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 피터 래빗의 어머니
수전 데니어 지음, 강수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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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64



삶을 짓는 길이 푸른 꿈

―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수전 데니어 글

 강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10.5.7.



  나는 도시에서 살 적에 그리 푸른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는 그저 ‘우리 서재도서관(사진책도서관)’을 잘 건사하는 길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길도 아름다운 꿈이라 할 만하지만, 늘 이 언저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작은아이가 태어날 무렵 시골로 삶자리를 옮겨 한 해 두 해 세 해 네 해, 이렇게 살면서 꿈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돌아봅니다. 돈을 얻거나 이름을 거머쥐는 일도 꿈이라면 꿈이 되지만, 이러한 꿈에서 머물 때에는 꿈이 아니요, 날마다 새롭게 이야기를 지어 즐겁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이 될 때에 비로소 꿈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 시골의 친척집을 찾을 때마다 베아트릭스는 느낌을 기록하고, 집안의 공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을  스케치에 담았으며, 동식물과 화석의 세밀화를 그렸다 … 사람들은 벽장 위에 있는 할아버지의 결혼예복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녀는 “액면 가치가 없다고 해서 낡은 것들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  (14, 19쪽)



  시골에서 지내는 사람한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녁은 ‘옛날로 돌아가자’ 하고 말하느냐고. 나는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늘 ‘새로운 앞날로 나아갈’ 뿐입니다. 다만,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날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옛날 사람들은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날마다 지었어요. 수출이나 수입이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임금이나 땀임자가 없어도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지식인이나 양반이 없어도, 이름 높은 학자나 관리가 없어도, 빼어난 싸울아비나 전쟁무기가 없어도, 참말 옛날 사람들은 잘 살았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늘 노래였어요.


  이와 달리, 오늘날 사람들한테는 노래가 없습니다. 대중노래는 있으나, 스스로 제 삶에서 짓는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밥이나 옷이나 집을 스스로 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맞아들여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으레 쳇바퀴를 돌듯이 똑같은 일을 날마다 되풀이할 뿐입니다. 출퇴근 지옥이요, 월급바라기이며, 세금정산에 머리가 아플 뿐인 오늘날입니다.



.. 1893년에 스코틀랜드에 머물던 베아트릭스는 노엘이라는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노엘은 베아트릭스의 가정교사였던 애니 무어의 어린 아들이었다. 베아트릭스는 건강이 좋지 않다는 노엘에게 그림편지를 보내기로 했고, 이것은 결국 베아트릭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 책 속에서 동물들에게 안락함과 평온함을 주던 인테리어는 이제 그 작은 공간을 멋지게 가꾼 주인에게 안온함과 소속감을 주었다 ..  (31, 54쪽)



  나는 옛날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는 뜻에서 시골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시골에서 부르던 푸른 노래를 새롭게 배워서 즐겁게 누리고 싶기에 시골에서 삽니다. 풀을 뜯을 적에는 풀노래를 불러요. 구름바라기를 할 적에는 구름노래를 불러요. 자전거마실을 하면 자전거노래를 부르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면 버스노래를 부르지요.


  밥을 차리며 밥노래입니다. 설거지를 하며 설거지노래입니다. 빨래를 하며 빨래노래이고, 가끔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면 골노래입니다. 골짜기로 나들이를 하면 골짝노래예요.


  바닷가에서 바다노래입니다. 들에서 들노래입니다. 손에 책을 쥐고 책노래예요. 종이를 마룻바닥에 펼쳐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 그림노래예요.


  노래가 안 되는 삶은 없습니다. 삶이기에 언제 어디에서나 늘 노래예요.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즐겁습니다. 노래가 되는 삶이기에 날마다 새롭게 부르고, 날마다 즐겁게 맞아들입니다.



.. 힐 탑을 구입하고도 윌리엄과 결혼을 할 때까지는 어쩌다 한 번씩 머물렀을 뿐이지만, 그런 사실도 이 방에 가구를 더하고 재배치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이리저리 손보는 걸 막지 못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 방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집을 구입하고 35년이 지난 1940년 무렵이었다 … 베아트릭스는 집 뒤편에 날개를 증축하면서 농가 부엌 위쪽의 방 하나를 자신이 쓸 용도로 꾸몄다. 처음에는 이곳을 서가라고 부르며, 남동생인 버트램의 유화를 걸어놨었다. 베아트릭스보다 여섯 살 아래인 버트램도 누나처럼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을 탈피해서 농부가 되었다 ..  (105, 128쪽)



  수전 데니어 님이 빚은 이야기책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갈라파고스,2010)을 읽습니다. 수전 데니어 님은 ‘내셔널 트러스트’ 일을 한다고 해요. 베아트릭스 포터 님이 숨을 거두면서, 또 숨을 거두기 앞서, 수없이 ‘내셔널 트러스트’에 내놓아, 시골마을과 시골숲을 그대로 건사하기를 바란 땅을 돌본 일을 맡기도 했다고 해요.



.. 베아트릭스의 공간 배치에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단연 그웨이니노그의 정원을 꼽을 수 있다 … “꽃이 만발했다. 내 정원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형식을 탈피한 옛날 스타일의 농가 정원, 꽃밭 주변에 상자 모양의 산울타리를 두르고 채송화와 팬지와 까치밥나무와 딸기와 완두콩, 그리고 제미마를 위한 큼직한 세이지도 있다 … 야생으로 자라난 것이 정원과 과수원을 전부 뒤덮었고, 숲 속에도 보인다.” ..  (152, 157쪽)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 삶을 스스로 천천히 지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살이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는 삶도, 시골에서 그림을 그려 얻은 돈으로 아름다운 땅과 집을 사들여 아름다운 마을이 이어지도록 가꾸는 삶도, 모두 스스로 지었습니다.


  차근차근 지었어요. 무엇보다, 베아트릭스 포터 님은 이녁이 그린 그림을 알뜰히 아끼고 사랑한 이웃들이 한 푼 두 푼 ‘책을 사 주는 일 때문에 번 돈’을 차곡차곡 그러모아서 땅을 장만합니다. 땅을 장만하는 삶을 스스로 지었고, 땅을 장만한 뒤 아름다운 터로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빛과 슬기를 스스로 지었습니다.



.. 베아트릭스는 이 책에서 드디어 자신이 꾸민 정원의 아름다움, 엄밀히 말하자면 정원이 자리를 잡아 그렇게 무르익기를 바라는 모습을 한껏 자랑했다 … 그녀의 드로잉은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고, 그곳에서 살다 보니 농부가 되고 싶었으며, 그건 다시 개발 앞에 취약한 자연을 파괴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 “나는 침대에 누워서도 고원과 황무지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내 늙은 다리로는 두 번 다시 거닐지 못할 그곳의 돌과 꽃, 습지와 황새풀을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무수한 젊은 백치들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건 기꺼운 일 아닌가.” ..  (165, 176, 203쪽)



  나는 고흥 시골집에서 살며 여러 가지로 꿈을 푸르게 꿉니다. 우리 식구가 깃든 곳을 바탕으로 둘레 땅을 차근차근 장만해서 아름답게 푸른 숲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아직 우리 땅은 없으나, 내가 쓰는 글로 푼푼이 돈을 그러모아서 땅을 열 평 백 평 천 평 만 평 십만 평 백만 평 장만하기를 꿈꿉니다. 이 땅에 아름답고 푸른 꿈을 꾸는 이웃들이 찾아와서 알맞게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알맞게 삶을 가꿀 수 있기를 꿈꿉니다.


  우리 이웃은 대통령 이름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사건·사고나 신문·방송을 알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웃은 풀을 마주하면서 풀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우리 이웃은 나무를 마주하면서 나무이름을 스스로 새롭게 짓습니다. 한 그루 두 그루 천천히 나무를 심습니다. 한 뙈기 두 뙈기 텃밭과 꽃밭을 찬찬히 일굽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흙땅을 밟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도랑과 냇물과 개울에 몸을 담가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돗물이 아닌 샘물을 마시기를 바라고, 사냥꾼이나 약초꾼이나 난 캐는 이들이 시골숲에 함부로 깃들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기계로 갈아엎는 땅이 아니라, 우리 식구와 이웃이 누릴 만큼 손수 흙을 보듬고 갈면서 밥을 얻기를 바랍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아닌, 즐겁게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꿈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꿈을 품기에 삶을 가꿉니다. 꿈이 없으면 삶을 짓지 못하고 쳇바퀴를 돕니다. 꿈이 없으면 삶뿐 아니라 사랑도 믿음도 짓지 못합니다.


  예배당에 가야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고스란히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성경책을 들춰야 믿음이 아니고, 내가 나를 바라보듯이 이웃과 동무를 바라볼 수 있어야 믿음입니다.


  삶을 가꾸는 삶노래가 이 나라뿐 아니라 지구별 어디에서나 푸르게 피어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슬기를 모아 사랑스럽게 살고, 사랑스레 살아가는 이웃이 가끔 서로서로 찾아가면서 새롭게 이야기꽃을 피우면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꿈길을 걷기에 삶길이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4347.8.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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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제시카 : 하루하루 신기하고 분주한 꼬마 아가씨의 반짝반짝 성장기 - 태어나서 다섯 살까지 여행작가 아빠 엄마가 담아낸 사랑스런 일상들
안영숙 글, 최갑수 사진 / 예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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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85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때에

― 안녕, 제시카

 최갑수 사진

 안영숙 글

 예담 펴냄, 2014.6.25.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 ‘아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아이를 그리 안 좋아하면 아이 사진을 안 찍고, 아이를 좋아하더라도 아이와 노느라 바빠 아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바깥에서 일을 하거나 돈을 버느라 바쁜 탓에 아이와 어울릴 겨를이 없으면 아이 사진을 못 찍습니다. 어쩌다가 말미를 내더라도 ‘늘 가는 곳’에 가서 ‘늘 보여주는 모습’만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버이가 아이를 찍습니다. ‘아이 사진’은 있는데, ‘어버이 사진’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는 모습을 어버이가 찍는 사진은 있으나,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는 흐름을 좇으면서 찬찬히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아이를 따사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차근차근 찍는 사진은 있되, 어버이가 아이한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빨며 몸을 씻기고 옷을 기우며 밥을 차리는 여느 삶을 차근차근 담는 사진은 아직 거의 없습니다.


  전몽각 님이 빚은 《윤미네 집》은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진책입니다. 전몽각 님은 여러모로 바쁜 탓에 아이들과 어울릴 겨를이 거의 없습니다. 여느 때에는 아이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고, 주말에는 고단한 몸을 쉬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전몽각 님은 ‘아이가 자라는 결’에다가 ‘아이를 돌보는 곁님(아이 어머니)가 베푸는 숨결’을 골고루 살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몽각 님이 찍은 아이 모습은 그리 안 많지만, ‘없는 틈’을 쪼개고 만들어서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자라는 사랑’을 사진으로 아리땁게 엮었습니다.




  최갑수 님이 사진을 찍고 안영숙 님이 글을 쓴 《안녕, 제시카》(예담,2014)라는 사진책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을 달포 즈음 책상맡에 두는데, 우리 집 아이들이 이 책을 들추지 않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윤미네 집》을 방바닥에 펼치면 곰곰이 여러 차례 들여다보는데, 《안녕, 제시카》는 한 번 쓱 보고는 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달포 즈음 왜 우리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가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달포 즈음 지난 오늘 무언가 한 가지 느낍니다. 《윤미네 집》을 들여다볼 적에는 여러모로 재미난 삶과 이야기가 흐릅니다. 《안녕, 제시카》를 들여다볼 적에는 ‘이쁘장한 아이 얼굴과 몸짓’이 나옵니다. 두 사진책은 이런 대목에서 사뭇 다릅니다.


  사진책 《윤미네 집》을 보면, 전몽각 님이 이녁 아이한테 ‘이런 모습을 좀 보여주라’ 하면서 바란 끝에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척 보아도 티가 납니다. 그런데, 이런 사진이 ‘나쁘지 않’습니다. 아이는 꽤 고단했을 텐데, 스스럼없이 사진에 찍혀 줍니다. 철이 들고 난 뒤에는 사진에 안 찍혀 주었다 하는데, 어릴 적에 어버이가 바란 사진에는 ‘이야기가 깃들’기에 스스럼없이 사진에 찍혀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녕, 제시카》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다만, 최갑수 님이 이녁 아이를 찍은 사진에서는 ‘이야기를 느끼기 쉽지 않다’는 뜻일 뿐입니다. 빛과 빛깔과 빛결이 모두 고운 최갑수 님 ‘아이 사진’입니다. 알록달록 이쁘장한 빛이 서립니다. 다만, 사진책 《안녕, 제시카》에서는 알록달록 이쁘장한 빛을 넘어서는 ‘삶을 누리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영숙 님은 “첫 여행지 남해. 드디어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꽃밭을 떠나기 싫어하는 제시카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2011.6.11.).”라든지 “굳이 모종을 옮겨주겠다는 제시카를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거기가 아니거든(2012.5.2.).” 하는 이야기를 붙입니다. “그네만 타도 행복한 아이(2013.1.11.).”라든지 “교래 곶자왈 산책. 숲은 언제나 따뜻하다(2013.1.29.).” 같은 이야기를 붙입니다. 아마, 이렇게 이야기를 붙이지 않는다면, 이 사진마다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이 사진책을 들여다볼 사람들이 못 알아볼 수 있어요. 사진마다 사진말을 붙여야 합니다. 날짜도 붙여야 합니다. 그래야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어요.


  “축구장에서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는 아빠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2013.7.4.).”라든지 “걱정은 어른들의 몫일 뿐이지. 너는 어떻든 반짝반짝 빛나는 하루가 되거라(2013.12.12.).”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똑같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없다면,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두 어른이 어떤 마음인지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 사진을 왜 찍을까요? 내 아이라서? 아이가 예뻐서? 아이한테 ‘어릴 적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선물하’려는 뜻에서?


  사진을 왜 찍을까요? 내 마음이라서? 사진이 재미있어서? 내가 바라보고 느낀 것을 찬찬히 적바림하려는 뜻에서? 작가라서?





  사진책 《윤미네 집》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손꼽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랑이라는 마음이 천천히 스며서 깊이 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안녕, 제시카》를 들여다본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며 무엇을 생각할까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사진’이라는 틀을 빌어 이야기를 엮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까닭은 ‘글’이라는 틀을 빌어 이야기를 엮기 때문입니다. 어떤 물건 하나를 건사하는 까닭은, 이를테면 아이가 처음 발에 꿴 신이라든지, 아이가 어릴 적에 입던 치마라든지, 아이가 어릴 적에 쓰던 놀잇감이라든지, 아이한테서 처음 빠진 이라든지, 이런저런 것을 건사하는 까닭은, 이런저런 것에서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이요, 이 이야기는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린 사랑이 따스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치원에 간 제시카. 선생님은 ‘분리불안’이 생길지도 모르니 잘 살펴 달라고 아빠에게 부탁. 하지만 제시카가 유치원 가고 없는 며칠, 분리불안은 아빠에게 생겼다(2014.5.5.).”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짝 아쉽습니다. 분리불안을 생각하니 분리불안이 생깁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면 사회성이 없을까요? 사회성이란 무엇일까요? 사회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야 사회성일까요? 날마다 터지는 온갖 사건과 사고를 알아야 사회성일까요? 대통령 이름을 알거나 온갖 물질문명을 누릴 줄 알아야 사회성일까요? 손전화를 쓰고 카드를 쓰며 자가용을 몰 줄 알아야 사회성일까요?


  시골에서 풀내음을 맡으면서 구름을 읽을 줄 아는 아이는 사회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아이는 사회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이들은 어떤 숨결일까요? 아이들은 어떤 빛일까요? 아이들은 어떤 사랑일까요? 아이들은 어떤 노래일까요? 아이들은 어떤 꿈일까요? 아이들은 어떤 삶일까요?


  아이를 찍든 늙은 할매와 할배를 찍든 늘 똑같습니다. 겉모습을 찍기에 사진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몇 가지 모습을 찍기에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찍어야 사진입니다. 마음을 써야 글입니다. 마음을 불러야 노래입니다. 마음을 그려야 그림입니다. “함께 나가지 못한 엄마를 위해 들꽃을 꺾어 온 제시카. 엄마 마음을 헤아려 줘서 고마워. 그 마음 잊지 않을게(2014.5.6.).”와 같은 이야기를 굳이 안 달아도, ‘아, 아이가 꽃을 꺾어 어버이한테 드리려는 사랑이네’ 하고 사진만 보면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유치원 가는 길, 제시카가 꼭 인사를 건네는 나무. 나무야 어제는 잘 잤니(2014.5.14.).” 하는 이야기를 따로 안 붙여도 됩니다. 그저 사진만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이녁이 아이 어버이라면 다 알리라 생각해요. 아이 눈빛만 바라보아도 아이가 무슨 마음이요 생각인지 아는가요, 모르는가요? 아이 목소리만 들어도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가요, 모르는가요? 아이가 웃는 소리를 귀여겨들으면서 얼마나 즐거운가를 아는가요, 모르는가요?


  아이들은 사진 잘 찍어 주는 어버이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를 사랑하는 아버이를 마냥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저희를 꾸짖어도 어버이를 믿고 사랑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차린 밥을 그냥 먹습니다. 못 먹을 것인지 먹을 만한지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가자고 하는 데에 스스럼없이 따라나섭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어버이를 믿고 좋아하며 사랑합니다. 어버이는 어떤가요? 아이들을 언제나 믿고 좋아하며 사랑하는가요? 그렇다면, 어버이가 찍을 ‘아이 사진’은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함께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살포시 담으면 됩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를 적에 동영상으로 담아 놓아야, 아이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알지 않아요. 사진기가 없어서 사진을 못 찍어도 돼요. 언제나 우리 가슴에 아이하고 나눈 사랑을 담으면 됩니다. 사진책 《안녕, 제시카》에서 이러한 가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는데, 적잖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늘 어버이를 믿으니, 어버이를 믿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니라, 함께 노래하고 놀고 춤추고 얘기꽃을 피우면서, ‘가끔’ 참말 ‘가끔’ 한 장만 남겨 보셔요. 사진기 단추를 누를 겨를에 아이하고 놀다가, 사진기는 딱 2초만 손에 쥐고 찰칵 한 장 찍은 뒤 저리 뒤로 밀어 놓으셔요.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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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딱 하루만
김미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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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3



딱 하루만 눈을 뜨면

― 아빠를 딱 하루만

 김미혜 글

 창비 펴냄, 2008.10.31.



  마을 고샅을 걷다가 논자락마다 벼포기에 꽃대가 오르고 벼꽃이 핀 모습을 봅니다. 오늘 날짜를 헤아립니다. 팔월 십칠일입니다. 해마다 비슷한 날에 벼꽃을 만납니다. 어쩌면 해마다 거의 같은 날 벼꽃을 만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벼꽃은 시골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벼를 심어서 가꾸다가 거두는 논은 시골에만 있으니까요. 도시에서는 벼꽃을 만나지 못해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저무는 벼꽃을 도시에서 구경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는 땅값이 비싸서 너른 땅에 논을 두지 못합니다. 논을 두어 나락을 거둘 돈이면, 도시에서는 커다란 빌딩을 지어 자리값을 받거나 가게를 열어 물건을 팔거나 공장을 지어 돈을 벌려 합니다.


  벼꽃이 피어야 벼알이 맺습니다. 벼알이 맺어야 찬찬히 무르익으면서 나락이 됩니다. 우리가 밥으로 먹는 쌀이 되려면, 볍씨를 심은 뒤 어린 싹이 터야 하고, 볏잎이 돋아야 하며, 볏잎이 햇볕과 비와 바람과 흙을 골고루 먹으면서 자라야 합니다.



.. 귀는 끝까지 열려 있대요. / 아빠한테 하는 말 / 다 듣고 가신대요 ..  (마지막 말)



  벼꽃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지난날에는 벼가 꽤 컸습니다. 오늘날에는 벼가 아주 작습니다. 지난날에는 볏줄기가 무척 길었습니다. 길고 곧게 자랐어요. 예전에는 시골에서 나락을 베면서 볏줄기인 볏짚을 알뜰히 썼어요. 볏짚을 꼬아 새끼를 만들고, 새끼로 줄을 삼아 곳곳에 썼습니다.


  오늘날에는 볏짚을 쓰는 일이 없습니다. 소먹이로 삼는 사료로 쓰기는 하지만, 달리 쓰는 일이 없습니다. 볏짚을 논으로 돌려주는 일도 드뭅니다. 볏뿌리나 논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농협과 농업연구소는 자꾸 ‘씨바꿈(종자개량)’을 합니다. 비바람에 잘 안 쓰러지고 벌레를 적게 먹는다는 ‘키 작은 벼’가 되도록 합니다. 오늘날 벼는 가을걷이를 마친 뒤 얻는 나락에서 씨나락을 골라서 이듬해에 심지 못합니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농협에서 볍씨를 새로 사다가 심도록 유전자를 건드렸어요.



.. 옷장에서 아빠 추리닝 바지가 / 하나 나왔습니다. // 몸이 쏙 빠져나간 / 매미 허물처럼 // 늘어진 발목 / 튀어나온 무릎 ..  (추리닝 바지)



  사람들이 날마다 먹는 밥은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입니다. 밥을 안 먹고 빵을 먹는다 하더라도, 온누리에서 자라는 밀은 거의 다 유전자를 건드린 밀알입니다. 보리알도 거의 다 유전자를 건드리지요. 이듬해에 새로운 씨앗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도록 유전자를 건드려요.


  오늘날 지구별에서 문명사회마다 의무교육입니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의무로 다니도록 합니다. 초등학교에 앞서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거의 의무라 할 만합니다. 그러면 문명사회에서 의무교육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요? 시골에서 스스로 나락을 돌보고 볍씨를 갈무리해서 ‘농협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시골에서 살아가도’록 길을 여는 길을 가르칠까요? 손수 모시풀과 삼풀에서 실을 얻어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으며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짓는 길을 가르칠까요? 숲을 돌보면서 나무를 사랑하도록 하면서, 우람하게 잘 자란 나무 몇 그루를 베어 집을 짓는 기둥으로 삼은 뒤, 톱질과 대패질과 자귀질 들을 하면서 제 보금자리는 손수 가꾸도록 하는 길을 가르칠까요?


  가만히 보면, 오늘날 문명사회 의무교육 학교에서는 사랑이나 꿈조차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대학입시 시험공부만 가르칩니다. 이웃을 아끼거나 동무를 사랑하는 길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두레나 품앗이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 내일은 가족 신문 만드는 날 / 어떤 사진 가져갈까 / 사진첩 들춰 봅니다 ..  (비 오는 밤)



  김미혜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아빠를 딱 하루만》(창비,2008)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만 아픔을 품고 살아가는 아이 이야기를 동시로 그립니다. 아버지가 집에 없는 서운함과 생채기와 쓸쓸함을 그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에서 아버지는 ‘집에 얼마나 머물’까 궁금해요. 오늘날 이 나라 아버지는 돈벌이를 하느라 새벽부터 밤까지 집에 없기 일쑤이지 싶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아버지는 아이들 얼굴 볼 겨를조차 없이 지내지 싶습니다. 남녀평등이라는 이름조차 부끄럽도록, 아버지가 집에서 아이들과 마주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사랑하는 모습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 종이가 / 나무였다는 걸 / 어떻게 알았을까 ..  (종이 먹는 염소)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버지는 어떤 어버이일까요. 어머니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머니는 어떤 어버이일까요. 왜 오늘날 어버이는 하나같이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만 넣으려 할까요. 왜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들이 아직 어릴 적에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거나 기쁘게 어울리면서 함께 살아가지 못할까요.


  아이들한테 도시락을 싸서 건네지도 못하는 어버이입니다.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 끼니 밥을 함께 먹기도 힘든 어버이입니다. 아이들하고 하루에 한 시간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기도 힘든 어버이입니다. 그러면, 어버이는 무얼 하는 사람일까요. 하루에 한 시간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데다가, 밥 한 그릇조차 하루에 한 차례 먹기 힘들다면, 어버이와 아이는 ‘함께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한집 사람’이 맞다고 할 만할까요.



.. 눈 위에 발자국 / 지워 버렸다. // 고양이 잡아갈까 봐 / 집으로 가는 / 꽃송이 꽃송이 / 싹 지워 버렸다 ..  (고양이 발자국)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이들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서로 눈을 마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문 하루라도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며 생각을 틔워서 서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놀이공원에 간다거나 나들이를 간다거나 백화점에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한집 사람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노래하고 사랑으로 웃음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번 생각해 보셔요. 동시집 《아빠를 딱 하루만》에서, 아버지가 참말 딱 하루 되살아나서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아버지를 일찍 떠나 보내야 했던 아이’는 아버지하고 무엇을 할까요?


  아마,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함께 일어나서 동 트는 하늘을 바라보겠지요. 잠옷을 갈아입고 낯과 손을 씻은 뒤, 함께 아침을 차리겠지요. 즐겁게 아침을 먹은 뒤 함께 설거지를 하겠지요. 서로 손을 잡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면서 풀꽃이랑 구름이랑 멧새랑 잠자리하고 인사하다가, 자전거도 함께 달리고, 하하 호호 깔깔 노래하면서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나 땅금놀이 들을 하다가는, 땀을 훔치고 샛밥을 먹은 뒤, 낮잠 한숨 자고 나서,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바라보면서 하늘빛만큼 우리 마음도 곱겠지 하고 생각하겠지요. 즐겁게 저녁을 지어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그러고는 몸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길게 기지개를 켜고는 잠자리에 들 테지요. 나즈막한 소리로 서로 자장노래를 부르면서 꿈나라로 가면서 하루를 마감할 테지요.


  아름다운 하루는 가장 수수한 빛에서 태어납니다. 사랑스러운 하루는 가장 수수한 빛에서 가장 따사로운 품으로 흐릅니다. 가장 따사로운 품에서 가장 맑은 꿈으로 흐르는 하루는, 어느새 가장 맑은 노래가 됩니다. 그러고는, 소리도 빛도 무늬도 빛깔도 없는 너른 누리에 깃들겠지요. 딱 하루라도 눈을 뜨면 삶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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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가야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63
배창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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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5



시골에 없는 시골 아이

― 겨울 가야산

 배창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6.11.20.



  아이들이 마당에서 물총놀이를 하기 좋도록 바깥에서 고무통에 물을 받으려고 하다가 개구리를 한 마리 만납니다. 너는 어떤 개구리이니? 너는 처음 보는 개구리로구나. 개구리는 어기적어기적 바깥수도 담을 타고 풀숲으로 숨습니다. 귀여운 녀석이네 하고 한참 쳐다봅니다.


  풀밭에서는 풀밭에서 나고 자라는 온갖 이웃을 만납니다. 이를테면, 풀벌레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벌과 나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구리와 뱀이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풀밭에 작은 새가 둥지를 틀어 살기도 했다지요. 오늘날에는 풀밭에 섣불리 둥지를 틀어서 사는 새가 매우 드뭅니다. 새들도 알리라 느껴요. 사람들이 툭하면 농약을 뿌려대고, 기계를 돌려 풀을 깎으며, 조그마한 터라도 밭으로 삼으려 하니까요.



.. 그 골짜기, 오늘 비까번쩍 자가용들 줄지어 들어와, 화염방사기 같은 걸로 개가죽 그슬어놓고 소주 먹는 저 사람들은, 그 옛날 뉘집 뉘집 자손들일까 ..  (그 골짜기)



  지구별에 있는 여러 이웃은 저마다 삶이 있습니다. 서로 알맞게 어우러집니다.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이웃은 없습니다. 다만, 벌레와 짐승은 서로 먹고 먹히는 사슬처럼 이어집니다. 사람도 무엇인가 자꾸 먹고 누면서 살아야 하는 얼거리입니다. 우리들이 밥을 안 먹어도 되고, 똥오줌을 안 누어도 된다면, 지구별을 벗어나 드넓은 우주로 거침없이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밥을 먹어야 하며, 똥오줌을 누어야 한다면 지구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우주에서 밥을 어떻게 찾겠어요. 우주에서 똥오줌을 어떻게 누겠어요. 우리는 이 작은 지구별에서 살아갈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작은 지구별에서 태어나 살면서 꿈을 꾸고 사랑을 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나 알 텐데, 꿈을 꾸는 동안에는 배고프지 않으며 똥오줌이 마렵지 않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에도 배고프지 않으며 똥오줌이 마렵지 않습니다. 꿈을 꾸지 않거나 사랑을 나누지 않을 때에는, 배고픔과 똥오줌이 잇달아 찾아옵니다. 꿈을 꾸거나 사랑을 나눌 적에는 마음 깊이 끝없는 힘과 슬기가 샘솟고, 꿈을 안 꾸거나 사랑을 안 나누면 늘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합니다.



.. 그 겨울에 눈은 함작, 내렸다 / 도심 빌딩 그늘에 숨은 중앙초등학교 뒤편 담장, 새로 선 포장마차 한 대 / 이름도 좋구나, 이판사판 / 포장 불빛으로 모여든 하루살이 인생들은 자기 일처럼 신이 났다 ..  (이판사판의 추억)



  학교에 가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으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돈을 잘 벌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어느 만큼 나이를 먹으면 짝꿍을 찾아 예식장에서 시집장가를 가면서 돈을 거두어들여야 하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짝꿍을 찾아 시집장가를 간 뒤 어느 만큼 지나면 아이를 낳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자가용을 장만하거나 아파트를 마련하도록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왜 태어났을까요. 우리들은 왜 태어났을까요. 아이들은 왜 살아갈까요. 어른들은 왜 살아가나요.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 나라에는 끔찍한 입시지옥이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부터 이 나라를 꽁꽁 휘감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교가 아름다운 배움터 구실을 안 하고 입시지옥 구실을 하는 이 나라 얼거리를 차근차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경제개발에 현대문명이 환하게 빛난다지만, 따돌림받거나 괴로운 이웃이 대단히 많습니다. 주머니와 은행계좌에 돈이 엄청나게 쌓이지만, 이 돈을 이웃과 나누려 하지 않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 자루에 든 좁쌀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처럼 / 어둠의 현이 심금을 울리는 장중한 악음처럼 /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저 함성처럼 ..  (촛불시위)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지 않을 때에는 죽음이 찾아옵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할 때에는 사랑이 싹을 틔워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지 않기에 ‘죽을 걱정’에 사로잡혀 자꾸 돈을 더 움켜쥐기만 합니다. 살아가는 뜻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나누는 기쁨’에 웃음꽃을 피우고 춤노래로 하루하루 즐겁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어른한테 삶이란 무엇이고, 아이한테 삶이란 무엇일까요. 지구별에서 저마다 다르게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한테 삶이란 어떤 꿈이나 사랑일까요.



.. 면 소재지서 10리, 20리 산골에 숨은 / 달창 선학 용암 아이들은 면 소재지 중학교에 오고 / 면 소재지 수촌리 석지 원정 아이들이나 / 읍내 쪽으로 붙은 봉계 소바우 대바우 와룡 아이들은 / 읍내 중학교 가고 // 읍내 성산 경산 예산리 아이들은 / 대구 나가고 ..  (썰물)



  배창환 님 시집 《겨울 가야산》(실천문학사,2006)을 읽습니다. 배창환 님은 여러모로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저리구나 싶습니다. 시집 첫머리에 술 마시는 이야기가 잔뜩 나옵니다. 술집을 돌면서 아픔과 슬픔을 오래도록 삭히시는구나 싶습니다.


  술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동안 술을 마실 일은 없겠지요? 시골마을 작은 학교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술이 떠오르지는 않겠지요?


  아이들은 술을 안 마십니다. 아이들은 괴롭고 고단해도 술을 안 마십니다. 참으로 대견하고 씩씩합니다. 어른들은 괴롭고 고단하면 술을 마십니다. 왜 그럴까요? 어른들은 왜 이렇게 힘이 없고 슬기가 없을까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셔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른 스스로 꿈을 새롭게 키우고 사랑을 새삼스레 그려요. 우리가 나아갈 곳은 술집이 아닙니다. 우리가 나아갈 곳은 새로운 삶입니다.



.. 흙을 덥썩 안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 흙이 길러낸 아들딸들을 가르치고 있다 // 흙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라고 / 흙에서 멀리 떠나는 길만이 희망이라고 // 흙의 종아리에 매질하고 있다 / 흙의 가슴에 꽝꽝 못질하고 있다 ..  (흙)



  사랑이 자라서 노래가 됩니다. 꿈이 자라서 삶이 됩니다. 사랑을 가꾸어 노래를 부릅니다. 꿈을 키워서 삶을 누립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사랑을 돌본 사람들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없어도 시골사람 누구나 시인이 되어 노래를 불렀고, 시골사람 모두 소설가가 되어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시골에서 사랑을 가꾼 사람들 누구나 언제 어디에서나 춤을 추고 놀이를 즐겼습니다. 절기마다 철마다 때마다 크고작은 잔치를 마련하던 한겨레입니다. 이웃과 이웃은 서로 돕고 아끼는 사랑이요 너나들이였습니다. 스포츠나 영화나 섹스 따위가 없어도 누구나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고 두레를 했습니다.



.. ―선생님, 그땐 다들 힘들었어요 / 아이가 다섯 살이나 된 아이가 말했다 / ―오냐오냐, 내 다 안다 ..  (내 생애의 별들)



  오늘날 시골에 ‘시골 아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시골에 ‘시골 어른’이 없습니다. 노래하고 노는 시골 아이가 오늘날 시골에 없습니다. 춤추고 일하는 시골 어른이 오늘날 시골에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농약과 비닐과 기계와 비료와 새마을운동만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도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참다운 ‘도시 아이’나 아름다운 ‘도시 어른’이 있을까요? 4347.8.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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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어떻게 찾을까? - 도서관에 가자 2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 달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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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0



책, 도서관, 책방

― 책은 어떻게 찾을까?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달리 펴냄, 2008.12.24.



  오늘날은 도서관에서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도 책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책방까지 가지 않고도 집에서 책을 거뜬히 찾을 수 있습니다. 목록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책 하나 찾는 일이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이나 책방에서는 목록으로 띄운 책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안 갖춘 책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과 ‘새책방’에 가지는 않습니다. 중앙정부에서 만들었으나 도서관에 안 들어가는 책이 있고, 도매상을 거쳐 팔려고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림책도 다루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책 도서관이 제법 많이 생겼는데, 인표어린이도서관이 나타나기 앞서까지 어린이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기란 아주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동화책조차 제대로 안 갖추었으니까요.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아이만 보는 책’이라 여기면서 여느 도서관에서는 이 책들을 안 갖추려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여느 어른이 어린이도서관에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 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모든 사람이 두루 즐기’도록 하는 책으로 느끼지 못할까요? 왜 만화책은 도서관에 안 갖추려 할까요?



.. 이 방법은,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수를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누는 방법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열 개 가운데 어딘가에 꼭 들어가야 합니다 ..  (16쪽)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분류법’으로 책을 바라봅니다. 도서관에서는 ‘사서 눈길과 손길’로 책을 다룹니다. 분류법에 들어가기 어려운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처음부터 분류법에 끼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가 받아들이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 몇 사람이 수십만이나 수백만에 이르는 책을 늘 그대로 건사하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책을 바라는 사람은 다 달라, 어떤 이는 책을 함부로 다룰 텐데,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어떻게 다룰는지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딱지나 스티커를 붙입니다. 어느 책은 겉장(표지) 하나에 온갖 품과 땀을 담아서 아름답게 여미었으나, 딱지와 도장과 바코드를 겉장 한복판에 떡하니 붙이면서 겉장 모양새를 송두리째 가리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애써 곱게 겉종이를 만들어 끼웠는데, 도서관에서는 겉종이를 뜯어서 버리곤 합니다.


  이웃나라 도서관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책을 다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얇고 속이 잘 비치는 비닐을 씌웁니다. 도서관 딱지나 바코드를 붙일 적에는, 책겉에 도서관에서 따로 씌운 비닐에 붙입니다. ‘책에 대고 바로 붙이’지 않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도 한국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책 안쪽과 책등에 도장을 신나게 찍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책 겉장을 다치게 하지 않아요. 주한미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책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 상상해 보세요. 의과대학 도서관과 건축대학 도서관이 책을 똑같이 분류할 수 있을까요? KDC 하나하나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외워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분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  (30쪽)





  아카기 간코 님이 글을 쓰고 스가와라 게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은 어떻게 찾을까?》(달리,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자’라는 이름으로 세 권짜리 엮은 이야기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에서 어린이한테 도서관 나들이를 즐겁게 북돋우도록 빚은 그림책입니다. 첫째 권은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이고, 셋째 권은 《주제를 어떻게 정할까?》입니다. 둘째 권은 《책은 어떻게 찾을까?》입니다. 어린이가 도서관에 나들이를 할 적에 궁금해 할 세 가지를 잘 간추려서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멋진 얼거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도서관을 말하는 책’인데, 이 그림책은 한국 십진분류법 가운데 어디에 들어갈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책이 없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데 “026(문헌정보학-일반 도서관)”에 있다고 합니다. 새책방에서는 이 책을 “국내도서-어린이-초등1∼2학년-그림책”에 넣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한테 이 책을 ‘문헌정보학’이라느니 ‘일반 도서관’이라느니 하고 갈라서 알려준다 한들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저 ‘그림책’으로 넣을 때가 ‘초등1∼2학년’으로 나눌 때가 어울릴 테지요.


  그런데 왜 ‘초등1∼2학년’으로 나눌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일까요. ‘중등∼고등’이 아닌 ‘청소년’으로 나누어야 할 노릇이고, ‘어린이’도 나이에 맞게 나누어야 할 노릇일 텐데요.


  그나저나,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판이 끊어졌습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일찌감치 장만한 도서관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실적’이 적거나 없다면서 치우려 한다면,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는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지만, 도서관에서 ‘장만해서 건사했다가 빌려 읽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 몇 해 묵히다가 버리’면, 도서관에 가도 ‘책을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빌려서 읽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책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지킬 수 있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많이 낡거나 닳은 책을 새로운 책으로 바꾸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책이 있는 곳간이 되고, 책으로 삶을 밝히는 길을 여는 도서관이 되기를 빕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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