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8.3.


순천 마을책방 〈그냥과 보통〉에서 장만한 《삼등여행기》를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읽는다. 순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흥읍에 닿은 뒤 햄버거집에 들렀다. 집에서 노는 두 사람(곁님하고 작은아이)을 헤아리며 햄버거를 둘 장만한다. 이 길에 왕잠자리 한 마리가 바닥에 밟혀서 죽은 모습을 본다. 왕잠자리가 어떤 까닭으로 죽어서 길바닥에 내려앉았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왕잠자리를 여러 번 밟은 듯하다. 사람들은 아마 왕잠자리를 밟고도 모르고서 지나다녔지 싶다. 길바닥에 눌러붙은 왕잠자리 주검을 집어서 둘레를 살피는데 흙하고 풀이 있는 데가 안 보인다. 시골 읍내에서도 흙하고 풀을 찾기 어렵다. 한참 걸어서 냇가에 닿은 뒤 풀밭에 왕잠자리 주검을 내려놓는다. 1930년대에 조선·중국·러시아를 가로질러 프랑스까지 기차로 여행을 하고는 배로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사람은 ‘삼등여행’ 이야기를 남겼는데, 시골 읍내에서 삶을 마감한 왕잠자리는 이 땅에서 어떤 나들이를 누렸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오늘 마실길에 큰아이하고 ‘크랜베리스(Cranberries)’ 노래 ‘Zombie’를 들었는데 큰아이가 “in your head in your head” 같은 대목을 흥얼거린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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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서 읽은 책 2017.8.3.


ㅊ출판사에서 내기로 한 글꾸러미가 있다. 이 글꾸러미를 ㅊ출판사 편집부하고 주고받으며 여러 차례 손질하는데, 다섯 갈래로 나눈 글꾸러미 가운데 셋째 갈래 글을 놓고 손질하다가 막혀서 일을 쉬기로 하면서 큰아이하고 마실을 나온다.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 하기로 한다. 오직 큰아이하고 이 여름날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마실을 누리기로 한다. 순천 중앙시장에서 복숭아를 장만하고, 골목을 걷고, 마을책방에 깃들어 책하고 벗삼으면서 쉬고, 순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고, 이렇게 오붓하게 예닐곱 시간을 보낸다. 함께 노래를 듣고 함께 그늘길을 걷는다. 함께 얘기를 나누고 함께 뙤약볕을 쬔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큰아이가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아이 숨결을 느끼며 《어쩌면 좋아》를 읽는다. ‘서커스’ 출판사에서 사노 요코 님 산문책을 두 권 옮겼단다. 예순 한복판에 선 할머니 그림책 작가로서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가 수수하게 흐른다. 그야말로 수수하게 흐른다. 이야기란 언제나 수수한 삶에서 태어난다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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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와 마법의 옷장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페트리샤 리 고흐 글, 김미련 옮김 / 느림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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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3



할머니한테서 듣는 이야기

― 타냐의 마법의 옷장

 페트리샤 리 고흐 글

 이치카와 사토미 그림

 김미련 옮김

 느림보 펴냄, 2004.12.13.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타냐에게 물었어요.

“넌 누구니?”

타냐가 수줍게 대답했지요.

“발레리나예요. 전 튀튀가 참 좋아요.”

“그래?”

둘은 빙그레 웃었어요.

“나도 발레리나야. 나도 튀튀를 좋아해.”

“정말요?”

타냐는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은 몹시 나이가 많은 할머니였거든요. (9쪽)



  우리가 쉽게 놓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대에 올라야 배우나 가수라고 잘못 여기곤 해요.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인데 말이지요. 학교에 가서 교탁 곁에 서야 교사가 되지 않아요. 이른바 교원자격증을 따야만 교사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집에서 여느 아이를 돌보며 가르치는 어버이도 누구나 교사예요. 그리고 여느 집에서 여느 어버이하고 오순도순 살아가며 소꿉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도 배우나 가수입니다.


  어떤 몫을 스스로 맡아서 즐겁게 노래할 줄 안다면 얼마든지 배우나 가수입니다. 스스로 신나게 피아노를 칠 줄 안다면 얼마든지 연주자입니다. 스스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면 얼마든지 자전거 선수입니다. 스스로 활짝 웃으며 부엌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요리사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발레가 좋아 언제나 발레를 생각한다고 해요. 이 아이는 따로 무대에 선 일은 없지만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어느 날 어머니하고 처음 극장에 갔대요. 아직 극장 문을 열지 않아서 기다리는데 발레옷인 튀튀를 들고 가는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 뒤를 좇으며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발레옷을 들고 극장 골마루를 걸어가는 할머니도 스스로 ‘발레리나’라고 말하거든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르는 분일까요? 할머니는 무대에 오른 적이 있을까요? 이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할머니 스스로 발레리나로 여긴다면 할머니는 참말 발레리나예요. 이리하여 할머니는 이제껏 살아오며 누린 숱한 발레 이야기를 아이한테 상냥하면서 멋스레 들려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극장에서 일하는 할머니한테서 그토록 좋아하는 발레 이야기를 한껏 들으며 가슴이 부풉니다.


  그림책 한 권은 발레를 말할 뿐입니다만, 발레를 비롯한 모든 자리에서 우리 스스로 즐겁게 꿈꿀 수 있는 마음이 된다면 모두 달라진다고 하는 실마리를 찬찬히 밝히는구나 싶어요. 어떤 마음으로 다가서고,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몸짓으로 즐기려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걷는 길이 달라져요. 2017.8.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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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8.2.


빨래를 널고 쉬면서 그림책을 편다. 이제 햇볕이 가장 뜨거운 한낮에도 처마 밑 평상에 앉으면 땀이 안 흐른다. 바야흐로 곡식을 살찌우는 볕이 되는구나 싶다. 그림책을 배우면서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는 젊은 분이 내놓은 《우리 가족이에요》를 읽어 본다. 그림책에는 세 사람이 나오고 세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가 있는데,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 살짝 아리송하다. 다만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대수로울 일은 없다. 서로 아낄 줄 알고 보듬을 수 있는 한식구로 지내는 마음이라면 다 좋지. 이야기는 비가 오는 날 ‘형한테 우산 갖다 주기’ 심부름에서 고빗사위를 맞이한다. 그런데 형은 비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네. 그러면 우산이 없어도 될 텐데? 짐짓 씩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엄마!”를 찾는 사람 형이 재미있다. 겉으로는 작을는지 모르나 속으로는 야무진 ‘사람 아닌 동생’이 살뜰하다. 다만 이 그림책이 어른 그림책이 아닌 어린이 그림책이라 한다면, ‘마릴린 먼로 치맛자락 날리는 모습을 빗댄 그림’이 아닌 다른 그림을 새롭게 생각해 내어 넣으면 더 좋았으리라. 익살맞은 대목으로 여길 수 있으나 ‘어린이가 바라보며 생각을 키우는 이야기’를 살리는 길을 더 살피면 좋겠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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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응급처치 매뉴얼 - 반려인 필독서 반려동물 응급처치 매뉴얼
사토 타카노리 지음, 김주영 옮김, 김주영 감수 / 단츄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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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따로 곁짐승이 없지만 이 책을 읽는다. 곁짐승이 없더라도 이웃을 헤아리거나 살피고 싶은 마음이다. 곰곰이 읽으니 곁짐승도 ‘곁사람’도 따사로이 마주하며 꼼꼼하게 헤아릴 때에 비로소 튼튼하며 즐겁게 살림을 이루는구나 싶다. 아기를 낳아 돌보듯 사랑을 나누며 사는 곁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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