잔을 하지 않는다면 말예요. 남한테 보이려고 하는 그림이 아닌 스스로 마음을 나타내려고 하는 그림이에요. 잘 보이려는 그림이 아닌 즐거운 마음을 스스럼없이 나타내고 싶은 그림입니다.


다니엘은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늘 엉뚱하고 신기한 것들을 그려댔지요.
황새가 춤을 추거나 여우가 뛰는 모습을 표현할 때도 다니엘은 결코 평범하게
그리는 법이 없었어요.
환상적이고 멋진 그림이 될 때까지 계속 그리곤 했답니다.
사진사인 아빠는 그런 다니엘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개구리가 날아? 새한테 웬 모자야!” (1쪽)


  바바라 매클린톡 님이 빚은 그림책 《다니엘의 특별한 그림 이야기》(키다리, 2009)를 읽으면서 어떤 남다른 이야기가 흐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그림책은 그린이 바바라 매클린톡 님이 보낸 어린 나날 모습이라고 합니다. 사진가 아버지 곁에서 그림순이로 지낸 어린 나날이라지요. 사진가 아버지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담아야 한다고 여겼는데, 그림순이는 마음에 보이는 그대로 담았다고 해요.

  아니 그림순이 눈에는 마음에 흐르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보였대요. 다른 어른한테는 개구리가 날거나 모자를 쓴 새가 안 보이지만, 그림순이한테는 늘 이런 모습이 보였대요. 장미꽃이 춤을 추거나 웃는 모습이 보여, 물병에 꽂힌 장미가 아니라 춤추며 노래하는 장미를 그렸다고 합니다.


그날 밤 다니엘은 다시 한 번 도전했어요.
장미꽃을 갖다 놓고 그리기 시작했지요.
이번에는 똑같이 잘 그렸어요.
그런데 막상 그려 놓고 보니 실망스러웠어요.
“그냥 꽃처럼 보일 뿐이잖아. 따분해.”
“이렇게 그리면 어떨까?”
다니엘은 어느새 상상의 세계를 그리기 시작했어요. (7쪽)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좋을까요? 아이한테 여러 가지 그림 기법을 가르쳐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 마음에 흐르는 꿈을 아이 스스로 즐겁게 담아내는 그림을 누리도록 이끌면 좋을까요?

  아이는 이런저런 예술 기법을 익혀야 할까요? 아니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붓이 가는 결을 살리는 아이 꿈을 그릴 수 있으면 좋을까요?

  그림책 《다니엘의 특별한 그림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한 가지를 다루지만, 더 들여다보면 그림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넌지시 비춘다고 할 만합니다. 학교나 집이나 마을에서 아이한테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모든 것을 비춘다고 할 수 있어요. 어른이 세운 사회라는 틀에 아이를 맞추려 하는지, 아니면 아이가 앞으로 새롭게 가꾸거나 지을 새로운 길을 아이가 스스로 짓도록 이끌려 하는지, 이 갈래길에서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아름답거나 즐거울까를 묻는다고 할 만해요.


배통 아줌마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다니엘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요.
“우와, 제 그림이랑 비슷해요. 저 빨간색은 어떻게 만드셨어요?”
 이 연기는 진짜처럼 보이는걸요. 어떻게 그리신 거예요?” (23쪽)


  자, 그러면 그림책 《다니엘의 특별한 그림 이야기》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얘기해 보아야겠지요. 그림순이는 어떻게 그림책 작가인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돌아보아야지요.

  그림순이는 어느 날 ‘여느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을 한 분 만납니다. 여느 어른 같지 않은 그 어른은 그림순이처럼 ‘마음으로 보는 모습’을 즐겁게 종이에 담았어요. 맨눈으로만 보아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우리 마음에 흐르는 이야기를 바라볼 수 있는 눈으로 보면서 그리는 그림을 ‘어른도 그리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무척 반겨요.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헬리콥터가 없던 무렵에 헬리콥터를 그린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 그무렵 다들 헬리콥터 그림을 손가락질했겠지요. 오늘날 우리는 자동차도 비행기도 아무렇지 않게 탑니다만, 자동차도 비행기도 어른들이 꿈꾸지 않던 나날이 있어요. 짐이며 사람이며 잔뜩 싣고서 달릴 수 있는 자동차가 아직 이 별에 없던 때에는 이를 꿈으로 그린 사람도 없었겠지요. 우주로 나아가는 일, 땅밑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도 한낱 마음속 꿈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는 오늘날이에요.

  어쩌면 우리는 ‘별나라 나들이’뿐 아니라, 그림책에 나오는 그림순이처럼 앞으로는 꽃하고 속삭이고 풀벌레하고 동무가 되어 춤추며 놀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늘을 나는 개구리 곁에서 함께 하늘을 날면서 깔깔깔 웃고 노래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요. 우리가 꿈을 꿀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이 꿈꾸는 마음을 고이 지켜보면서 그림으로 담을 수 있는 손길이 있다면 말이지요. 2017.10.1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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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고래 뒹굴며 읽는 책 1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이상경 옮김 / 다산기획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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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라는 이름

[내 사랑 1000권] 20. 윌리엄 스타이그 《생쥐와 고래》



  생쥐하고 고래는 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 생쥐하고 고래는 저마다 다른 삶터에서 살아가기에 둘이 만날 수 있는 때는 거의 없을 만하지만, 둘은 온누리에 꼭 하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생쥐하고 고래는 둘이 쓰는 말이 달라서 말로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울 테지만, 서로 마음이랑 마음으로 뜻이 맞아서 따사롭고 넉넉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그림책 《생쥐와 고래》(다산기획,1994)가 넓고도 깊이 그려서 보여줍니다. 아주 자그마한 그림책 하나인데, 이 자그마한 그림책은 우리가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벗으로 지낼 적에 삶이 환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어요.


  더 많은 동무가 있어야 할까요? 또래인 동무가 많아야 할까요? 온누리에 동무가 꼭 하나 있으면 어떠할까요? 마음이 맞을 뿐 아니라 마음을 아끼거나 보살필 줄 아는 동무가 하나 있으면 어떠한가요?

  마음으로 아끼기에 온힘을 다해서 도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살피기에 온힘을 쏟아서 슬기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만나기에 언제나 웃음을 지으면서 서로 그릴 수 있어요. 마음으로 생각하고 어울리기에 늘 가슴 가득 그리운 눈물꽃으로 서로 떠올려요.


  우리 동무는 가난하지 않습니다. 우리 동무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 동무는 못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동무는 잘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동무는 언제나 동무입니다. 우리 동무는 수수하면서도 멋스러운 사람입니다. 우리 동무는 스스로 하루를 지을 줄 알고, 우리 동무는 어깨를 겯고서 함께 일하거나 놀 줄 압니다. 우리 동무는 이 땅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우리 동무는 맑은 바람을 함께 마시면서 가슴을 펴는 몸입니다.


  저는 그림책 《생쥐와 고래》를 1980년대 첫무렵에 처음 만났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번역책이 없던 때에 학습지 별책부록으로 만났고, 1990년대에 이르러 제대로 된 책으로 만났으며, 이제 우리 집에 여러 권을 건사하여 아이들하고 틈틈이 들추어 다시 보고 또 봅니다. 2017.10.1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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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6.


할아버지 집이나 이모 집에서는 ‘있는 잠’조차 몰아내면서 마지막 한 방울 힘까지 쏟아서 놀던 아이들이 시외버스에서 까무룩 잔다. 작은아이는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맞이방 돌걸상에 눕더니 어느새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한 시간 반 즈음 잤으나, 이내 기지개를 켜고 책을 꺼내어 펼친다. 지난달에 진주에 있는 진주문고로 나들이를 가면서 마련한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라는 책이다. 저마다 서울이라는 고장을 씩씩하게 박찬 뒤에 다 다른 시골에서 다 다른 기쁨하고 보람으로 살림을 짓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러한 책을 경남 진주 진주문고에서 스스로 펴냈다. 가만히 보면 ‘펄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은 투박하면서 이쁘다. ‘진주문고’를 영어로 옮기니 ‘펄북스’이다. 더 생각해 보면 ‘펄’은 ‘뻘’하고 맞닿는 갯살림 낱말이다. 진주가 태어나는 자리를 돌아보니 ‘펄’이랑 ‘뻘’은 어쩐지 먼발치 아닌 살가이 어우러지는 결이 흐르지 싶다. 아무튼 이 나라가 아무리 서울로 몰려드는 살림으로 많이 치우친다고 하지만, 참으로 많은 뜻있는 이들은 고장마다 따사롭고 넉넉한 새로운 마을이 되기를 꿈꾸면서 젊은 바람을 일으킨단다.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는 꼭 스물네 사람을 다룰 테지만, 이 스물네 사람은 스물네 가지 씨앗을 심겠지. 나는 나대로 우리 시골에서 어떤 씨앗을 심는 ‘시골님’ 노릇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곁님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새로운 씨앗을 심는 마을님으로, 시골님으로, 마을지기로, 시골이웃으로, 또 튼튼한 한 사람으로 즐거이 살림을 짓는 하루이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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