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16.


할아버지 집이나 이모 집에서는 ‘있는 잠’조차 몰아내면서 마지막 한 방울 힘까지 쏟아서 놀던 아이들이 시외버스에서 까무룩 잔다. 작은아이는 고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는 맞이방 돌걸상에 눕더니 어느새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한 시간 반 즈음 잤으나, 이내 기지개를 켜고 책을 꺼내어 펼친다. 지난달에 진주에 있는 진주문고로 나들이를 가면서 마련한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라는 책이다. 저마다 서울이라는 고장을 씩씩하게 박찬 뒤에 다 다른 시골에서 다 다른 기쁨하고 보람으로 살림을 짓는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러한 책을 경남 진주 진주문고에서 스스로 펴냈다. 가만히 보면 ‘펄북스’라는 출판사 이름은 투박하면서 이쁘다. ‘진주문고’를 영어로 옮기니 ‘펄북스’이다. 더 생각해 보면 ‘펄’은 ‘뻘’하고 맞닿는 갯살림 낱말이다. 진주가 태어나는 자리를 돌아보니 ‘펄’이랑 ‘뻘’은 어쩐지 먼발치 아닌 살가이 어우러지는 결이 흐르지 싶다. 아무튼 이 나라가 아무리 서울로 몰려드는 살림으로 많이 치우친다고 하지만, 참으로 많은 뜻있는 이들은 고장마다 따사롭고 넉넉한 새로운 마을이 되기를 꿈꾸면서 젊은 바람을 일으킨단다.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는 꼭 스물네 사람을 다룰 테지만, 이 스물네 사람은 스물네 가지 씨앗을 심겠지. 나는 나대로 우리 시골에서 어떤 씨앗을 심는 ‘시골님’ 노릇을 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곁님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따사로우면서 넉넉한 새로운 씨앗을 심는 마을님으로, 시골님으로, 마을지기로, 시골이웃으로, 또 튼튼한 한 사람으로 즐거이 살림을 짓는 하루이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16.


일산마실을 마친다. 고흥으로 돌아가려는 날이다. 전철을 탈는지 백석역 앞에 있는 시외버스역에서 순천으로 가서 고흥으로 돌아갈는지 생각하다가 서울 홍대 언저리로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일산역에서 홍대입구역으로 가는 기차가 있어서 대화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고, 기차로 31분 만에 빠르게 서울에서 내린다. 홍대 언저리에는 담뱃잎을 파는 가게가 있다. 그런데 열한 시가 다 되도록 안 연다. 경의선숲길 걸상에 앉아서 주먹밥을 먹고, 찻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두 손을 든다. 택시를 타고 망원역 쪽으로 간다. ㅊ출판사에 네 사람이 함께 찾아가서 다리를 쉬기로 한다. 곁님하고 함께 ㅊ출판사 대표님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테슬라 이야기, 저작권이란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달리 꿈꾸어 짓는 살림을 높이 섬기는 뜻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 학교란 사람을 가르치는 곳인지 아닌지 하는 이야기, 갖고 싶도록 짓는 책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동안 큰아이가 ㅊ출판사 책꽂이에 있는 여러 그림책을 집어들어서 읽는데 이 가운데 《사과가 주렁주렁》이 눈에 뜨인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우리가 따로 씨앗을 안 심었으나 참외가 열렸다. 어느 날 먹고 남은 참외를 마당 한쪽에 묻었을 텐데, 그 꼬투리에 달렸을 참외씨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렸네. 그림책 《사과가 주렁주렁》은 땅에 떨어진 곪은 능금에 있던 씨앗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서 우람한 나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살가이 보여준다. 참 이쁜 그림책이다. 이 멋스러운 그림책을 온누리 아이들이 만나고,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도 만나서,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씨앗을 심을 수 있으면 참 좋겠구나 싶다.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14.


경복궁에 갔다. 네 식구가 일산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마실을 왔고, 일산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경복궁 구경이랑 남산 구경을 해야 한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 함께 대화역부터 경복궁역까지 전철을 달린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또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가는 경복궁. 온갖 나라 사람들이 온갖 나라 말로 수다를 나누면서 걷는 경복궁. 서울도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라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본다. 경복궁에 있는 박물관을 돌아보는데, 전시 품목이 퍽 초라하다고 느낀다. 건물은 큼지막하지만 막상 지난 우리 발자국을 되짚도록 이끄는 품목이 얼마 없다고 할까. 유물을 건사하자면 불빛을 낮추기는 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어둡다. 진열장 옆에 붙인 알림판 글씨를 못 읽겠다. 유물 아닌 진열장 옆 알림판에 따로 작은 불을 놓든지 글씨를 키우든지 해야지. 그리고, 임금 아닌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하나도 건사하지 않기에 초라하지는 않다. 임금을 둘러싼 유물조차 고작 이만큼밖에 못 보여주나 싶어서 초라하다고 느낀다. 기념품을 파는 곳을 둘러보는데, 비단으로 지은 연필주머니가 눈에 뜨인다. 참 멋지네. 그런데, 경복궁 기념품집에서 파는 연필주머니에 정작 연필이 안 들어간다! 연필주머니에 연필이 안 들어가다니! 이런 놀라운 우스개가 다 있을 수 있나? 겉감뿐 아니라 안감까지 비단이라 좋다만, 짜리몽땅한 연필주머니는 어찌해야 좋을까. 공깃돌을 담는 이쁘장한 주머니처럼 알뜰히 빚은 좋은 기념품이 많이 보이면서도, 이른바 살짝 모자라서 아쉬운 대목을 여러모로 느낀다. ‘파는 눈’이 아닌 ‘사서 쓸 사람 눈’으로 하나하나 만지고 돌아본다면 기념품을 어떻게 건사해야 좋을는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이곳에 책도 여러 권 있어서 《동궐의 우리 새》를 장만해 본다. 나는 생태 도감 책은 거의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펴낸 책으로만 아이들한테 보여준다. 《동궐의 우리 새》라는 줄거리나 생각은 퍽 좋은데, 사진을 놓은 엮음새가 좀 아쉽고, 다른 곳이 아닌 꼭 여기 경복궁하고 창경궁 언저리에서 만날 수 있는 숱한 새하고 얽힌 이야기도 좀 적다. 동궐이라고 하는 터전을 남달리 눈여겨보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텃새하고 철새 이야기를 묶어 준다면, 생태 도감이라는 틀보다는 ‘동궐에서 만나는 새 이야기’라는 자리에서 조금 더 가벼우면서 재미있게 살펴 준다면 한결 좋을 텐데.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편집배원 최씨 눈빛사진가선 49
조성기 지음 / 눈빛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진책 읽기 359



우리 곁 고운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

― 우편집배원 최씨

 조성기 사진

 눈빛 펴냄, 2017.7.26. 12000원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우편집배원을 볼 적마다 어떻게 집집을 다 돌 수 있을까 하고 몹시 궁금했어요. 온 집을 돌면서 어떻게 편지를 안 틀리고 돌리는지 궁금했고요. 그냥 모든 집을 다 돌아서는 될 일이 아닐 테지요. 골목골목 샅샅이 알 뿐 아니라, 가장 빠르면서 한 집도 안 빠뜨릴 수 있을 만하게 다녀야 할 테고요.


  어떻게 모든 집을 찾아다닐 수 있느냐 하는 궁금함은 오래지 않아 풀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신문을 돌리는 일을 했어요. 신문을 돌리려면 집배원처럼 마을집을 꼼꼼히 알아야 합니다. 우유를 돌리는 일을 할 적에도, 다른 가게에서 배달을 할 적에도, 모두 마을집을 낱낱이 알아야 하지요.


  마을사람이기에 마을집을 꿰뚫기도 합니다. 한마을에서 사는 이웃이니 서로서로 마을집을 환하게 들여다봅니다. 일도 일이라고 할 만하지만, 마을에서 하는 일이란 늘 이웃을 마주해요. 이웃집 사람이 우리 가게 손님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가게에 손님으로 찾아갑니다.


  이런 흐름에서 더 짚어 본다면, 지난날에는 세금고지서는 드물고 참말로 편지가 많았어요. 엽서도 많았고요. 전화조차 드문드문 있던 무렵에는 흔히 편지나 엽서를 띄웠습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벼이 기다리면서 글월을 띄워요. 사나흘이나 이레쯤 넉넉히 기다리면서 글월을 써요.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아 글월을 적어 띄우고, 오래고 깊은 손길을 담은 글월을 기쁘게 받지요.


  그러니 이런 글월을 가방 가득 담아서 나르는 집배원은 배달이라는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주는 일꾼입니다. 집집마다 기쁘거나 슬픈 이야기를 살포시 건네는 이웃님이에요. 때로는 봄철 제비처럼 새롭고 반가운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하고요.



1994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 우연히 우체국 잡지 기사에서 정년퇴직을 앞둔 지리산 산골마을의 집배원을 알게 되었다. 문득, 나는 집배원의 일상을 촬영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그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무작정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서 그의 근무지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함양군 마천우체국까지 찾아갔다. 당시 나는 학생 신분으로, 그는 자신을 며칠이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게 해 달라는 나의 요청을 첫 만남에 거절하였다. 나는 며칠 뒤 우체국의 허락을 얻으면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어 발걸음을 우체국으로 돌렸다. 사정을 말하니 우체국장님은 선뜻 집배원용 오토바이까지 협조해 주셨다. 그 후 그에게 촬영을 허락해 달라 재차 간곡하게 말했고, 그는 나의 부탁을 끝내 들어주었다. 그는 집 대문 옆에 작은 방을 내주었고, 함께 집밥까지 먹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당시 나의 열정을 가상히 여겼던 것 같다. (3쪽/머리말)



  사진책 《우편집배원 최씨》(눈빛, 2017)를 읽습니다. 사진책에 흐르는 지리산 우편집배원 삶자국을 가만히 읽습니다. 1994년에 열흘에 걸쳐서 우편집배원하고 함께 마을이랑 멧자락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마다 깃든 수수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1994년만 하더라도 집배원 오토바이가 널리 퍼졌습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토바이 아닌 자전거로 편지를 날랐고, 두 다리로 걸어서 골목을 누빈 집배원도 많아요. 마을하고 마을 사이가 띄엄띄엄인 시골에서라면 으레 자전거를 달려야 할 테지요. 골목마다 빼곡히 살림집이 맞닿은 도시에서는 자전거가 오히려 번거로울 수 있으니 걸어서 편지를 날랐을 테고요.


  저는 자전거랑 우표랑 골목을 퍽 좋아하기에 어릴 적에 ‘집배원으로 일하는 삶’이 여러모로 재미있고 뜻있으리라 여기곤 했습니다. 숱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 다른 글씨로 적은 봉투에 온갖 우표가 붙어서 여러 고장을 넘나들어요. 집배원은 이 숱한 편지를 손수 갈무리하여 알맞게 집집마다 돌립니다. 글월을 띄우는 사람이 실어 보내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고이 간수합니다. 글월을 기다리면서 받을 사람이 설렐 마음을 생각하면서 알뜰히 건사하고요.


  사진책 《우편집배원 최씨》는 꼭 열흘 동안 우편집배원하고 함께 움직이며 찍은 사진을 모았으니, 더 깊거나 너른 이야기를 담기는 어려운 사진책으로 얼핏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편집배원 살림하고 발자국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함께 움직이는 마음이라면 열흘 아닌 하루만 함께 움직이더라도 지리산에서 여러 마을을 휘돌면서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애틋하게 보여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어느덧 스물 몇 해라는 나날이 켜켜이 쌓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1994년 같으나 한 해 두 해 흐를수록 더 먼 지난날이 됩니다. 앞으로 2020년이나 2024년쯤 되면 그무렵에는 지리산 멧골마을 집배원은 어떤 차림으로 어떤 마을하고 어떤 집을 돌면서 일을 하려나요. 요즈음에는 지난 1994년하고 다른 어떤 발걸음이나 몸짓으로 어떤 이웃을 마주하는 집배원이 있을까요.


  스물 몇 해 사이에 그리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 있을 테고, 이동안 눈부시게 달라진 모습이 있을 테지요. 1994년에 허리 굽은 할머니인 분은 오늘날 어떻게 지내실까요. 그즈음 어머니 등에 업힌 아기는 오늘날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요. 그무렵 기저귀를 빨던 아주머니는 오늘날 어떤 보금자리를 가꿀까요.


  우편집배원은 편지로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잇습니다. 우편집배원을 사진으로 담은 한 사람은 사진으로 사람하고 사람 사이를 잇습니다. 아스라한 지난날하고 오늘날을 잇고, 그리 멀지 않은 듯하지만 어느새 꽤 멀리 떨어진 지난날하고도 오늘날을 가만히 잇습니다. 먼 길을 글월 하나가 잇고, 먼 나날을 사진 하나가 이어요.


  이 가을에 사진 한 장 찍어서 뒤쪽에 우표를 붙이고 몇 줄 이야기를 적어서 먼 곳에 사는 이웃이나 동무한테 부쳐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 장만해서 뒤쪽에 사진을 붙여서 부쳐 보아도 재미있을 테고요.


  때로는 우리 스스로 집배원이 되어 글월을 건넬 수 있습니다. 손수 쓴 글월을 가방에 넣어 시외버스를 달리지요. 전남 고흥에서 서울로 글월 하나를 손수 실어 날라 볼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광주로 글월 하나를 몸소 실어 날라 볼 수 있어요. 더 빨리 나르지 않아도 글월 하나는 우리한테 즐거운 이야기가 됩니다. 더 많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사진 하나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반가운 이야기로 머뭅니다.


  우리 곁 고운 이웃을 바라보는 손길로 사람이랑 사람 사이를 이은 우편집배원이 있습니다. 이 우편집배원을 고운 눈길로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어제랑 오늘을 이은 사진가 한 사람이 있습니다. 2017.10.15.해.ㅅㄴㄹㄴ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사진읽기/사진넋)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눈빛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아서 붙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귀야행 19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728



반딧불이 이야기를 돌아보다

― 백귀야행 19

 이마 이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시공사 펴냄, 2011.2.10. 4000원



“겨울의 반딧불은 애인에게 미련이 남은, 죽은 이의 영혼이래. 사랑하는 상대가 안 보여서 여름이 끝나도 이승을 뜰 수 없어 이승을 헤매는 거라 하더구나.” (24쪽)


‘아빠가 살아 있는 게 맞다면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이렇게 어린애가 대체 무슨 업을 짊어지고 있는 걸까.’ (73쪽)


“슬픈 감정을 떨치지 못하면, 당신과 같은 감정을 품고 있는 성불하지 못한 영혼들이 동조해서 따라와 버리고 말아요.” (122쪽)


‘무서워하지 마라, 리쓰. 무서워하면 더 달려든단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139쪽)



  가을이 깊은 어느 날 반딧불이 한 마리가 방에 들어온 적이 있어요. 커다란 반딧불이가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왔는지 깜짝 놀랐어요. 이 아이를 안 다치게 하면서 내보내고 싶었으나 어느새 구석진 곳으로 숨어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오는 벌레가 제법 많습니다. 시골이라 벌레가 많을 수 있어요. 이 벌레도 저 벌레도 어느 틈인가 찾아내어 들어옵니다. 풀벌레를 방이나 마루나 부엌에서 만나면 으레 말을 걸어요. 얘야, 여기는 너희가 살 만한 곳이 아니란다. 너른 풀밭으로 돌아가렴.


  풀벌레는 처음 비집고 들어온 틈을 다시 찾아내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사람들 살림집이 궁금해서 들어온 풀벌레는 다시 너른 풀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백귀 야행》에서 리쓰네 어머님이 리쓰한테 반딧불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반딧불이하고 얽혀 저런 옛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반딧불이 이야기가 있을까요? 우리 옛사람은 반딧불이를 바라보면서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요?


  반딧불이를 보기는 쉬우면서 어렵습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곁에 둔 마을이나 집에서 살면 반딧불이를 쉽게 만나요. 이와 달리 맑은 냇물이 없거나 시멘트랑 아스팔트만 가득한 곳에서는 반딧불이를 못 만나요.


  반딧불이를 비롯한 숱한 목숨을 가까이에서 이웃으로 두기에 이 숱한 목숨하고 사람이 얼크러진 이야기가 자랍니다. 사람은 숱한 목숨을 아끼고, 숱한 목숨도 사람을 헤아리면서 저마다 삶을 지어요.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지으면서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남길 만한 모습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2017.10.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