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
― 사진과 돈



 돈이 있으면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퍽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돈이 없기에 더 나은 장비를 장만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이 들려줍니다.

 참말로 돈이 있지 않고서야 더 낫다는 사진 장비를 쓸 수 없습니다. 사진기 몸통이든 렌즈이든, 후드이든 필터이든, 세발이이든 가방이든, 빛살피개이든 필름이나 메모리카드이든, 사진 장비를 장만하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돈이 없는 사람으로서 사진길을 걷는다는 일은 터무니없다 말할 만한지 모릅니다.

 제가 사진길을 처음 걷던 때를 돌이킵니다. 저한테는 사진기가 없었습니다. 다섯 학기를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사진을 만나 사진길을 걸었는데, 이 대학교에서 보도사진을 배울 때에 강사를 맡은 분은 모든 학생한테 사진기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먹고살던 터라 그야말로 빈털털이였는데, 아버지가 예전에 쓰시다가 망가져서 집안 어디인가를 뒹굴거리던 낡은 자동사진기 하나를 생각해 냈습니다. 주말에 집에 가서 낡고 망가진 사진기를 찾았습니다. 사진관에 수리를 맡기니 한 주쯤 걸리고 삼만 원이 든다 했습니다. 다음 수업에는 사진기를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저는 1회용 사진기를 사서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듬주에 두 번째 수업에 들어가 보니, 모두들 번들거리며 큼지막한 사진기를 가지고 옵니다. 1회용 사진기를 가지고 온 사람은 저 하나뿐이기도 했으나, 집에서 찾아내어 수리를 맡긴 낡고 값싼 자동사진기를 가져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무렵 필름카메라는 수동사진기에서 전자동사진기로 크게 바뀌던 터라, 수동사진기를 쓰는 사람은 전자동사진기 앞에서 잔뜩 주눅들곤 했습니다. 까맣고 커다란 전자동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거나 큰 가방에 담고 작은 필름사진기를 비웃는 사람도 꽤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없는 살림에 백만 원을 웃도는 사진기를 장만할 돈이 없을 뿐더러, 백만 원이 웃도는 값은 몸통 값일 뿐이요, 렌즈를 따로 사자면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는 소리를 듣고는 야코가 죽었습니다. 1998년에 한겨레신문을 230부(하고 스포츠신문·서울신문 곁들여 모두 260부) 남짓 돌리면서 신문배달 일삯으로 한 달에 삼십만 원을 받는데, 이 가운데 십육만 원을 적금으로 넣고 남은 십사만 원으로는 몇 해를 아무 데도 돈을 안 쓰고 모은들 꿈조차 꿀 수 없는 전자동사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장 값싸게 살 만한 수동사진기인 미놀타 엑스300마저 십삼만 원을 주어야 했으니, ‘내가 사진을 배우겠다고 나선 일은 참 턱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사진기를 장만한다 하더라도 필름을 사야 합니다.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 얹혀 지내는데 암실은커녕 현상하거나 인화할 장비조차 살 돈이 없습니다. 사진관에 현상과 인화를 맡겨야 하는데, 가장 싼 필름을 알아보아 한 통에 천 원짜리를 어찌저찌 찾기는 했는데, 한 통을 현상·인화 하려면 칠천 원쯤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던 때, 대학교 강의실에서 값비싼 사진기를 아무렇지 않게 장만해서 값비싼 필름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 웃음소리를 듣기가 몹시 거북했습니다. 이들은 으레 뒷자리에 앉고, 저는 맨 앞자리에 앉습니다. 나는 1998년 이해에 신문방송학과 모든 강의를 다 듣고 대학교를 그만둘 생각이라 모든 강의를 한 마디 한 마디 새겨들으려 했습니다. 등록금은 너무 비쌌고 대학 강의란 덧없다고 느꼈으나, 그만두기 앞서 ‘혼자 책을 읽어서는 알거나 배우기 힘든’ 실기수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보도사진 강의를 들었어요. 이때에 보도사진 강사를 맡은 분은 무척 고맙게도 나처럼 1회용 사진기를 쓰거나 아주 싸구려인 낡은 자동사진기를 가진 사람한테 힘이 되는 말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이 미국에서 사진을 배우던 일을 되새기면서, “미국 사진기자는 싸구려 자동사진기로도 특종을 찍지만, 한국 사진기자는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지고 멀리서 망원으로 싸구려 사진을 찍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싸구려 자동사진기를 가진 미국 사진기자는 취재원 코앞으로 다가와서 사진을 찍지만, 비싼 캐논과 니콘을 가진 한국 사진기자는 멋없는 풍경 비스무레한 사진만 수없이 쓰며 필름을 버린다고 덧붙였어요.

 보도사진 강의는 한 학기로 끝납니다. 1998년 가을에는 따로 사진 강의가 없습니다. 더 들을 만한 강의를 찾을 수도 없기에 1998년 12월에 휴학계를 냅니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학교 도서관과 학교 앞 새책방과 서울 시내 헌책방을 쏘다니며 혼자 책을 읽으며 배웁니다. 1999년 여름에 교육책과 어린이책을 내는 출판사에 영업자로 뽑혀 들어갑니다. 이듬해에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출판사로 옮기는데, 다른 출판사 사장님이 저한테 큰 선물을 하나 해 줍니다. 제가 쓰는 값싸고 낡은 사진기를 보시더니 “얘야, 아무리 그 사진기로 사진을 훌륭히 찍는다 하더라도 장비가 뒷받침이 안 되면 안 된다. 앞으로는 네가 돈을 더 벌어서 더 나은 장비를 갖추더라도, 이제부터 십 년 동안 쓸 사진기를 하나 사 줄 테니까, 나중에 우리 회사를 그만두면 받을 퇴직금으로 생각하고 이 사진기를 써라.” 하고는 캐논 이오에스 5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사지국보다 일삯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자로 일하면서 62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30만 원은 적금으로 떼고 32만 원을 내 몫으로 썼습니다. 신문사지국을 헤아리면 곱배기를 적금으로 부으면서도 살림돈은 곱배기로 남습니다. 그래도 새 사진기를 장만하기는 벅차요. 사진기를 선물해 주신 새 출판사 사장님은 일삯을 100만 원 주었습니다. 이제 100만 원 가운데 50만 원은 적금으로 부으며 50만 원을 살림돈으로 삼았고, 다달이 십만 원 안팎을 더 덜어 그러모은 다음 새 전자동사진기에 걸맞을 렌즈를 장만합니다. 처음에는 여러 해 손에 익은 사진기가 좋았지만, 차츰 새 사진기에 익숙해집니다. 사진기가 두 대가 되어, 하나는 빛깔사진을 찍기로 하고 하나는 흑백사진을 찍기로 합니다. 이제 막 새 사진기를 얻었기에 이무렵에는 ‘L렌즈’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퍽 값싼 렌즈만 쓰다가 28-105미리 엘렌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이 렌즈를 한 번 빌려서 몇 장 찍고 보니 ‘온누리가 달라 보였’어요.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구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제아무리 값싼 사진기로 용을 쓰고 애를 쓰더라도, 돈이 있는 사람은 이런 장비를 손쉽게 턱하니 장만해서 내가 용쓰고 애쓴 사진을 어렵잖이 찍을 수 있구나.’

 그렇지만, 사진은 장비로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몸으로 찍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지, 현장에는 없되 값진 사진기를 갖춘 사람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넉넉한 돈으로 장만할 수 있는 더 나은 장비가 있을지라도, 나 스스로 어떤 사진을 어디에서 찍으려 하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부질없습니다. 사진기를 쥐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고, 사진기를 내려놓을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 사진감은 헌책방입니다. 예나 이제나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헌책방으로 취재를 나오는 기자들을 만납니다. 이들 신문사 기자나 잡지사 기자는 캐논 이오에스 5번보다 훨씬 빼어나다는 몸통에다가 갖가지 값진 엘렌즈를 붙여서 사진을 찍습니다. 기자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며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들 기자는 여느 때에는 헌책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헌책방을 다니지도 않으며,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를 마음으로 아로새기지도 않습니다. 슥 한 번 둘러보며 ‘그럴듯한 그림’을 신나게 만들어 냅니다. 값진 사진기와 장비와 렌즈는 ‘몸으로 제 사진감을 겪거나 치르거나 만나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무척 빼어나다 싶은 그림을 손쉽게 선물해’ 줍니다.

 짧으면 5분이나 10분, 길면 30분쯤 ‘풍경 스케치’를 끝내는 사진기자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서 헌책방 책시렁을 뒤적이며 아픈 속을 달랩니다. ‘그래, 저들은 내가 이룰 수 없는 멋져 보이는 풍경 스케치를 놀라운 장비로 놀랍게 만들겠지. 내 사진기로도 어찌저찌 하면 틀림없이 나 또한 사람들한테 멋지게 보일 만한 풍경 스케치를 이룰 수 있는지 몰라. 그렇지만, 나는 풍경 스케치가 싫어.’

 필름을 마련하고 현상·인화를 하면서 다달이 십만 원 남짓 따로 모으려던 돈이 좀처럼 모이지 않습니다. 인화한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스캐너를 장만하니 목돈이 쉽지 않습니다. 두 해만에 드디어 ‘헌 엘렌즈’ 하나 살 돈이 모입니다. 그러고 또 한 해 다시금 푼푼이 돈을 모아 값싼 미놀타 엑스300을 캐논 에이이 1번으로 바꿉니다. 필름을 긁는 스캐너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거듭 돈을 추스르며 한 해 반이 지나 다른 스캐너를 장만했고, 다시 한 해 반이 지난 뒤에 캐논 9900에프 스캐너로 바꿉니다. 이러는 동안 몇 차례 사진기를 도둑맞아 적금을 깨서 사진기와 렌즈를 다시 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를 잃었을 때에는 이제 적금이 하나도 남지 않아 까마득했습니다. 그래도 나보고 사진길을 멈추지 말라는 고마운 뜻인지, 형이 살림돈을 보태 주어 디지털사진기로 캐논 450디를 마련하고, 고운 사진벗이 니콘 에프 삼번을 빌려줍니다.

 이리 되든 저리 되든 사진기를 쓰자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고서야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내가 장만하든 남이 빌려주든, 누군가는 적잖이 돈을 치러 사진기를 장만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붓이나 연필이나 물감하고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과 종이를 장만해야 합니다. 종이값이나 연필값은 사진기값하고 대면 아주 싸다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종이값이나 연필값이 참말 싼지 잘 모르겠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값조차 비싸고 벅찹니다. 있는 살림에는 파노라마사진기마저 대수롭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에는 종이 몇 장 장만하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하고, 종이 몇 장에 글조각 끄적일 겨를을 어렵사리 마련합니다. 있는 살림에는 값진 사진기를 수월히 장만할 수 있고, 이곳저곳 마음껏 돌아다니며 온갖 모습을 담기 마련입니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더 나은 장비가 있고, 더 나은 장비는 틀림없이 더 빼어난 ‘풍경 스케치’를 베풀어 줍니다. 안젤 아담스가 빚은 사진을 십삼만 원짜리 수동사진기로 빚기란 힘들 뿐 아니라, 빚을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아니, 이래저래 따라해 볼 수 있는지 모르지요.

 그러니까, 값싼 사진기로는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값싼 사진기는 값진 사진기로 빚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사진은 낳지 못합니다.

 사진기는 ‘더 나은 장비가 빚는 더 놀라운 풍경 스케치’를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장비가 아닙니다. 연필과 종이는 ‘더 좋은 연필과 종이로 빚은 더 놀라운 글이나 그림’을 따라하며 똑같이 빚으라 하는 연필과 종이가 아니에요.

 1회용 사진기로는 1회용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는 십삼만 원짜리 사진기로 찍을 사진을 신나게 찍으면 돼요. 내 삶이 부잣집 사람들 삶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내 즐거우며 아름다울 길을 찾는 삶이라면, 내 사진은 내 깜냥껏 가장 즐거우며 가장 사랑스럽다 싶은 아름다운 사진을 찾는 사진삶이 되면 됩니다.

 돈이 없으니, 돈이 없는 대로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합니다. 나는 나한테 가장 걸맞을 장비를 장만하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장비’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내가 ‘온누리에서 가장 좋거나 훌륭한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듯, 나는 내가 타고 다닐 가장 알맞으면서 괜찮은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닙니다. 돈에 맞추는 삶이 아니라 삶에 맞추는 돈입니다. 돈에 따라 꾸리는 삶이 아니라, 삶에 따라 마련해서 쓰는 돈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쓰라고 하면 됩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을 쓰면 됩니다. 돈이 넉넉한 사람은 더 빼어나다는 장비를 홀가분하게 장만하면 됩니다. 사랑을 따스히 나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을 따스히 나누면서 내 삶을 누리면 됩니다.

 좋은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다는 장비로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더 나쁘거나 더 훌륭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좀 허술하거나 값싼 사진기로 사진을 찍을 뿐이에요.

 우리 집 아이가 입는 옷은 거의 모두 얻어다 입힙니다. 아이 어머니가 뜨개한 옷이 몇 벌 있습니다. 아이는 어느 옷을 입어도 참 어여쁩니다. 아이 아버지는 날마다 아이 옷가지를 손빨래하면서 아이가 기쁘게 입고 예쁘게 뛰놀기를 바랍니다.

 저는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진 사진기를 쓰든, 저마다 가장 사랑스럽게 손을 뻗으면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장 사랑스레 뻗는 손으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값진 사진기로는 참 훌륭하다 싶은 그림이 태어날 테고, 값싼 사진기로는 참 아리땁다는 이야기가 태어나겠지요.

 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보다 십만 원짜리 안경을 쓸 때에 한결 잘 보일는지 몰라요. 삼천 원짜리 고무신을 신을 때보다 십만 원짜리 운동신을 신을 때에 훨씬 잘 달릴는지 몰라요. 온누리를 더 잘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수 있고, 달리기를 더 잘 하면 더 기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아름다운 사람을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며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내 삶자락을 예쁘게 북돋우며 고운 넋으로 어여삐 살아가고 싶습니다. 1등이나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뜻이 없습니다. 더 좋아 보이는 사진이란 아무 보람이 없습니다. 마냥 바라보면서 좋은 모습이라면 사진으로 안 담고 내 눈과 내 마음에 담으면 그예 좋습니다. 내가 찍었되 내가 다시 보아도 참 좋아서 틈틈이 다시 보는 사진이라면,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도 좋지만, 내가 사진으로 찍은 그곳을 틈틈이 다시 찾아가서 맨눈으로 실컷 들여다보아도 좋습니다. 사진으로 찍힌 모습은 늘 한 모습이고, 맨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찍는 모습은 늘 새삼스러운 무지개빛 모습입니다.

 돈이 있으면 한결 돋보인다 싶은 사진을 쉽고 빠르게 얻습니다. 돈이 없거나 적으면 한껏 돋보일 사진을 땀과 사랑과 믿음을 들여 천천히 얻습니다. 어느 사진이든 사진입니다. 어느 쪽 사진이 더 낫지 않습니다. 돈이 많아 온누리 어려운 사람을 많이 돕는 사람이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 늘 살림돈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 하루아침에 값진 사진기를 쉬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라자기에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돈을 그러모아 값진 사진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돈이 적거나 모자란 나날을 보냈기에, 내가 그리는 값진 사진기를 꿈꾸며 여러 해에 걸쳐 돈을 그러모으며 지내다 보니 ‘여러 해가 흐르는 동안 내가 꿈꾸던 사진기보다 훨씬 기능이 나아진 새 사진기’가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래, 사진기란 돈으로 장만합니다. 돈으로 장만하는 사진기는 한두 해 쓰고 버리거나 바꿀 사진기가 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장만하든 선물로 받아서 쓰든, 내가 손에 쥘 사진기는 이제부터 쉰 해쯤 고이 돌보면서 쓸 사진기가 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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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씨와 책읽기


 지난해 ‘아주 어설퍼’ 텃밭은 마감하고, 올해 ‘덜 어설퍼’ 텃밭을 꿈꾼다. 조그마한 텃밭에 거름 뿌리고 풀 뽑은 뒤 틈틈이 갈아엎어 때를 기다렸다. 밤나절에 너무 춥지 않은 날이 되면 씨앗을 심자고 생각했다.

 드디어 물골과 함께 고랑을 만든다. 이듬날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하늘을 보니 비가 꽤 올 듯하다. 조그마한 텃밭이라지만 혼자 집일을 맡는데다가 이오덕학교에서 날마다 한 시간씩 아이들이랑 책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밥벌이를 하는 글도 써야 하니까, 밭일을 하루 사이에 한꺼번에 마무리짓지는 못한다. 오늘은 반쯤만 골을 만들어 씨앗을 심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쯤 만든 골조차 씨앗을 다 심지 못한다. 밭에서 씨앗을 함께 심던 아이가 졸립고 힘들다며 어서 들어가자고 자꾸 보채는 바람에 작은 세 골씩 이십일무와 당근을 심는다. 이십일무는 이름 그대로 스무 날만에 알이 굵어질까 궁금하다. 당근은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이십일무는 참말 스무 날만에 거둘 수 있는지 궁금하다.

 씨앗을 심을 때면 언제나 새삼스레 느끼지만, 씨앗은 참으로 작다. 스무 날만에 큰다는 이십일무는 씨앗이 꽤 굵다 할 만하다. 어쩌면, 스무 날만에 크니까 씨앗이 이만큼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당근은 이십일무보다 훨씬 크게 알이 굵을 텐데, 석 달이 걸려 굵는 만큼 이십일무보다 씨앗이 작겠지. 그런데 참 작다. 하늘거리는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얹으면서 이 작은 씨앗에서 얼마나 작은 싹이 트고 얼마나 작은 뿌리가 내릴는지 지켜보고 싶다. 지난해에 무씨를 심을 때에도 무씨가 이렇게 작았구나 하고 비로소 깨달았지만, 당근씨는 더 작고 훨씬 가볍기까지 하구나.

 작은 아이가 작은 손바닥을 펼쳐 당근씨를 올려놓고 작은 구멍에 쏙쏙 넣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당근씨가 이만큼 작다지만, 이 작은 텃밭에서 자라던 갖은 들풀 또한 들풀씨를 냈을 때에 요 들풀씨는 훨씬 작겠지. 사람이 먹는 열매나 푸성귀쯤 되니까 씨앗이 제법 굵거나 크겠지만, 사람이 따로 먹지 않는 열매나 푸성귀라면 자잘한 모래알갱이만 한 씨앗이 아닐까 싶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을 빚는 씨앗 또한 몹시 작다. 사람을 빚는 씨앗은 더없이 작기 때문에 맨눈으로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사람 몸뚱이는 얼마나 크게 자라는가. 들풀이나 푸성귀와 달리 사람은 어른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니까 씨앗 또한 더 작다 할는지 모르리라.

 착한 넋이나 고운 얼이나 참다운 마음을 일구는 빛줄기가 서린 책이란 참으로 작다. 참으로 작은 책에 더할 나위 없이 작은 빛줄기가 서린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빛줄기를 아주 조금씩 받아먹으면서 천천히 착하거나 곱거나 참다이 살아간다. (4344.4.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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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4-23 23:40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프라스틱 박스에 상추씨 심었어용^^

숲노래 2011-04-24 08:35   좋아요 0 | URL
싱싱하게 자라나서 즐겁게 맛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발바닥 붙임딱지와 책읽기


 언제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와 내내 복닥이면서 집일을 하다 보면 한낮에 겨우 숨을 돌리는 즈음 쓰러지기 마련. 이무렵에 아이가 함께 낮잠을 자 준다면 더없이 고맙지만, 아이는 졸리면서도 낮잠을 꾸욱 참으며 뗑깡 부리며 놀기 마련.

 큰방 바닥에 털푸덕 쓰러지면서 “이제 이렇게 쓰러질 테니까, 벼리는 더 놀고 싶으면 혼자서 더 놀아.” 하고 말한다. 아이는 살며시 다가와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내 발 뒤꿈치를 쓰다듬으며 “아파? 아야 해?” 하고 묻는다. 발 뒤꿈치를 다친 적 없는데 뭔가 하고 고개를 빼꼼 들고 바라본다. 아, 내 발 뒤꿈치에 굳은살이 잔뜩 배겨 딱딱하니까 아픈 줄 아는가 보다. 하기는, 맨발에 고무신만 신으며 살아가니까 내 발은 온통 굳은살투성이일 테지.

 아이는 어디론가 쪼르르 갔다가 다시 쪼르르 와서는 제 놀잇감 넣은 다용도장 벽에 붙인 붙임딱지를 몇 떼어 내 발 뒤꿈치에 붙인다. “가만 있어 봐. 붙여 줄게.” 응, 아이야, 고거 붙인다고 안 아야거든?

 날이면 날마다 신나게 뛰놀다가 자빠져서 무릎이 깨지는 아이. 웬만하면 깨진 그대로 두지만, 깨진 데가 자꾸 또 깨지면 하는 수 없이 약을 바른 다음 밴드를 붙인다. 아이는 밴드 붙이기를 하면 ‘안 아야’라고 여기며, 제 놀잇감인 붙임딱지를 내 발에다 붙여 주려는 뜻이다. 옆지기가 “벼리야, 그렇게 붙이면 어떻게 걷니?” 하고 말하지만, 들은 척 만 척. 나는 발 뒤꿈치에 붙은 붙임딱지 때문에 그냥 더 드러눕고 쉬기로 한다. 아이는 혼자서 재잘재잘 종알종알 하면서 논다. 모처럼 이십 분쯤 느긋하게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4344.4.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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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와 사진기와 책읽기


 시골집에 피아노가 들어왔다. 옆지기와 2007년 6월 5일부터 함께 살아온 지 네 해 만에 큰 살림이 하나 들어왔다. 새 피아노를 장만할 만큼 살림돈이 넉넉하지 않아 헌 피아노를 장만한다. 피아노를 장만한 돈은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 식구한테 ‘딸아이를 생각해서 앞으로 잘 두라고 한 돈’을 깼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된다거나 노래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장만하는 피아노가 아니라, 아이한테 퍽 좋은 놀잇감이 되는 피아노이기 때문에 우리 살림에 마지막 남은 목돈을 깼다.

 옆지기는 우리한테 무언가 목돈이 들어올 때에 ‘내가 바라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장만하라고 으레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세 번 목돈을 벌었던 때에 이 목돈은 고스란히 살림살이를 장만하거나 아픈 집식구한테 들이는 돈으로 썼다. 내가 바라는 파노라마사진기는 몇 해 사이에 값이 껑충 올라, 이제는 삼백만 원쯤을 들여야 장만할 수 있는데, 이마저 물건이 없어서 살 수 없단다. 줄서서 기다리든 웃돈을 얹든 만지기 힘들단다.

 짐차에서 피아노를 내린다. 큰방 아이 놀잇감을 놓던 다용도장을 옆으로 밀고 피아노를 놓는다. 아직 피아노 자리를 잡지 않았으나, 아이는 걸상에 척 올라앉아 얼른 눌러 보고 싶다. 아이는 다른 곳에 마실을 갈 때에 피아노가 보이면 어김없이 피아노에 달라붙곤 한다. 우리가 아이한테 피아노를 딱히 가르치거나 보여준 적이 없는데, 용하게 피아노를 좋은 놀잇감으로 삼는다. 다른 어느 악기보다 피아노를 좋아한다. 다른 아이들도 피아노를 좋아할까.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를 왜 좋아할까. 건반을 통통 누르면서 나는 다 다른 소리와 느낌을 얼마나 좋아할까.

 시골집으로 옮긴 지 한 해가 거의 다 된 오늘 들어온 피아노 앞에 앉아 본다. 건반을 몇 눌러 본다. 나도 일고여덟 살 때에 피아노학원에 다녔던 일을 아주 어렴풋하게 떠올린다. 아주 못 치지는 않았으나 또 잘 치지도 않았다. 집에서는 종이 건반을 바닥에 놓고 신나게 연습해서 눈을 감고도 얼마든지 칠 수 있게끔 애쓰곤 했다. 학원에 가서 건반을 눌러 볼 차례가 되던 때를 얼마나 기다렸으며, 내가 내 손가락을 놀려 건반을 퉁길 때에 나는 소리가 얼마나 좋고 부드러웠는지 모른다. 잘 쳐서가 아니라, 이런 피아노를 퉁길 수 있는 일이 기뻤다.

 지지난달부터 한 달 벌이가 겨우 백만 원이 되었다. 지지난달까지는 한 달 오십만 원 안팎 벌이로 어찌저찌 살림을 꾸렸다. 시골집에서는 달삯을 내지 않고, 얻은 집에서 살아가니까 밥값하고 보일러 기름값을 댈 수 있으면 살 만하다. 여기에 책을 사느라 들이는 값이 있다. 다달이 오십만 원으로는 퍽 빠듯하지만, 아주 못 살지는 않는다. 책을 내어 받는 글삯은 아직 없지만 올해에는 처음으로 글삯 벌이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꿈을 꾼다. 이런 살림살이였기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한테 목돈을 얼마쯤 쥐어 주셨겠지. 그럭저럭 살 만하거나 이냥저냥 버틸 만한 살림이라면 따로 우리한테 도움돈을 줄 사람이 없으리라.

 한낮이 되어 옆지기가 피아노를 친다. 아이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마당에서 춤을 추며 논다. 볕바라기를 하면서 맞은편 우리 도서관 유리문에 제 모습을 비추면서 논다. 옆지기가 피아노를 쉬면 피아노 쳐 달라고 마당에서 소리를 빽 지른다. 나는 고단한 몸을 쉬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사진기를 쥐고는 두 사람 모습을 이쪽에서 찍고 저쪽에서 찍는다.

 이제 옆지기는 마당으로 나가서 볕바라기를 함께 한다. 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오늘은 제법 발판을 구른다. 한두 번 앞으로 구르고, 한두 번 뒤로 구른다. 다리도 조금 길어졌고 다리힘도 조금 더 붙었는가 보다. 앞으로 하루하루 더 많이 구를 테고 더 많이 굴릴 수 있겠지. 볕바라기를 하는 옆지기하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는다.

 나는 파노라마사진기를 써서 내가 좋아하는 헌책방이랑 인천골목길을 사진으로 담는 꿈을 꾸며 살았다. 이러한 꿈은 살림집을 시골로 옮기며 더는 못 품는다. 그저 내 손에 쥔 작고 가벼운 사진기로 내가 찍을 수 있는 모든 솜씨를 부려서 내 사랑을 담아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내 사진기가 훨씬 빼어나다 해서 우리 살붙이들 살아가는 모습을 더 사랑스럽게 찍을 수 있거나 더 즐겁게 찍을 수 있지는 않다. 시야율(화각 비율)이 떨어진들 어떠하고, 화소수가 낮으면 어떠한가. 대형사진기를 쓴대서 더 아름답다 싶은 사진을 얻지는 않는다.

 집식구들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이 보금자리에서 누구보다 사랑하며 아낄 사람이라고 느낀다. 서로서로 아끼면서 좋아하고 보듬으며 살아야 즐겁다고 느낀다.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고, 피아노를 배울 겨를이 없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이모저모 서툴게 살림을 꾸리면서 피아노까지 할 틈이 없다. 옆지기는 사진을 몇 장 찍을 수는 있으나 사진기를 옳게 다룰 줄은 모르며, 사진기를 배울 겨를이 없겠지. 아이는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무엇을 차근차근 배울까. 아이는 어머니랑 아버지랑 함께 지내면서 무엇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어떤 생각과 이야기를 쌓을까.

 아이는 어린 나날부터 사진기를 놀잇감으로 삼으며 놀았는데, 이제부터는 피아노를 놀잇감으로 삼으며 놀겠지. (4344.4.2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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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살 아이 새벽맞이와 책읽기


 아버지는 네 시 반에 일어나서 글쓰기를 하려 한다. 네 살 아이는 다섯 시 반에 칭얼거리다가 일어난다. 아이가 엊저녁에 일찍 잤다면, 아주 일찍, 그러니까 다섯 시나 여섯 시나 일곱 시쯤 잠들어 밤새 고이 자다가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면 토닥토닥 달래며 함께 놀아야겠지 하고 느낀다. 그렇지만 어제 하루 졸리면서 낮잠을 꾸욱 참고 저녁까지 맞이하면서 저녁에도 일찍 잠들지 않고 겨우겨우 잠들다가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달라붙으면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만다.

 아이 어머니는 큰방으로 나와서 아이를 옆에 누우라 한다. 아이는 어머니 곁에 눕지 않는다. 큰방 바닥에 널브러진 그림책 하나를 펼친다. 어제 아이가 보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놓은 그림책이다. 아직 어스름이 깔려 어두운데 저렇게 책을 보아도 되나 걱정스러워 불을 켜고 싶지만 불을 켜지 않는다. 조금 기다리면, 1분 2분 3분이 지나며 먼동이 트니까, 차츰 밝는 바깥 빛살을 받아들이도록 해 주자.

 아이는 그림책을 다 보고는 아버지 옆으로 와서 무릎에 머리를 받치고 누웠다가 방바닥에 모로 누웠다가 한다. 아이 어머니가 일어나 아이를 부른다. 둘이 옆방으로 들어간다. 아이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한참 듣는다.

 한숨을 돌리고 아이한테 간다. 아이는 눈을 뜬 채 누웠다.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힘들고, 그렇지만 잠을 자기는 싫은가 보다. 아이 볼에 아버지 볼을 대고 살며시 말을 건다. 예쁜 돼지 조금 더 코 자고 이따가 쑥 뜯으러 가자고, 학교에 가서 언니 오빠 들하고 놀려면 조금 더 코 자야지, 안 그러면 몸이 힘들어서 잘 못 논다고, 아버지는 쌀 씻고 더 일을 할 테니까 벼리는 코 자고 이따가 놀자고, 소곤소곤 말을 건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되는 사람이 젊을 적, 밤 열두 시나 한 시에 잠들더라도 새벽 두어 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했고,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나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아이는 늦게 잠들었어도 금세 몸이 개운해지는지 모른다. 어버이로서 더 기운을 차리고 새삼 기지개를 켜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려는 아이를 반가이 맞이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이는 아직 아이일 테니까, 새벽 일찍 일어났으면 낮잠을 자 주지 않겠나. 어쩌면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도 낮잠을 다시 거르며 저녁까지 칭얼댈는지 모르리라. 그래도 어버이라면 아이를 더 예쁘게 바라보며 더 고운 말씨로 따스히 토닥이며 얼싸안아야 하지 않겠나.

 아이를 다시 들여다본다. 발로 바닥을 통통 차더니 이내 잦아든다. 눈을 살며시 감았다. 조용히 잠들어 주려나 보다. 고맙다, 예쁜 아이야. (4344.4.19.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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