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3.


네 사람이 함께 길을 나선다. 아주 오랜만이라 느낀다. 엊저녁에는 두 아이더러 스스로 짐을 꾸려 보라고 일렀다. 두 아이는 “응! 우리가 쌀게!” 하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막상 아이들이 손수 싼 가방을 들여다보니 옷짐이 허술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옷을 빨래하지 못하는데 한 벌씩만 챙겼네. 얘들아, 너희가 너희 옷을 한 벌만 챙기면 모자라단다. 집에서야 가을에 같은 옷을 이틀이나 사흘을 입더라도 바깥에서는 다르지. 아이들이 빠뜨린 옷가지를 챙겨 준다. 이러고서 너른 천을 펼쳐서 옷가지를 싼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일을 보러 갈 적에도 말이야, 옷은 가방에 그냥 안 넣어. 천가방에 따로 넣지. 생각나니?” “응.” “너희 옷도 마찬가지야. 가방에 그냥 안 넣고 이렇게 옷가지는 따로 천으로 싼단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서서 고흥읍을 거쳐서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모두 긴옷으로 잘 챙기도록 하고 일찍 재운다. 작은아이부터 일찍 깨어난다. 어젯밤에 미리 한 빨래는 거의 말랐다. 마루하고 부엌에 빨랫대를 두면 며칠 사이에 바싹 마르겠지. 시외버스는 고흥을 떠나 오수를 거쳐 서울로 간다. 만화책 《사야와 함께》 셋째 권을 읽는다. 풋풋하게 그리는 사랑이 포근하게 흐른다. 근심이나 걱정이 아닌 새로운 꿈하고 길을 담는 마음이기에 “사야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모두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만화책 《트윈 스피카》 여덟째 권을 읽는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도 ‘사야’처럼 고등학생 나이. 다만 《트윈 스피카》는 여덟째 권에서 마무리를 지으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나오는데, 별을 가슴에 품고 저마다 다른 길을 씩씩하게 걷는 어여쁜 몸짓이 참 곱다. ‘스피카’ 이야기는 아무래도 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룬다고 할까. 닿을 수 없는 별이 아닌, 닿으려고 하는 별을 노래한다. 먼먼 별이 아닌 마음에서 피어나는 별을 노래한다. 지는 별이 아닌 새로 돋는 별을 노래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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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분수 사계절 그림책
최경식 글.그림 / 사계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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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68


고래가 깨어나는 도시 한복판 분수대
― 파란 분수
 최경식 그림
 사계절, 2017.7.25. 13000원


  아파트를 올리려면 땅밑으로 깊게 기둥을 박습니다. 높이려는 층수에 맞추어 땅밑에서 단단히 받쳐 주어야 하거든요. 자동차가 다니려면 찻길이 될 자리도 다져 놓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다가 움푹 꺼지면 안 될 테니까요. 기차가 다니는 자리도 그렇고, 지하상가 있는 자리도 그래요. 도시에서는 이래저래 거의 물샐 틈이 없다시피 하도록 땅을 메꿉니다.

  싱그럽거나 맑은 냇물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그러나 도시에는 공원이나 분수가 있어요. 숲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려면 밥뿐 아니라 바람하고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볕을 쪼일 수 있어야 해요.

  아이들은 도시에서 공원이나 분수대 둘레가 더없이 좋은 쉼터이자 놀이터가 됩니다. 마음껏 달릴 수 있고, 신나게 물을 누릴 수 있어요. 마음껏 뛰면서 노래할 수 있고, 물밭에서 까르르 웃음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 분수는 어떤 분수일까요? 도시에 있는 분수는 그냥 분수일까요, 아니면 어쩌면 설마 고래 등판은 아닐까요?

  그림책 《파란 분수》(사계절, 2017)는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아이가 늘 꿈을 꾸던 고래를 분수대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말 한 마디 없이 오직 그림으로 이야기를 꾸려요.

  아무래도 군말은 없을 만합니다. 아이는 분수대 가장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꿈을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에 온통 시멘트하고 아스팔트만 있는 듯한 도시입니다만, 아이 마음에는 ‘이 도시 껍데기’를 뚫고 나올 무언가 재미나며 놀라운 일이 있으리라 여깁니다.

  이러던 어느 날 참말 대단한 일이 벌어진다고 해요. 모두 잠든 밤에 아이는 홀로 분수대에 앉아요. 달빛이 밝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분수대인데, 갑자기 땅이 갈라지더니 커다란 눈알이 땅밑에서 솟아나오지요.

  아이는 처음에는 두려워서 깜짝 놀라다가 이내 깨닫고 웃어요. 아하, 분수대라는 겉모습으로 몸을 숨긴 고래가 드디어 깨어났네!

  고래는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고래가 하늘을 난다니? 그렇지만 아이 빼고는 아무도 이 모습을 못 봐요. 그래서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바로 ‘고래가 하늘을 날 줄 안다’는 대목을 다른 사람들은 알 길이 없어요.

  고래는 아이를 이끌고 하늘을 날고 바다를 가릅니다. 무지개를 물방울로 뿜어 주면서 신나게 놀이판을 벌입니다. 이러다가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데요, 온몸이 ‘빗물’ 아닌 ‘짠물’로 흠뻑 젖은데다가 불가사리까지 한 마리 옷에 들러붙은 채 돌아온 아이를 아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이 어버이는 아이가 ‘고래하고 바다를 가르며 놀았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이 어버이는 아이가 고래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고 하는 말을 그저 ‘생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고 여길까요?

  그림책 끝자락을 보면 아이 방이 살짝 나와요. 아이는 책상맡에 고래 그림을 멋지고 크게 그려서 붙였군요. 늘 고래를 바라보면서 꿈을 꾸었네요. 방바닥에는 분수를 그린 종이가 있어요. 티없는 마음으로 꿈을 짓고 바라기에 아이 나름대로 이룬 자그마한 “파란 분수”예요. 아이는 이날 만난 “파란 분수”를 두고두고 가슴에 담으면서 새롭고 아름다운 꿈길을 걸어가는 씩씩한 어른으로 자리리라 봅니다. 2017.10.13.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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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2.


가을이 깊어 가면서도 볕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바로 이 가을볕은 나락이 무럭무럭 익도록 해 줄 뿐 아니라, 알을 낳을 풀벌레나 나비한테 마지막 따스한 숨결이 되리라 느낀다. 어제그제는 저녁까지 제법 더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서 살짝 서늘하다. 글월 두 통을 띄우려고 우체국 마실을 간다. 작은아이가 따라나선다. 군내버스에서 《초록비 내리는 여행》을 읽는다. 곁님이랑 두 딸이랑 ‘그림마실’을 즐기는 오치근 님이 네 사람 손길로 함께 빚은 책이다. ‘초록비’가 내리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네 사람은 차나무하고 찻잎을 따라서 찻물바람이 흐르는 마실을 다녔다고 한다. 그림도 글도 온통 푸른 빗물이요 바람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어버이랑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찻물을 즐기고 차바람을 마시는 아이들은 어떤 꿈으로 어떤 이야기를 앞으로 새롭게 지피려나. 내가 읍내에서 글월을 써서 부치는 동안 작은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읍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서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작은아이는 눈이 말똥말똥. 나는 고단해서 꾸벅꾸벅. 이제껏 아이들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든 군내버스인데, 오늘만큼은 작은아이 어깨에 기대어 쉬어 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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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2
네무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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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29



지구가 사라지거나 엄마가 되거나

―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2

 네무 요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3.10.15.



“졌지만 즐거웠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냐?” (20쪽)


“영국이 없어졌다는 건, 그럼 역시 그 남자가 신이란 게, 진짜였어? 엑? 그럼,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도?” (40쪽)


‘우린 가슴이 설레었다. 뭔가가 시작된다는 것에. T셔츠를 맞춘다는 것에. 구세주가 된다는 것에. 어쩌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그 자체에. 그게 정말 뭘 의미하는지 상상조차 못하면서.’ (46쪽)


“희망하는 진로가 ‘엄마’란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47쪽)


“우리 엄마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엉도 충분히 훌륭한 엄마예요. 공부할 데가 꼭 대학만 있는 건 아니라고 전 생각해요. 몇 백만 엔이나 들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49쪽)



  지난 2013년에 만화책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를 읽으면서 이 만화책 얼거리가 재미있다고 여겼습니다. 거의 아무것도 들여다볼 만한 남다른 구석이 없다고 하는 후줄근한 어느 고등학교 여자 농구부가 ‘경기에서 지면’ 지구에서 나라가 하나씩 사라지다가 아예 지구가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지요. 지구를 비롯한 온누리를 지었다고 하는 ‘님’들이 어느 날 모여서 놀다가 주사위를 던져서 이렇게 하기로 했다지요.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일 수 있을 텐데,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기에 한결 재미있다고 느껴요. 굳이 ‘왜’를 찾아야 하지는 않겠지만, 님이라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그들은(또는 우리들은) 참말 놀이를 좋아해요. 주사위 놀이도 대단히 좋아하고요.


  그런데 이 만화책은 2013년에 1권하고 2권이 나란히 나온 뒤에 여러 해가 지나도록 3권이 안 나왔습니다. 3권이 영 나올 낌새가 없으니 설마 지구가 사라지고서야 3권이 나오려나 싶더니, 2017년 4월에 조용히 3권이 나왔군요.


  만화책 《일단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둘째 권을 읽으면, 이 만화책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기 앞서 이른바 ‘진로’를 놓고서 ‘엄마’가 되겠노라 하고 담임 교사한테 밝힙니다. 대학교 아닌 엄마가 되겠다고 하지요. 한쪽에서는 이 아이가 몸담은 농구부가 경기에서 질 적마다 지구에서 나라가 하나씩 사라지는데, 이 아이는 꿈이 ‘엄마 되기’입니다. 대학교를 안 나왔어도 훌륭하게 저를 낳아서 돌본 사람이, 삶에서 스승이자 길벗으로 여기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거든요. 자, 이 아이는 지구를 살리는 길을 갈 수 있을까요? 2017.10.1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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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10.


살아가는 나날은 늘 여행이다. 쉽게 말해 본다면 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고 들어오는 나들이라고 할까.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저곳에서 이곳으로 들어온다. 몸으로 밥이 들어오고, 이 밥은 똥오줌이 되어 바깥으로 나간다. 새로운 목숨을 받아들여서 기운을 내고, 기운을 내어 움직이고 나서 우리가 디딘 이 땅을 북돋울 새로운 것을 몸에서 내놓는다. 사진책 《어떤 여행》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찬찬히 짚어 보는 이야기를 사진이라는 틀에 맞추어서 넌지시 보여준다. 작은 이웃 목숨한테서, 우리 밥이 되는 이웃 목숨한테서, 우리 둘레에 늘 있지만 오늘날 도시 터전에서는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이웃 목숨한테서, 들고 나는 여행이라고 하는 숨결을 느낀다. 한글날까지 지나간 시월 십일. 하늘이 맑고 파랗다. 상큼하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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