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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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4



시와 늦여름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안도현 글

 창비 펴냄, 2008.1.21.



  여름이 저뭅니다. 늦여름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집니다. 아직 낮에는 햇볕이 뜨거워 이불이나 빨래를 말리기에는 좋습니다. 일찍 찾아오는 저녁에 부는 바람에는 가을내음이 물씬 흐릅니다. 논이 펼쳐진 들길 사이를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 제법 익은 나락마다 고소한 냄새를 퍼뜨립니다.


  풀벌레 노랫소리가 짙을 만한 철입니다. 멧새는 겨울을 앞두고 부산을 떨어야 할 철이고, 멧짐승도 슬슬 바지런히 추위를 헤아려야 할 철입니다. 그런데 풀벌레 노랫소리가 그리 짙지 않습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시골에는 으레 농약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 가끔 나는 숙박계에 이 세상에 없는 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벽에 구름의 바지를 걸어놓고 잠든 적 있다 ..  (세상의 모든 여인숙)



  흙이 있는 땅이면 으레 풀이 돋기 마련입니다. 풀은 어디에서나 돋습니다. 사람이 심은 남새 씨앗도 돋지만, 풀이 스스로 퍼뜨린 씨앗도 돋습니다. 풀은 사람이 뜯어서 먹기도 하지만, 들짐승이나 숲짐승이 뜯어서 먹기도 합니다. 지난날에는 마을마다 소를 많이 키웠기에 소한테 풀을 먹이려 했지, 풀에 함부로 약을 뿌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모든 풀은 저마다 쓰임새가 있어서 함부로 뜯거나 죽이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풀을 여러 가지로 씁니다. 첫째, 즐겁게 먹습니다. 둘째, 옷을 짓는 실을 얻습니다. 셋째, 바구니나 자리나 신을 삼을 적에 씁니다. 넷째, 지붕에 얹거나 울타리를 두를 때에 씁니다. 다섯째, 몸이 아플 때에 알맞게 씁니다. 여섯째, 잎사귀를 덖거나 말려 우려서 마십니다. 일곱째, 짐승한테 먹이려고 씁니다. 여덟째, 풀이 돋아 흙을 붙잡으면 큰비가 내려도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아홉째, 풀밭에서 푸른 기운이 흘러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맑은 바람을 마실 수 있습니다.



.. 그해 봄 우리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  (명자꽃)



  풀을 모르는 사람은 시골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풀을 모르고서는 삶을 가꿀 수 없습니다. 풀을 죽이거나 짓밟는 사람은 시골내기가 되지 못합니다. 아니, 풀을 죽이거나 짓밟으니 시골마을을 돌볼 수 없습니다.


  풀이 죽은 데에서는 나무가 죽습니다. 풀이 죽어 나무가 죽으면 사람이 죽습니다. 풀이 죽어 나무가 죽으면 숲이 사라집니다. 숲이 없는 곳은 비가 오지 않아요. 메마를 뿐입니다. 풀과 나무가 없으면 냇물이 흐를 수 없어요. 풀과 나무가 없으면 논이고 밭이고 일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억지로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풀 없이 먹을거리를 뽑아내는 짓’을 함부로 합니다. 흙을 온통 죽이거나 말리면서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로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만드는 공산품 같은 먹을거리를 거둡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 셈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땅을 망가뜨릴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면서 이 땅에 푸른 물결이 아닌 잿빛 도시와 아파트와 공장과 발전소와 송전탑 따위만 들이부을까요.



.. 뒷집 조성오 할아버지가 겨울에 돌아가셨다 / 감나무 두 그루 딸린 빈집만 남겨두고 돌아가셨다 ..  (조문弔文)



  안도현 님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2008)를 읽습니다. 애타면서 철이 없는 모습을 가만히 떠올립니다. 어떤 사람이 애타는 몸짓이면서 철없다고 할 만할는지 헤아립니다.


  너일까요. 나일까요. 우리 모두일까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모두 철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스스로 어떤 숨결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말 철없는 삶이 아닐까요.


  안도현 님이 사는 마을에서 뒷집 할배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안도현 님은 뒷집 할배가 ‘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렴요. 모든 사람은 저마다 길입니다. 더 밝은 길이나 더 어두운 길은 따로 없이 우리는 모두 길입니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 길인 줄 모르기 일쑤이고, 어떤 길인지 안 느낄 뿐입니다.


  그러면, 안도현 님은 어떤 길일까요. 안도현 님은 스스로 어떻게 빛나는 길일까요. 안도현 님은 스스로 어떤 철이 든 사람으로서 시 한 줄을 읊을까요.



.. 식구들이 모두 달라붙어 키운 염소를 / 겨울에 잡았다 ..  (염소 한 마리)



  늦여름이 저물면서 가을이 코앞입니다. 달력에 있는 숫자로 헤아리는 가을이 아니라 살갗으로 느끼는 가을이요, 달력 숫자가 아닌 바람결과 햇살로 느끼는 가을입니다. 가을이 지나고 찾아오는 겨울도 살갗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마주하는 철이 되겠지요.


  바람을 느끼듯이 여름을 듬뿍 느끼다가 가을내음을 맡습니다. 햇살을 느끼듯이 여름을 한가득 누리다가 가을빛을 바라봅니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따사롭게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에 봄이 싹틀 때에 들에도 봄빛이 피어납니다. 우리 마음에 가을열매가 무르익을 때에 들에도 가을열매가 무르익습니다. 우리 마음에 봄이 싹트지 않는다면 들에도 봄바람이 불지 않아요. 우리 마음에 가을이 무르익지 않는다면 들에도 가을내음이 퍼지지 않습니다.



.. 시골 서점 책꽂이에 아주 오랜 시간 꽂혀 있는 시집이 있다 / 출간된 지 몇해째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시집이다 ..  (오래된 발자국)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리는데 풀벌레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농약바람은 맡을 수 있지만 짙은 풀바람을 쐬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풀벌레와 새와 개구리가 노래잔치를 이루는 모습은 차츰 사라지면서,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기곗소리와 자동차 소리가 넘칩니다.


  소리가 사라진 곳에 노래가 사라지고, 노래가 사라진 곳에서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라디오를 켜거나 텔레비전은 켤 테지만, 시집을 펼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어서 조용하지 않습니다. 시골에 노래가 없기에 조용합니다. 시골은 풀이 죽고 노래가 멀어지면서 고요할 뿐입니다. 4347.8.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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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구도감 - 궁금한 것을 찾아 연구해 보자!
아리사와 시게오 지음, 김창원 옮김, 쓰키모토 카요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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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8



무엇을 보며 살아가는가

― 자유연구도감

 아리사와 시게오 글

 쓰키모토 카요미 그림

 김창원 옮김

 진선북스 펴냄, 2009.12.3.



  글을 쓰는 아리사와 시게오 님과 그림을 그리는 쓰키모토 카요미 님이 빚은 책은 《탐구도감》(1999)이나 《애완동물도감》(2001)이나 《식물재배도감》(2001)이라는 이름으로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자유연구도감》(2009)도 두 사람 손길이 살가이 깃들어 태어난 책입니다. 다른 ‘도감’ 책들도 초등학생 눈높이에서 여러 가지를 스스로 해 보도록 이끄는 이야기가 잘 나왔고, 《자유연구도감》도 초등학생이 스스로 이것저것 할 수 있도록 알뜰살뜰 알려주고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자유연구’일까요. 무엇이 ‘자유연구’일까요.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핍니다. 자유롭지 않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어떤 틀에 얽매이거나 따분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다만, ‘교과서에 나오지 않’거나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자유연구’라는 이름을 붙였구나 싶기도 합니다.



.. 하나는 어떤 일이든 자기가 직접 확인해 보면 책에 써 있지 않은 중요한 일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연구 주제가 여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머리말)



  풀벌레와 숲벌레를 잡아서 표본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표본은 얼마든지 만들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벌레이든 풀이든 얼마든지 모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표본을 만들기보다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찬찬히 지켜보도록 이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방학 숙제’라든지 ‘사회 탐구’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자유연구도감》이지 싶습니다. 또한 ‘연구’라는 이름을 붙인 책인 만큼, 꼭 ‘보고서’를 써서 이야기를 갈무리하도록 이끕니다.


  여러모로 돌아본다면, 일본 사회나 문화는 이처럼 꼼꼼히 살펴보고 갈무리해서 글로 적바림하는 버릇을 일찍부터 들이면서 발돋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온갖 숙제와 상장과 성적표와 점수를 따지느라,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둘레를 살피거나 갈무리하는 버릇을 들일 겨를이 없구나 싶습니다. 일본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도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많습니다만, 한국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는 그야말로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한 사람이 많습니다. 입시지옥과 제도권 울타리에 갇힌 채 시험성적만 따지는 한국 교육이니, 이러한 모습은 앞으로 더 깊어지리라 느낍니다.



.. 세제가 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중성 세제를 푼 물에 무순을 키워서 확인해 봅니다. 또 석유를 정제해서 만든 세탁용 합성 세제와 자연에 가깝다고 하는 천연 세제가 무순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여 정리해 봅니다 ..  (231쪽)



  ‘자유연구’가 숲에서 나무를 살펴보고 숲내음을 맡으며 숲에 깃들어 여러 날 스스로 지내는 길을 알려주거나 이끄는 이야기로도 퍼질 수 있기를 빕니다. ‘자유연구’가 도시 한복판에 아이들이 손수 씨앗을 심고 가꾸어 숲을 이루는 길을 슬기롭게 보여줄 수도 있기를 빕니다. ‘자유연구’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가꾸거나 돌보는 사람들 숨결을 보여주거나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시골에서 조용히 흙을 만지는 사람들 이야기를 귀여겨듣는 자유연구도 생기고,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림을 꾸리는 길을 살피는 자유연구도 생기며, 전쟁과 폭력과 군대를 없애는 길을 찾는 자유연구도 생기기를 빕니다.


  역사를 스스로 배우는 길을 찾는 자유연구도 생기고,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루는 길을 헤아리는 자유연구도 생기며, 날마다 내 하루를 새롭게 노래하면서 웃고 뛰노는 길을 북돋우는 자유연구도 생기기를 빌어요.



.. 자전거를 세밀하게 조사하여 어떤 과학의 원리와 힘을 응용했는지 부분별로 조사해서 커다란 종이에 정리해 봅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생활 주변에는 학교에서 배운 과학을 응용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  (251쪽)



  자전거와 얽힌 과학을 살피는 일도 재미있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이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나들이를 다닐 적에 한결 재미있구나 싶어요. 자전거를 타고 한국이든 일본이든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도시와 시골을 두루 돌아다니기도 하며, 자전거를 스스로 손질하고 아끼는 모습도 살필 수 있겠지요.


  고갯마루를 자전거로 넘는 느낌을 헤아리고, 판판한 길을 달리는 느낌이랑, 흙길과 숲길과 시멘트길을 달리는 느낌을 다 다르게 헤아리도록 이끌어도 즐거우리라 생각해요. 참말 자유연구를 밝히기를 빌어요. 굳이 보고서를 안 써도 돼요. 마음으로 느끼고, 삶을 사랑하며, 이웃과 동무하고 노래하는 나날을 꿈꾸는 자유연구가 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4347.8.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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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찾습니다 - S 라인을 꿈꾸는 청춘에게
몸문화연구소 지음 / 양철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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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8



몸을 다스리는 마음

― 내 몸을 찾습니다

 몸문화연구소 글

 양철북 펴냄, 2011.7.26.



  예부터 어느 겨레에서든 옷차림에 그리 눈길을 두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옛날에는 어느 곳에서든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꾸렸어요.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스스로 마련해서 살았습니다. 남한테서 얻는다거나 돈을 치러 사들여서 쓰지 않았습니다. 신을 꿰고 싶으면 신을 삼았습니다. 모자를 쓰고 싶으면 모자를 엮었습니다. 옷을 입고 싶다면 옷을 지었습니다.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없어도 될 사람은 집이 없이 나무에서도 자고 풀밭에서도 자고 굴에서도 잤어요. 옛날에는 따로 논이나 밭을 가꾸지 않고 밥을 먹었어요. 참말 옛날에는 풀잎과 풀열매와 나뭇잎과 나무열매를 먹으면서 얼마든지 삶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밥을 스스로 마련해서 먹는 사람은 ‘밥짓기’를 합니다. 옷을 스스로 장만해서 입는 사람은 ‘옷짓기’를 합니다. 집을 스스로 세워서 자는 사람은 ‘집짓기’를 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지으니, 스스로 ‘삶짓기’입니다. 삶을 짓는 사람은, 마땅히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 몸에 맞추어 패션이 바뀌어 온 것이 아니라, 패션에 맞추어 몸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요 … 에너지나 아름다움이 빠져나간 몸이 아니라 젊음을 다 경험하고 노년을 맞이하는 자연스럽고 충만한 느낌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 외모 지상주의는 어떤 사람을 바라볼 때 그가 가진 실력이나 인품을 보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  (43, 54, 82쪽)



  오늘날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돈을 씁니다. 이것을 내놓고 돈을 받으며, 저것을 가지며 돈을 냅니다. 돈을 많이 가질수록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를 멀리합니다. 돈을 적게 가질 적에도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돈이 있든 없든 밥도 옷도 집도 짓지 않아요.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삶을 짓지 못하고, 사랑과 꿈 또한 짓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지을까요? 삶을 짓지 않으면서 무엇을 지을까요? 글을 지을까요? 지식을 지을까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지을까요? 나이를 앞세우는 권위나 질서를 지을까요? 힘으로 윽박지르는 권력을 지을까요? 삶을 짓지 않아 사랑과 꿈을 짓지 않는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즐거움으로 하루를 누릴는지 궁금합니다.



.. 외모 지상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 똑같이 하나로 만들어진 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기준에 따라 얼굴도, 몸매도, 옷도, 장식물도 엇비슷해진다면 어떨까요 ..  (87, 296쪽)


 

  몸문화연구소에서 엮은 《내 몸을 찾습니다》(양철북,201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 나라 푸름이한테 삶을 밝히려고 돕는 길잡이책입니다. 물질문명 소비사회가 홀리는 대로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푸름이가 스스로 삶에 눈을 뜨고 사랑과 꿈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아요. 문명과 소비와 유행이나 문화가 아닌, 삶과 이야기와 두레가 우리를 스스로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만합니다. 고속철도는 서울과 부산 사이를 아주 빠르게 달립니다. 두 시간이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두 시간 동안 두 곳을 오가기만 할 뿐, 서울과 부산 사이에 어떤 마을이나 숲이 있는지 느끼지 않아요.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도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마을이나 숲이 어떤 삶터인지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더 빨리 가기만을 바랍니다.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기만을 바랍니다. 돈을 쓰려는 사람은 돈을 더 신나게 쓰기만을 바랍니다.



.. 이제 전쟁도 무인 병기를 써서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조종을 받아 사람을 죽이는 전쟁. 이것이 게임 속 세계와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일까요 … 인간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는 기능을 가진 기계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기계가 톱니바퀴와 벨트, 엔진 같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인간도 근육과 핏줄, 심장 들로 구성되어 있는 거지요 ..  (106, 144쪽)



  몸을 다스리는 마음입니다. 몸뚱이만 있을 때에는 사람이 아닙니다. 몸을 다스리는 마음이 있을 때에 사람입니다. 마음은 넋이 움직입니다. 넋이 바르게 설 적에 마음을 움직여 생각을 짓습니다. 넋으로 마음을 움직여 생각을 짓기에, 우리 몸도 마음에 따라 움직이면서 여러 가지 일과 놀이를 합니다. 몸과 마음만 있더라도 오롯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넋이 있어야 하며, 이 넋은 바르게 서야 합니다. 넋은 얼이라는 뼈대에 깃들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얼이 넋을 품으면서 마음과 몸이 제대로 설 때에 사람다운 구실을 합니다. 얼이 빠지거나 넋이 빠진다면 마음과 몸이 흔들려요. 마음과 몸이 흔들리는 사람은 유행에 휘둘립니다.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 아니라, 문명사회와 소비문화에 따라 몸을 괴롭히지요.


  그런데, 학교는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틀에 가둡니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을 환하게 열도록 북돋우지 않아요. 사내는 이렇고 가시내는 저렇다는 틀을 두 갈래로 나누어 아이들을 쿡쿡 찍는 학교입니다. 이런 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생각이 죽어요. 생각이 죽으니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고, 마음과 몸을 함께 다스리는 넋이 제구실을 못해요.



.. 성을 상품화하는 것은 여성의 인간적 가치와 개성을 박탈하고 여성의 몸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게 아니라 사물로서 숭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성을 가슴, 엉덩이, 허벅지로 나누어 평가하고, 은밀하게 훔쳐보면서 무의식중에 살아 있는 인형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 상황에 따라서 우리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이 찍으면 긴장하지만 함께 여행하면서 식구나 친구가 찍어 줄 때는 편안하고 즐겁기까지 합니다 ..  (197, 252쪽)



  우리가 스스로 제대로 서지 않을 때에는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 바로 권력자한테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제대로 서지 않는다면, 삶을 옳게 가꾸거나 짓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삶을 옳게 가꾸지 못하거나 제대로 짓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살아가는 뜻이 없습니다. 돈을 벌거나 대학교 졸업장을 따려고 태어나서 사는가요? 연금생활자가 되거나 정년퇴직을 하려고 회사를 다니는가요? 늙어서 죽으려고 나이를 먹는가요?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뜻’을 찾아야 합니다. 살아갈 뜻을 찾고, 살아갈 뜻을 가꾸면서, 살아갈 뜻을 밝혀 이웃과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내 몸을 찾는 길은 내 마음을 찾는 길입니다. 내 마음을 찾는 길은 내 넋을 찾아서, 내 삶을 찾고 내 사랑과 꿈을 찾으려는 길입니다. 옷에 몸을 맞추면서 삶을 잃는 푸름이가 아닌, 몸을 마음에 맞추어 아름답게 보살피면서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푸름이가 찬찬히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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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속의 벚꽃 下 - 완결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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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0



우리는 뭘 하며 사는 사람일까

― 미궁 속의 벚꽃 下

 고우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2.12.25.



  나는 시골에서 삽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시골에서 삽니다. 곁님도 시골에서 삽니다. 시골에서 사니, 시골살이입니다. 시골에 보금자리를 두면서 시골을 누리는데, 조용하거나 호젓하게 숲이 깃들지는 못하고, 마을에서 지냅니다. 마을에서 지내면서 시골마을에서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얽히거나 어우러지는가를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가운데, 시골에 그대로 남아서 시골살이를 잇는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든 도시에서 나고 자라든,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서 지냅니다. 도시에서 더러 시골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이 있으나 대단히 드뭅니다. 돈을 꽤 많이 모으지 않고서 시골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할 만합니다. 집과 땅을 살 만한 돈이 있은 뒤에, 또는 집을 새로 지을 돈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시골로 가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살지 않으려는 까닭은 아주 뚜렷합니다. 돈이 될 만한 일거리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려 하는 까닭은 아주 또렷합니다. 돈이 될 만한 일거리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 “내 아버지가 목숨과 바꿔서 지킨 관음언덕인데, 거기 사는 녀석들은 마치 벌레라도 쫓아내듯 내 아내를 자살로 몰아넣었단 말이오!” (50쪽)

- “카노가와 유키히코 씨는 같이 집단 괴롭힘을 당해 왔다는 점에서 가족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는 아직 젊으며, 그 인연이 존재한다면 분명 갱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변호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구형된 ‘사형’에 대해 정상참작을 요구합니다.” (70쪽)




  시골에서 즐겁게 살려고 생각하면서 시골에 남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뒤 시골에 남는 사람이 참 드문데, 시골에 남더라도 왜 스스로 시골에 남아서 살아가려 하는가를 곰곰이 헤아리는 사람이란 더욱 드뭅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시골이라 하더라도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서 시골살이를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교과서나 교육과정이나 교사가 아예 없습니다. 시골이든 도시이든 언제나 도시만 가르치거나 이야기합니다. 시골도 도시도 그저 ‘도시에 살아야 사람’인 듯 여깁니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시골사람이 어찌 지내는지 모릅니다. ‘땅이 있어 밥은 안 굶겠지’ 하고 여기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만, 시골에서 무엇을 하며 살 수 있는가를 헤아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을 줄 모릅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넋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직 하나, 돈을 버는 솜씨만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을 벌 줄 알고, 돈을 쓸 줄 압니다. 돈을 은행에 맡기거나 돈을 굴리는 길을 압니다. 돈을 빌려주거나 빌려서 쓰는 길을 압니다. 그뿐입니다.



- “본인의 희망대로 다시 태어나 제대로 된 인간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요. 후후.” “아, 그렇게 되는 대로 의견을 던지진 말아 주십시오. 지금까지 한 회의가 수포로 돌아가니까요.” “큭큭.” ‘뭐, 뭘 웃고 있는 거야. 사람 하나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에 대해 얘길 하고 있는 중인데. 어, 어째서 웃음이 나오는 거지? 우, 우린 대체 뭐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우린!’ (92∼93쪽)

- ‘재판관들은 아무것도 몰라! ‘집단의 악’에 해결방법 따윈 없으니까,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거란 걸. 해결방법이 있었다면 나도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었지.’ (99쪽)




  오늘날 도시사람은 집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밥을 짓는 길을 까마득히 모릅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밥짓기를 배우는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더라도, 대학교에서 누가 밥짓기를 가르치나요? 아무도 안 가르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서 어버이한테서 밥짓기를 배울 겨를이 있을까요? 입시지옥에 갇혀 골골대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고단한데, 언제 어떻게 밥짓기를 배우겠어요?


  오늘날 아이들은 스무 살이 넘든 서른 살이 넘든, 전기밥솥을 켜고 끌 줄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밥물을 어떻게 맞추는가도 모를 뿐 아니라, 가게에서 쌀값이 얼마나 하는 줄조차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그러니까, 가게에서 파는 쌀값이 얼마인 줄도 모르는데, 흰쌀과 누런쌀이 뭐가 다른가를 알 턱이 없고, 겨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나락과 씨나락과 볍씨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지 모르며, 이삭이라든지 벼꽃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 수 없습니다.


  보리와 쌀을 가를 줄 아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콩이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 아이는 얼마나 있을까요. 콩밥뿐 아니라 옥수수밥이나 감자밥이나 고구마밥이나 당근밥이나 밤밥이나 무밥이나 콩나물밥이나 …… 온갖 밥을 지어서 남달리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아이는 얼마나 있으려나요.



- “잠깐 나 좀 보쇼, 재판장 양반! 재판장 양반. 잠자코 듣자 하니, 당신 말투는 마치 ‘사형’으로 정하도록 설득하려는 것 같잖소! 처음부터 ‘사형’으로 정해둔 것 같단 말이오!” “아, 아니. 결코 그렇지는.” “당신들 프로 판사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사형’으로 정해 뒀다면, 우리들 같은 법률 초짜를 일부러 불러내서 재판에 참가시키는 의미가 없는 거 아니오? 양형표 따위로 형량이 정해진다니, 당신들, 비싼 월급을 받는 주제에 진짜 편하게 일하는구만!” “무, 무례한 말씀은 삼가 주세요! 저희들은 피해자 및 가해자의 심정이나 증거,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론 내리고 있습니다! 감정을, 감정을 억누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토쿠이 씨가 알기나 하세요?” “난 당신들 같은 엘리트가 아니니, 감정을 억누른다는 건 불가능해! 재판장 양반.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보다 위 또래인 학생들이 나라를 상대로 싸웠던 것처럼, 좀더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던 때가 아니었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싸우지 않았느냔 말이오? 재판장 양반. 당신, 혹시 뭔가를 겁내고 있는 건 아니오?” (126∼129쪽)




  삶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삶을 배우면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삶을 알아 사랑을 깨달으면 언제나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길을 걷습니다. 도시에서 소모품 노예처럼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짓는 길로 가지요. 그러니, 오늘날 사회는 아이들한테 삶을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소모품 노예로 남아서 일삯(인건비)을 낮추도록 하려고 애씁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소모품이 다 닳으면 곧바로 다른 소모품으로 갈아끼울 수 있게끔 도시에 예비품(실업자)을 잔뜩 쌓습니다.


  삶을 배운 아이들이 굳이 도시에 남을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배운 아이들이라면 도시에 남더라도 아름답게 마을살이를 가꿉니다. 중앙정부에 기대는 삶이라든지 중앙경제에 얽매이는 삶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마을 자치’와 ‘마을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삶을 배웠으니 마땅히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을 하지요. 도시에서도 두레와 품앗이를 얼마든지 하지요. 이렇게 되면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 됩니다. 그래서, 권력자와 기득권자는 아이들한테 삶을 안 가르치고 입시지식만 가르칩니다. 모든 아이들이 슬기로운 꿈과 생각을 버리면서 ‘대학바라기 기계’가 되도록 내몹니다. 이렇게 해야, 중앙권력이 바라는 대로 모든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 중앙권력한테 무엇이 좋을까요? 권력을 지키고 돈을 더 많이 거두어들일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마을 자치를 하지 않으니, 중앙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손짓 하나로 권력을 누립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법이 없이 살던 아름다운 숨결’이지만, 도시에 모여 권력에 얽매인 노예가 되면서 ‘법에 붙들린 슬픈 소모품’으로 굴러떨어집니다.



- “나도, 나도 회사에서 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나도 아무런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 난 당신의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 이봐. 이제 진실을 말해 줘! …… 같은 나이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오타쿠에, 〈포레스트 걸〉의 팬이면서 둘 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지. 난 너랑 같은 편이야! 넌 혼자가 아니라고!” (175∼176쪽)

- “본인이 했다고 인정하면 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범인으로 만들어지는군요. 우리가, 우리가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었다니. 이렇게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요?” (186쪽)




  고우다 마모라 님이 빚은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下》(시리얼,2012)를 읽습니다. 두 권으로 짤막하게 끝맺는 이야기입니다. 앞권에서는 배심원 제도가 얼마나 바보스러우면서 우악스러운가를 보여준다면, 뒷권에서는 ‘배심원 제도’를 발판으로 삼아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새로 짓는 길을 열 수 있는 모습을 넌지시 보여줍니다.


  ‘교훈을 받는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좋고 나쁨’이 없는 삶을 깨달아, 언제나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다는 소리입니다.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말합니다. 사회에 갇힌 사람들은 저마다 수수께끼처럼 제 모습을 감춘 채 참다운 사랑을 잊거나 잃으면서 바보짓을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짓는 사람들은 언제나 제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면서 참다운 사랑을 꿈꾸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웃는다고 말합니다.



- ‘그 녀석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되찾으려고, 그 녀석은, 그 녀석은 필사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사건의 중요 인물들은 사회에서 뒤처진 그 세 사람은, 심야의 비밀통로 속에서 서로 어깨를 마주하며, 서로를 보듬으며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229쪽)

- “이게 지금의 세대입니다. 저희들은 과보호를 받으며 자라 온 탓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의 교류를 피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같은 가공의 세계로 도망치곤 합니다. 이게, 이게 당신들이 만든 사회예요.” (232쪽)

- ‘만약 이 재판이라는 비일상을 접해 보고, 열심히 궁리해 보게 된다면, 일반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이후의 각자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지옥 같은 평의도 결코 쓸모없는 것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믿어도 되지 않을가? 재판에 참가한 경험을 자기 자신을 위해 살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심원 제도의 빛이 아닐까?’ (235∼236쪽)




  우리는 뭘 하며 사는 사람인가요? 사랑을 하며 사는 사람인가요? 돈만 버는 기계인가요? 맛집이나 멋집을 찾아다니는 도시 나그네인가요? 소모품인가요 노예인가요, 아니면 스스로 사람인가요? 저마다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읽을 줄 아는가요? 예배당에 가거나 성경책을 뒤져야 하느님이 있다고 여기는가요?


  한국에는 《여검시관 히카루》와 《교도관 나오키》가 나온 적 있습니다. 한국에 알려진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세 번째 작품인 《미궁 속의 벚꽃》입니다. 책이름처럼 우리는 누구나 ‘숨겨진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아름답게 피어나서 환한 꽃빛과 맑은 꽃내음을 둘레에 나누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 “진실을 얘기해 줘. 난, 바로 너야.” (177쪽)



  법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있어야 할 곳은 없습니다. 학교가 설 데는 없습니다. 법이 아닌 삶이 있어야 할 뿐입니다. 대통령이 아닌 보금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가 아닌 마을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쳇바퀴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소모품 삶이 아닌,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짓는 삶이어야 합니다. 잠만 자는 부동산과 같은 아파트 같은 데가 아니라, 나무가 자라고 풀과 꽃이 어우러지는 마당이 있는 보금자리여야 합니다. 온갖 농약과 비닐을 함부로 쓰는 마을이 아닌, 두레와 품앗이와 이웃사랑과 어깨동무로 아름다운 마을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가 되는 까닭은 서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웃이 되는 까닭은 서로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지구별에서 누구나 즐겁게 동무와 이웃이 될 수 있는 날을 꿈꾸면서 기다립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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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속의 벚꽃 上 - 배심원제도의 빛과 어둠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9



누가 누구를 죽였을까

― 미궁 속의 벚꽃 上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1.7.25.



  전쟁이 터졌으면, 이쪽에서 저쪽을 죽이든 저쪽에서 이쪽을 죽이든 ‘죽인 짓’이 틀림없지만, 어느 쪽에서나 ‘죽인 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여겨,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전쟁이기 때문에 죽여도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허울을 쓴 채 서로 죽이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커지거나 이어집니다. 허울이 전쟁일 뿐, ‘사람 죽인 짓’은 똑같기 때문에,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서로 앙갚음을 할 마음만 가득합니다.



- ‘나, 난 방금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이렇게까지 살인자가 될 만큼 망가져 버린 건가. 나란 놈은!’ (13쪽)

- ‘결국 갈 곳 없는 피리터가,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인간이 남을 처벌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는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27쪽)




  죽여도 될 사람이 있을 턱이란 없습니다. 죽어도 될 사람이 있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지구별에서 없애야 할 사람이 있을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기에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서 마음을 열지 못한 탓에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헤아리자면, 여러 독재자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어 여느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인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은 허수아비나 꼭둑각시한테 잘 보이려고 바보짓을 한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공무원과 교사가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거나 일삼는 사람은 참말 바보스럽기 때문입니다. 바보스러운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옛말을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옛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한테 떡을 더 주었을까요?



-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맡아도 괜찮은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내가, 사람을 처벌한다니.’ (29쪽)

- “배심원 여러분은 이 형사사건을 각자의 인생경험에 비춰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53쪽)




  ‘미운 아이’나 ‘고운 아이’란 없습니다. 다만, ‘미운 아이’라 할 적에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이 다친 아이들을 가리켜 ‘미운 아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사랑(떡 하나)을 자꾸 베푼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한 탓에 자꾸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니, 이 아이들이 아무쪼록 앞으로 제대로 사랑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알도록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쥐었던 이들 가운데 참답게 ‘사랑’을 알거나 누리거나 나눈 사람은 거의 없지 싶어요. 사랑을 모르기에 허튼 짓을 저지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했기에 독재정권 서슬 퍼런 칼을 휘두릅니다. 사랑을 나눈 적이 없기에 우악스러운 토목개발과 새마을운동 따위를 밀어붙입니다.


  미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운 아이만 사랑하고픈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 한다면, 참말로 사랑이라 한다면,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한테만 나눌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라 한다면, 다 함께 참삶을 이루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나아가리라 느낍니다. ‘밉다·곱다’라는 틀을 씩씩하게 깨부순 뒤, 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느낍니다.



- ‘지금부터 ‘집단의 악’을 말하려고 한다는 건, 이 여자애도 내부고발을 한 나랑 같은 배신자라는 얘긴데! 대체 왜 피고인 측의, 엄마를 죽인 남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걸까?’ (116쪽)

- “집단 괴롭힘이 거짓말이라느니 뭐라느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마. 이 어린애 같은 인간아! 난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하러 온 것뿐인데. 어째서 너 같은 안경잡이 뚱땡이한테 이런 공격을 받아야 되는 건데!” (128쪽)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上》(시리얼,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 처음 생긴 배심원 제도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그려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심원 제도가 드리우는 어두움과 빛을 나란히 밝히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며, 판사는 어떻게 법을 다루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조용히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기나긴 해에 걸쳐서 괴롭던 이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누구를 죽인 셈일까요. ‘살인죄’란 무엇일까요. 집단 따돌림이 없었어도 살인이 있었을까요. 살인죄로 어느 한 사람을 다스린다면 집단 따돌림이 사라질까요.




- ‘자식을 지켜야 할 어머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식에서 ‘사형’을 선고한 것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 가족에겐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같은 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170쪽)

- “각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제 자식에게 빼앗긴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집단 괴롭힘을 그만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175쪽)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이들이 ‘언젠가 앙갚음을 고스란히 받을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저마다 조금씩 품는데, 이 두려움이 차츰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모질게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돌림받는 이가 앙갚음을 못 하게끔 더 모질게 밟고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폭력으로 한 사람을 누르면 ‘새로운 폭력’이 안 터질까요. 폭력으로 사람을 눌러서 ‘폭력이 더 없도록’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키우면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를 모조리 빼앗으면 전쟁이 없이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만화책이 아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전쟁·폭력·살인·따돌림’ 따위는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얼거리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따돌림은 바로, 군대뿐 아니라 학교와 회사와 모든 조직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으면 되지, 경찰이 있으면 되지, 대통령이 있으면 되지, 뭐가 있으면 되지 …… 하면서, 정작 하나도 될 일은 없는데 스스로 눈을 감습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폭력은 살인을 낳습니다. 살인으로 나아가는 따돌림입니다. 군대도 경찰도 없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없어야 합니다. 문화도 과학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삶이 있어야지요. 생각이 있어야지요. 사랑이 있어야지요.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 ‘있지 않아도 될 것’이나 ‘없어야 할 것’만 잔뜩 심은 채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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